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화 〉 [404화]예상치 못한
* * *
도미닉 경은 매우 노련한 전사이자, 기사였다.
그는 척박한 페럴란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기사를 스승으로 두었고, 단지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기교와 꼼수를 배워두었다.
가차랜드에 도착한 이후 도미닉 경은 그런 잡다한 기술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강했기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도미닉 경의 진정한 강함은 바로 이 '더러운 싸움'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도미닉 경이 악수를 청해 상대편의 손 하나를 봉인하고 바로 기습 일격을 먹였을 때,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에게 반격을 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렀다.
좀 더 정교하게 휘두를 수도 있었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 애송이는 이런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한 전사는 아니었다.
아직은 힘에 취해, 재능에 취해 날뛰는 어린 전사.
도미닉 경은 상대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다음 수를 펼쳤다.
바로 악수를 하던 손을 몸쪽으로 당겨 버린 것이다.
그러자 카게야샤가 휘두르던 팔은 도미닉 경을 때리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고, 이 틈을 타 도미닉 경은 곧바로 카게야샤의 팔을 비틀어 완전히 제압을 하려고 유도했다.
그러나 카게야샤는 놀라운 괴력의 사나이로, 도미닉 경의 기술을 충분한 힘으로 파훼할 수 있는 이였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수를 오로지 힘과 패기로 파훼한 뒤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기사이자 전사면서 이런 비겁한 수를 큭!"
그러나 도미닉 경은 말없이 다시 한번 카게야샤에게 기습을 먹였다.
방패로 몸을 가린 상태에서 달려들자 카게야샤는 곧 있을 충격에 대비해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정직하게 방패로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방패를 내린 도미닉 경은 허공에 뛰어올라 이단 옆차기로 카게야샤를 걷어찬 것이다.
카게야샤가 대비하던 타이밍과 약간 다른 타이밍에 다른 방식으로 들어온 공격에 카게야샤는 또다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은 이단 옆차기로 상대를 차는 자세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그러나 이는 도미닉 경이 행할 다음 수의 준비 자세였다.
도미닉 경은 그대로 카게야샤의 무릎으로 돌진, 오금을 잡고 카게야샤를 땅에 쓰러뜨려 버린 것이다.
카게야샤의 덩치는 도미닉 경보다 두세 배는 더 컸기에 넘어지는 소리도 그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아직이오."
카게야샤가 쓰러진 충격에 피어오른 흙먼지 너머로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 나갔다.
몸을 일으키려는 카게야샤의 콧잔등에 칼 손잡이로 한 방 먹인 도미닉 경은 이내 카게야샤를 다시 제압하려는 듯 팔을 발로 누르고 카게야샤의 위에 올라 탔는데, 카게야샤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방패의 모서리로 카게야샤의 목젖 부분을 내리눌렀다.
그러나 카게야샤는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육체를 앞세워 목젖으로 도미닉 경의 방패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의 신체 능력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땅을 굴러 카게야샤와의 거리를 벌렸다.
"큭..."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공세에 온몸이 저릿저릿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의 공격으로 인해 전신이 경직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카게야샤는 충격적인 사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이 공격한 부위와 공격한 방식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노련한 전사라고 함은, 한눈에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사들은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략을 썼으며, 이는 카게야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달랐다.
도미닉 경은 마치 처음 검을 잡아 본 초심자처럼 상대방의 반응을 이리저리 확인해 보고 있었으나, 카게야샤는 그것이 초심자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알았다.
도미닉 경은 지금, 완벽한 승리를 위해 카게야샤에게는 어떤 공격이 잘 먹히는지, 어떤 부위에 대한 공격이 효과적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카게야샤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앞선 말을 종합해 보면...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 '따위'는 가볍게 상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한 전사라는 뜻이 되었으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카게야샤는 다시금 금속 가루가 든 주머니를 손에 쥐었다.
다시 한번 그의 특수 기술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노니]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카게야샤가 가진 기술 중 가장 강한 기술이자, 지금까지 카게야샤에게 거의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준 기술이었다.
이번에도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노니]는 카게야샤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가 주머니를 꺼내 들자마자 순식간에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보았다.
바로 이전 판에서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특수 기술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마치 도미닉 경을 저격하려는 듯 만들어진 기술.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를 보며, 카게야샤가 불리해질 때 분명 가장 강한 기술을 선보이리라 예측하고 있었다.
논리적인 추론은 아니었다.
거의 그럴 것이다 수준의 예측일 뿐이었다.
그러나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쳐 온 도미닉 경에게 있어, 전투에서만큼은 그 예측은 예측을 넘어 예언이 되었다.
도미닉 경은 은근슬쩍 방패를 들어 올리는 척하며 다리를 살짝 굽혔다.
마치 여차하면 바로 달려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불의 신이 진노하노니!"
카게야샤가 그리 말하며 금속 가루가 든 주머니를 무기로 던졌을 때, 도미닉 경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세상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다.
도미닉 경은 이 느린 세상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며 검으로 할버드를 걷어내고는 방패로 금속가루가 든 주머니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리고... 세상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당연히 모두가 알겠지만, 이는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의 효과였다.
...
카게야샤의 할버드에서 불타고 있어야 할 화염이 도미닉 경의 방패에서 피어올랐다.
"맙소사."
카게야샤가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해 탄식을 내뱉었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의 얼굴은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는데, 카게야샤는 그 덕분에 도미닉 경의 환한 미소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늘지고, 음습하며, 잔혹하고 사악한 미소를.
"흐."
도미닉 경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흐린 웃음소리를 내며 불타는 방패로 카게야샤를 밀쳐 내었다.
불타는 방패로 인해 카게야샤의 옷깃에 불이 붙었으나, 카게야샤는 그런 사소한 것에 반응하지 못했다.
카게야샤의 관심은, 오로지 도미닉 경이 어떻게 자기 특수 기술을 빼앗아 갈 수 있었는지에만 몰려 있었으니까.
"꽤 특이한 식의 강화 방식이구려."
도미닉 경이 불타는 방패를 검으로 드드득 긁어내며 말했다.
그러자 도미닉 경의 검에도 화염 효과가 일어났다.
도미닉 경의 양손에 불길이 일어나자 도미닉 경의 미소 띤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는데, 카게야샤는 그 모습이 마치 사악한 이무기처럼 보였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는 소리다.
"...믿을 수 없다."
카게야샤는 이 상황 자체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심판을 바라보았으나, 심판은 그저 재밌다는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면서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뿐, 개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실, 심판이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이는 카게야샤의 특수 기술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카게야샤의 특수 기술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속 가루를 뿌려 불길을 일으킨 뒤 무기에 인챈트를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인챈트를 한 대상이 자기 자기 무기였을 뿐, 실제로는 그 어떤 무기라도 인챈트를 시킬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금속 가루가 날아가는 그 짧은 시간을 빼앗아 반대로 자기 무기에 인챈트를 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가 마지막 희망으로 특수 기술을 쓸 것을 알았고, 그 특수 기술을 역이용함으로서 카게야샤의 마지막 희망마저 꺾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은, 도미닉 경이 무의식적으로 두 수, 세 수 앞을 바라본 결과였다.
"하, 하하."
카게야샤는 이 압도적인 차이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도미닉 경은 사실상 완전체나 다름없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을 이길 수 없었고, 경험적인 면에서도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을 이길 수 없었다.
그나마 힘과 공격력은 카게야샤의 우세였으나, 그마저도 특수 기술을 빼앗김으로서 공격력의 우위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카게야샤는 고개를 돌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고작 15초.
시계는 고작 1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경기 내내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압도적인 공세 앞에 그야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맞기만 한 것이다.
패배.
완벽한 패배.
"하하하하하하하!"
카게야샤는 이 후련할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 앞에 그저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타이머가 0이 되고, 카게야샤의 패배가 완전히 확정되었을 때.
카게야샤는 천천히 다가오는 도미닉 경의 승리를 양팔 벌려 축하했다.
"과연 세계 최고의 무사답습니다, 삼촌!"
예상치 못한 말과 함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