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79화 (379/528)

〈 379화 〉 [378화]C 보급 기지 ­ 밸런스 패치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전투방식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방패를 앞세우고, 만나는 이들에게 따끔한 공격을 선사하는 단순한 루틴.

그러나 그 단순한 루틴 덕분에, 히메와 레미, 그리고 팬텀 박사는 평소의 200%의 힘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하게 200%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랬다.

"흡!"

히메가 공중에 쿠나이 다섯 개를 던져올린 뒤, 허공에서 낙하하는 쿠나이들을 잡아 집어 던졌다.

그 쿠나이들은 유도 기능이 있는 것처럼 테러리스트들을 관통했다.

히메는 테러리스트들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공중제비를 돌며 벽 너머로 움직였다.

다른 테러리스트들이 오기 전에 다시 매복을 하는 것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레미의 공격 방식은 꽤 재밌었다.

기본적으로는 사격을 통해 피해를 입혔지만, 가끔 허리에 작은 플라스크들이 생성되면, 그 플라스크를 들고 도미닉 경을 향해서, 혹은 적을 향해서 집어던졌다.

붉은색 물약이 든 플라스크는 도미닉 경이 받은 피해를 회복시켜 주었고, 보라색과 녹색이 제멋대로 섞인 물약이 든 플라스크는 적에게 날아가 큰 폭발을 일으켰다.

가끔 그녀는 손목에 있는 시계같은 무언가를 조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빛의 줄기가 내려와 초소 하나를 초토화했다.

"문은 열었어?"

"잠깐만! 15초! 15초만 기다려!"

뤼미에르의 진보된 무기 기술을 시연하는 레미와 달리, 팬텀 박사는 뤼미에르의 진보된 비전투 기술을 시연했다.

팬텀 박사는 보급 기지 안에 있는 전자기기들을 모조리 해킹하여, 서로 간의 소통을 막고 도미닉 경의 파티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 외에도 팬텀 박사는 레미를 도와 달려드는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아무래도 우린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는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은 그래도 총은 쏘잖소. 나는 정말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게 다 아니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당당하게 적진 한가운데 서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리고 날아오는 총알을 모조리 막아 내는 모습은, 마치 전장에 강림한 전쟁의 신들을 보는 것 같았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미닉 경이 원하는 시원한 싸움도 아니었고, 일방적으로 두드려맞는 것의 연속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주군만 찾으면, 다신 여길 찾지 않을 것 같군."

도미닉 경이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 내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임무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불평에 신경을 쓰겠는가?

...

"저, 저저! 저러면 누가 FPS하려고 하겠나?"

그 신경을 쓰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원거리 딜러 동맹의 의원이자 현재 원거리 딜러 의원들의 정신적 지주, 크로스 보우만이었다.

보우만 의원은 의원실의 자리에 앉아 도미닉 경의 상황을 TV로 보고 있었다.

본래 이 자리는 그의 형인 롱 보우만의 것이었으나, 롱 보우만은 예전에 근접 딜러 연합의 의원이었던 트롬과의 유착 관계가 밝혀져 의원직을 사퇴한 상태였다.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도 잠시여야지, 저렇게 대응수단도 없는 이에게 일방적으로 공격하면 당하는 사람 처지에서 얼마나 복장이 터지겠냐는 말이야!"

보우만 의원은 도미닉 경의 처지가 마치 자기 처지인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사실, 보우만 의원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 원거리 딜러들의 입지는 꽤 어정쩡한 상태였다.

근접 딜러들은 과거 근접 딜러 연합의 선동과 날조로 제법 입지가 높은 상태였고, 탱커는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의 출현으로 그 인기가 올라간 상태였다.

지원가들이야 파티마다 모셔가지 못해서 안달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원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들 만큼은 달랐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어차피 4인 파티라면 원딜보다는 근접 딜러 하나 더 챙기는 게 낫다."

으득. 하고 보우만 의원은 이를 갈았다.

방금 전 보우만 의원이 중얼거린 말은 그가 한창 활약할 때 몇몇 파티에서 직접 들었던 말이었다.

어찌 보면 원거리 딜러들은 그 입지가 바닥 중의 바닥인 상태.

그런 의미에서 FPS 모드는 원거리 딜러들의 입지를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기본적으로 FPS 모드에선 근접 딜러나 지원가, 탱커들보다는 원거리 딜러들이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원거리 딜러들의 독점으로 이어져서는 안 돼."

보우만 의원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지금이야 원거리 딜러들이 활약하니 즐거울지도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나아가다간 결국 다른 직업군들은 FPS 모드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FPS 모드는 원거리 딜러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다.

그리고 FPS에서 나빠진 이미지는 고스란히 가차랜드에서 파티를 구할 때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고.

어쩌면 보우만 의원은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보우만 의원은 그런 미래를 확신했다.

지금까지 어디 원거리 딜러들이 스펙이 딸려서 천대 받았던가.

보우만 의원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한참 동안 도미닉 경의 표정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던 보우만 의원.

그는 결국 이 상황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겼는지, 수화기를 들고 자기 비서에게 연락했다.

"어. Mr.리. 지금 당장 C 보급 기지에 있는 테러리스트 수뇌부와 연락해. 최대한 빠르게. 연락되면 다시 나랑 통화 연결하고. 그래."

용건만 짧게 말한 보우만 의원은 다시금 초조한 얼굴로 TV에 나오는 도미닉 경의 표정을 살폈다.

보우만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은 어느새 보급 기지의 중간까지 들어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3 보급 창고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폭탄이 있는 공터가, 오른쪽으로 향하면 인질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있을 것이었다.

이는 팬텀 박사가 보급 기지의 데이터를 해킹하여 알아낸 정보였다.

"그나저나 방금 전부터 총알이 조금 듬성듬성 오는 것 같지 않아?"

도미니카 경이 어째서인지 조금 잠잠해진 공세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잠깐 방패에 들어오는 충격량을 가늠했다.

확실히 도미니카 경의 말대로 공세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으아아! 죽어라!"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옆, 정확하게는 왼쪽으로 꺾이는 사각지대에서 테러리스트 하나가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은 그 테러리스트에게 방패로 설득력 있는 한 방을 먹인 뒤, 쓰러진 테러리스트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렇게 달려든다고? 방금 전까지는 은폐와 엄폐를 완벽하게 했으면서?"

도미닉 경은 황당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기사도에 의한 어법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뭐 어때."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도미닉 경을 바라보던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이제 슬슬 우리도 활약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도미니카 경은 또다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테러리스트 하나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도미니카 경의 권총으로 세 발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이 테러리스트는 두 발 만에 사살되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느낄 정도로 급격한 난이도의 하락.

이는 바로 원거리 딜러 동맹의 의원, 크로스 보우만의 작품이었다.

방금 전 크로스 보우만과 테러리스트 수뇌부의 비밀스러운 담화를 통해 난이도를 실시간으로 너프한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의원과 테러리스트 사이의 회담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침 테러리스트 수뇌부 중 하나가 크로스 보우만 의원과 동향에 사는 사촌에 같은 중학교를 나오고 심지어 군대 후임이기까지 했다.

혈연, 지연, 학연의 콤보를 통해 크로스 보우만 의원은 테러리스트와의 담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실시간 난이도 조정을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우만 의원은 꽤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냥 난이도를 낮추기만 한다면 분명히 다른 딜러들이 날뛸 것을 우려해, 한 가지 기믹을 추가했다.

바로 테러리스트들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무시하고 딜러들에게 달려들게끔 부탁한 것이다.

아주 간단한 기믹이었지만, 이 하나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체감 난이도는 낮아지고, 히메와 레미, 그리고 팬텀 박사의 체감 난이도는 그대로거나 약간 올라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임시로 한 조치였지만, 꽤 훌륭한 조치었다.

"뭐, 난이도가 낮아져서 나쁠 것은 없지."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이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그저 갑자기 난이도가 쉬워졌다고 생각할 뿐.

도미닉 경은 고개를 들어갈림길을 쳐다보았다.

이제 주군이 인질로 잡혀 있을 컨테이너 박스가 머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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