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 [379화]C 보급 기지 밸런스 패치
* * *
"이제 여기가 마지막 구역이구려."
"그러게. 어쩐지 애들이 허당이 된 느낌이야."
밸런스 패치가 끝난 이후, 도미닉 경의 전진은 거침이 없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앞세우고 인질들이 있을 컨테이너 박스에 접근했다.
이제 컨테이너 박스만 열면 인질들이 나타날 것이며, 그 중에는 앨리스 백작 영애도 있을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컨테이너 박스의 입구에 손을 뻗었다.
도미닉 경은 거침없이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살았다! 우린 이제 살았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어쩐지 비슷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어딘가 어색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앨리스 백작 영애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
그러나 도미닉 경의 눈앞에 마지막 한 사람이 지나갔음에도,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는커녕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인질조차 보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도미닉 경은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그러고는 직접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컨테이너 박스의 내부는 어두웠지만, 도미닉 경의 빛나는 갑옷은 이 어둠을 충분히 밝혀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컨테이너 박스 내부엔 더 이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미닉 경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입구에 있는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앨리스 백작 영애가, 사라졌다.
...
도미닉 경이 도착하기 고작 몇 분 전.
"네? 인질을 반으로 줄인다구요?"
"그래. 상부에서 난이도 조정이 들어왔어. 인질 수가 너무 많다고 반으로 줄이라고 하더군."
인질들이 잡혀 있는 컨테이너 박스 내부.
그곳에서는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아니, 그럼 우리 일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절반만 지급될 거야. 갑작스러운 일에 의한 취소니까."
인질들은 그 말에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절반의 돈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전히 받는 것에 비해선 손색이 있었으니까.
"일단 자원을 받아서 인원을 줄이고, 인원이 또 많다 싶으면 무작위로 선정해서 데려갈 거니까, 그리 알아. 자, 그럼 자원할 사람?"
관리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질 감축에 대한 자원자를 받았다.
"없어?"
그러나 그 누구도 선뜻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돈이 궁한 사람들이었고, 아무리 절반은 받는다지만 여기까지 오가는 비용도 생각하면 겨우 본전이었으니까.
"흠. 없나보군. 그럼 내가 몇 명을 골라서"
"여기! 여기 있어요!"
관리 감독관은 다급하게 손을 든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 여성은 다른 인질들과는 달리 굉장히 외모가 선명하고 깨끗했는데, 왜 인질 역할인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름."
"앨리스. 앨리스 드 페럴란트요."
관리 감독관은 앨리스 백작 영애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명부에 앨리스의 이름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원했으니, 돌아가는 길에 2만 크레딧 정도라도 더 쥐어 줄 생각이었다.
"자, 그럼 한 명 나왔고. 이제 한 네 명? 다섯 명? 정도 남았는데, 자원자 더 없나?"
관리 감독관의 외침에도 더 이상 나오는 인질들은 없었다.
관리 감독관은 잠시 시계를 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이 도착하기 고작 몇십 초 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어쩔 수 없지. 너! 너! 그리고 너! 그래. 너! 그리고 옆에 있는 너까지! 여기로 따라 와!"
관리 감독관은 컨테이너 박스의 어두운 부분쪽으로 인질들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작은 포탈이 생성되더니, 관리 감독관과 앨리스를 포함한 총 여섯 명의 인원이 포탈을 통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포탈로 사라짐과 동시에, 컨테이너 박스 내부의 문이 열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엇갈림이었다.
...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자력으로 탈출하신 것 같소."
도미닉 경은 앨리스에 대한 예리한 추리를 시작했다.
"인질로 잡혀 있었으나, 모종의 기회를 얻어 여길 빠져나간 것이 틀림없소."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힘과 지혜를 믿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여기서 더 뭘 할 필요가 없지 않아?"
도미니카 경이 김이 빠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 영애가 탈출했다면, 우리 목표가 사라진 셈이잖아."
"그 반대요."
"반대?"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왜 자신들이 이 판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했다.
"내가 아는 주군이라면 분명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을 거요. 그리고 가장 어수선했을 때는 바로 우리가 이 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방금 전 보았던 C 보급 기지의 조감도를 기억해냈다.
"이 기지는 제법 넓소. 우리가 실험용 대포를 통해 날아와서 망정이지, 사방으로 몇 킬로미터는 되지 않소."
"그건... 그렇지."
도미니카 경은 묘하게 큰 C 보급 기지에 대해서 떠올렸다.
현재 있는 위치가 제 3 보급 창고였으니, 적어도 이만큼 큰 창고가 보급 기지에 둘 이상 더 있다는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보급 기지의 크기도 커지는 셈이고.
"탈출할 때도 당당하게 갔을 리는 없고, 이리저리 숨어서 갔을 테니 아직 이 기지 안에 있을 확률이 높소. 그렇다는 말은"
"시선을 끌어 탈출을 돕는다. 는 거군요?"
도미닉 경의 말에 히메가 끼어들었다.
"그렇소."
도미닉 경이 히메의 말에 긍정했다.
"그러니 일단 계속해서 판을 벌려 봅시다. 지금처럼 한 목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화려하게 시선을 끈다는 생각으로 말이오."
도미닉 경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화려한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기지 어딘가에 아직 있을 앨리스 백작 영애를 생각했다.
물론, 그 백작 영애가 관리 감독관의 안내를 받으며 안전하게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어두운 밤에
보름달 휘영청 떠
굽어 밝히네
히메는 어두운 밤에 뜬 보름달을 배경으로 전신주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시를 읇으며 보급 기지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내 보름달을 등지고 높이 도약하여 땅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십 점 만점에 십 점, 백 점 만점에 백 점."
도미니카 경이 그 모습을 보며 화답가를 불렀다.
렌카 격식에 맞춘 하이쿠, 5글자, 7글자, 5글자의 시와 7글자, 7글자의 답가였다.
도미닉 경은 이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히메를 불렀다.
"히메 공. 폭탄 주변은 어떻소?"
"인원이 제법 많아요. 저항이 거셀 것 같네요."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폭탄 주변에서 일어나는 전투가 가장 힘겨울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밟히는 건, 바로 폭탄의 존재였다.
"이상하네."
팬텀 박사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폭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치가 좀 달라."
레미는 팬텀 박사의 말에 역시나 폭탄을 바라보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지금 위치에서 폭탄을 해체하려면 세 방향에서 협공을 당할 수 있는 위치야."
폭탄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위치가 달라져 있었으나, 그 위치가 가져온 결과는 결코 미세하지 않았다.
본래 폭탄 해체 작업 시, 주변에 있는 엄폐물들이 절묘하게 해체자를 막아 한두 군데만 막으면 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폭탄이 약간 움직여 버린 탓에, 한두 군데는 물론이고 가장 넓은 곳에서 집중 포화를 당할 수 있게끔 노출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이도를 이렇게 조정했던 모양이네."
도미니카 경이 방금 전까지 굉장히 쉬웠던 난이도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소. 우리에겐 방패를 든 자가 둘이나 있소. 그러니 나와 도미니카 경이 해체자를 감싸면 되는 일이오."
도미닉 경은 즉석에서 바로 계획을 내놓았다.
"그렇게 하자."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제안을 수락했다.
시간만 넉넉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계획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으니까.
[04:30]
이제 고작 5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고개를 돌려 히메와 레미, 그리고 팬텀 박사를 보았다.
이 다섯 명은 말없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자기 위치에 섰다.
가장 앞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고, 그 뒤를 레미와 팬텀 박사가 보조했다.
그리고 히메는 이 4인 제대의 주변을 돌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따로 떨어져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처리할 것이다.
"가자."
도미니카 경이 신호를 보냈다.
"좋소."
그 말들을 신호로 다섯 전사들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방패를 들고 백금으로 된 빛나는 월계관을 내세운 채 위풍당당히 걷는 도미닉 경.
역시나 방패를 들고 빛나는 권총을 든 채 도미닉 경과 발을 맞추는 도미니카 경.
컨테이너 박스와 컨테이너 박스 사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쿠나이를 꺼내 드는 히메.
어디서 꺼내 왔는지 모를 중기관총을 운반하기 시작한 레미와 팬텀 박사까지.
도미닉 경은 문득 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FPS)]의 효과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