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화 〉 [399화]일기토
* * *
이튿날 아침,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과 함께 가차랜드의 거리로 나왔다.
도미니아 경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본 말랑말랑한 봉제 인형에 꽂혀 밤새도록 울어댔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지치지도 않는 작은 악마의 울음소리에 영향을 받은 이는 앨리스 백작 영애 뿐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진짜 마족들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밤을 새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아무튼, 도미닉 경은 그러한 이유로 도미니아 경이 원하는 봉제 인형을 사러 나왔다.
미묘하게 생긴 오리너구리 인형이었는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인형의 어디가 그렇게 귀여워서 저러는 것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전국의 모든 장난감 가게에서 판매한다고 했으니, 수량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라는 건 도미닉 경의 생각일 뿐이었다.
"뜻밖에 그...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도미닉 경은 벌써 세 군데의 장난감 가게를 돌아보고 있었지만, 오리너구리 인형은 품절에 품절의 연속이었다.
"뿌으..."
도미니아 경은 아직도 인형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 슬픈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물방울은 톡 하고 건드리면 바로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를 어쩐다... 라고 도미닉 경이 난감해하고 있을 무렵.
"음."
장난감 가게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자는 야차의 가면을 쓴 거구의 사내였는데, 한 손에는 할버드를, 한 손에는 오리 너구리 인형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오리너구리 인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디론가 향했다.
"...어리!"
도미니아 경은 방금 전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오리너구리 인형을 사간 자가 바로 저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 들린 오리너구리 인형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여긴 저게 마지막이었던 모양이구나."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달래며 그리 말했다.
도미니아 경은 계속해서 야차 가면의 손에 들려진 오리너구리 인형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이내 도미닉 경의 품속에서 노곤노곤 늘어졌다.
도미니아 경은 아직 어린 만큼, 누군가의 품이 더 좋은 걸지도 몰랐다.
"어차피 전국에 있는 모든 장난감 가게에 있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돌아보자. 하나쯤은 남는 곳이 있겠지."
도미닉 경은 조금 더 일찍 나올 걸 그랬나 싶었으나,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 법.
도미닉 경은 후회를 하는 대신 조금 더 건실한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울먹거리는 도미니아 경을 끌어안고 다음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이번엔 그 어정쩡하게 생긴 오리너구리 인형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
"죄송합니다. 방금 전의 손님이 가져간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방금 재고가 다 떨어져서요. 네? 네. 방금 전의 손님 분께서"
"그, 재고가 다 떨어졌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연락처라도 주시면 다음 입고 때"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미묘하게 생긴 오리너구리 인형이 뭐라고 이렇게 가는 곳마다 품절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심지어 도미닉 경이 도착하기 직전에만 품절이 일어나지 않는가.
"우으..."
도미니아 경은 가는 곳마다 오리너구리 인형이 없다는 사실에 울다가 지쳐 버린 상태였다.
도미닉 경은 그런 도미니아 경을 안쓰럽게 쳐다보고는, 무심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음."
야차 가면의 사내를.
"...혹시 저 사람이 마지막 하나를 사 간 거요?"
"아, 네! 저분께서..."
아무래도 이번 장난감 가게의 직원은 신입이었는지 알려주면 안 되는 정보를 술술 불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고객에 대한 정보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고맙소."
그러나 도미닉 경은 지금 찬 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달랠 용도로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던 작은 과자 몇 개를 산 뒤 계산했다.
그리고 도미니아 경에게 과자 하나를 뜯어 쥐어 준 뒤, 야차 가면을 쓴 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 갔다.
"이보시오."
"음?"
야차 가면을 쓴 자는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탐욕스럽게도 오리너구리 인형 수십 개를 망태기에 담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도미니아 경은 그 어마무시한 인형들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단도직입적으로 야차 가면의 남자에게 제안을 건넸다.
"오리너구리 인형을 하나 팔아주실 수 없겠소? 돈은 넉넉히 드리리다."
그렇다. 도미닉 경은 거래를 제안했다.
도미닉 경은 태생이 기사였던지라 빼앗는다거나 상대방을 비난한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적어도 평소에는 말이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야차 가면의 남자에게 그 많은 오리너구리 인형 중 하나를 팔아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야차 가면의 남자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불가능하다."
"어째서요?"
"이는 어머니께 드릴 선물이기 때문이다."
야차 가면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인형이 가득 든 망태기를 고쳐 메었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로는 과하지 않겠소?"
도미닉 경도 나름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하나 정도는 팔아주어도"
"불가능."
그러나 야차 가면의 남자는 단호하게 도미닉 경의 말을 끊었다.
그는 부리부리한눈을 더욱 부릅 뜨며 도미닉 경에게 답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인형을 108개. 그런 정성이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다."
"...당신 어머니께 말이오?"
"아니, 나 스스로에게."
야차 가면의 남자는 나름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야차 가면의 남자는 자기가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으음..."
도미닉 경은 야차 가면의 남자의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다.
야차 가면의 남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철옹성 같은 심지의 남자였으니까.
그때, 야차 가면의 남자는 고개를 조금 더 내려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야차 가면의 얼굴이 싸악 굳었다.
"저 꼬마 아가씨는 누구인가?"
"...내 손녀요."
"손녀라."
야차 가면의 사나이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도미닉 경에게 이름을 물었다.
"당신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도미닉 경.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도미닉 경은 야차 가면의 말에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다.
그러자 야차 가면은 다시금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이렇게 말했다.
"원한다면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
"그렇소?"
도미닉 경은 만면에 화색을 띠며 야차 가면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이 준 과자를 다 먹었는지 봉투를 고이 접어 허리에 찬 작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아마 집에 가거나, 중간에 쓰레기통을 찾으면 버리려고 하는 거겠지.
아무튼, 야차 가면은 망태기에서 오리너구리 인형을 하나 꺼낸 뒤, 손에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만, 당신들이 원하는 걸 들어 주는 만큼, 나도 원하는 걸 하나 요구할 수 있게 해 달라."
"좋소. 과도하지만 않다면 받아들이리다. 무엇을 원하오?"
도미닉 경의 물음에 야차 가면의 남자는 다시금 망태기에 오리너구리 인형을 집어넣은 뒤, 할버드를 땅에 쿵 찍으며 쩌렁쩌렁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은 그 일신의 무력으로 용신을 잡아 땅에 꿇리고, 악신을 잡아 납작하게 포를 떴으며, 온갖 역경과 시련을 거쳐 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야차 가면의 남자는 할버드의 아랫부분을 발의 바깥 부분으로 툭 찬 뒤 한 손으로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뿐이랴?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은 그 무력이 신에 닿아 반신이요, 가차랜드의 도미닉 경은 그 재력이 하늘에 닿아 재신이니, 인간의 몸으로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자자하다."
탁. 하고 뱅글뱅글 돌아가던 할버드를 가볍게 멈춘 야차 가면의 남자는 할버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한 손을 도미닉 경에게 내밀고는, 할버드의 창끝을 도미닉 경에게 향했다.
다리 하나는 들어 올린 자세였는데, 도미닉 경은 그 자세가 도대체 어떤 자세인지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가부키에서 행하는 자세였다.
"그런 무신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해도 괜찮겠나?"
야차 가면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가면 속의 눈을 더욱 부릅떴다.
도미닉 경은 그런 야차 가면의 남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슬쩍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갑자기 멋진 자세를 취한 야차 가면의 남자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 멋있어 보였는지 야차 가면의 남자의 행동을 따라 하는 도미니아 경을 보며,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소.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지금은 아니다? 어째서지?"
"그야..."
도미닉 경은 저 멀리 슬쩍 보이는 콜로세움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차랜드에서 합법적으로 싸울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 싸우다가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야 있겠소?"
"음."
도미닉 경의 말에 야차 가면의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도미닉 경의 말은 이치에 맞았다.
"좋다. 그렇다면 그러도록 하자."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니아 경을 다시 안아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아 참."
도미닉 경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야차 가면을 보았다.
"내 이름만 알려 줬지, 통성명을 하진 못했군. 당신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소?"
"...카게야샤. 카게야샤라고 불러라."
야차 가면의 남자는 자신을 카게야샤라고 불렀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가지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카게야샤도 말없이 도미닉 경의 뒤를 따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