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화 〉 [393화]굴려라, 도미닉 경!
* * *
도미닉 경은 마침내 구르고 굴러, 달 만큼이나... 아니, 달보다 더 커다랗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엉망진창인 게임 속에서 말이다.
도미닉 경은 마침내 이 게임의 엔딩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서서히 공중으로 띄워지더니, 이내 처음 보는 수상한 이의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그는 달보다 큰 도미닉 경을 한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사내였는데, 굉장히 수상할 정도로 고상하면서 천박한, 종잡을 수 없는 이였다.
도미닉 경은 그가 이 게임 내에서 표현된 성좌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도미닉 경을 들어 올리며 도미닉 경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달달한 것, 달변가, 달러, 달력, 달마시아와 달마대사..."]
["이 덩어리는 달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요~?"]
["음... 뭐, 일단 달이라는 글자가 많이 들어가긴 했군요!"]
["크기는...3500km~?"]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자, 그럼 종합 평점을 말해 줄게요."]
["계산하는 중이니까 잠깐 기다려줘요. ☆+크기사랑의 제곱..."]
["..."]
["자, 나왔어요! 100점이에요!"]
["정말 완벽한 달이네요!"]
["이건 이제 하늘에 돌려놓도록 할게요."]
그 말과 동시에 도미닉 경은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승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하늘의 달이 되어, 반짝이기 시작하는 도미닉 경.
그와 동시에 도미닉 경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잠깐 잃었다.
...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정신을 찾았을 때, 도미닉 경이 돌아온 곳은 바로 기사의 모닥불이었다.
도미닉 경의 옆에는 처음 보는 게임기와 게임 화면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 게임 화면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미닉 경, 돌아왔군요!"
엘랑 대위와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을 환영했다.
그제야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게임 화면이 바로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돌아온 거요?"
"네!"
도미닉 경의 말에 엘랑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장미의 거인은?"
도미닉 경이 아임 낫 리틀에게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소?"
그 말에 아임 낫 리틀은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도미닉 경의 아래를 가리켰다.
도미닉 경은 몸을 조금 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도미닉 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깔려 버린 붉은 장미의 거인의 처량한 팔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의 저주가 풀리면서 붉은 장미의 거인이 업보를 돌려받은 모양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이 엉망진창인 상황에 당황하며 누군가가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간단한 거예요. 도미닉 경은 저주를 받아 게임 속에 들어갔고, 게임 속에서 목표를 이뤄 저주를 풀어냈으며, 그 저주의 근원인 성좌를 깔아뭉개버린 거죠."
아임 낫 리틀은 붉은 장미의 거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붉은 장미의 거인은 방금 전까지 숨이 막히는 듯 팔을 버둥거리고 있었으나, 이내 기절이라도 한 듯 그 팔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축하해요, 도미닉 경."
"?"
"칭호 하나 정도 더 받게 생겼네요."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도미닉 경은 성좌가 내린 시련을 이겨 내고 마침내 성좌마저 꺾어 버린 거니까요."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의 의문이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시련을 내린 악당과, 시련을 극복한 용사. 뭔가 딱 느낌이 오지 않나요?"
"흠."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말대로, 도미닉 경은 우연찮게 성좌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도미닉 경의 의도가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결과적으로, 도미닉 경은 악한 성좌를 쓰러뜨린 영웅이 되어 버린 것이다.
"...5성 심사를 준비해야겠구려."
"나쁘지 않죠."
"5성 심사요?"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말을 통해 이 업적이 5성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비록 성좌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아바타와 상대한 것이긴 했으나, 성좌의 시련을 극복하고 성좌마저 이겨 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결국,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였다.
다만, 도미닉 경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도미니카 경의 존재였다.
"그나저나, 도미니카 경이 조금 걱정되는구려."
"도미니카 경은 왜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나와 도미니카 경은 거의 한 몸이나 다름없소. 아니, 평행세계의 나이니 한 몸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런데 한쪽의 밸런스가 어긋나버린다면..."
"아, 그 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도미닉 경의 걱정에 아임 낫 리틀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도미닉 경이 이렇게 업적을 세우면, 도미니카 경도 어디선가 업적을 세울 거예요. 그런 게 바로 평행세계니까요."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놓이는군. 이제 안심하고 5성 심사를 준비해도 되겠소."
도미닉 경은 휴가를 즐기는 동안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
도미닉 경의 말대로,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처럼 성좌를 이기는 업적을 세웠다.
도미닉 경처럼 성좌가 내린 시련을 극복하고, 성좌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물론, 말로만 들으면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작 내용물을 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우부웨엨에에엨."
"그, 이불에는 토하지 말... 에휴."
도미니카 경은 너무나도 과식한 나머지 누운 상태에서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한 앨리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들도 파티의 후유증을 앓긴 했지만, 앨리스는 너무 과하게 후유증을 앓아 벌써 사흘 째 탈이 난 상태였다.
도미니카 경은 말없이 앨리스가 토한 토사물들을 치워주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과하게 먹는 바람에..."
"빨리 낫기나 해, 진짜."
도미니카 경은 앨리스 몰래 앨리스와 말을 놓았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둘은 서로 친한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도미니카 경은 성좌 앨리스 백작 영애가 내린 시련, 즉 과식으로 인해 탈이 난 앨리스 백작 영애의 간병을 통해 성좌 앨리스 백작 영애의 인정, 즉 친해진 상태가 된 것이다.
다른 차원이었더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시련이고, 무슨 극복이냐며 성좌들이 버럭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가차랜드였다.
시스템이 그 상황에 대해 인정을 해 버리면, 그 사실은 진짜가 되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이 우연찮게 성좌를 이긴 것도, 도미니카 경이 앨리스 백작 영애와 친해진 것도 시스템의 처지에서 보면 성좌를 격파하고, 성좌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사실로 인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둘 다 5성 심사를 볼 수 있는 자격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나저나 이제 좀 비켜 주지 않을래요? 뭔가 계속해서 깔고 앉고 있으려니 슬슬 불쌍해지기 시작해서..."
"아, 그렇군. 지금 당장 비키겠소."
도미닉 경은 데굴데굴 굴러 깔고 앉았던 붉은 장미의 거인을 풀어 주었다.
붉은 장미의 거인은 밖으로 삐져나왔던 팔을 제외하고는 만화처럼 납작해진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 비실비실 일어난 붉은 장미의 거인은 찢어진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비틀비틀 도망가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 이 일은 꼭 공론화시키고 말 거야! 알겠어?"
3류 악당들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를 내뱉으면서 말이다.
"누가 누구에게 두고 보자고 하는 건지."
아임 낫 리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미닉 경에게 비켜달라고 하지 않는 거였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나저나 엄청 정신없는 하루네요. 대회도 해봤다가, 뒤풀이도 했다가, 도미닉 경이 저주에 걸렸다가 풀려서 상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가..."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몸을 살짝 까닥했다.
도미닉 경은 살이 통통하게 쪄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뭔가 다른 일이 더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하루예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긍정에 추가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엘랑 대위는 그 말을 꺼냈으면 안 되었다.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니.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긍정의 말을 내뱉으려고 하다가, 문득 누군가가 도미닉 경의 옷자락을 잡은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몸을 돌려 옷자락을 잡은 이를 바라보았는데, 거기엔 리틀 도미닉 경 인형을 끌어안고 장난감 방패를 등에 멘 채 머리에 삼색 깃털을 꽃은 꼬마 아가씨가 있었다.
"빠빠?"
비록 머리카락은 하얀 색 긴 생머리였고, 옷은 '저는 꼬마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였으며 허리춤에는 던져도 다치지 않을 어린이용 단검 세트와 물총이 하나 있었다.
그 꼬마 아가씨는 낡아빠진 리틀 도미닉 경 인형을 더 깊숙이 끌어안고 도미닉 경에게 다시 한번 말을 내뱉었다.
"빠빠?"
그와 동시에, 도미닉 경의 눈앞에서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갑작스럽지만 가정의 달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이벤트 '미래로의 회귀'가 시작됩니다.]
정말 왜 지금 튀어나왔는지 모를, 정말 갑작스러운 메시지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