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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64화 (364/528)

〈 364화 〉 [363화]앨리스 인 가차랜드

* * *

도미닉 경이 식재료를 다 사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도미닉 경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도미닉 경은 잠시 짐을 내려 두고 발신자 번호를 보았으나, 도미닉 경이 모르는 번호였다.

도미닉 경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알 수 없는 발신자 번호는 보이스 피싱 등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알 정도로 전자기기에 해박하지 않았다.

"...누구시오?"

["아, 도미닉 경. 자베르 경감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도미닉 경의 전화를 통해 전달되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경찰, 자베르 경감이었다.

"아, 자베르 경감. 무슨 일이시오?"

도미닉 경은 이 알 수 없는 번호가 자베르 경감의 번호라는 것을 알자마자 목소리가 밝아졌다.

자베르 경감은 도미닉 경에게 호의적인 경찰이었으니까.

["그게... 경찰서로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도미닉 경은 자베르 경감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앞뒤 사정을 모른 채로 다짜고짜 경찰서로 오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사실을 자베르 경감도 알았는지, 자베르 경감은 급하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방금 전 성좌 하나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계속해서 도미닉 경을 찾고 있습니다. 도미닉 경이 자기 신원을 보증할 수 있을 거라며..."]

"?"

도미닉 경은 설명을 들었음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자베르 경감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자베르 경감의 말을 듣고는 일단 경찰서로 가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자기를 애타게 찾는 사람... 아니, 성좌가 누구인지도 궁금했거니와 왜 자기를 찾는 것인지도 궁금했으니까.

"일단 알겠소. 경찰서라고 했소?"

도미닉 경은 이후 자베르 경감과 몇 마디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경찰서로 가고 싶었으나, 도미닉 경은 문득 자기가 양손에 식재료가 가득한 봉투들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 식재료들을 가져다 둔 뒤, 탈것을 타고 경찰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몇십 분 뒤.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했다.

빠르기는 비행선이 가장 빨랐으나, 경찰서 주변에는 비행선을 정박할 구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곧바로 경찰서 앞 주차장에 거미 전차를 주차하고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서 안에는 각자 할 것을 하는 경찰들과 하나같이 거만하거나 억울해하는 범죄자들이 가득했다.

경찰서의 내부에 있는 인원들은 가차랜드에 이렇게나 많은 경찰과 범죄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았고, 경찰과 범죄자가 많은 만큼 그 규모도 상당히 컸다.

얼마나 넓은지 도미닉 경은 저 멀리 아직 시야가 닿지 않는 부분이 안개에 가려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넓으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잠깐 경찰서 내부를 둘러보더니, 이내 지나가던 경찰 하나를 붙잡고 자베르 경감에 대해서 물었다.

"실례하오. 혹시 자베르 경감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아, 잠시만요."

도미닉 경의 질문을 들은 경찰은 잠시 인 이어 마이크를 통해 어딘가에 연락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미닉 경에게 대답했다.

"여기로 쭉 가서 왼쪽으로 꺾으시면 탕비실이 나옵니다. 탕비실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강력계가 나오는데, 거기로 가시면 있습니다."

"아. 고맙소."

"별말씀을."

도미닉 경의 질문에 대답한 경찰은 이내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경찰이 알려 준 대로 직진 후 왼쪽으로 꺾고, 탕비실로 보이는 방의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강력계라고 적힌 현판이 보였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은 제대로 길을 찾은 모양이었다.

"일단 찾아오기는 했는데..."

도미닉 경은 강력계라고 적힌 현판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곳도 경찰서 내부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이 넓은 곳에서 자베르 경감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전처럼 경찰에게 물어보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방금 전 경찰들과는 다르게 이곳의 경찰들은 어째선지 매우 바쁘고 험악해무언가를 물어보기엔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 도미닉 경은 이 강력계의 공간 내부를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방금 전까지는.

"도미닉 경! 여기입니다!"

도미닉 경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자베르 경감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그는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취조 중 목이 말라 커피를 한잔 하러 온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자베르 경감이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오랜만이오, 자베르 경감."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차랜드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야 하다 보니..."

자베르 경감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그의 이마가 저번에 본 것보다 조금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나를 찾는 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 네."

자베르 경감은 도미닉 경의 말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성좌 하나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만, 가차랜드에 초대되어서 온 성좌가 아니라 여행을 온 성좌라 신원 조회가 안 되지 뭡니까. 그래서 신원을 확인할 수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도미닉 경을 데려오면 자기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성좌의 신원을?"

도미닉 경은 자베르 경감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두 배는 커졌다.

그때, 언젠가부터 그들의 옆에서 커피를 타고 있던 경찰이 말을 걸었다.

"그 성좌가 온 곳에 신원 확인 요청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도미닉 경은 바쁜 사람인데 이렇게 오라가라하면..."

"아, 그게 말이지."

자베르 경감은 후배로 보이는 경찰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성좌가 온 차원이 조금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 전산 시스템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서 요청을 하려면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더군. 처음엔 성좌도 그쪽으로 가닥을 잡다가 몇 달이나 경찰서에서 있을 순 없다면서 도미닉 경을 언급한 거고."

"아,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후배 경찰은 커피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마 바쁜 일이 있었던 거겠지.

도미닉 경은 그제야 자기가 왜 경찰서에 직접 와야만 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의문 하나가 해결되자마자 도미닉 경은 새로운 의문 하나를 떠올렸다.

그 성좌는 어째서 도미닉 경을 알고 있단 말인가?

도미닉 경은 문득 그 성좌가 아임 낫 리틀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을 아는 성좌는 가차랜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여행을 온 성좌라고 했다.

그 말인 즉, 외부에 도미닉 경의 이름이 알려질 일이 있었거나, 아니면 도미닉 경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생각한끝에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말을 내뱉었다.

"혹시 그 성좌가 자신을 하얀 까마귀라고 소개했소?"

"...? 아뇨. 그녀는 그, 다른 이름이었는데... 뭐였더라..."

자베르 경감은 도미닉 경의 물음에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름이 꽤 쉬운 편이라는 건 기억했으나, 하도 일이 많은 탓에 다른 범죄자들의 이름과 헷갈리는 건 예사였다.

"아리스? 에리? 아이테르? 앨리? 엘라이스?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라는 말. 그리고 자베르 경감이 내뱉은 이름들의 유사성.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문득 과거의 주군을 생각해냈다.

페럴란트의 앨리스 백작 영애를 말이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앨리스 백작 영애는 분명한 인간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그 앨리스 백작 영애가 성좌가 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건 기억이 나는군요."

자베르 경감은 마침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한 가지 정보를 주었다.

"도미닉 경과 같은 페럴란트 출신이라고 합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 말을 통해, 도미닉 경을 찾는 성좌가... 도미닉 경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

"그­"

"뭐, 이렇게 이야기해도 직접 보는 것만큼은 못 하지요. 일단 성좌가 있는 곳으로 갑시다. 보고 나면 무언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미닉 경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자베르 경감에게 말을 걸려고 했으나, 자베르 경감은 그런 도미닉 경의 말을 끊어내며 직접 볼 것을 제안했다.

그 말에 도미닉 경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자베르 경감은 도미닉 경이 동의하자 바로 몸을 돌려 성좌가 있을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 뒤를 따라갔다.

도미닉 경의 몸은 자베르 경감이 간 길을 따라 걷고 있었으나, 그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기입니다, 도미닉 경. 이 성좌 분이 도미닉 경을 찾던 이입니다."

도미닉 경은 마침내 자기를 찾던 성좌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성좌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기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눈이 하나라 두 개보다 성능이 심하게 나쁜 모양이군.

"오랜 만이네,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성좌는 도미닉 경을 보며 매우 반가워했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전우를 다시 만난 것처럼.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 눈은 아주 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이오, 주군."

그곳엔 다소 모습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분명히 주군이 있었다.

페럴란트의앨리스 백작 영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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