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9화 (389/528)

〈 389화 〉 [388화]성좌들의 대회

* * *

며칠 뒤,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초대를 통해 가차랜드의 외곽, 산악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악지역은 황무지와는 달리 높고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안 그래도 살이 퉁퉁하게 찐 도미닉 경은 이 급한 경사로를 오르느라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대회라니. 도무지 알 수가 없군."

"그­러­게 말­이­에­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이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다.

그동안 도미닉 경이 얼마나 살이 쪘는지, 그저 아래에서 받치기만 하는 엘랑 대위의 이마에 핏줄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산의 꼭대기, 그러니까 대회가 있을 장소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가 바로... 대회... 장소로군..."

도미닉 경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대회 장소는 아주 심플했는데, 그저 산꼭대기를 평평하게 다져놓고 응원석을 몇 개 놓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하늘은 좀 예쁘네요."

엘랑 대위는 거의 땅바닥에 드러눕다시피 쓰러지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오로라가 커튼처럼 수놓아져 있었으며, 그 너머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제각기 존재감을 뽐냈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대회라니, 좀 이상하네요."

엘랑 대위는 금방 체력을 회복했는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대회 장소에는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를 제외한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대회 날짜를 잘못 알았다거나, 아니면 속은 게 아닐까요?"

엘랑 대위는 침착하게 지금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속은 건 아니에요."

그때였다.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가 하늘을 쳐다보자, 거기엔 마치 눈에 아름다운 혹성들을 박아 놓은 듯 반짝이는 거대한 성좌가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한 성좌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도미닉 경이 본 가차랜드의 성좌라고 해도 촉수의 탐구자나 백수의 거인, 그리고 아임 낫 리틀 정도였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은 감히 그 성좌에게 정체를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아, 이 모습으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성좌의 머리카락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휘몰아쳤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정말 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머리카락들은 회오리치듯 뭉쳐 한 형태를 만들어냈는데, 그제야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성좌 아임 낫 리틀이었다.

"...대단하군."

도미닉 경은 이토록 가까이에서 성좌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도미닉 경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당신의 본 모습이오?"

도미닉 경이 성좌 아임 낫 리틀에게 물었다.

"아뇨. 이건 이벤트용이에요. 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양복입고 나가고 그러잖아요. 그런 거예요."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임 낫 리틀의 본체는 인간형이었고, 성좌의 모습을 한 건 그냥 오늘 대회를 위해 힘을 좀 준 것뿐이었다.

"괜히 이름에 리틀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성좌 중에선 제가 가장 작을 걸요?"

하늘에서 재면 가장 큰 성좌지만요. 라고 아임 낫 리틀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가 대회장이라고 하지 않았소?"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려고 했으나, 너무 살이 찐 탓에 팔을 버둥거리기만 했다.

"아무도 없는데 정말 여기가 대회장이 맞소?"

"그럼요. 사실, 다들 기다리고는 있어요. 다만 대회장의 문이 열리지 않았을 뿐이죠."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말하며 오로라를 살짝 걷어내었다.

그러자 거기엔 아임 낫 리틀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익숙한 시청자 채팅과 [01:0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아직 대기 중이라서 말이에요. 저 시간이 끝나고 대회가 시작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이 관객석이 가득 찰 거예요."

그렇게 말한 아임 낫 리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정확하게 1분이 지나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렉 조심해요."

그리고 하늘에서 빛줄기들이 내려와 이 땅에 성좌들이 하나둘 강림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렉과 함께.

...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닐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의가 아닌 누군가의 간섭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미안해요, 도미닉 경. 당일 등록이라서 어쩔 수 없이 좀 움직일게요."

그 간섭이란 바로 아임 낫 리틀이었다.

성좌의 모습을 한 아임 낫 리틀은 동글동글한 도미닉 경을 데리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흠."

도미닉 경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기분이 상했으나,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렇게 등록 장소에 도착한 도미닉 경과 아임 낫 리틀, 그리고 엘랑 대위.

아임 낫 리틀은 등록 장소에 있는 또 다른 성좌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엔트리 등록 하려고 왔어요."

"아, 네. 이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마 ####으로 등록되어 있을 거예요."

"####.... 네. 확인 되셨구요. 기물 등록은 어느 걸로 하시겠어요?"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진명을 들었으나, 너무나도 격이 높아 도미닉 경에게는 그 이름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 임시 기물도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물인가요?"

"그..."

아임 낫 리틀은 정말 이래도 될까 고민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눈앞에 있는 성좌에게 외쳤다.

"도, 도미닉 경이요!"

"...?"

등록을 담당하던 성좌는 이게 무슨 멍청한 소리인가 라는 표정으로 아임 낫 리틀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가 '필멸자'를 기물로 등록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임 낫 리틀도 그 표정을 보았으나, 아임 낫 리틀은 조금 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 뭐요. 이번에 기물을 등록할 때 조건이 '돌과 금속만큼 단단하고, 굴러다닐 수 있을 만큼 둥글 것'이었잖아요."

그렇게 말한 아임 낫 리틀은 둥글둥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과 금속만큼 단단한가? 답은 네죠? 도미닉 경은 걸어 다니는 요새라고 불리죠? 요새는 돌로 만들죠? 그러니까 도미닉 경은 돌 만큼 단단하죠?"

"굴러다닐 수 있을 만큼 둥근가? 그것도 네죠? 지금 도미닉 경 보면 아시겠지만 데굴데굴 굴러다니죠?"

"그러니까 저는 조건을 완전히 맞춘 기물을 들고 왔다, 이 말이에요!"

아임 낫 리틀은 정말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등록을 담당하는 성좌는 이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라는 듯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군요."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등록을 담당하는 성좌의 한숨 소리에서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등록을 담당하는 성좌는 당연하게도 아임 낫 리틀을 돌려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필멸자를 대회의 기물로 쓰겠다는 저 발상이 이상했다.

그러나 대회의 조건에 부합하는 만큼, 성좌는 아임 낫 리틀의 등록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기 번호표 받으세요. 이걸로 조금 있다가 대진표 나올 테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시구요."

결국 성좌는 한숨을 내쉬며 아임 낫 리틀에게 번호표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요. ...예선전에서 떨어져 버려라."

등록을 담당하는 성좌가 작게 저주를 내뱉었지만, 아임 낫 리틀은 듣지 못한 듯 그저번호표를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대회요?"

가만히 있던 도미닉 경이 아임 낫 리틀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대회길래 돌과 금속만큼 단단한 굴러다닐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거요?"

"아."

그제야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에게 이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는 아임 낫 리틀의 실수였다.

"그, 일종의 레이스? 타워 디펜스? 뭐 그런 건데 말이죠..."

아임 낫 리틀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며 고뇌하기 시작했다.

"그, 돌이나 금속으로 된 구체를 굴려서 상대편의 성채를 먼저 부수는 대회예요. 성좌들은 그 구체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장애물을 설치하구요. 그러니까... 장애물 달리기 정도로 보시면 편하겠네요!"

아임 낫 리틀은 기억나는 대로 도미닉 경에게 대회를 설명했다.

그러자,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설명에 납득하면서도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 그렇다면 여러 줄이 필요하지 않소? 지금 보이는 건 고작 대회장뿐이잖소."

"아, 그건 걱정하지마요."

그렇게 말한 아임 낫 리틀이 산에 걸린 안개 구름들을 걷으며 도미닉 경에게 설명했다.

"다른 봉우리들에도 이런 코스들이 있으니까요."

아임 낫 리틀은 그 가느다랗고 섬뜩한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제 성채예요.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박살 내야 할 성채는... 아직 나오지 않았죠."

조금 있다가 대진표가 나오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라고 아임 낫 리틀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아임 낫 리틀의 성채를 보며 꽤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성채는 고양이 귀가 달린 게이밍 헤드셋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았으니, 더 이상의 상념은 없소."

도미닉 경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대회가 진짜 시작되려는 모양이네요."

가까운 응원석에서부터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말인 즉, 대회가 시작되어 해설진들이 나타났다는 소리겠지.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미닉 경을 집어 들었다.

현재 산보다 더 큰 성좌의 모습인 아임 낫 리틀의 손바닥은, 도미닉 경을 구슬처럼 들어 올리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자, 그럼 가죠. 저희들의 전장으로."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말하며 대회장으로 향했다.

이제 곧 대진표가 나올 시간이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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