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98화 (398/528)

〈 398화 〉 [397화]미래로의 회귀

* * *

"그러니까, 이 아이가 바로 미래에서 온 도미닉 경의 손녀라는 말이지?"

"그렇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멍하게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취향을 저격당한 모양인지 마치 영혼을 뺏긴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아버지가 도미닉 경의 아들이란 소리야?"

"아마도 그렇소."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미닉 경과 결혼한 사람은 누구야?"

앨리스 백작 영애가 도미닉 경에게 몸 쪽 꽉 찬 직구를 날렸다.

"모르오."

그리고 이어지는 도미닉 경의 황당한 대답.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의 말에 당황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가족 관계 증명서를 봤다고 했잖아? 거기에 도미닉 경의 아내 이름이 있었을 텐데, 그걸 보지 않았다?"

"그렇소."

"왜?"

"보는 순간, 미래가 확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오."

아이고, 맙소사.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이 고지식한 기사의 행동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개꿀잼 컨텐츠를 포기했단 말이야?"

"...성좌들이 할 법한 말이구려."

"성좌니까!"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의 아내가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에게 다시 한번 가족 관계 증명서를 볼 것을 종용했다.

"다시 한번 봐봐. 다시 한번 보고, 누가 도미닉 경과 결혼하는지 알려 줘.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동글동글해진 도미닉 경을 마구 밀었다 당겼다 하며 도미닉 경을 흔들었다.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행동에도 침착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불가능하오."

"어째서?"

"인증 기간이 만료되어서, 재발급받으려면 수수료가 추가로 들어가오."

"그 수수료, 내가 낼 테니까 얼마인지나 말해줘!"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을 듣고 그녀의 귓가에 수수료가 얼마인지를 알려주었다.

도미닉 경은 무려 6초 동안이나 앨리스 백작 영애의 귓가에 속삭였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 놀라운 금액에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정도로?"

"그 정도요."

도미닉 경이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수치는 우리가 알 방법이 없지만, 대략적인 수치는 앨리스 백작 영애가 모아온 재산을 거의 탕진해야 하는 금액이었다.

가차랜드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도미닉 경이었기에 낼 수 있었던 수수료였다.

"...그러면 그냥 궁금한 채로 있을게."

앨리스 백작 영애는 수수료의 압박에 도미닉 경의 아내를 찾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대신, 도미니아 경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머리 색깔을 보면 나고, 옷이나 총을 메고 있는 것을 보면 도미니카 경. 그리고 쿠나이는 저번에 봤던 히메였나? 그 사람 같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니아 경을 보며 최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보면 볼 수록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도미니아 경에게서 보이는 힌트들은 정말 제각각이었으니까.

"할모! 땅고!"

"...?"

그때였다.

마침 보고 있던 어린이 프로그램이 끝났는지, 도미니아 경은 누군가를 보고 말문을 열었다.

할모라니, 할머니를 말하는 것인가?

앨리스 백작 영애는 마침내 커다란 힌트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고개를 돌려 도미니아 경이 지목한 이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아 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이는 바로, 앨리스 백작 영애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나?"

"웅. 할모. 땅고."

도미니아 경은 명백히, 명확히, 명명백백히 앨리스 백작 영애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니아 경의 할머니는 바로 앨리스 백작 영애라는 뜻이었고, 그 말인 즉­

앨리스 백작 영애는 복잡한 생각의 공정을 통해 마침내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도미닉 경과 결혼을?

"흐, 흐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아닌 척 하려고 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미니아 경이 내뱉은 또 하나의 말 때문이었다.

"할모! 스뜌! 스뜌!"

"스튜가 또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도미니카 경? 스튜 좀 내와주겠소?"

도미니아 경은 도미니카 경을 보고도 할머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니아 경에게 있어서, 할머니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미니아 경에게 있어서 할머니란, 적어도 4명은 있을 것이었다.

도미니아 경에게서 족보를 거슬러 올라와 보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였으나, 앨리스 백작 영애는 가장 먼저 할머니라고 불린 기쁨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결국, 도미닉 경과 결혼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도미니아 경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그 인원이 줄어든다는 점­

띵동­.

"계십니까?"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겠소!"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자, 그곳엔 천국 택배의 집배원과 택배 하나가 있었다.

"아, 도미닉 경. 못 본 사이에 살이 좀 찌셨네요?"

"좀 그렇소?"

"뭐, 저희는 택배만 전달하면 상대가 누구든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도미닉 경의 내면은 똑같기도 하구요. 라고 천사가 말했다.

그때, 문득 도미니아 경이 소파에서 내려와 뽈뽈거리며 현관으로 걸어오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면서 천사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 딴거 틀어달라고 했다가 무시당한 탓에 심심해진 모양이었다.

"할모?"

그리고 도미니아 경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방금 전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모?"

천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할머니란 뜻인 모양이오."

도미닉 경이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다급하게 서류에 싸인을 하고 넘겨주었다.

"그냥 보는 사람들은 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모양이오."

"하하. 아이들의 눈이란... 참 정확하네요. 설마 제가 연애한 지 오래된 노처녀라는 것을 알아보다니."

천사는 도미닉 경의 말에 깔깔 웃다가 갑자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천사도 수십만 년 동안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그야, 천국 택배의 일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불멸자들은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만큼, 더 가혹한 노동환경이 주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던가.

다른 불멸자들은 모르겠지만, 천국 택배의 사장은 그런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하오. 괜히 불편하게 만들었군."

"아니, 아니에요. 뭐, 저희야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고..."

천사는 날개 달린 택배 상자가 그려진 모자를 푹 눌러쓰며 그리 말했다.

누가 봐도 꽤 데미지가 크게 들어간 상태였으나, 천사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아무튼, 전 이만 가 볼게요. 다음번에도 천국 택배를 이용해 주시길!"

천사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어째서인지 하늘에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져 내린 것만 같았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가끔 독이 되기도 하는군."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순수함으로 인해 생긴 일에 대해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니아 경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가요? 라는 표정으로.

"아니,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단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에는 도미닉 경의 기사다움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 습관이지만, 도미닉 경은 자기보다 작은 상대를 안심시킬 때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젤리라도 먹겠니?"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서 젤리를 꺼내 도미니아 경에게 건넸다.

"쩨리!"

그러자 도미니아 경은 언제 시무룩해졌냐는 듯 폴짝폴짝 뛰며 도미닉 경이 건넨 젤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치 미식가처럼 하나를 여러 번에 나눠 먹으며 행복한 달콤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런 부분은 도미닉 경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도미닉 경도 단맛을 좋아하니까.

"그나저나, 내일부턴 진짜 살을 빼야겠군."

"아."

도미닉 경이 도미니아 경과 함께 거실로 돌아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현관문 앞에서 돌아올 때 어째서인지 벽과 벽 사이에 끼일 뻔했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경은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의 몰골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 도미니아 경에 대한 것에 정신이 팔려 도미닉 경의 모습에 대한 걸 잊고 있었다.

"내일은 두 배로 수련해야겠소."

도미닉 경은 벌써 내일할 수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휴식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원래의 도미닉 경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도미닉 경이 그렇게 전의를 다질 때쯤...

"...취소.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천사의 등장과 천사를 할머니라고 부른 도미니아 경.

그로 인해 다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 앨리스 백작 영애는 마른세수를 하며 원점으로 돌아간 사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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