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7화 〉 [376화]C 보급 기지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히메.
그리고 레미와 팬텀 박사.
이 다섯 명이 앨리스 백작 영애를 구출하기 위해 팀을 짜고 있었을 당시.
"으... 으으..."
C 보급 기지 제 3 보급 창고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중 하나에서 앨리스 백작 영애가 깨어났다.
"여, 여기가 어디지?"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일어나자마자 주변을 살폈으나, 컨테이너 박스는 밀폐되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당황했으나, 그녀가 당황해야 할 일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신입인가?"
"누, 누구?"
앨리스 백작 영애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둠에 조금 적응한 눈은 그곳에 있는 사람 형상의 실루엣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누구나고?"
어둠 속의 존재는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자기 정체를 밝혔다.
"인질 F다."
"...?"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찜찜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잠깐 기다리게. 신입이라 어둠이 익숙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실례를 했군."
인질 F는 앨리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이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지포 라이터를 켰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작은 불빛이 퍼져나갔다.
"이제 좀 괜찮은가?"
인질 F는 앨리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앨리스는 이 미약한 불빛 아래서 인질 F를 보았다.
그는 왠지 모르게 평범하지만 여기저기가 뾰족뾰족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마치 원통형의 통나무를 이리저리 깎아 만든 사람처럼 보였다.
"흠. 요즘 인질로 오는 사람들은 다 미남 미녀들이군. 나 때는 전부 울퉁불퉁한 사람들이었는데."
과학자나 경비, 아니면 회사원 같은 남자들 말이야. 라고 인질 F는 말했다.
"여긴 어디죠?"
인질 F는 꽤 이곳에 대해서 잘 아는 것으로 보였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일단 이곳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기로 했다.
"여기? C 보급 기지에 있는 제 3 보급 창고지."
"보급 창고? 제가 왜 그런 곳에 있죠?"
"그야, 자네가 인질이니까."
"...?"
앨리스 백작 영애는 어째서인지 말이 헛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가 왜 인질이죠?"
"그게 아니라면 왜 여기에 있는 건가?"
"그걸 제가 물어보고 있는 거잖아요?"
앨리스 백작 영애는 답답한 듯 공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인질 F는 앨리스 백작 영애의 태도에 잠시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바로 핸드폰이었다.
"잠시만. 원래 인질로 잡혀 있을 땐 전화기를 쓰면 안 되지만, 일단 좀 써야겠네. 상부에 이르지는 말게."
라고 말한 인질 F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반장님. 수고하십니다. 네. 네. 지금 인질 역할 잘하고 있습니다. 네. 아, 그럼 왜 전화했냐구요? 별 건 아니고, 혹시 오늘 인질로 온 사람들 명단이 있나 싶어서요."
인질 F는 전화기를 양손으로 공손하게 잡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는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 네. 네. 잠시만요. 거기! 자네 이름이 뭔가?"
"네? 애, 앨리스요."
"앨리스? 흠. 네. 반장님. 앨리스랍니다. '아, 이'요. '어, 이'가 아니라. 네. 네? 아, 그것도 알아야 합니까? 이봐! A로 시작하나 E로 시작하나?"
"A요."
"네. 반장님. A로 시작한답니다. 아.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장님. 네. 네. 다음번에 제가 캔 커피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네. 고생하십쇼."
인질 F는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전화기의 전원을 껐다.
"네 말 대로군. 그런 인질은 오늘 없다고 하는구만."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왜 제가 여기에"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일단 언성을 높여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물론 그 불평 가득한 말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NING/WARNING/WARNING/WAR]
[요원 측 플레이어가 C 보급 기지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모든 테러리스트들과 인질들, 그리고 폭탄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 이런."
인질 F는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게 다 무슨 소리죠?"
앨리스 백작 영애가 인질 F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무슨 소리냐고?"
인질 F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기 손과 발을 밧줄로 결박하며 말했다.
"매치가 성사되었다는 소리일세."
인질 F의 말과 동시에 밖에서 몇몇 이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 소리를 듣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문득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누구 구해주실 분 없나요?"
...
"저기요? 살려주세요! 안에 사람 있어요!"
"와 오늘 인질 역할 맡은 사람 누구냐? 진짜 리얼하게 연기하네?"
"그러니까.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사람이네."
앨리스가 같혀 있는 컨테이너 박스 바깥.
테러리스트들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마구 소리치는 앨리스의 목소리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요즘 인질들에게 보고 배우라고 하고 싶네."
테러리스트 D가 입에 담배를 물며 말했다.
매치가 시작되기 전까지 5분.
그 5분 안에 담배를 미리 피워두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항상 발연기만 듣다가 이런 리얼한 연기를 들으니 좀 신선하네."
테러리스트 T가 바지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초코바 하나를 베어 물며 말했다.
"살려주세요! 안에 사람이 있다구요!"
"그나저나 저거 진짜 열어 주고 싶지 않냐?"
"그러니까. 진짜 무슨 일 일어난 거 아냐?"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는 컨테이너 박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한 번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테러리스트 T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의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 보려고 한 그 순간...
"거기, 친구들? 혹시 담배 하나 있어?"
갑자기 그들의 뒤에서, 안드로이드가 나타났다.
어딘가 엉성하게 생긴, 삑삑 소리가 나는 안드로이드가.
...
"후. 살것 같다."
고철더미로 만들어진 것처럼 생긴 안드로이드는 테러리스트 D가 건넨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피웠다.
그리고 깊게 연기를 들이쉬더니, 마치 고장 난 배기구처럼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 누구?"
테러리스트 D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안드로이드에게 담배를 건네주기는 했으나, 이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테러리스트들은 오늘 누군가의 부탁받고 여기를 하루 점령하는 참이었다.
그러니 C 보급 기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소리였다.
"나?"
안드로이드가 녹슨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여기 폭탄."
안드로이드가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뒤편의 공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래 폭탄이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폭탄 없이 그저 빈 공터일 뿐이었다.
"...?"
폭탄의 말에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아니, 세상에 어느 폭탄이 벌떡 일어나서 담배 하나를 갈취한 뒤 맛깔나게 핀다는 말인가?
그러나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는 공터에 있던 폭탄을 확인했고, 그 폭탄이 사라진 것도 확인했다.
모든 정황 증거가 눈앞의 안드로이드를 폭탄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 폭탄인데 담배를 펴도 되는 건가?"
테러리스트 T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불똥이라도 튀면 폭발하는 거 아냐?"
"아, 형씨. 내가 폭발하는 꼴 보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폭탄은 테러리스트들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안 그래도 매일 언제 터질지 몰라서 조마조마하게 사는데, 가끔은 이렇게 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범하게 행동해도 되잖아! 어? 꼭 내가 이렇게 폭발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 엉?"
폭탄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지 다른 의미로 폭발하고 말았다.
"형씨들이 매일매일 터져 나가는 내 고충을 알아? 이렇게 폭탄 옆에서 담배 피면서 시시덕거리기만 하지, 내게 담배 하나 건네는 사람도 없고!"
폭탄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붉어졌다.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의 안색은 순식간에 기절이라도 할 듯 검게 변했다.
"그, 좀 진정해. 여기서 터지면 버그라고 생각할 거 아냐."
"쓰읍... 그래. 맞아."
폭탄은 테러리스트들의 말에 수긍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하긴. 이렇게 내게 담배를 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말이지. 오늘은 그나마 좀 나은 날인데, 내가 좀 과민하게 반응했어. 사과하지. 내가 폭발하는 점이 좀 낮아서 말이야."
"아니, 별말씀을."
테러리스트들은 폭탄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폭탄은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를 맛깔나게 핀 뒤, 꽁초를 땅에 버리고 녹슨 발 뒷굽으로 비비적거리며 담뱃불을 껐다.
"내가 좀 미안하니까, 이번만큼은 내가 좀 도와주도록 하지."
"...?"
폭탄은 그렇게 말하며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기가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설명했다.
"내가 평소보다 10cm 정도 어긋나게 있을게. 그리고 해제하려고 할 때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움직여주지. 이 정도면 사과로서 충분하지 않나?"
"!"
테러리스트들은 폭탄의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폭탄은 테러리스트에게 유리하도록 승부를 조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폭탄은 그야말로 폭탄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 그게 정말..."
"괜찮아? 혹시 그 문제로 문제라도 생긴다면..."
"아, 몰라. 그땐 좀 터지고 말지 뭐."
폭탄은 그렇게 말하며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에 있던 자리보다, 약 10cm 정도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이 자그마한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테러리스트 D와 테러리스트 T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로써 확실해진 결과는 있었다.
"그, 거기 누구 없어요?"
컨테이너 박스 속에 있는 앨리스 백작 영애에 대한 건 잊혀졌다는 사실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