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377화]C 보급 기지
* * *
도미닉 경과 그 일행은 튜토리얼을 끝내고 나서 곧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앨리스 백작 영애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C 보급 기지로 떠납니다.]
[사이렌이 울려 테러리스트들이 대비하는 중...]
[여러분들은 이 잠깐의 시간 동안 인질을 구출하고 폭탄을 해체할 작전을 수립하시면 됩니다.]
[05:00]
위와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의 눈앞에 떠올랐다.
이후 그들의 눈앞에는 홀로그램으로 된 투시도와 조감도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C 보급 기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인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점점 줄어드는 카운트 다운을 힐끔 바라보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입구로 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처럼 보이오."
도미닉 경이 손가락으로 보급 기지의 정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 외엔 진입로가 없어요. 아니,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오히려 거긴 더 위험하죠."
히메가 정문 외에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철망에 난 개구멍, 기지 뒤편의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 기지의 오른 편에 흐르는 강...
꼭 정문이 아니라도 그런 사소한 진입로가 있기는 했으나, 히메는 이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테러리스트들이 제일 먼저 이런 우회로에 초소를 건설했으니까요."
히메가 조감도 상으로 보이는 몇몇 구역을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하나같이 모래 주머니를 쌓아 만든 엄폐물들과 흉칙한 콘크리트로 된 감시 초소들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정면 돌파를 할 수밖에 없어요."
"아직 한 군데 남았잖아."
히메의 말에 레미가 끼어들었다.
레미는 어깨에 소총을 들쳐메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기지의 옥상을 가리켰다.
"여기."
"옥상? 하지만"
"걱정하지마."
레미는 단호하게 히메의 말을 끊었다.
작전 시간이 조금 촉박했기 때문이다.
"바로 옆 보급 기지가 바로 뤼미에르 거야. 거기서 몇몇 것들을 빌리면 될 거야."
도미닉 경은 레미의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어떻게 공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그건 간단해, 오빠."
레미는 슬쩍 뤼미에르 클랜의 보급 창고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 쓸 만한 것이 있으니까."
레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팬텀 박사도 고개를 돌려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역시나 웃고 있었다.
그건, 실험을 앞둔 미친 과학자의 얼굴... 처럼 보였다.
...
[00:00]
[작전 시간이 끝났습니다.]
[폭탄 기폭까지 앞으로 15:00]
[게임 시작. 행운을 빕니다.]
"아, 드디어 시작이로군."
"우리 쪽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C 보급 기지의 변두리, 개구멍이 난 철망 쪽 감시 초소에서 잔뜩 긴장한 테러리스트 B와 테러리스트 F가 긴장을 풀려는 듯 잡담을 나눴다.
"하필이면 상대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라니. 으, 세상에. 적으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혹시 이번 판이 끝나면 사인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테러리스트 B와 테러리스트F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열렬한 팬인 듯 상기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만나고 싶은데, 만나고 싶지는 않아."
"아, 알지. 그 기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만나고는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모순적인 말이었으나, 사실 여기에 조금만 살을 덧붙이면 바로 논리가 성립되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만나고는 싶지만, '지금' 만나고 싶지는 않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열렬한 팬으로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하필이면 이렇게 적으로 만나 버렸다는 안타까움.
테러리스트 B와 테러리스트 F는 씁쓸한 표정으로 철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내 우상을 내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니, 씁쓸하구만."
"그러니까. 제발 우리 쪽으로 와서 죽어 주지만 말아줬으면..."
테러리스트 B와 테러리스트 F는 김칫국을 거하게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기대는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기대이기는 했다.
FPS 모드에서는 서로가 나름의 밸런스가 있었다.
무작정 강해지는 가차랜드식 강함이 아니라, 누구 하나가 특출나게 강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름의 밸런스가 오밀조밀하게 짜여 있는 것이다.
가차랜드에서의 도미닉 경은 누구라도 그의 강함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FPS에서의 도미닉 경은...
이동기가 없는 뚜벅이. 피해 감소 기술은 있지만 근접전 외에 싸울 수단이 전무.
그야말로 FPS에서는 약하디약한 약캐였다.
도미니카 경은 그나마 권총이라도 있어 대응할 수 있지만, 도미닉 경은 대응 수단조차 없는 상황.
물론 반대로 말하자면 이 단점들이 하나라도 보완되는 순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순식간에 FPS를 씹어먹는 강캐가 될 수도 있었다.
"자, 도미닉 경. 제발 여기로 오지 말아 주세요.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도록... 응?"
"왜 그래? 뭐 봤어?"
테러리스트 B는 단검을 꺼내 날을 혀로 햝으며 너무나 잔혹해서 오히려 허접해 보이는 말을 내뱉던 도중, 저 멀리서 불꽃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기 불빛이 번쩍이길래...?"
그때였다.
무언가가 테러리스트 B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테러리스트 B는 머리 위에 느껴지는 같은 서늘한 바람에 몸이 굳어 버렸다.
그만큼 방금 일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방금 뭐였냐?"
"모, 모르겠"
콰광!
방금 전 날아온 물체가 음속을 뚫고 하늘을 찢으며 날아간 소리가 이제서야 들렸다.
두 테러리스트들은 그 엄청난 폭음에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 도대체 뭐야!"
"포격인가?"
테러리스트 B와 테러리스트 F는 패닉에 빠져 아무 말이나 횡설수설 내뱉기 시작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폭탄이 있는 곳에 포탄을 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바로 코앞에서 무언가가 음속을 넘으며 날아간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후속타는 없었는지 다시 초소 주변의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끄, 끝났나?"
"방금 그게 뭐였지?"
테러리스트 F는 패닉에서 벗어나자마자 냉철하게 지금 상황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일단 이상 현상이 일어난 건 맞으니 상부에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유였다.
테러리스트 F는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무전기의 채널을 맞추고 송수신 버튼을 눌러 말을 하려고 했다.
"알파장, 알파장, 당소 브라보. 당소 브라보라고 알림."
["브라보, 브라보, 당소 알파장. 무슨 용무인지?"]
"현재 시에라 시에라 위스키 방향에서 이상 현상 발생. 다시 한번 말한다. 시에라 시에라 위스키"
테러리스트 F는 침착하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이상 현상에 대해서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다.
"엇."
테러리스트 F의 옆에 있던 테러리스트 B가 또 한 번 저 멀리서 번쩍이는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 불빛은, 방금 전 무언가가 옆에 지나가기 전에 보였던 불빛과 완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색과 모양의 불빛으로 피어올랐다.
"위험"
테러리스트 B는 테러리스트 F에게 위험하다고 알리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B는 테러리스트 F를 볼 수 없었다.
테러리스트 F가 있던 자리엔 F의 손목과 무전기만 남은 채, 나머지가 싹 사라졌었다.
"에?"
콰광!
테러리스트 B의 귀에 음속을 넘어 공기를 찢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으나, 그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테러리스트 B는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테러리스트 F의 손과 무전기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 B는 처음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F가 들고 있던 무전기가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B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으, 으아아! 아아아아아!"
["브라보? 브라보! 무슨 일인지 보고 바람!"]
아직 남아 있는 F의 손이 무전기의 송수신 버튼을 누르고 있었기에 B의 비명은 곧바로 상부에 전달되었다.
테러리스트 수뇌부들은 B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패닉에 빠진 테러리스트 B는 땅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지를 뿐, 제정신으로 돌아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차랜드에서는 가치만 있다면 언제든지 부활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끔찍한 죽음에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죽음 앞에서도 별것 아닌 것처럼 행동하던 도미닉 경이 비정상적인 것이리라.
그렇게 개구멍이 난 철창 쪽 초소는 단 두 방의 수수께끼의 물체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초소가 무력화 된 틈을 타, 세 명의 사람이 개구멍을 통해진입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히메가 뭔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다들 동의한 일이니까."
팬텀 박사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뭔가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좋은 실험 데이터가 쌓였다거나.
"무엇보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작전이었으니까. 보라고. 확실하게 제압되었잖아?"
레미가 팬텀 박사의 말에 수긍하며 아직도 찜찜해하는 히메를 설득했다.
셋은 그렇게 개구멍이 난 철창 쪽 초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셋은 그곳에 미리 날아와 있던 두 사람과 합류했다.
"이거, 가능하면 한 번 더 해 보고 싶을 정도로군."
"와 세상에. 방금 봤어?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방금 전의 비행에 상기된 표정을 짓는 도미닉 경과, 토마토처럼 피를 뒤집어써 붉게 변한 도미니카 경 두 사람에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