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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75화 (375/528)

〈 375화 〉 [374화]C 보급 기지

* * *

"따라오길 잘했네."

"그러게 말이야."

"레미?"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여동생 레미를 쳐다보았다.

레미는 여전히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긴 곱슬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방탄조끼에 소총을 들고 있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어... 음... 그냥. 길 가다가 오빠가 보이길래."

"사실 도미닉 경과 누나가 무턱대고 쳐들어갈까 봐 걱정돼서 말이에요."

"팬텀 박사!"

레미는 팬텀 박사에게 버럭 화를 냈다.

숨기기로 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팬텀 박사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모르는 체 했다.

레미는 팬텀 박사를 잠시 노려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사실, 길 가다가 오빠랑 다른 여자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미행을 좀 했어."

"그렇구나."

도미닉 경은 레미가 앨리스 백작 영애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충분히 호기심에 미행을 할 수도 있는 법이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더라도 그랬다.

만일 레미가 도미닉 경이 모르는 남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으면 당연히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이 문제에 대해선 넘어가기로 했다.

"잠깐, 미행했다면 그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요?"

히메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았죠?"

"난 오빠를 미행했을 뿐, 당신과 그 여자를 미행한 건 아니니까."

히메의 날카로운 지적에 레미는 기다렸다는 듯 되받아쳤다.

"난 오빠가 휴지를 사러 간 사이 그 뒤를 미행했지,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몰랐어."

레미의 말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선 딱히 더 할 말은 없군요."

히메도 레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의문은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다린 것은 맞아."

히메의 말에 레미가 수긍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난 이후, 난 오빠가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려고 움직일 걸 예상했지. 지금까지의 빅 데이터를 보면 그랬으니까. 그래서 난 CCTV를 분석해 범인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말한 레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 온 셈이지만."

레미는 슬쩍 C 보급 기지 옆에 있는 A보급 기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레미가 소속된 뤼미에르 클랜의 마크가 걸려 있었다.

아마 저곳에서 바로 장비를 갖춰 입고 온 모양이었다.

레미가 급하게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예로, 그녀의 방탄 조끼는 꽤 느슨하게 입혀져 있었다.

"그나저나 방금 그 건 뭐였지?"

도미니카 경이 팬텀 박사에게 물었다.

"권장 인원수라니. 그런 건 처음 보는데."

도미니카 경의 의문은 합당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차랜드에서 보이지 않던 메시지였으니까.

이 문제에 대답한 건 팬텀 박사였다.

팬텀 박사는 레미의 방탄 조끼를 꽉 조이면서 말했다.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고 왔네."

팬텀 박사가 이곳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긴 가차랜드에 있는 클랜들이 공용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야."

"그런 '설정'이지."

레미가 팬텀 박사의 말에 끼어들었다.

팬텀 박사는 방탄 조끼를 조금 더 확 조여 레미의 입을 막았다.

"그래. 설정이지. 사실 여긴... 새로운 모드를 위한 맵이야. 그래서 기존의 메시지가 아니라, 특별한 메시지가 뜬 거고."

그렇게 말한 팬텀 박사가 다시 한번 손을 빛나는 선 안쪽으로 넣어보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권장 인원 5명. 현재 인원 2명.]

[현재 주변에 파티를 찾는 인원이 3명 있습니다.]

[파티를 합치시겠습니까?]

"이제 수락을 누르면 돼."

팬텀 박사쪽에서 예를 눌렀다.

그러자 팬텀 박사의 눈앞에, 그리고 도미닉 경의 눈앞에 각각 하나씩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가 수락하길 기다리는 중...]

[현재 당신의 파티와 합치려는 파티가 있습니다.]

[파티를 합치는 걸 수락하시겠습니까?]

도미닉 경은 잠깐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도미닉 경은 무언가 궁금한 점이 생겼는지 고개를 돌려 레미와 팬텀 박사를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다."

"뭔데?"

도미닉 경의 말에 대답한 것은 레미였다.

"정확히 이 모드가 어떤 모드인지 알 수 있을까?"

"아."

레미는 그제야 아직 도미닉 경의 일행들에게 이 새로운 모드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알려주지 않았네."

레미는 왜 이런 간단한 것을 까먹었는지 자신을 자책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FPS. FPS 모드야. 이름은 '콜 오브 아너'."

"FPS?"

"일인칭 슈팅 게임."

그렇게 말한 레미는 FPS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다가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벙긋거렸다.

"그냥 평소대로 치고받고 싸우면 돼. 다만 몇 가지 보정이 있긴 한데..."

레미는 횡설수설하며 어떻게든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왠지 설명이 어려운 듯, 입을 닫고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해 보면 알 거야."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차랜드의 모든 것은 이해하기 난해했다.

말로 하는 설명보다는, 직접 해 보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도미닉 경은 직접 새로운 모드를 겪어보면서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뒤, 바로 팬텀 박사가 건넨 파티 합방을 수락했다.

[권장 인원 5명. 현재 인원 5명.]

[권장 인원이 찼습니다. 안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튜토리얼을 먼저 해 보시겠습니까?]

도미닉 경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는 뒤를 돌아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튜토리얼부터 해 보죠."

히메가 가장 먼저 제안을 건넸다.

"괜히 여러 번 시도해서 실패했다간 상대편의 경계만 올려줄 뿐이니까요."

히메의 제안은 그럴싸했다.

"나는 반대야."

이번엔 도미니카 경의 제안이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상황이야. 주변에 우리가 없는 상황에서 앨리스 백작 영애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날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도 없어. 앨리스 백작 영애는 가차랜드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튜토리얼은 해 봐야 해요. 실패 시 페널티가 너무 크니까요."

히메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받아쳤다.

도미닉 경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한쪽으로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을 하는 쪽으로 말이다.

도미닉 경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바로 도미니카 경과 히메에게 말했다.

"일단 튜토리얼은 해 보는 것이 좋겠소. 새로운 모드라고 했으니, 이런저런 다른 점들이 있을 거요. 그런 점들에 대해선 알고 가는 것이 좋겠지."

"좋아요."

"어쩔 수 없지."

도미닉 경의 말에 두 사람은 수긍의 뜻을 내비쳤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튜토리얼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문득 레미와 팬텀 박사도 도미닉 경의 파티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너흰 어떻게 할 생각이지?"

도미닉 경이 레미에게 물었다.

"글쎄."

레미는 괜히 꽉 조여진 방탄 조끼가 조금 거슬리는 듯, 조여놓은 부분을 살짝 풀며 말했다.

"우린 여길 자주 오거든. 아무래도 기술력을 시험하기엔 제격인 모드라."

"우리는 일단 여기서 기다릴게. 빨리 끝내고 와."

"아."

도미닉 경은 레미와 팬텀 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뤼미에르 클랜은 과학 기술을 상징하는 클랜이었다.

그런 만큼, 무기와 장비에 대한 발전도 빨랐고, 그만큼 실험도 잦은 편이었다.

레미와 팬텀 박사는 그런 뤼미에르 클랜에 소속되어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바로 튜토리얼 버튼을 눌렀다.

...

그 시각, 왕이.

왕이는 행정부를 찾아가 의원 하나를 찾았다.

왕이는 비공식적으로는 양산박의 간부이자 범죄자였으나, 공식적으로는 가차랜드의 시민이었기에 그가 행정부를 걸어 다니더라도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

"이거이거, 오랜만입니다."

왕이의 건너편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군요."

"뭐, 그렇게 말하니까 꽤 오래 만나지 못한 것 같은데."

왕이는 의문의 의원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의원은 왕이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평소대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의원으로 있으면서 생긴 잡기술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모드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아, 그래. 맞아."

왕이는 잠시 뜸을 들이며 의원의 기대감을 조금 더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충분히 올라왔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그때 입을 열었다.

"지금 C 보급 기지에 도미닉 경과 그 일행이 있어."

"...?"

의원은 왕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더니 왜 갑자기 도미닉 경과 C 보급 기지의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말이 딴 데로 샌­"

"FPS의 부흥."

"...!"

의원은 왕이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려고 했으나, 이후 왕이가 내뱉은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을 보며 속으로 내심 환호성을 내지른 왕이.

그러나 겉으로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아닌 척하지만 과거엔 원딜러들의 영광이 있었지. 저격총, 산탄총, 돌격소총, 소총, 자동 권총과 리볼버... 근접 무기는 보조였고, 원딜이 주력이던 시기가 있었단 건 서로 알고 있잖아?"

왕이는 굳은 얼굴을 한 의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활과 화살 문양이 새겨진 금뱃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우주 기지에서 악마를 찢어 죽이거나, 과학 시설에서 외계인을 사살하거나, 혹은 우주 제국과 전쟁을 일으키거나... 이 모든 것의 부흥에는 원거리 딜러들의 노력이 있었지. 안 그래?"

"..."

의원은 왕이의 말에도 대답이 없었으나, 왕이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조금만 더 설득한다면, 바로 넘어올 것도 알고 있었다.

"이봐.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난 다 알아."

왕이는 마지막 한 수를 꺼냈다.

의원을 완전히 설득할 마지막 한마디를.

"도미닉 경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알게 모르게 도미닉 경의 일거수 일투족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도미닉 경이 FPS를 한다? 바로 FPS의 황금기가 오는 거야."

왕이가 허리를 굽혀 의원과의 거리를 좁혔다.

"제2의 전성기가."

"..."

의원은 왕이의 말에 그저 왕이의 눈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나 왕이는 알았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오?"

의원은 이미 왕이의 말에 설득당해 있다는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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