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3화 〉 [402화]일기토
* * *
첫 판은 카게야샤의 승리였다.
도미닉 경이 불길을 뚫고 카게야샤에게 닿기 전, 시간 초과로 인해 판정패를 당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첫 패배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일단 기선을 제압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백이다."
카게야샤는 방금 전 도미닉 경이 내뿜은 섬뜩할 정도의 전의를 떠올렸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카게야샤의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당시에 카게야샤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도미닉 경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카게야샤의 특수 기술은 도미닉 경의 카운터일 뿐 더러, 현 시대의 도미닉 경은 아직 4성에 머무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카게야샤의 착각이었다.
도미닉 경에게는, 겉으로 느껴지는 것 이상의 강함이 숨겨져 있었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카게야샤는 반쯤 절망에 빠졌다.
첫 경기를 이긴 사람의 반응이라기에는 상당히 이상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카게야샤는 진심으로 도미닉 경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비록 도미닉 경의 허를 찔러 한 판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이미 밑천을 드러낸 상태에서 어떻게 저 걸어 다니는 성채를 상대한단 말인가?
도대체 어째서 카게야샤는 이렇게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버렸단 말인가?
이는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의 영향이었다.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은 고작 도미닉 경을 좀 더 멋있게 포장하거나, 상황을 도미닉 경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특성이 있었다.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이 의도한 상황을 더 극적으로, 실감 나게, 마치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방금 전, 도미닉 경은 빼앗겼던 기세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시네마틱]은 '빼앗긴 기세를 돌려받는다.'라는 목적을 위해 '전의를 불태운다.'라는 수단을 쓴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기세를 돌려받을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전의를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결국, [시네마틱]의 효과로 두려움과 공포라는 상태 이상에 걸렸다는 소리였다.
카게야샤는 아쉽게도 이런 상태 이상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그는 가차랜드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지루한 탱커보다는 화려한 딜러가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렇기에 카게야샤는 공격적인 특성과 공격적인 특수 기술만 있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카게야샤가 이토록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것은 바로 경험의 부족이었다.
카게야샤는 또래의 누구보다도 강했기에 적수를 찾기가 힘들었다.
거기에다가 강자하고만 싸우려는 카게야샤의 성격과 합쳐져, 직접 싸운 적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에 반해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만 해도 과장을 보태어 수천 번, 수만 번을 싸워온 역전의 용사였다.
기세 싸움에서 절대 카게야샤와 같은 애송이에게 질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에게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카게야샤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사였고, 전사였으며, 기사의 후예였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카게야샤의 좌우명.
카게야샤는 문득 조금 뒤에 두 번째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제 곧 쉬는 시간이 끝난다.
카게야샤는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며 할버드를 들어 올렸다.
1대0.
아직은 카게야샤에게 유리한 스코어.
카게야샤는 아직 희망이 있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의 강자와 싸울 기회는 앞으로도 손에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분발하는 수밖에.
...
"실패인가?"
도미닉 경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카게야샤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보며 아무래도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고 여겼다.
그만큼 카게야샤의 기세는 흉흉했고, 가면 너머의 눈동자에서는 불길이 줄기줄기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도 소득은 있었군."
도미닉 경은 문득 할버드를 든 카게야샤의 손을 보았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 의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저 손은 할버드를 꽉 쥔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 말인 즉,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을 어떻게든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도미닉 경에게 유리한쪽으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미닉 경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갈 준비했다.
"까까?"
"그래. 과자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거라."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에게 과자 한 봉지를 뜯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도미니아 경은 새로운 과자에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으로 가득한 까닥거림을 선보였다.
마치 기우제를 지내는 주술사처럼 말이다.
"까우!"
도미닉 경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다시 연무장으로 올라갔다.
이제 겨우 1라운드를 끝냈으니, 앞으로 내리 3라운드를 이기겠다는 심정으로
"도미닉 경. 건의할 게 있다."
"음?"
도미닉 경은 갑작스러운 카게야샤의 말에 의문스러운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카게야샤의 말은 정말로 갑작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게야샤는 정말로 도미닉 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 심판에게 가 잠시 2차전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심판은 카게야샤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타임은 악용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써도 좋다고 여겼으니까.
타임을 외친 카게야샤는 다시금 연무장으로 올라와 도미닉 경의 앞에 섰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게 하나의 제안을 건넸다.
"난 방금 전 판을 무효로 돌리고, 5판 3선승제가 아닌 단판 승부를 벌이고 싶다."
"?"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카게야샤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이어진 카게야샤의 말에 도미닉 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당신은 오래 싸울수록 강해지는 전사다. 반면, 나는 아직 경험이 일천해 정석적인 싸움으로는 당신을 이길 수 없다."
"만일 내가 이번 판까지 이기더라도, 나머지 세 판은 당신이 이길 것이다. 당신은 거북이다. 마지막에 토끼를 이겨 버리는 거북이."
도미닉 경은 카게야사의 묘사를 통해 카게야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노련한 전사이기에 순식간에 카게야샤의 어설픔을 알아차리고 집요하게 그곳을 노릴 것이었다.
그러면 경험이 부족한 카게야샤는 대처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리라.
카게야샤는 바로 그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허무하게 지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니 방금 전의 판, 즉 내가 유리했던 판을 무효로 하는 대신, 앞으로 있을 당신이 유리한 판들을 제외하고 딱 지금 판에 집중하고 싶다. 그나마 가장 승패가 반반일 이번 판에."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서로 유리한 것들 없이, 공평한 상황에서 단 한 판.
그 한 판으로 결판을 내자는 소리였다.
카게야샤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반대쪽 손으로 할버드를 든 손의 손목을 꼭 잡으며 되물었다.
"내 제안을 수락하겠나?"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 두 눈에서 전사의 기백을 보았다.
정말로 공평한 상황, 공평한 조건에서 공평하게 싸우는 것.
강자를 꺾는 영광도, 질 거라는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그곳엔 강자와 싸워 보고 싶다는 호승심으로 가득한 전사 뿐이었다.
"좋소."
도미닉 경은 히죽 웃으며 카게야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이 한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심판? 혹시 방금 전의 판을 무효로 하고, 이번 단판으로 승부를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그럼 바로 이전 로그는 지워드릴까요?"
도미닉 경이 심판에게 룰의 변경을 요청했다.
"그렇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싸움은 상세하게 기록해 주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으니."
"좋습니다."
그리고 카게야샤가 심판에게 아주 상세한 기록을 부탁했다.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는 여전히 악수를 한 상태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히죽거리고 있었고, 카게야샤는 떨림이 멈춘 듯 보였으나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소."
도미닉 경이 카게야샤에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이다."
카게야샤가 악수를 하지 않은 손으로 할버드를 꽉 쥐었다.
"...?"
카게야샤는 악수를 하던 손을 빼내고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갑니다!]
"참 즐거운 전투가 될 것 같군."
도미닉 경이 카게야샤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말이다."
카게야샤는 계속해서 도미닉 경과 악수한 손을 풀고 빼내려고 했지만, 도미닉 경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실, 이는 약간의 속임수가 섞여 있기도 했다.
악수를 하는 척하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근육들을 손가락으로 점해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노련한 전사라서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카게야샤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당황하지 않은 척했지만
[GET, SET, GO!]
둘 사이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행복하군. 행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도미닉 경은 그리 말하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악수를 하지 않은 손으로, 카게야샤의 턱을 올려 쳤다.
카게야샤의 고개가 솟구치며 뒤로 꺾였다.
악수를 하지 않은 도미닉 경의 손에는, 평소와 같이 방패가 들려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애송이에게 또 한 번의 기선 제압을 성공 시키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