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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97화 (397/528)

〈 397화 〉 [396화]미래로의 회귀

* * *

"그랬던 거였군..."

꼬마 아가씨의 이름은 도미니아 경.

병아리 반의 도미니아 경이었다.

보통 기사 계급은 세습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차랜드에서는 그런 것도 필요 없이 그냥 세습되는 칭호로 물려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자잘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꼬마 아가씨의 이름이 도미니아 경이라는 것과...

"설마 내 손녀였을 줄이야..."

도미닉 경의 손녀였다는 사실이었다.

도미닉 경은 가족 관계 증명서를 보며 저 꼬마 아가씨가 사실은 도미닉 경의 딸이 아니라 손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해왔던 행동이 복선이었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이 익숙한 느낌의 꼬마 숙녀에게 솜사탕을 비롯해 다양한 먹을 것을 주었다.

괜히 손자, 손녀가 건강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더 먹이고 싶은 마음.

괜히 손자, 손녀 좋으라고 사탕이나 과자를 준비해 두는 그런 마음.

할아버지, 할머니라면 가지고 있을 바로 그 감정이야말로 복선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도미니아 경이 왜 도미닉 경을 아빠라고 불렀는지 깨달았다.

도미닉 경이 아들을 낳았다면 도미닉 경과 꼭 닮았을 것이니, 어린 눈에는 젊은 도미닉 경이나 도미닉 경의 아들이나 비슷하게 보일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폰 화면에 떠 있던 가족 관계 증명서를 닫고는 고개를 들어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이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은 다 알았으니, 더 이상 가족 관계 증명서는 쓸모가 없었다.

미래의 배우자? 미래의 며느리?

그런 건 도미닉 경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 걸 알아봤자 운명에게 휘둘리기 밖에 더하겠는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손녀라니."

도미닉 경은 어딘가 저작권에 위배될 것만 같이 생긴 인형을 들고 좋아하는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저작권에 위배된다는 말은, 리틀 도미니카 경의 인형과 닮은 인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묘하게 눈이 X자로 된, 어딘가 미묘하게 생긴 인형이었다.

아무튼,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번 이벤트인 '미래로의 회귀'는 아무래도 미래의 사람들이 현대로 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저렇게 어린아이가 올 필요가 있었을까?

고작 몇 살 되어 보이지도 않는 갓난아기를?

도미닉 경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애썼으나, 도미닉 경의 머리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시스템의 속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가차랜드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을 뿐.

...

"...어쩌지?"

"낸들 아냐. 그러니까 내가 버그 좀 작작 집어넣으라고 했지!"

도미닉 경의 추측대로, 도미닉 경의 손녀인 도미니아 경이 가차랜드에 온 것은 버그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코더들이 장난으로 집어넣었던 버그들 중에서 오류가 발생한 경우였다.

원래대로라면 도미닉 경의 아들이 과거의 가차랜드... 그러니까 도미닉 경이 속한 가차랜드에 올 예정이었으나, 코더들의 실수로 일부 초대 코드가 엉망이 된 바람에 도미닉 경의 손녀인 도미니아 경이 초대되어 버린 것이다.

분명히 도미닉 경의 아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테지만, 이 문제는 미래의 도미닉 경이 해결할 일이었다.

미래의 도미닉 경은, 손녀와 만났던 오늘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코더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이렇게 되면 도미닉 경을 메인으로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우리의 계획도 무산되어 버리잖아!"

"왜 도미닉 경만? 어째서 도미닉 경만?"

코더들은 버그들을 끌어당기는 체질처럼 보이는 도미닉 경에게 오히려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만 없었더라면!"

"...팀장님? 전 저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도미닉 경은 우리가 찾지 못한 버그와 오류들을 찾아주는 고마운 인물입니다."

"...그렇지?"

도미닉 경에게 화를 낸 코더는 다른 코더들에게 끌려가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대접받았다.

커피나 먹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였다.

물론, 커피를 먹이는 방법은 다소 독특했으나... 서술할 경우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놀랄 여러분들을 위해 말을 아끼겠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벤트의 방향성을 조금 바꿔야 해."

팀장이라고 불린 여성은 어째서인지 그림자로 인해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마치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려고 노력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자체적으로 풍기는 허당 기운은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가족의 달! 그러니까 가족과 관련된 이벤트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어!"

"그, 원래 그랬잖습..."

"운동회다! 운동회를 개최하는 거야! 운동회라면 아이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폭주하기 시작한 팀장의 모습에 코더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팀장이 한 번 폭주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코더들 중에선 멀쩡한 사람이 없냐..."

"...너도 그 코더 중 하나인 거 알지?"

"제길."

코더들은 나름의 자학 개그를 곁들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팀장의 말에 따라 이벤트의 방향성을 바꿔야만 했다.

...그 어떤 버그와 오류를 거쳐서라도.

...

"그렇게 좋은가?"

끄덕끄덕.

도미니아 경은 방패에 주렁주렁 달린 도미닉 경의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제 도미니아 경에게 완전히 말을 놓기로 했다.

도미니아 경이 도미닉 경의 손녀임을 안 이상, 굳이 딱딱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페럴란트의 기사도에 적혀 있기를 아이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도.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가차랜드로 넘어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슬슬 페럴란트의 풍습에 대해 잊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계속해서 이 우아한 휴가를 즐겼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휴가를 즐기기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안 좋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자, 여기가 바로 할아버지의 집이란다."

"하빠?"

도미니아 경은 제법 머리가 영특한 아이였는지, 도미닉 경의 집을 보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아무래도 미래의 도미닉 경도 지금, 이 집에서 사는 모양이었는지,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집이 자기 할아버지 집임을 바로 알아 본 것이다.

"하뿌!"

도미니아 경은 미래의 도미닉 경과 꽤 사이가 좋았는지, 도미닉 경의 집을 보며 매우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좋은가?"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자,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이는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 와서 전혀 보여 주지 않았던 종류의 얼굴이었다.

"자, 이제 왔으니 들어가도록 하자."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소."

"따아­."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말을 따라 하며 현관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현관문밖으로 나가 신발을 탁탁 털고 들어왔다.

굉장히 엄격하게 예절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뒤뚱뒤뚱 걸어 거실로 이동했다.

"다녀왔소... 아무도 없나?"

도미닉 경은 거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흠... 일단 밥이라도 먹여야..."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소파에 앉히고 부엌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비쩍 말라보인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도미닉 경이 매우 둥글둥글한 상태라는 것을 감안 해도, 도미닉 경의 눈에는 도미니아 경이 거의 기아 상태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이게 다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은 부엌에서 온갖 맛있는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분명히 저번에 뒤풀이를 한다고 다 먹은 것 같았지만, 도미니카 경이 다시 채워 넣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기름진 것을 먹이면 탈이 날 테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페럴란트식 스튜를 끓이기 시작했다.

스튜가 몽글몽글하게 끓자, 도미닉 경은 천천히 스튜를 식혀 먹어도 입천장이나 혀가 데이지 않게끔 한 다음 도미니아 경에게 건네주었다.

"스뜌!"

도미니아 경은 스튜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는지, 도미닉 경이 스튜를 내려놓기도 전에 숫가락을 뺏어가 마구 떠먹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 팔 힘이 부족한지 숫가락을 들 힘이 없어 자꾸 반 이상 탁자에 쏟아버리는 도미니아 경.

"천천히 먹거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옷자락으로 도미니아 경이 흘린 스튜를 닦아냈다.

도미닉 경은 복스럽게 잘 먹는 도미니아 경의 스튜 먹방에 흐뭇해하며 계속해서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도미닉 경의 등 뒤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둔탁한 유리가 떨어지는 소리였는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소화제를 먹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이... 뚱뚱해졌... 아니, 그보다 저 아이는 대체..."

"주군?"

"도미닉 경... 아이... 도대체 이게 무슨... 엙."

앨리스 백작 영애는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가 더욱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미니아 경은 여전히 스튜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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