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화 〉 [398화]미래로의 회귀
* * *
이튿날 아침.
"후."
도미닉 경은 간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지속하고 있었다.
어제의 동글동글했던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 다시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온 도미닉 경.
"역시 하루를 쉬면 이틀을 퇴보하는 건가."
도미닉 경은 박살 나버린 허수아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인지 예전보다 방패를 휘두르는 속도나 방패를 들어 올리는 기술같은 것들이 퇴보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은 이렇게 조금 과할 정도로 훈련하는 것이 좋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목에 둘러두었던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음?"
"하뿌!"
도미닉 경이 이마를 지나 안대 아래로 스며든 땀을 닦고 있을 때, 도미닉 경의 훈련장에 작고 귀여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도미닉 경의 손녀, 도미니아 경이었다.
"아우아삐!"
도미니아 경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며 허수아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도 허수아비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너도 수련하고 싶은 건가?"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니아 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배려해 살짝 옆으로 비켜 주었다.
허락의 표시였다.
도미니아 경은 그 표시를 알아보고는 바로 등에 메고 있던 작은 방패를 들어 허수아비를 픽픽 치기 시작했다.
너무 어려서 그런지 허수아비를 치는 힘도 약했고, 가끔 헛손질을 하며 땅에 꽈당 넘어지기도 했지만 도미니아 경은 허수아비를 치는 것 자체가 재밌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계속해서 허수아비를 때렸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아침 먹어!"
도미니카 경이 현관문을 열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아 경을 불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도미니아 경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이제 들어가자꾸나. 아침은 먹어야지."
"빠!"
밥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미니아 경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씻고 밥 먹어. 우린 먼저 먹고 있을 테니..."
도미니카 경은 엉망이 된 도미닉 경과 도미니아 경의 꼴을 보고는 그렇게 말했으나, 이내 도미니아 경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과 같이 목욕을 해도 이상할 것은 없는 나이였으나, 도미닉 경은 굉장히...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에게 이런 귀여운 여자아이를 맡기는 순간,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엉망이 될 것은 뻔할 뻔자.
"아니다. 도미니아 경은 내가 같이 씻을 테니, 먼저 씻고 나와."
"...? 알겠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욕실로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가볍게 샤워를 마친 후,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씻는 동안에, 도미닉 경은 먼저 밥 먹어."
도미닉 경은 욕실로 들어가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도미닉 경이 식사를 마치자, 우연찮게도 도미니카 경과 도미니아 경이 욕실에서 나왔다.
도미니카 경은 뭔가 진이 빠진 듯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역시 어린아이의 체력이란."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뭐, 저 나이때엔 다 그런 것 아니겠소?"
도미닉 경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대화에 앨리스 백작 영애가 끼어들었다.
"저 아이도, 생필품은 좀 사야되지 않아?"
아. 도미닉 경은 그 말에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우리랑은 덩치도 그렇고 많은 게 다르니까 말이야. 따로 사야할 게 많을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이 집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와 같은 성인들에겐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도미니아 경에겐 너무 크고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말이 나온 대로 밖으로 나가 도미니아 경의 물건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뭘 사야 할지 모르겠구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야"
도미닉 경의 말에 답변하려던 도미니카 경도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앨리스 백작 영애는 고개까지 돌리며 외면하고 있었다.
셋 다 아이들과는 연이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를 못 하는 것이다.
"...앨리스네 어머니에게 연락해봐야겠소."
"어? 나?"
"아니, 도미닉 경과 내 종자 이름이 앨리스야. 그러고 보니 이름이 같네. 헷갈리겠다."
도미니카 경이 앨리스 백작 영애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일단 조금 있다가 연락해보는 것이 좋겠소."
"왜? 지금 연락하지 그래?"
도미닉 경은 잠시 후에 전화하겠다며 말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왜 지금이 아니라 나중인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의문은 도미닉 경의 말로 해결되었다.
"앨리스는 아직 학생이오. 등교를 할 시간이라는 뜻이지."
"아."
앨리스 백작 영애는 탄성을 내지르며 납득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조금 기다리는 수밖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도미니아 경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장 좋아하는 스튜를 마음껏 먹고 있을 뿐이었다.
...
가차랜드의 외곽, 황무지 지대와 맞닿은 경계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이 황량한 곳에, 번개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다친 사람도 없었다.
아니, 번개가 떨어진 곳에는 한 사람이 존재하기는 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없었던 존재가.
그 존재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이내 가차랜드와 황무지를 번갈아 가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맞나?"
하얀 머리에 에메랄드빛 눈동자.
머리 위에는 삼색의 깃털을 꽃고, 하얀 코트를 입은 의문의 여성.
...물론 등 뒤에는 눈부시게 하얀 방패를 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눈이 부시도록 날카로운 쿠나이와 리볼버가 달려 있었다.
도대체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인지 전혀, 전혀 알 수 없는 의문의 여성.
그 여성은 가차랜드와 황무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가 아는 가차랜드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가차랜드는 조금 더 발전한 기분이었는데."
여성은 황무지 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렇게 황폐한 곳이 아니었는데...?"
여성은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어머니가 배낭여행에도 재화가 필요하다고 하신 거구나. 재충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흰 머리의 여성은 주머니에서 금으로 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 회중시계는 일반적인 회중시계와는 달리 무려 시곗바늘이 13개로 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 개는 제대로 움직이고 그중 몇 개는 멈춰 있었으며, 그중 몇 개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안 되면 차원 은행에서 빌려서라도 돌아가자.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실패 같아."
그렇게 말한 흰 머리의 여성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코트를 추스르고 가차랜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화를 모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
이번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가차랜드는 난장판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가 현시대에 풀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중앙 시스템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벤트를 수락한 것이 아니었다.
중앙 시스템도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미래의 나는 어떻지?"
"당신의 머리는 ■■■...아, 이런. 제한된 정보로군요."
"응? 내 머리가 어떻게 되는데? 왜 거기만 검열 돼?"
미래의 정보를 얻으려다가 오히려 의문만 증폭시키게끔 만들거나...
"있지, 미래에 오를 주식을 좀 알려 줘."
"...그거 병입니다, 선조님. 그거 아십니까? 사실 세상은 일루미나티가"
제정신이 아닌 후손을 데려오는 것까지.
그야말로 가차랜드에서 미래의 지식이 풀리지 않도록 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조금 과한 처사이기는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차랜드의 시민들을 좀 과대평가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있잖아, 미래의 나는"
"아, 미래의 정보는 알려드릴 수"
"4성 도미닉 경을 뽑았을까?"
"...그거 천장 없다는 사실만 알아두십쇼."
이 순간에도 카드 팩을 뽑을 생각만 하는 자들과
"아, 아버님? 그러니까 이건"
"이노옴! 내 사위로 소환되었으면, 네가 내 딸이랑 결혼했다는 소리렸다! 고작 13살인데!"
"아니, 결혼은 10년 뒤에나 아!"
"그런 변명따윈 필요 없다!"
우연찮게 이상한 상황에 걸려 비밀을 알려 줬음에도 신경도 쓰지 않는 부류와
"그러니까, 오늘 사과 10개 가차를 돌리면 이득이라는 소리지?"
"아니, 그러니까 사과 가차로 집안이 망했다구요!"
누가 뭐라고 하든 제멋대로 듣는 사람들까지.
가차랜드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이 순간...
"..."
야챠의 가면을 쓰고 할버드를 든 거구의 사내가, 가차랜드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
"음."
굵은 목소리로 가차랜드의 모습을 눈에 담은 남자는, 할버드를 지팡이 삼아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흐음..."
야차의 가면을 쓴 남자는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는 N극을 잠시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남자가 가는 방향은, 바로 하얀 머리의 여자가 있는 방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