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81화 (381/528)

〈 381화 〉 [380화]C 보급 기지 ­ 도주?

* * *

약 4분 정도를 남기고 일어난 마지막 전투.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고 앞으로 전진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전면을 완전히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사각 방패는 서로 모서리를 맞춘 뒤 서로의 바깥을 향해 살짝 기울인 채 날아오는 총알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 뒤로 레미와 팬텀 박사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사격 준비 완료!"

레미와 팬텀 박사의 외침은 곧 사격으로 인한 엄청난 소음에 묻혔다.

뤼미에르 클랜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듯 묵직하고 무시무시한 중기관총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등 뒤에서 불을 뿜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정확히 기관총의 사격 때에만 좌우로 벌어져 총알이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가 재장전이 필요하면 다시 붙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전진은 막을 수 없었다.

마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전차처럼 네 사람은 압도적인 힘을 앞세워 테러리스트들을 섬멸하고 있었다.

물론, 막을 수 없다 뿐이지 거슬리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가끔 숨어 있는 저격수들이 레미와 팬텀 박사를 노렸고, 폭탄을 들거나 몸에 두른 이들이 네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이러한 공격들은 단순하지만 위력적이어서, 레미와 팬텀 박사처럼 허약한 체력을 가진 이들은 한 방에 빈사 상태, 혹은 그 이상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그러나 저격수가 레미와 팬텀 박사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폭탄마들이 네 사람에게 닿는 일도 없었다.

저격수와 폭탄마들은 언제나 제 할 일을 마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등 뒤에는, 마치 명함처럼 쿠나이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히메는 담장과 담장을 넘나들고, 지붕과 지붕을 넘나들었으며 컨테이너 박스와 컨테이너 박스를 넘나들었다.

옥상을 밟고 하늘로 도약한 히메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양손 가득 쿠나이들을 들고, 몸을 한 바퀴 뱅글 회전시키며 쿠나이들을 던졌다.

빛을 흡수하는 도료를 바른 쿠나이들이 만월을 배경으로 부채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쿠나이들은 여지없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박혔다.

히메는 밸런스에서 이동 속도와 유틸성을 위해 공격력을 다소 희생당했으나, 저격수와 폭탄마들은 공격력을 위해 체력을 희생한 이들이었기에 쿠나이 한두 방이면 충분했다.

이로 인해 도미닉 경의 파티에 걸림돌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지나 폭탄을 해체하는 것뿐이었다.

...

"제기랄."

테러리스트 D가 압도적인 팀워크를 선보이며 다가오는 도미닉 경의 파티를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걸 어떻게 막아 내라는 거야?"

테러리스트 D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 투덜거리면서도 총을 장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황이 어려운 것과 포기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심지어 밸런스까지 나빠지고 말이야."

테러리스트 D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탄창을 만지작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섯 개의 탄창이 있었지만 두 개는 이미 도미닉 경을 저지하기 위한 위협 사격으로 써버린 상태였고, 세 개는 밸런스 패치라는 명목하에 시스템이 가져가 버렸다.

테러리스트 D가 보기에, 도미닉 경의 파티는 마치 걸어 다니는 요새와도 같았다.

어찌 작디작은 사람이 저 거대한 요새에 맞설 수 있겠는가.

테러리스트들이 보기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런 이들이었다.

"...포기하고 싶다."

테러리스트 D는 바로 옆에서 한숨을 내쉰 테러리스트 T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까 전부터 푹푹 한숨을 내쉬며 양손에 든 단검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도미닉 경을 저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인 바주카를 들고 있었지만, 밸런스 패치로 인해 공격 수단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그럼 포기하지, 왜 아직 기회만 엿보는 거야?"

테러리스트 D가 테러리스트 T에게 농담식으로 말했다.

이미 테러리스트 D는 테러리스트 T가 할 말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러냐. 이거 기회잖아. 그러니 엿보기라도 해야지."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는 그 말에 히죽히죽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기회.

그 기회는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하나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저지하고 명성을 얻을 기회.

죽일 생각까진 하지도 않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아무리 FPS식 스탯이 적용된다고는 해도 그들은 상승불패의 전사들.

이는 지금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제압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지만, 단 한 명도 그들의 발목을 잡는 데 성공한 이가 없었다.

테러리스트 D와 T는 그 발목을 잡는 데 성공한 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온 또 하나의 기회.

"이거 우리 비정규직이잖아."

"그렇지. 우린 의뢰 받고 임시로 여길 점거한 테러리스트니까."

"혹시, 이럴 때 활약을 좀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원이 너무 많아 파티에는 들어가기 힘들어진 원거리 딜러들.

그들의 처지에서 FPS 모드의 등장은 일종의 기회였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았다.

엑스트라나 조연이어도 좋았다.

원거리 딜러들의 처지에서는 이런 일 하나하나가 그들의 격이 되었고, 그들의 높아진 격은 가치가 되었으며, 가차랜드에서는 가치가 곧 모든 것이었으니까.

이렇게 임시로 한 번 등장한 것만으로도 이들의 격은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약간의 욕심을 부렸다.

바로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욕심을.

임시직은 아주 고달픈 직업이었다.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급하게 나와야만 했고, 시간에 쫓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야만 했다.

물론, 그런 날은 극히 드물었다.

평소에는 일 조차 없었으니까.

돈을 벌고 자기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직업.

그것이 바로 이런 임시직이었다.

그러나 정규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규직은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돈과 가치를 벌어들인다.

시간과 돈, 그리고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정규직은 임시직보다 몇 배는 나은 것이다.

또한 맵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임시직들은 맵을 1회용으로 써야만 했다.

매번 맵에 맞게 오브젝트들을 설치하고, 일이 끝나면 회수해서 가져가야만 하는 일의 연속.

그러나 정규직이 되어 맵에 배정된다면, 맵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고생할 일이 전혀 없었다.

무엇을 하든 임시직보다는 정규직이 나은 상황인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이 정규직을 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의뢰로 시작했지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인지도라면 분명 오늘 있었던 전투도 길이길이 회자될 것이 분명했으니 어쩌면 중앙 시스템의 권한으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 먼저 간다."

테러리스트 T가 그런 희망을 가득 품고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도미닉 경은 가볍게 도약해 떨어져 내리는 테러리스트 T를 방패로 쳐 냈다.

테러리스트 T는 방패의 충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하늘에 떠오른 테러리스트 T에게 일곱 개의 쿠나이가 꽂힌다.

이후 중기관총이 내뿜는 불길에 너덜너덜해지고 만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T는 웃고 있었다.

꽤 장렬한 최후를 연출했으니, 눈도장은 찍혔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테러리스트 D가 고기 조각이 되어 떨어지는 테러리스트 T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무진장 멋있게 갔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단검 드는 건데..."

테러리스트 D는 테러리스트 T의 죽음에도 충격에 빠지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부러워했다.

테러리스트 D가 생각하기에 테러리스트 T는 너무 멋있게 갔기 때문이다.

"뭐, 나도 그만큼 멋있게 가면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테러리스트 D는 방금 전 고갈난 마지막 탄창을 버리고 전술용 도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도미니카 경에게 달려들었다.

테러리스트 D의 운명도 테러리스트 T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웃고 있었다는 것도.

...

"참으로... 끈질긴 이들이었소."

도미닉 경이 마지막 테러리스트를 제압한 뒤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광신도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일단 폭탄 해체부터 시작하자고."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넉두리를 막았다.

남은 시각은 1분 45초.

해체하기엔 넉넉한 시간이었지만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레미와 팬텀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폭탄에게 다가가 해체를 시작했다.

[폭탄 해체를 시작합니다.]

[64.3%...]

[■■■■■■▣□□□]

[폭탄 해체가 취소되었습니다.]

"...?"

레미 박사는 갑자기 해체가 취소되자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주변에서 누군가가 건드렸나 싶었지만, 레미의 주변엔 팬텀 박사만 있었을 뿐, 그 누구도 없었다.

레미는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폭탄을 해체하려고 했다.

[폭탄 해체를 시작합니다.]

[거리가 부족합니다.]

[거리가 부족합니다.]

"...응?"

레미는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폭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레미는 팬텀 박사를 바라보았다.

팬텀 박사도 방금 막 이 사실을 알았는지 레미 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폭탄이..."

"움직였다고?"

그때였다.

방금 전까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살 움직이던 폭탄이, 갑자기 변신을 통해 안드로이드가 되어 전력 질주로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

"...도주라고?"

도미닉 경은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한 폭탄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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