〈 430화 〉 [429화]5성 심사
* * *
"아니, 그러니까 조금만 더 해 보라니까? 아직 재밌는 부분을 몰라서 그래."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와 같이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를 몇 판 돌려보았으나,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바로,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는 그다지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전략적인 부분이 꽤 강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한사코 사양했으나, 앨리스 백작 영애는 계속해서 도미닉 경을 유혹했다.
"그거 지원가만 해서 그런 거라니까? 상단 공격로로 가서 한 번 싸워 봐. 거긴 도미닉 경과 제법 맞을 거야."
"거긴 주군께서 가시는 곳이지 않소."
"읏, 그건...!"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에게 지원가만 하지 말고 다른 라인도 가보라고 했으나, 호기심 많은 도미닉 경이 그런 걸 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다만, 도미닉 경의 성격에는 지원가가 좀 더 잘 맞았을 뿐.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대로 상단 공격로가 더 도미닉 경의 적성에 어울릴지도 몰랐으나, 도미닉 경은 그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곳은 언제나 앨리스 백작 영애가 먼저 픽을 박아버리는 바람에,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같이 하는데 라인이 겹치는 것만큼 이상한 것도 없소."
"맞긴 해. 맞긴 한데...!"
앨리스 백작 영애는 몹시 분한 듯 컴퓨터가 있는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도미닉 경이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에 흥미를 붙일 만한 그 어떤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니카 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 좀 설득해 봐! 그래도 도미니카 경은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에 잘 적응했잖아!"
"그거야 내가 중단 공격로로 가니까. 지원가랑은 다르게 그나마 할 만한 라인이지."
도미니카 경은 그거 게임 중독이라며 한 소리를 한 뒤,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고 페럴란트식 스튜를 먹였다.
도미니아 경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과 입맛이 비슷한지, 스튜를 먹고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부."
"...? 지금 내게 바보라고 한 건가?"
"배부르다는 소리겠지."
도미니아 경은 배가 부른지 말랑말랑한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 와중에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으나, 이내 별일 없이 넘어갔다.
"평화롭군."
도미닉 경이 이 상황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밝은 말을 하는 도미닉 경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의 경험 상, 이렇게 평화로울 땐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그래서일까?
도미닉 경은 평화로움 속에서 그 평화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띵동.
"음."
저것보라.
평화로울만 하니 바로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가.
도미닉 경은 차라리 이렇게 무언가 일어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자주 보는 천사, 천국 택배의 집배원이 있었다.
"또 뵙네요. 어째 도미닉 경 전담 집배원이 된 기분이에요."
천사가 머리에 쓴 모자를 매만지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시킨 것도 없는데, 이렇게나 자주 올 일이 뭐가 있을까 싶긴 하오."
"그것도 그렇죠."
집배원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편지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백금 편지였는데, 도미닉 경은 이젠 편지마저 저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여기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천사의 말에 도미닉 경은 수취인 서명란에 서명을 한 뒤 천사를 배웅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백금 편지를 열어 보았다.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내 편지 내용을 읽고 실망하고 말았다.
편지의 내용은, 사건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은, 그저 평범한 내용이었다.
[도미닉 경은 이번 성급 심사에서 5성 진급 대상자가 되셨습니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도미닉 경은 이것이 행정부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다가, 이내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 탱커 노조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탱커 중에서는 아직 5성이 없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탱커의 희망이다.'
"흠."
도미닉 경은 그 말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탱커들의 처지에서 전입미답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사실은, 탱커 노조 측에도 알려야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편지를 접었다.
그리고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 백작 영애, 그리고 도미니아 경에게 이 사실을 말한 뒤 탱커 노조 클랜 본부로 향했다.
...
"마침내 찾았다, 도미니아 경!"
"큭. 이거 분위기 안 좋아지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왼쪽으로 꺾었어야 했나 봐."
미래의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는 시간 경찰 메리의 집요한 추격 끝에,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았다.
장장 며칠에 걸친 대 추격전이었으며, 이 와중에 시간 경찰이 얼마나 난리를 피웠는지를 서술하면 책으로 일곱 권 쯤 나오겠으나 여기에선 서술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시간 경찰들이 이렇게나 엉망진창으로 돌아다녔음에도 어째서 가차랜드는 이렇게 조용한가?
그 이유는 굉장히 간단하고, 허탈했다.
가차랜드는 평소에도 이 정도로 시끌벅적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금 가차랜드는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벤트겠거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 경찰 메리는 시민들의 미묘한 협력과 협조 속에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를 어떻게든 막다른 길목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어, 도미니아 경.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오라를 받으시지."
"아,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그 범죄라는 게 뭔데!"
막다른 골목은 난장판이 되었다.
죄를 인정하라며 소리치는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경찰복을 입은 메리.
죄가 없다며 자기 결백을 주장하는 도미니아 경.
그리고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미네르바.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러니까, 난 죄가 없다고."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인지 설명 좀 해 달라고!"
분위기는 점점 흉흉하게 변했다.
"이렇게 된 이상, 무력을 행사라는 수밖에 없어."
메리가 등에 멘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산탄총에 매달린 도미닉 경 열쇠고리들이 잘그락 거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너야말로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도미니아 경도 허리춤에 찬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어, 이거 분위기상 나도 뽑아야 되는 거지?"
미네르바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쌍권총을 뽑아 들었다.
막다른 골목에는, 서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회전초가 세 사람 사이를 지나쳤다.
그리고 세 사람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 순간
"그마안!"
"!"
메리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돌며 산탄총을 발사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기습적인 일격이었으나, 메리의 등 뒤에서 나타난 이는 손에 든 할버드를 휘둘러 산탄총의 모든 총알을 튕겨 내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질 기예였다.
"다들 총 내리거라."
"...! 삼촌!"
"그만. 일단 총부터 내려."
도미니아 경은 메리의 등 뒤에서 나타난 사람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메리의 등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야차 가면을 쓰고 할버드를 쓴 거한이었는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돈 카게야샤였다.
"삼촌...!"
그러나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 도미니아 경만이 아니었다.
메리도 돈 카게야샤를 삼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미네르바는 쌍권총을 집어넣고 갑자기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
도미닉 경은 골목길을 통해 탱커 노조의 사무실로 향했다.
탱커 노조에게도 연락이 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미닉 경에게 5성 심사 연락이 온 이상 탱커 노조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탱커 노조입... 도미닉 경?"
"아, 판데모니아 경."
도미닉 경은 오늘도 카운터를 보고 있는 판데모니아 경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도미닉 경."
"그러게 말이오. 저번에 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소."
도미닉 경과 판데모니아는 잠깐 잡담을 나누다가 이내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탱커 노조에는 무슨 일이야..?"
"아, 별 건 아니오."
도미닉 경은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판데모니아에게 자기가 5성 진급 심사 대상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이번에 5성 진급 심사를 받게 되어서 말이오."
"...뭐?"
판데모니아는 뭔가 잘못 들었다는 듯 다시 한번 도미닉 경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도미닉 경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한번 방금 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이번에 5성 진급 심사를 받게 되었소."
그 말에 판데모니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런 판데모니아가 충분히 이해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잠시 침묵해주었다.
그리고 곧, 판데모니아는 도미닉 경의 말을 깨닫고 많은 것이 함축된 한마디를 내뱉었다.
"...에?"
정말 많은 것이 함축된 한마디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