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 [360화]요한 양치기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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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도미닉 경은 날이 밝자마자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클랜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본래대로라면 클랜들의 위치는 공개되어 있었기에 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위치가 공개된다면 클랜전 때 위험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위치를 공개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위치를 숨길 경우 클랜전 할 준비하는 거냐며 다른 클랜들에게 견제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클랜들은 위치를 드러내는 대신 보안을 철저히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이렇게 클랜들이 위치를 공개하는 것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랜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도 앱을 이용해 찾아올 수 있었고, 관리 면에서도 공개를 하는 편이 더 편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외곽을 향해 걸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클랜 본부는 가차랜드의 외곽에 있었다.
그것도 꽤 으슥한 골목에.
골목이 얼마나 복잡한지 도미닉 경은 이 근방에서만 지도 앱을 열댓 번 정도 더 확인해야만 했다.
도미닉 경은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벽돌로 된 골목에 도착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비밀 결사가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러고 보니 요한 양치기 원정대는 비밀 결사였다고 했던가.
도미닉 경은 과거 조제프 준장이 한 말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클랜이 커지면서 비밀 결사에서 판타지로 방향성을 바꾼 모양이지만, 여전히 본부만큼은 비밀 결사 컨셉을 고수하는 듯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시답잖은 생각하며 막다른 골목에 멈춰 섰다.
지도 앱이 정확하다면, 여기가 바로 요한 양치기 원정대 본부의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어딘가 조금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었다.
벽에 있는 벽돌 중 하나였는데, 다른 벽돌들과는 그 질감이 꽤 달라 보였다.
골목이 어두웠기에 얼핏 보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도미닉 경은 이 어색한 부분이 바로 요한 양치기 원정대 본부로 들어가는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그 어색한 부분을 손등으로 똑똑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빙고.
벽의 어색한 부분이 열리며 누군가의 눈이 보였다.
그 눈은 도미닉 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 눈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어제 받은 편지를 문 너머로 건넸다.
문 너머에서 편지를 건네받은 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반대편에서 철컹철컹하고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녹슨 경첩이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돌로 된 벽이 활짝 열렸다.
"들어오십시오. 방문을 환영합니다, 도미닉 경."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도미닉 경을 환영하는 이였다.
그는 꽤 잘생긴 금발의 남자였는데, 도미닉 경은 바로 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어제 레이드에서 만난 사람이로군."
"아, 네."
금발의 남성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도미닉 경은 당당하고 오만했던 어제와는 달리 꽤 소심하고 건실한 남자의 성격에 조금 당황했다.
이 상황 자체가 왠지 어색했다.
"그, 어제는 연기를 좀 했습니다. 도미닉 경을 시험하기 위해서요."
"그렇소?"
"노여워하진 말아 주세요. 사실 저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긴 한데..."
남자는 도미닉 경의 반응에 눈치를 보았다.
아니, 도미닉 경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금발의 검사는 어째서인지 등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시선을 따라 금발의 남자의 뒤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금발의 남자가 눈치를 보는 대상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덩치가 큰 자였는데, 신관들이 입을 법한 헐렁한 옷을 입은 채 도미닉 경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최근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프란시스코 공?"
바로, 신관 프란시스코였다.
"...이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소."
프란시스코는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는 듯 허망한 목소리로 도미닉 경에게 대답했다.
그의 덩치를 보면 눈에 안 띄는 것이 더 이상하지만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은 금발의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기 전까지 그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프란시스코는 들키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란시스코 공이 왜 여기에 있소?"
도미닉 경은 금발의 남성과 프란시스코를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마구 굴리기 시작했다.
'그, 어제는 연기를 좀 했습니다. 도미닉 경을 시험하기 위해서요.'
'노여워하진 말아 주세요. 사실 저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긴 한데...'
금발의 남자는 도미닉 경을 시험하기 위해 연기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연기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을 시험한 이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거기에 금발의 검사와 프란시스코가 같이 있다?
도미닉 경은 거기에서 완전히 감을 잡았다.
"당신이 나를 시험한 것이오?"
도미닉 경이 프란시스코를 향해 소리쳤다.
도미닉 경의 말에 프란시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도미닉 경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시험한 건 미안하오. 하지만 뭐랄까... 우리로선 도미닉 경의 실력을 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오."
"실력을 확인한다?"
"그렇소. 도미닉 경이 우리와 합이 잘 맞는지, 시너지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보고 싶었소. 조만간 있을 동서양 대항전을 위해서 말이오."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말은 일단 용병으로 고용하기 전에 실력부터 보고 싶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나를 고용하기 위해 시험을 한 것이라는 뜻이오?"
"그렇소."
프란시스코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도미닉 경의 말을 긍정했다.
"멋대로 시험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우리로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일으킬지 알고 싶었소."
"이해하오.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오."
"고맙소."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의 말을 긍정하며 이 일에 대해선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프란시스코는 도미닉 경의 관대한 처사에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소."
"무엇이오?"
도미닉 경은 문득 프란시스코의 말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내가 레이드를 가겠다고 생각한 건 당일이었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연기를 준비할 수 있었던 거요?"
그건, 바로 이들의 행동력에 관한 질문이었다.
"뭐, 시답잖은 말이오. 알다시피 판타지에서 유명한 것들이 몇 개 있지 않소? 마나, 신성력, 소드 마스터... 그리고 도둑 길드."
"아."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의 말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둑 길드는 장물과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었으니, 도미닉 경의 행동 하나하나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으리라.
"물론 굉장히 편의주의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말이오."
"...설정이라고 해도 되는 거요?"
"뭐 어떻소. 사실 우린 도둑 길드가 없소. 도둑 길드에서 정보를 얻고 있다는 설정만 있을 뿐."
프란시스코는 지나치게 정직하게 도미닉 경을 대했다.
도미닉 경을 대하기 위해선 솔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가 너무 과하긴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묵묵히 솔직함을 밀고 나갔다.
"정확하게는 도둑 길드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설정으로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있소. 제 값만 지급한다면 어떤 정보든 살 수 있다오."
"과연."
도미닉 경은 여기서 '설정'의 중요함을 알아차렸다.
탱커 노조는 '탱커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 조합'이라는 설정이었기에 따로 정보를 관리하는 부서가 없었다.
대신 노동 조합이라는 설정처럼 행정부와 연이 닿아 있었고, 이는 탱커 노조만의 특색이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판타지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판타지에 있을 법한 것들은 시스템에 의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제값을 지급한다는 전제하에.
도미닉 경은 문득 다른 클랜들의 설정이 궁금해졌다.
그 설정이 가져올 특이점들에 대한 것들도.
"그나저나, 이렇게 우리 요한 양치기 원정대를 찾아왔다는 뜻은, 우리의 제안을 수락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소?"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절반은 정답이오."
"절반의 정답?"
프란시스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답이면 정답이지, 절반만 정답인 것은 뭐요?"
프란시스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일단 제안을 수락하러 온 것은 맞소."
"일단? 수락하는데 일단이라는 말을 붙였다는 건..."
도미닉 경의 말에 프란시스코는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소."
그러나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가 말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계약을 수정하고 싶소."
"역시나."
프란시스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우리는 계약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먼저 계약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거요?"
프란시스코의 말대로, 도미닉 경은 아직 요한 양치기 원정대와 계약 내용조차 논의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찌 계약을 수정하겠다고 말한단 말인가?
"내가 잘못 말했구려. 수정이 아니라, 이것만큼은 반드시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요."
도미닉 경의 말에 프란시스코가 납득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미리 말해 두는 것이 나았다.
"도대체 계약에 뭘 넣고 싶은 거요? 일단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들어 주겠소."
프란시스코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 말에, 도미닉 경은 프란시스코에게 그의 제안을 말했다.
"스킨 하나 주시오."
"...?"
그 말에, 프란시스코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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