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5화 (385/528)

〈 385화 〉 [384화]휴식

* * *

도미닉 경이 쉬기로 마음먹은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뭘 하고 쉴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이건 참 어려운 일이군..."

도미닉 경은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먼 미래의 목표, 가까운 목표...

도미닉 경은 먼 미래의 목표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소 흐릿해지긴 했지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도미닉 경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바로 아주 가까운, 그것도 엎어지면 코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목표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도미닉 경은 갑자기 생각난 문장을 읇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엔 문득 식당이 하나 있었다.

가차랜드의 화려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아주 소박한 식당이.

도미닉 경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그 가게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기사 식당]

아주 심플한 네 글자.

도미닉 경은 그 글자들을 보자마자 건너편의 가게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불이 켜진 창문 너머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고, 가끔 웃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도미닉 경은 무심코 주린 배를 잡았다.

온종일 격하게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찾으러 뛰어다녔기에 그다지 먹은 것이 없었다.

배가 고프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울리는 꼬르륵 소리와 함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여기서 조금 고민했다.

평상시의 도미닉 경이라면, 관리를 위해 이 시간대에 무언가를 먹지는 않을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벤치에서 일어나 기사 식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휴식을 취하기로 한 거, 조금 더 일탈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여겼으니까.

딸랑.

"어서 오소."

도미닉 경이 문을 열자, 문에 걸려 있던 작은 종이 울렸다.

그 종소리에 손님이 온 것을 알아차린 아주머니 한 분이 도미닉 경을 살갑게 맞이했다.

"저 앉으소."

도미닉 경은 아주머네가 말한 빈 자리에 앉았다.

그곳은 꽤 구석진 자리였는데,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식당 내부를 전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식당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정식 기사 시험은 잘 통과했어?"

"아니. 죽 쒔어. 에휴. 종자 1년 더 하게 생겼다."

"아니, 그러니까 안젤라 상급 기사님께서 내게 야근을 명하시고는 그냥 퇴근하셨다니까?"

"아, 이 사람 취했네. 야! 누가 대리 좀 불러라!"

각양각색의 기사들이 자기들만의 문양이 그려진 서코트를 입은 채 제육볶음과 맥앤치즈를 먹고 있었다.

"아직 메뉴 못 정했능교?"

"아."

도미닉 경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아주머니의 말에 그제야 아직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스튜 하나랑 스테이크 하나 부탁하오."

"스테이크는 좀 걸리는디 괘아능교?"

"그렇소."

도미닉 경은 메뉴판을 잠시 보더니, 이내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시켰다.

가차랜드인 만큼 메뉴는 각 차원의 요리만큼이나 다양했지만, 역시 익숙한 맛이 최고 아니겠는가.

도미닉 경은 메뉴를 시키고는 다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면, 이번엔 벽이었다.

벽은 조금 낡아 여기저기 벽지가 떨어진 곳도 있었으나, 대개 깔끔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벽에 걸린 메뉴판은 큼직큼직한 글씨로 메뉴들과 가격들이 써져 있었는데, 메뉴 아래에 있는 특이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종자와 학생은 1000크레딧 할인.]

도미닉 경은 어째서 저 두 부류의 사람들은 할인을 받는지 잠시 생각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헤헤. 여기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쪄서 좋다니까."

도미닉 경은 어딘가 띨빵하지만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이구, 복스럽게 묵네. 김치 더 줄까?"

"헤헤헤. 밥이랑 사과 샐러드도 좀 더 주세요."

그리고 그곳에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고 있는 엘랑 대위가 있었다.

...

"설마 도미닉 경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엘랑 대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코를 훌쩍였다.

아무래도 방금 나온 김치찌개가 좀 뜨거웠던 탓이다.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와 합석했다.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의 시선에 그가 있는 걸 알아차리고, 호감도 작업을 하려고 합석한 것이다.

물론 가차랜드에서는 호감도 작업이라는 게 따로 없었지만, 이렇게 친분을 쌓는 것만으로도 나쁠 것은 없었다.

"여기 스튜 먼저. 스테이크는 좀 있다 나올 테이 먼저 드소."

"고맙소."

도미닉 경은 숫가락을 들고 스튜를 떠서 한 입 먹었다.

고소하면서도 살짝 기름진 국물의 맛 아래로 당근의 쓴맛과 구운 파의 단맛, 그리고 고기의 감칠맛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이 집은 구운 파를 비장의 무기로 쓰는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스튜를 숫가락으로 한 번 휘저어 다시 구운 파를 건져 내었다.

그리고 다시 한 입 베어물자, 도미닉 경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맛있군.

도미닉 경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기쁨 속에서 히죽 웃었다.

"맛있죠? 여기가 숨은 맛집이라니까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이 웃자 덩달아 같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랑 대위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여긴 저번에 도미닉 경의 고용 카드를 뽑겠다고 전 재산을 탕진한 뒤에 찾은 맛집인데요, 가격이 착해서 돈 없을 때마다 신세를 지러 온다니까요."

"...그 말인 즉, 돈이 없다는 뜻 아니오?"

"아."

엘랑 대위는 신나게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다가 도미닉 경의 날카로운 통찰력 앞에 시무룩해졌다.

도미닉 경의 말 대로, 엘랑 대위는 현재 돈이 없었다.

"제가 가차랜드 말고 다른 곳에서도 뭔가 하는 게 있거든요. 거기서 한정 픽업 이벤트가 나오는 바람에 그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타이쿤 시티나 레트로 그라드를 생각했다.

아마 엘랑 대위는 그런 곳에 따로 자본을 쓴 모양이지.

"그, 그래도 밥 먹을 돈 정도는 남아 있어요. 그거 아세요? 밥을 오랫동안 꼭꼭 씹어먹으면 포만감도 더 크게 들고 단맛에 반찬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엘랑 대위는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려는 것처럼 굴었지만, 정작 나오는 말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번 밥은 내가 사겠소."

"고마워요. 마침 우리 스즈키 성장시키는 데 돈이 좀 들 예정이었거든요."

재화를 조금 아낄 순 있겠네요. 라고 엘랑 대위가 안심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도미닉 경이 밥을 사준다는 말하지 않았으면 분명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 그 돈으로 가차랜드의 재화를 교환했으리라.

도미닉 경은 이 무절제하고 무계획한 대위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재화가 필요하면 말하시오. 나름 돈이 좀 있으니."

"말이라도 고마워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이 빈말이라고 여겼다.

엘랑 대위가 아는 도미닉 경의 컨셉은 농노 출신의 기사였다.

그런 기사가 돈이 많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미닉 경이 항상 엘랑 대위를 볼 때마다 뭔가를 사주는 것도 농노 출신이라 절약이 몸에 배어 돈 쓸 일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엘랑 대위는 설마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라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만일 도미닉 경의 재산을 엘랑 대위가 알게 된다면, 너무 놀라서인지 부조화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 스테이크 나왔으니 드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으나, 마침 타이밍 좋게 시켰던 음식이 나왔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요리가 식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그냥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는 어째서인지 웰던으로 나왔지만, 맛은 있었다.

...

"그러니까, 휴식을 취하고 싶으시단 건가요?"

"그렇소."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는 식사를 마친 뒤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 각자 하나씩 마시며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도미닉 경을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본다 싶었더니, 그런 이유였군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에게 그리 말하며 자기 손목 시계를 보았다.

물론, 그 자리에는 손목시계가 없었다.

재화를 구하기 위해 전당포에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간을 알 길이 없는 엘랑 대위를 위해 도미닉 경은 대신 시계를 꺼냈다.

현재 시각은 새벽 2시였다.

"2시네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의 시계를 훔쳐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엘랑 대위를 바라보았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마치 천연 기념물을 보듯이 보고 있었다.

"집이 없었을 때엔 이 시간대에도 자주 배회하긴 했소만..."

"그때는 좀 노셨었군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조깅을 좀 했었소."

"맙소사."

엘랑 대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엘랑 대위의 눈 속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10분도 하기 힘든 조깅을 밤새도록 하다니! 잠도 자지 않고!

"그래도 이렇게 일탈을 하니 좀 쉬는 느낌이 드는구려."

"일탈요?"

도미닉 경은 새벽 2시에 밥을 먹는다는 아주 큰일탈을 저지른 뒤에, 아주 약간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짜릿한 느낌이 사람들이 일탈을 저지르는 이유겠지.

도미닉 경은 기사로서 이 짜릿한 기분을 경계해야 했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도미닉 경은 쉬는 동안 이렇게 짜릿한 일들을 할 생각에 조금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엘랑 대위가 보기에는 도미닉 경의 행동은 일탈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건 일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에요. 야식 먹었다고 하는 거지."

도미닉 경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쉰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미닉 경, 제대로 쉰 적은 있는 거예요?"

도미닉 경은 대답이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