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화 〉 [371화]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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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무려 편의점과 마트를 12군데나 돌고 나서야 휴대용 티슈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은근히 고급이었는지 은은하게 좋은 향이 나는 티슈였다.
도미닉 경은 티슈에 대한 가격을 치른 뒤 인벤토리를 열고 안에 티슈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냥 12개들이나 18개 들이로 사서 하나만 꺼내고 나머진 인벤토리에 보관하면 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처음 들렸던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서 바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너무나도 정직하게 생각하는 머리로 인해 도미닉 경은 몸이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모두 지난 일이었다.
후회한다고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히메와 앨리스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휴지는 가져다줘야 할 테니까.
"응? 도미닉 경? 여깄었네?"
그때였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편한 복장의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도미니카 경? 여긴 무슨 일이오? 집에 무슨 일이라도...?"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여겼다.
집에 문제가 생겼더라면 전화로 해도 되었을 테니까.
"별 건 아니고. 그냥 손님께서 이것저것 필요할 것 같은데 내가 도울 게 없나 싶어서."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과 앨리스는 필요한 것을 사러 나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또 필요한 것을 사려고 나왔다는 말인가?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았는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여자들은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아."
"그러니까, 그런 걸 사려고"
"남자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들 말이야."
"...?"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또 한 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성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속옷이나 뭐 그런 거."
"아."
도미닉 경은 그제야 도미니카 경이 한 말을 알아차렸다.
"그런 것이라면 확실히 내가 돕기엔 곤란하긴 하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내가 쫓아온 거야. 혹시라도 그런 게 필요할까 봐."
"과연."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 보이긴 하오."
"...? 어째서?"
"히메 공이 같이 있기 때문이오."
도미닉 경은 방금 전에 만난 히메에 대해서 생각했다.
히메는 평소에도 꽤 관리를 잘하는 듯 백옥 같은 피부와 손질이 잘 된 흑단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조언이라면 앨리스 백작 영애가 곤란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히메가?"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무언가 찜찜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도미닉 경은 철벽과도 같아 잘 모르겠지만,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접근하는 이성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같은 여자였으니 히메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히메가 오히려 앨리스 백작 영애를 견제하면 견제했지, 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혹시 지금 둘이 같이 있는 건가?"
"그렇소. 앨리스 백작 영애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내가 휴지를 사러..."
도미닉 경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휴지를 아직 가져다주지 않았다.
도미니카 경과 대화하는 시각은 꽤 짧았지만, 휴지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다녔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히메와 앨리스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소."
"그래?"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나도 같이 가도 되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
반은 도미닉 경과 히메,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를 돕겠다는 명분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도미닉 경을 두고 히메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흥미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좋아."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과 함께 같이 걸음을 옮겼다.
히메와 앨리스가 굳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
히메와 앨리스는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수를 두고 받아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난 도미닉 경이 아직 징집병일 시절...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어."
"반대로 말하자면, 아직 어린 도미닉 경을 굳이 징집해서 싸우게 했다는 소리네요?"
"또 그 반대로 말하자면, 그때 내가 도미닉 경을 징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도미닉 경은 없다는 말이지."
"...그건 인정하죠. 하지만 그 사실과 당신이 도미닉 경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무슨 상관 관계가 있죠?"
"글쎄.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딱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모른다는 말이군요."
"복합적인 감정이라는 거지."
둘은 계속해서 서로의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으면서 견제를 날렸다.
어째서인지 둘 모두 연애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었지만, 원래 싸움은 약자들의 처절한 싸움이 가장 재밌지 않은가.
히메와 앨리스의 기세는 마치 햄스터와 토끼가 기 싸움을 펼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매우 진지하고 중요했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처럼 대등한 호적수를 만나 본 적이 없었던 히메와 앨리스.
둘은 계속해서 서로를 견제하다가 결국 지쳐 버리고 말았다.
언제 이렇게 다른 사람과 신경전을, 그것도 제대로 된 신경전을 벌여 본 적이 있겠는가!
이제 서로를 견제할 말조차 다 떨어진 상황에서 히메와 앨리스 백작 영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둘의 시선이 얼마나 강렬한지, 허공에 스파크가 튀는 것만 같았으나 정작 서로를 노려만 볼 뿐, 후속 행동은 없었다.
결국 2차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눈싸움은 히메의 말 한마디에 끝났다.
"...도미닉 경이 좀 늦네요."
"...그러게."
히메와 앨리스는 잠시 서로에 대한 견제를 내려놓고 도미닉 경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히메가 도미닉 경이 사라진 방향 쪽을 향해 목을 쭈욱 빼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거리를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만이 보일 뿐, 도미닉 경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간 걸까요?"
"나야 모르"
"거기, 아름다운 아가씨?"
히메와 앨리스가 도미닉 경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둘 사이에 인세에 보기 드문 미남이 나타났다.
화려한 곤룡포를 입은 놀라운 미모의 남자, 바로 왕이었다.
"혹시 시간이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
왕이는 아주 간드러지는 느끼한목소리로 앨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앨리스는 그 느끼함으로 인해 팔에 오소소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지만, 지금 우리도 누굴 기다리고 있어서요."
히메가 한숨을 내쉬며 왕이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좀 바빠요."
"난 당신에게 물은 게 아닌데."
"...!"
왕이는 히메의 말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히메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으며, 히메와는 말조차 섞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히메는 왕이에게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무례하네요! 아무튼, 저흰 도미닉 경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알고 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지 않았나."
히메는 이 상상 이상으로 무례한 사람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알고 있으면서도 접근한 거예요?"
"이상한 말을 하는군. 당연히 없으니까 접근한 거 아닌가?"
히메는 왕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둘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눈치가 보여서라도 돌아갔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는 그런 눈치조차 없어 보였으니까.
실제로 앨리스는 갑자기 나타난 다른 사람의 존재에 놀라 계속해서 히메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냐는 듯 말이다.
그러나 왕이의 처지에서 보면 지금의 행동은 아주 당연하였다.
지금까지 원하는 건 모두 얻으며 살아왔고, 부족함 없이 살아온 왕이는 이렇게 다른 이들이 거절하는 것을 정말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개 무언가를 거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돈이 부족했거나, 혹은 협박이 부족했거나, 혹은 설득이 부족했거나.
그런 사람들만 만나온 왕이였으니 히메와 앨리스가 거절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그것을 진짜 거절 의사라고 생각하지 못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돈과 권력으로 유지해온 사람 다웠다.
"돈이 부족한가? 그럼 돈을 줄 수 있다."
"조건이 부족한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줄 수 있다."
왕이는 계속해서 히메와 앨리스를 향해서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아직 그는 히메와 앨리스가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앨리스는 왕이가 처음으로 한눈에 반한 사람.
약간의 양보는 해 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
거절이 계속되자, 왕이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왕이는 계속해서 튕기기만 하는 앨리스의 태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일단 데려가서 날 사랑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지."
왕이의 뒤틀린 사랑과, 뒤틀린 가치관과, 뒤틀린 생각이 뒤섞여 만들어진 뒤틀린 결론.
"...? 그게 무슨"
히메는 왕이의 중얼거림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 의문은 당분간 풀리지 않을 것이다.
왕이가 히메의 복부에, 전기 충격기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으읏!"
갑작스러운 기습에 쓰러져 버린 히메.
히메는 코끼리도 즉사할 만한 전기를 내뿜는 전기 충격기의 공격에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왕이는 연기를 내며 천천히 쓰러지는 히메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왕이의 손에 들린 전기 충격기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전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왕이의 다음 타겟은 예상했겠듯이, 앨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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