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2화 (382/528)

〈 382화 〉 [381화]C 보급 기지 ­ 도주?

* * *

이제 남은 시각은 1분 30초.

도미닉 경의 일행은 처음엔 이 황당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폭탄이 갑자기 발이 달려 도망치다니!

"...버그인가?"

가장 먼저 이 상황에 입을 연 자는 레미였다.

그녀는 일단 이 상황을 버그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폭탄이 발이 달려 도망칠 일이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 번의 버그를 헤쳐 온 역경의 버그 전사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았다.

"기믹이로군."

"기믹?"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니카 경이 되물었다.

"보시오. 폭탄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프레임 드랍도 없으며, 물리법칙을 준수하며 달리고 있소. 버그로 보이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는 소리요."

"...프레임 드랍이니 물리법칙이니 하는 말은 어떻게 안 거야?"

"위키를 좀 봤소."

도미닉 경은 최근에 자기 전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위키를 가끔 들어가 무작위 단어들을 검색하고는 했다.

그 덕분에 과거에 비해서 조금은 더 성장한 도미닉 경이었다.

물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 남은 시각은 고작 1분.

도미닉 경은 더 이상 말을 할 시간이 없다고 여겼다.

"아무래도 도주하는 폭탄을 잡아야겠소. 일단 따라오시오!"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은 도미닉 경의 말에 그제야 폭탄이 도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폭탄이 간 길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폭탄은 그 무게가 제법 나갔기에 아무리 전력으로 뛰어 도망쳤다고 한들 곧 따라잡히고 말았다.

"거기 서!"

히메가 폭탄이 도주하는 경로에 쿠나이를 집어던졌으나 폭탄은 쿠나이 정도는 무시했다.

어차피 폭탄이 터질까 봐 제대로 던지지도 않을 테고, 우연히 한 대 정도 맞는다고 터질 정도로 폭탄은 무르지 않았다.

폭탄은 계속해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저들이 폭탄을 해체하지 못하게 하는 것.

도미닉 경의 일행들은 계속해서 폭탄의 뒤를 쫓았다.

이제 고작 30초.

도미닉 경이 폭탄 해체를 위해서 약 10초 정도가 필요했으니, 지금이라도 폭탄을 잡아서 제압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폭탄은 아주 영리한 스마트 밤이었기에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남은 시각은 20초.

"­궁지에 몰렸군."

도미닉 경이 폭탄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폭탄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폭탄의 등 뒤에는 어째서인지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은 대략 백 미터는 더 되어 보였으며, 아래에는 굽이쳐 흐르는 격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폭탄은 어째서인지 숨을 헐떡이듯 상체 모듈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을 한 번씩 바라보더니, 이내 쉽게 잡힐 순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 폭탄이 말을­"

10초.

폭탄은 도미닉 경의 일행이 당황하는 사이에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이제 저들은 날 해체할 수 없어.

저들은 졌어.

폭탄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이끄는 중력에 몸을 맡기고 격류 속으로 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폭탄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격류 속에서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5초.

폭탄은 격류에 휩쓸려가면서 히죽거림 모듈을 시행했다.

3초.

[현재 작전지역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5초 내로 작전지역으로 돌아가십시오.]

폭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초.

[작전지역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당신의 팀은 패배했습니다.]

폭탄은 터지기 직전,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탄의 몸이 갈라지며 흘러나오며, 당장에라도 터질 듯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

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저 아래 절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탄이 작전 지역에서 '제거'되었습니다. 요원 측의 승리입니다.]

"...?"

도미닉 경의 일행은 갑작스러운 승리 선언에 놀라 말없이 눈만 끔뻑였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했기에 이 경기를 승리했단 말인가?

"아."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서 가장 그럴싸한 의견을 가장 빠르게 낸 것은 바로 히메였다.

"혹시, 이것도 기믹이 아닐까요?"

"기믹이라."

"아까 도미닉 경이 말했잖아요? 폭탄이 도주하는 건 기믹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레미와 팬텀 박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온 시간을 보세요. 정확하게 시간을 다 써야만 했어요. 그렇다는 말은..."

"그렇군. 그걸 위한 밸런스 패치였던 건가?"

도미니카 경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초반에 있었던 밸런스 패치.

처음엔 갑자기 쉬워진 난이도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여기까지 생각하고 긴급하게 패치했던 것이라면 말이 맞아떨어졌다.

난이도가 높았다가 낮아진 것도 이해가 되었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불평과 불만이 튀어나왔겠지만, 높았다가 낮아졌던 것이었으니 의문이 든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감정은 없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판을 짠 사람 얼굴이라도 보고 싶네."

도미니카 경이 혀를 내둘렀다.

"이런 기획력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라니. 모르가나 언니... 아니, 블랙 회장님께 추천할 만한 인재예요."

레미와 팬텀도 이 판을 기획한 자에 대해 극찬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도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동의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목적은 이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모두가 이 판에 대해서 감탄을 하는 사이, 히메가 문득 잊을 뻔했던 목표를 다시 떠올렸다.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던가.

"...그렇군. 꽤 즐거웠던 탓에 잊을 뻔했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메의 말에 동의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보도록 합시다."

도미닉 경과 일행은 이번 판을 승리로 이끌고 C 보급 기지를 나왔다.

이제는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찾아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

C 보급 기지의 바깥에서는 원거리 딜러 동맹의 크로스 보우만 의원이 서 있었다.

어째서인지 앨리스 백작 영애와 함께.

"그러니까, 당신이 도미닉 경과 아는 사이라는 거지요?"

보우만 의원은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그래요. 도미닉 경의 옛... 전우죠."

"허어..."

보우만 의원은 방금 전, C 보급 기지에 도착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을 직접 보고 이번 판에 대한 영상을 홍보물로 써도 될지에 대한 논의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안에서 몇몇 인질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난이도 조정이 있었으니 인질 수도 줄어든 모양이군."

보우만 의원은 그 인질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가려고 했으나, 문득 보우만 의원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가진 트렁크에 붙어 있는 문양을 보았다.

보우만 의원은 원거리 딜러 출신이었고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상대가 쓴 마법을 확률적으로 배우게 해주는 특성이 아니라 그저 멀리 보는 천리안 계열의 특성이었다.

갈색 배경에 하얀 주목과 하얀 갈까마귀.

보우만 의원은 그 문양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다 그것이 페럴란트의 문양임을 깨달았다.

그 말인 즉, 저 사람은 도미닉 경과 동향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항상 자기 이름 앞에 페럴란트라는 말을 붙이고 다니겠는가!

보우만 의원은 문득 저 사람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도미닉 경과 대화하기 더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실례합니다."

"...?"

...

그렇게 보우만 의원은 앨리스 백작 영애와 안면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적당히 도미닉 경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 순간, 작은 폭발음과 함께 도미닉 경이 승리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 도미닉 경이 결국 이겼군!

보우만 의원은 급하게 오는 바람에 이런저런 장비들을 챙기지 못해 내부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으나, 도미닉 경이 이겼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했다.

"도미닉 경이 이겼군요."

"도미닉 경이?"

앨리스 백작 영애는 안에서 싸우고 있는 이가 도미닉 경이냐는 듯 놀란 눈으로 보우만 의원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몰랐던 겁니까?"

"그, 누군가가 절 납치해서 여기에 데려온 상태였거든요. 그 상태로 전투가 시작된 셈이라..."

앨리스 백작 영애는 혼란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뭐, 이해는 됩니다. 아! 저기 도미닉 경이 나오는군요! 도미니카 경도 같이!"

보우만 의원은 밖으로 나오는 도미닉 경의 일행들을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도미닉 경의 일행들은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과 그 일행에게 명함 하나씩을 내밀며 자기를 소개했다.

"원거리 딜러 동맹의 의원 크로스 보우만입니다. 오늘 경기의 밸런스를 담당하기도 했죠."

"아! 그 재밌는 기믹 만든 사람?"

"이 아저씨였구나..."

레미와 팬텀 박사가 놀란 듯이 크로스 보우만을 바라보았다.

"무슨 용무요?"

"그, 용무가 있긴 합니다만 일단 먼저 소개해드려야 할 분이 있군요."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의 말에 당장에라도 용무를 꺼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앨리스 백작 영애를 불러 도미닉 경과 대면시켜 주었다.

"여기 앨리스 백작 영애께서, 도미닉 경과 아는 사이라고 하시더군요. 마침 두 분 다 여기 계셨으니..."

보우만 의원이 장황한 미사여구와 함께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보우만 의원의 장황한 미사여구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주군."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다시 만난 앨리스 백작 영애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주먹 쥔 채 땅을 짚었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돌아왔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둘 모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더 꺼내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지만 나온 말은 주군과 기사의 예법이었다.

도미닉 경은 돌아온 앨리스 백작 영애를 보며 기뻐했다.

그러나 앨리스 백작 영애는, 어째서인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