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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3화 (383/528)

〈 383화 〉 [382화]C 보급 기지 : 후일담

* * *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그래."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을 시켜 앨리스 백작 영애를 집으로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다.

도미닉 경이 직접 앨리스 백작 영애를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눈앞에 있는 보우만 의원의 부탁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도대체 무슨 부탁이오?"

도미닉 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 별 건 아닙니다. 오늘 도미닉 경이 했던 전투를, 저희가 홍보용으로 써도 되는지에 대한 부탁이었습니다만..."

보우만 의원은 말끝을 의도적으로 흐렸다.

"도미닉 경께서 바쁘신 모양이니, 이건 다음 기회에­"

"그러도록 하시오."

"!"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서 보우만 의원에게 바로 대답했다.

도미닉 경의 처지에서 보우만 의원은 앨리스 백작 영애를 잠시라도 지켜 준 은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보우만 의원의 예상대로,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 가진 애정은 꽤 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원거리 딜러 동맹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게 되었군요!"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에게 감사의 말을 표했다.

사실, 원거리 딜러들의 입지가 약한 것에는 원거리 딜러 정당들이 마구 난립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과거 트롬 의원의 헛짓으로 세가 줄어 버린 근접 딜러 연합이나 사실상 가차랜드 제 1당으로 떠오른 탱커 노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세가 강한 당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마저도 지원가들은 정치질에 뜻이 없어 그런 것이니, 사실상 가장 약세는 바로 원거리 딜러 정당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일로 인해 보우만 의원이 속한 원거리 딜러 동맹은 원거리 딜러 정당들 중 제 1당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도미닉 경과 친분이 있으며, 도미닉 경이 홍보 영상에 출연해준 것.

그 자그마한 것으로도 원거리 딜러 정당들의 판을 다시 구축할 수 있을 것이었다.

보우만 의원은 그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별것 아니니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좋소."

도미닉 경은 연신 고개를 숙이는 보우만 의원을 제지했다.

"그나저나 이제 나도 집으로 가야겠구려. 아무래도 주군의 상태가 신경이 쓰이는지라서."

"아, 그렇지요. 답변을 들었으니 도미닉 경을 더 귀찮게 해선 안 되겠지요."

보우만 의원은 호들갑을 떨며 도미닉 경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도미닉 경이 가는 길을 막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도미닉 경은 보우만 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더니, 문득 잠시 자리에 서서 보우만 의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하나 있소."

"무슨 일입니까?"

도미닉 경의 말에 보우만 의원이 답했다.

"만일 임무가 실패할 경우 어떻게 되는 거요?"

"글쎄요..."

보우만 의원은 꽤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도미닉 경의 말을 들어 주기 위해선, 맵을 리셋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리셋에는 자금이 들어간다.

정규전을 위한 리셋이나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재가가 있으면 정부 지원 보조금이 나오겠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호기심을 위해서 하는 리셋은 오롯이 자가 부담이었다.

그러나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과의 인연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싶었는지, 이내 큰 결심을 내렸다.

"좋습니다. 일단 한 번 리셋해 보면 알 수 있겠지요."

보우만 의원은 리셋 버튼을 누르고 캐릭터 카드를 카드 리더기에 대었다.

그러자 삑 소리와 함께 결제가 완료되었다고 뜨더니, 이내 맵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01:00]

시각은 최소로 설정된지, 타이머에는 고작 1분 남짓한 시간만 남아 있었다.

"이 시간이 끝나면 패배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보우만 의원이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보우만 의원의 말에 묵묵히 C 보급 기지를 바라보았다.

[00:27]

아직 보급 기지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00:19]

당연한 일이었다. 저기엔 공격측도, 방어측도 없이 그저 폭탄만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으니까.

[00:07]

도미닉 경은 곧 있을 패배 장면을 기대했다.

그리고 타이머가 0이 된 순간­

[00:00]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음?"

도미닉 경은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고요한 보급 기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불발인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보우만 의원은 분명히 폭탄이 터져야만 하는 순간에 폭탄이 터지지 않아서 당황했다.

버그인가? 돈만 먹어 버린 것인가?

온갖 생각이 보우만 의원의 머릿속을 지나쳤다.

보우만 의원은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미닉 경에게 괜히 말을 걸어 화제를 바꿨다.

"아, 이거 아무래도 안에 사람이 없어서 버그가 난 모양입니다. 가차랜드에선 흔한 일이지요. 그, 아시죠?"

보우만 의원의 말에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가차랜드만큼 버그가 풍족한 곳은 없을 거요."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버그들을 생각했다.

사실 가차랜드에서 도미닉 경만큼 버그를 많이 겪은 사람들은 가차랜드 초창기의 인원들 뿐이었고, 그마저도 도미닉 경이 넘어설락 말락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우선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니 도미닉 경 처지에서 볼 때, 가차랜드는 버그로 이루어진 무언가로 보일 수밖에.

"뭐, 버그가 났다니 좀 아쉽소. 패배 장면은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보우만 의원은 그 모습을 보며 도미닉 경 몰래 자기 보좌관에게 문자를 넣었다.

당장 버그를 고칠 코더를 부르라고 말이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시간도 없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겠소."

"아, 살펴 가시지요."

도미닉 경은 아쉬운 듯 다시 한번 보급 기지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도미닉 경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보우만 의원을 바라보았다.

"아, 참. 난이도 조정을 당신이 했다고 했었소?"

"아, 그렇습니다."

도미닉 경의 말에 보우만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C 보급 기지의 컨셉 자체를 제가 기획해서 만들었다 보니,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지요."

보우만 의원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도미닉 경에게 대답했다.

자기가 기획한 곳에서 도미닉 경이 게임을 치렀으니, 자랑스러울 만도 했다.

도미닉 경은 보우만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씨익 웃으며 칭찬을 건넸다.

"마지막 기믹은 참 참신했소."

"...?"

보우만 의원은 급하게 오느라 장비를 챙겨 오지 못해 도미닉 경이 말한 마지막 기믹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이는 곧 올 보좌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보우만 의원은 보좌관을 기다리며 걸음을 옮기는 도미닉 경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불발이 난 폭탄이 생각났다.

"이거 참, 돈은 돈만 먹고 버그는 버그대로 걸리고..."

보우만 의원이 그 사실에 짜증이 치밀어 올라 발을 한 번 세차게 굴렀다.

...

도미닉 경은 보우만 의원이 준 명함을 캐릭터 카드에 등록한 채,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반대쪽에서는 손에 공구통을 든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C 보급 기지에 볼일이 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도미닉 경은 방금 전에 있었던 버그를 생각해냈다.

폭탄이 터지지 않는 버그 말이다.

"가끔은 코더들이 패치라는 명목으로 버그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군."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도미닉 경은 갑자기 들린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충격을 받은 얼굴로 공구통을 떨어뜨린 누군가가 있었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 있는 힘껏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도미닉 경은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허겁지겁 사라지는 공구통을 든 사람을 보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때였다.

쾅! 하는 소리가 C 보급 기지가 있는 지점에서 울렸다.

도미닉 경은 그 소리에 또 한 번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보급 기지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을 뿐 멀쩡했다.

아마 방금 전 불발되었던 폭탄이 이제서야 터진 모양이었다.

"...이젠 더 놀랄 일도 없겠군."

도미닉 경은 두 번이나 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 포장 박스를 꺼내 그 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이 이어폰이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도미닉 경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이어폰을 귀에 끼웠다.

그리고 볼륨을 적당히 높인 뒤, 가차튜브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휴대폰이 꺼질 때 음악도 끊어져야 정상이겠지만, 도미닉 경은 가차튜브를 자주 보기에 가차튜브 프로에 가입한 상태였고, 백 그라운드에서도, 휴대폰을 끈 상태에서도 가차튜브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노래를 들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노랫소리가 컸던지, 도미닉 경은 온전히 자기 자기 내면만을 직시할 수 있었다.

뒤에서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 나가는 C 보급 기지를 뒤로한 채 말이다.

어쩌면, 진정한 남자는 폭발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라는 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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