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6화 (386/528)

〈 386화 〉 [385화]휴식...?

* * *

도미닉 경의 반응에 엘랑 대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평소에 이런저런 잡다한 걸 즐기시니까 휴식은 제대로 하시는 줄 알았는데."

엘랑 대위의 말에 도미닉 경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이 프로페셔널한 휴식의 프로, 엘랑 대위가 있으니까요."

엘랑 대위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휴식의 프로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게으름뱅이였다.

"자. 따라오세요, 도미닉 경."

그러나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런 엘랑이 굉장히 믿음직해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드리죠."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그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엘랑 대위의 손을 마주 잡았다.

...

엘랑 대위와 도미닉 경이 가장 먼저 간 곳은 바로 이발소였다.

"이발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에게 의문을 표했다.

"여긴 왜 온 거요?"

"그야, 몸이 개운해야 휴식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니까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을 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이발사에게 말해 적당히 예쁘게 잘라달라고 말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 와서 처음 이발을 한 이후 두 번째 이발을 이렇게 하게 되었다.

엘랑 대위는 이발을 마친 도미닉 경을 목욕탕으로 이끌었다.

"저는 성인 인증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해요. 그러니까 가서 제대로 씻고 오세요. 전 근처 카페에 있을 테니까."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을 목욕탕 입구로 밀어 넣었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대로 목욕탕에서 개운하게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서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가 정말 휴식의 프로인지 아니면 휴식의 포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으나, 일단 자칭 프로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개운하게 목욕을 마친 도미닉 경은 이내 다음 코스로 안내받았다.

다음 코스는 바로 옷 가게였는데, 도미닉 경의 스킨이 아니라 안에 받쳐 입는 티셔츠를 사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저번에 보니까 싼 거 입으시더라구요."

"...언제 본 거요?"

"스킨 아래로 살짝 옷자락이 삐져나와 있길래 그때 잠깐 봤죠."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의 티셔츠를 한 벌 샀다.

그 티셔츠는 순면 100%였으며, 입었을 때 감촉이 매우 편안 했다.

"자, 이제 준비가 끝났네요."

"...준비였소?"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의 여정만으로 지치고 말았다.

전투에선 거의 무한한 체력을 가진 도미닉 경이었으나, 익숙하지 않은 휴식에선 그 누구보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던 것이다.

그러나 엘랑 대위는 그런 도미닉 경을 보고도 자비 없이 다음 장소로 향했다.

"할 것이 많아요! 빨리 움직여야 한다구요!"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재촉에 못 이겨 걸음을 떼었다.

아무래도, 아직 도미닉 경의 고생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도미닉 경이 휴식을 취한다는 말이 퍼지자,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좀 쉬어 줄 때도 되었지. 애초에 2년도 안 되어서 이렇게나 가치가 높아진 게 말이나 되는 건지 모르겠어."

도미닉 경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평했다.

"누군가가 말했죠. 적당한 휴식은 사람을 성장한다고. 아마 도미닉 경도 성장을 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요?"

도미닉 경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지친 모양이지? 흥.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었으니."

도미닉 경과 다소 사이가 나쁜 이들조차 도미닉 경의 휴식을 납득했다.

그만큼 도미닉 경은 일 중독자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고, 주변에서 그것을 느낄 정도로 오랫동안 그런 상태였다.

열심히 일했으니, 휴식은 당연하다는 입장들.

그러나 도미닉 경을 정말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사건이 터지겠군."

"도미닉 경에게 휴식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분명히 뭔가 큰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게 분명해."

도미닉 경을 가장 잘 아는 이들, 예를 들면 왈록이나 코더들과 같은 경우는 분명히 도미닉 경이 사건을 일으키거나, 혹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릴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이들은 도미닉 경이 사건을 찾아 다닌 줄 알겠지만, 코더들은 도미닉 경이 이상할 정도로 사건과 버그에 잘 휘말리는 체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이 휴식을 취한다면, 분명 휴식과 관련된 일이 일어날 것이 자명했다.

"...미리 야근해둘까?"

"이거 버그를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코더들은 도미닉 경의 휴식에 일제히 일손을 놓고 혹시라도 모를 버그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코더들이 만들어 둔 버그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다.

...

도미닉 경이 새벽에 집을 나선 이후, 도미닉 경의 집.

도미닉 경의 집은 현재 엉망진창이었다.

레미와 팬텀 박사는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 취해서 솜사탕 사이에 파묻혀 있었고, 히메는 소파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코를 골고 있었으며, 앨리스 백작 영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일반적인 필멸자라면 분명 배가 터져 죽었거나, 혹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어야 정상이지만 성좌가 되어 버린 앨리스 백작 영애는 배고픔이나 배부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른바 스트레스성 폭식.

페럴란트는 굉장히 척박한 곳이기에 그녀도 눈치를 보며 적당히 먹었으나, 가차랜드는 페럴란트와는 달리 굉장히 풍족한 곳이었기에 그녀도 눈치 보지 않고 계속해서 먹을 것을 입에 집어넣었다.

성좌로서 좋은 점을 꼽자면, 이렇게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이리라.

"이제 슬슬 그만 먹는 것이 좋겠는데."

도미니카 경이 오늘만 해도 벌써 7번째 스튜를 담은 냄비를 앨리스 백작 영애 앞에 두었다.

도미닉 경의 방 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들에도 가득가득 있었던 배달 음식들은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욕조에 담겨져 있던 생선들도 모두 앨리스 백작 영애의 뱃속으로 들어간지 오래였다.

이제 더 먹으려면 추가적으로 주문하는 것뿐이었지만, 이 시간대에 배달이 되는 곳이 있을 리가 있나.

"이제 스튜는 이게 마지막이야."

도미니카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 그렇게 말했다.

"더 먹고 싶어도 이 이상은 없어."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 말에 잠시 멍한 눈으로 스튜를 바라보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스튜가 든 냄비에 고개를 쳐박고 말았다.

아무래도 너무 과도한 폭식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지가지한다, 진짜."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내쉬며 스튜에 얼굴을 담근 앨리스 백작 영애를 건져내었다.

누군가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기를 원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앨리스 백작 영애는 엉망이 된 얼굴로 아주 평온한 잠을 자고 있었다.

...

이틀 뒤, 동이 틀 무렵.

"이거, 정말 제대로 쉰 느낌이구려."

도미닉 경은 휴식에 무려 하루하고도 반을 소모했다.

엘랑 대위가 데려가는 곳은 정말 휴식에 적합한 곳들 뿐이었으며, 그곳에 들릴 때마다 도미닉 경은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몸도 마음도 다칠 일이 없었던 도미닉 경이었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뜻이다.

"고맙소, 엘랑 대위. 역시 휴식의 프로 답구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엘랑 대위의 프로페셔널함을 인정하며 악수를 청한 것이다.

"뭐, 뭘요. 그나저나 도미닉 경­"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침을 먹으러 기사 식당에 한 번 더 들려야겠소. 우연히 그곳에 인연이 닿은 덕분에 이렇게 제대로 된 휴식을 알게 되었으니."

도미닉 경은 연신 엘랑 대위와 우연히 만나게 된 기사 식당에 대해 호평을 날렸다.

"아, 그거 좋네요. 그나저나 도미닉 경­"

"그다음엔 뭘 할지 고민이오. 와플을 먹을까? 아니면 딸기 프라푸치노를 먹을까? 세상엔 이렇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음식이 많았구려."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자기가 할 말만을 내뱉었다.

결국 이 상황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엘랑 대위는, 마침내 도미닉 경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

"...무슨 일로 부르셨소?"

"도미닉 경..."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몸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어째서인지 입 밖으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엘랑 대위는 결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자신을 세뇌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외쳤다.

"도미닉 경, 살 찌지 않았어요?"

"...?"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살이... 찌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손과 발을 바라보았다.

아니, 보인 것은 손 뿐이었다.

발은 어째서인지 볼록 하게 나온 뱃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도미닉 경은 시야를 가리는 이 덩어리가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조금 전 엘랑 대위의 말에 힌트를 얻어 이것에 대해 알아차렸다.

"정말 내가 살이 찐 거요?"

"...네."

도미닉 경은 떨리는 목소리로 엘랑 대위에게 물었다.

엘랑 대위는 어렵사리 도미닉 경에게 대답했다.

도미닉 경은, 마치 굴러갈 것처럼 둥글둥글하게 살이 쪄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