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367화]미행
* * *
"술... 먹으러 갈래?"
앨리스 백작 영애는 용기를 내어 도미닉 경에게 제안을 건넸다.
이는 앨리스 백작 영애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였다.
"그럴 수 없소."
그리고 누구나 알 수 있듯, 도미닉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째서?"
앨리스 백작 영애가 도미닉 경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야... 기사는 술을 멀리해야 하는 법 아니오."
"아."
도미닉 경의 말에 앨리스 백작 영애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생각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서 죽은 이후 수백 년이 흐른 상태였다.
도미닉 경이 숭상하는 기사도는 이미 과거의 유산이었고, 이제는 지키는 이 하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그러나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언제나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었기에 앨리스는 언제나 도미닉 경을 믿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모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이미 거절당했음에도 아쉬움에 몇 번이고 다시 술자리를 제안 했다.
도미닉 경과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렸지만...
"일 없소."
도미닉 경은 탱커 특성을 가진 남자.
그야말로 철벽과도 같았다.
...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도미닉 경과 앨리스 경이 걷고 있는 거리의 구석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건 오해라고 하기엔 너무..."
증거가 명확하잖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팔짱을 낀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이건 오해라고 할 것도 없이 현장에서 바로 검거였다.
"...일단둘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어."
그러나 히메는 여전히 침착했고, 신중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오해를 할 만한 일들이 있었지만, 모두 진짜 오해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괜히 제멋대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조금 더 침착하고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며 히메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긴 숨을 내쉬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맑아지고, 생각은 명확해진다.
그 뒤에 나올 것은, 아주 명쾌한결론.
"도미닉 경을 미행한다."
히메는 마치 부처와 같이 평온한 얼굴로 범죄적인 말을 내뱉었다.
"오해일 경우 도미닉 경에게 사과하고 데이트라도 신청하겠지만, 아닐 경우..."
히메는 깨달음을 얻은 이처럼 게슴츠레한 얼굴로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입에 은은하고 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죽일 것이다. 몇 번이라도."
세상에, 부처시여. 어찌 부처의 얼굴로 저런 말을!
히메는 아주 맑고 명확한 머리와 생각으로 엄청난 결론에 도달했다.
"음."
히메가 그리 결심을 한동안, 도미닉 경과 앨리스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히메는 여전히 부처처럼 인자한 얼굴을 한 채, 도미닉 경과 앨리스의 뒤를 따랐다.
아주 정확하게 10미터 간격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
그리고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미행하는 건 히메 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옆에... 새로운 여자가?"
도미닉 경의 여동생 레미도 도미닉 경과 앨리스의 뒤를 밟고 있었다.
레미는 과도한 실험으로 인해 떨어진 당을 보충하려고 시내에 솜사탕과 기타 달달한 것들을 사러 나온 참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도미닉 경의 옆에 새로운 여자가 있는 것을 본 레미.
레미는 머리가 매우 뛰어났기에 도미닉 경의 옆에 있던 여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여자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만난 사이에... 팔짱을?"
레미는 급하게 솜사탕을 마저 먹고 도미닉 경을 미행했다.
도대체 도미닉 경과 이토록 거리가 가까운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 상황을 누군가 본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레미가 머리가 좋다면, 어째서 앨리스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 하는가?
그것도 자기가 있던 곳의 영애였는데?
이는 신분의 차이를 생각해야 하는 문제였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귀족 신분이었다.
그리고 레미는 사망하던 당시에도 농노 신분이었다.
감히 농노 신분인 레미가 귀족 신분인 앨리스를 제대로 볼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앨리스 백작 영애는 데뷔를 할 나이부터 검을 들고 갑옷을 입은 채 마족들과 싸워왔다.
농노들과 한마디를 섞는 것보다, 마족들이 초토화한 마을의 시체를 더 많이 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아무튼, 레미는 앨리스의 존재를 몰라보았고, 그렇기에 도미닉 경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레미는 아주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도미닉 경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저 여성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단 하나의 집념으로.
...
놀랍게도, 도미닉 경을 미행하는 건 히메와 레미 뿐만이 아니었다.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양산박의 간부, 왕이도 도미닉 경을 뒤쫒고 있었다.
"새로운 영화를 제안 하려고 했는데..."
왕이는 이번에 새로운 영화를 찍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내심 도미닉 경으로 낙찰된 상태였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도 꽤 알아주는 유명인 중 하나였다.
물론 여전히 도미닉 경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미닉 경이 다른 5성들에 대해서 잘 모르듯,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도미닉 경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부류가 있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가차랜드를 정복하는 방식을 전쟁과 테러에서 문화적 승리로 바꾼 왕이는 도미닉 경이 가진 인기를 쓰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주인공 계약을 따내기 위해 직접 이렇게 도미닉 경의 근처에 나타난 것이다.
왕이는 바로 도미닉 경에게 다가가 계약서를 내밀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난생처음 보는 미녀를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왕이는 과장되게 놀라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하? 저 아리따운 소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왕이는 마치 B급 감성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반응을 보였다.
왕이의 심장이 크게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아쉬운 적이 없어 굳이 가지려고 노력한 것도 없는 왕이였지만, 이번만큼은 평소와 크게 달랐다.
"이런 마음은 도미닉 경 이후 처음인데..."
왕이는 도미닉 경을 본 이후로는 처음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도미닉 경의 옆에 있는 흰 머리의 여성이었다.
"다가가서 말이라도 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왕이는 전봇대 뒤에서 몰래 앨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왕이와 앨리스 사이에는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었기에 왕이의 손길이 그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직접 가서 말이라도 전해야 할까? 아니, 아니야. 그러다가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왕이는 지금까지 원하는 건 가지고, 가질 수 없는 건 부숴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반드시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고 있었다.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는 욕망.
그 욕망은 곧 걱정되었다.
"으으... 거절당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왕이는 심리적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평소처럼 망가뜨리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왕이는 그럴 수 있었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왕이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일단 따라가 보자."
그러고는 도미닉 경과 앨리스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에게 영화 출연 의사를 묻겠다는 의도는 까맣게 잊은 채로.
...
이쯤 되면 뇌절인 것도 같지만, 미행을 하는 이는 또 있었다.
"!"
"?"
아니, 미행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짤막한 2등신의 몸매.
하나는 몸만큼이나 큰 보라색 뿔이 나 있고, 하나는 머리에 왕관을 쓴 채 허리에 말랑말랑한 스티로폼 검을 차고 있었다.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이었다.
"!"
"!"
평상시에는 참모장과 행정관과 함께 다니는 둘이었으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보호자도 없이 둘만 나온 상황.
이들이 여기에 있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또 이들을 미행하는 두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마왕과 용사가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미행하는 걸 저 멀리서 바라보는 두 인물.
바로 참모장과 행정관의 존재를 말이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흥. 그러는 너야말로 왜 성에서 기다리지 않고?"
둘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각자의 주군들, 마왕과 용사를 지켜보았다.
"설마 네 주군인 마왕이... 심부름을 실패할까 봐 조마조마한 건 아닌가?"
"뭐, 뭣이?"
참모장은 행정관의 말에 발끈했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 역으로 도발을 시작했다.
"난 혹시라도 다치실까 봐 걱정되어 따라온 것이다! 그러는 너야말로 주군을 믿지 못 하는 건가? 여기에 있다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
"크, 큭. 그런 게 아니다...!"
행정관은 참모장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참모장과 행정관은 마왕과 용사의 첫 심부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마왕과 용사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공식적으로 처음 밖으로 나왔다는 소리였다.
"?"
"!"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심부름을 하다 말고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미행하는 것인가?
...
이렇게 도미닉 경과 앨리스를 중심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행이 시작되었다.
이 미행의 끝은 도대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 미행자들을 미행하는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상황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