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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01화 (401/528)

〈 401화 〉 [400화]일기토

* * *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는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1:1 대전하러 왔소."

"그렇군요. 몇 판 몇 선승제인가요?"

"음."

도미닉 경은 콜로세움의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익숙하게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인터넷으로 1:1에 대한 것을 숙지하고 왔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카게무샤를 바라보았다.

카게무샤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 잠시 가면의 턱 부분을 쓰다듬더니, 한 손의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5판 3선승제로 하자는 소리요?"

"아니, 5세트. 9판 5선승제로."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에게 최대한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내뱉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소."

"왜지?"

"손녀가 지루해할 거라서 말이오."

"아."

도미닉 경의 말에 카게야샤는 순간 납득하고야 말았다.

도미니아 경은 현재 상황을 즐기는 듯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에 두근두근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이인 만큼 언제 이 호기심이 다른 곳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일.

그렇게 되면 도미닉 경도 도미니아 경을 따라 돌아가야만 할 테니, 카게야샤의 제안은 정말 터무니없다.

카게야샤는 할버드를 어깨에 기대어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 오리너구리 인형으로 제안할 수 있는 건 5판 3선승제가 최대인가 보군.

카게야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미닉 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다. 5판 3선승제."

"알겠소. 1대1, 5판 3선승제요."

도미닉 경은 콜로세움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1대1, 5판 3선승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직원은 1:1, 5판 3선승제라고 다시금 중얼거리더니, 이내 지형에 대해서 물어왔다.

"혹시나 원하시는 맵이 있으세요?"

"맵이라. 요즘 유행하는 맵이 있소?"

"뭐, 비행정 내부에서의 결투라던가,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싸운다던가, 혹은 곧 가라앉을 잠수함 위에서 싸운다던가 기믹 자체는 다양한 편이에요."

"흠."

이번엔 도미닉 경이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도미니아 경이 맵을 골라주었기 때문이었다.

"하뿌! 짜!"

"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가리킨 맵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불타는 건물을 배경으로 한 비무장이었는데, 야간 맵이었는지 불길이 치솟는 부분을 제외하면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마 도미니아 경은 불타는 맵의 붉은 부분을 보고 이 맵을 고른 모양이었다.

붉은색은 꽤 자극적인 색깔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골라준 이 맵이 마음에 들었지만, 일단 상대방의 의견도 물어봐야 했기에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에게 이 맵에 대해 괜찮은지를 물었다.

"이 맵은 어떻소?"

"싸울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제안에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맵까지 고르자, 콜로세움의 직원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컴퓨터에 무언가를 기입하더니, 둘에게 열쇠 하나를 쥐여주었다.

"17번 방 '1:1불타는 연무장5판 3선승초보만'으로 가시면 돼요. 열쇠는 끝나시면 바로 반납하시구요, 혹시라도 추가적인 대전을 원하시면 카운터로 연락 주세요."

"고맙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직원이 건네준 열쇠를 받았다.

"이젠 정말 싸울 일만 남았구려."

"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고 먼저 걸음을 옮겨 17번 방을 찾았다.

카게야샤는 자연스럽게 도미닉 경의 뒤를 따라갔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이 17번 방에 도착하자, 그곳엔 양옆으로 밀 수 있는 커다란 미닫이 문이 있었다.

그 미닫이 문을 열자 도미닉 경은 불타는 연무장을 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의 복도와 방 안의 모습의 괴리감이 어찌나 심한지 마치 차원을 칼로 잘라 본드로 이어 붙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미닉 경은 불타는 연무장의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게야샤는 뒤따라 들어가더니, 예의 바르게 문을 닫고는 도미닉 경을 따라왔다.

아무래도 말과 행동과는 달리, 꽤 건실한 남자일지도 몰랐다.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품에 안겨 이글거리는 불길에 손을 뻗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더라면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었으나, 이곳은 모두 연출된 상황이었기에 화상을 입을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은 도미니아 경의 눈길과 주의를 더욱 끌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유아용 탁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들어온 입구의 옆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외에도 아기용 기저귀나 간식거리들도 있었다.

도미닉 경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가차랜드의 시민들 중에서 부모인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당장 운류 무사시와 운류 이치코만 해도 히메의 부모님이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된 자식이 뚝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만 제외한다면, 분명히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키운 시간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적들은 그런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유아용 탁자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이 좋아할 법한 달달한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텔레비전을 틀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틀어 주었다.

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나서야, 도미닉 경은 이미 연무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카게야샤와 마주할 수 있었다.

"미안하군. 늦었소."

"아니다. 아이가 먼저지, 싸움이 먼저는 아니니까."

카게야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 방해가 되는 건 모두 사라졌으니, 남은 건 제대로 싸우는 것뿐."

카게야샤는 다시 한번 가부키스러운 자세를 잡으며 할버드를 들어 올렸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의 주변에서 보일 리 없는 아우라가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손녀의 오리너구리 인형을 양도받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싸워주겠소."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말에 정중히 대답하며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방패를 앞세운 채 들어 올리며 방패 너머로 카게야샤를 쳐다보았다.

"...명불허전."

카게야샤는 그 모습을 보며 이유 모를 감탄사를 터뜨리더니, 이내 도미닉 경을 향해서 쇄도했다.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매우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음!"

도미닉 경은 찔러 들어오는 할버드의 창날을 방패로 빗겨내려고 했으나, 할버드의 도끼부분이 갈고리처럼 방패의 모서리에 걸리며 순식간에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할버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순식간에 몸을 한 바퀴 돌려 검을 내질렀다.

도미닉 경의 검은 관리가 아주 잘되어 있어, 불타오르는 연무장을 고스란히 검신에 담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검 끝은 카게야샤의 목을 향해 짓쳐들었다.

카게야샤는 순식간에 할버드를 끌어당겨 할버드의 반대편 끝자락으로 검 끝을 튕겨 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이 검으로 찌른 건 허초였고, 진짜는 이후에 휘둘러진 방패였다.

"큭­!"

카게야샤는 다급하게 봉 부분을 들어 막아 내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몸쪽으로 더욱 가까이 붙으며 방패를 내질렀다.

도미닉 경의 공격에 카게야샤는 굴러서라도 다음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미닉 경의 장비에 붙어 있는 효과, 방패로 타격시 기절 효과가 터진 것이다.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를 향해 다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기세를 잡은 상태였으니, 이 기세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카게야샤는 첫 판의 패배를 직감하며 눈을 감았다.

"잠깐! 잠깐!"

그때였다.

도미닉 경의 마무리를 방해하는 이가 나타난 것은.

"그, 심판도 없이 싸우시면 안 되죠?"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에 보안관 모자를 쓰고 있었고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가슴팍에는 노란색과 빨간색 카드가 꽂혀 있었다.

"미안합니다. 조기 축구 심판을 봐주다가 손님들 오신 줄도 몰랐지 뭡니까."

보안관 모자의 남자는 너스레를 떨며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를 떨어뜨려놓았다.

"당신은 뭐지?"

카게야샤가 이 명예로운 싸움을 방해받은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정작 지고 있던 건 그였으나, 이 갑작스러운 방해에 가장 화가 난 것도 그였다.

"아, 심판입니다. 혹시 입구에 있는 직원이 설명 안 해주던가요?"

자신을 심판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이내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하는 일은 확실하게 승부가 났을 때 승부에 불복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무승부가 일어날 때 판정을 통해 승패를 가리며, 두 사람이 공정하고 깨끗한결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 결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임무도 맡고 있죠."

심판은 너스레를 떨며 주머니에서 스탑워치를 꺼내 들었다.

그 스탑워치는 정확하게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싸우면 길거리에서 결투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적어도 이렇게 누군가가 확실하게 결과를 알려주는 것 정도는 있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서로와 심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준비되시면 말씀해주시죠. 제가 온 이후부터가 진짜 5판 3선승제의 시작이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심판은 히죽히죽 웃으며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를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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