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358화]레이드
* * *
초노급 자주포 짜르 & 초노급 중전차 칸
레이드를 돌다 보면 드물게 드롭되는 설정 집에 의하면 이들은 원래 정규군의 선전용 무기로 시가지에서 특별 행진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테러리스트들이 시가지를 점령하면서 덩달아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어간 케이스였다.
애초에 선전용으로 제작되었기에 덩치에 비해서 그다지 성능이 좋지는 않았으나, 지옥 난이도 보정으로 인해 이 둘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살인병기로 탈바꿈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등장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으흐하하하하! 불태워라! 불태워!"]
["전진! 전진! 전진!"]
무려 3층 높이로 쌓인 건물의 잔해를 밀어 버리며 나타난 것이다.
평범한 전차나 자주포였더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이었으나, 짜르와 칸은 무려 높이만 해도 20미터에 가까웠고, 그 무게는 수백 톤이었으며, 궤도의 바퀴 하나하나가 사람의 키보다 더 컸다.
그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전쟁 기계의 위엄.
그런 전차들이 도미닉 경의 파티를 향해 포신을 돌렸다.
["침입자들이다! 돌격 준비!"]
["불태워! 싹 다 태워 버려! 소이탄 장전!"]
당장에라도 포탄을 쏘아낼 것처럼.
"아무래도 바로 보스전인 모양이오."
도미닉 경이 압도적인 크기의 전쟁 기기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공격이 통할지나 모르겠군요."
에릭이 두 전쟁 기계의 두꺼운 장갑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버프가 좋겠소, 회복이 좋겠소?"
프란시스코가 지팡이의 끝자락에 신성력을 모으며 말했다.
"일단 고정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을 시전하겠소."
마법사 팀이 머릿속에 있는지식을 더듬기 시작했다.
"좋소."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렸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승산이 없어 보였으나, 그건 싸워 보기 전엔 모르는 법.
그때였다.
두 전쟁 기계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해치가 열리더니, 험악한 인상에 이것저것 주워 입은 듯한 장교복을 입은 쌍둥이가 각자의 해치에서 나왔다.
하나는 신호탄 발사기를 들고 있었고, 하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덤빈다고? 감히? 하!"]
["오게 두어라. 내 검으로 친히 저 얼간이의 목을 치겠다!"]
해치 위에서 각자가 든 무기를 붕붕 휘두르는 쌍둥이들.
도미닉 경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저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쌍둥이들이 있는 해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법한 경로였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쌍둥이들이 왜 해치를 열고 나왔는지를 깨달았다.
이건, 레이드를 위한 기믹이었다.
도미닉 경은 이 사실을 파티 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입을 열지 않아도 되었다.
파티 원들은 모두, 이 기믹을 알아차린 표정이었으니까.
...
["부, 분하다... 아직... 태울 게 이토록 많은데..."]
["검... 검을 가져와라... 적어도 마지막은 내 검으로..."]
보스전은 뜻밖에 싱겁게 끝났다.
파티 원들은 기믹을 알아차리자마자 마치 서로 짠 것처럼 둘로 나뉘어 각각의 전쟁 병기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보스들은 도미닉 경의 파티를 떨쳐 내려고 노력했으나, 도미닉 경의 파티는 예상보다 비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윽고 해치에 당도한 그들은 테러리스트 장교들을 박살 내고 전쟁 기계의 안으로 진입해 자폭 버튼을 눌렀다.
어째서 거기에 자폭 버튼이 있는지 도미닉 경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역시나 기믹이겠거니 생각하며 일단 넘어갔다.
이렇게 도미닉 경의 파티는 놀랍게도 지옥 난이도의 4인 레이드를 성공하고야 말았다.
무려 첫 번째 시도만에.
[레이드 보스 : 짜르 & 칸을 격파했습니다!]
[난이도 : 지옥]
[시도 횟수 : 1회]
[무려 첫 시도만에, 아무도 쓰러지지 않은 상태로 클리어했습니다.]
[놀라운 업적! 당신들의 업적은 레이드 명예의 전당에 기록될 것입니다.]
"꽤 재밌군."
도미닉 경은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보며 레이드도 나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도미닉 경과 그의 파티의 능력치와 상성이 좋았다고는 하지만 지옥 난이도 치고는 제법 할 만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보상 자체는 짜군요."
에릭이 시스템 메시지를 넘기며 말했다.
"지옥 난이도를 깬 것 치곤 명예 외엔 얻는 게 적습니다."
"상시 레이드 아니오. 계속해서 깰 수 있는 레이드가 보상이 많으면 그것도 문제긴 하지 않겠소."
에릭이 보상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와중에 프란시스코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적자는 면했소."
마법사 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이제 레이드는 끝난 것이오?"
"글쎄요..."
팀의 물음에 에릭은 레이드 로비를 둘러보았다.
아직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아, 다른 이들은 아직 레이드를 끝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기다리는 이들도 있으니, 레이드는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에릭이 쇠뇌를 등에 걸치고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는 더 이상 레이드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도 그렇소외다."
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제 곧 제자가 레이드에서 나올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애초에 연구 계열 마법사가 레이드를 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소. 나도 그만할 생각이오."
마법사 팀도 레이드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미닉 경은 이 임시 파티가 꽤 마음에 들었으나, 우연찮게 만난 인연인 만큼 굳이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파티를 해산했다.
파티장의 권한으로.
"그렇다면 나도 여기까지 해야겠소. 사실 레이드를 한 번쯤은 해보려고 온 셈이라, 이미 목적은 이룬 상태니까 말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레이드 로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레이드로 향하는 여러 시스템 창들이 도미닉 경을 향하고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기에 그것들에게 미련은 없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어 즐거웠소.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레이드 로비를 떠났다.
...
도미닉 경이 떠난 레이드 로비.
남아 있던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이를 기다리는 듯하더니, 이내 한 자리로 모였다.
이쯤이면 도미닉 경이 멀리 떠났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거, 모르는 척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러게 말이외다. 우연을 가장하려니 너무 힘들었소."
"아니, 다 좋다 이거요. 그런데 왜 방구석에서 쉬는 날 붙잡고는"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 왔던 사람들처럼 격식 없이 대화를 나눴다.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 앞에선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얘네들은 언제 나온답니까?"
"곧 나올 거요."
에릭은 벤치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에릭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프란시스코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전화기의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 떠 있는 단톡방.
놀랍게도 그곳엔 금발 검사와 세 여자의 프로필이 있었다.
금발 검사와 세 여자의 프로필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이제 나와도 됩니까?"
"방 파고 계속 사람들 추방하느라 손이 아플 지경이라구요."
갑자기 로비에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
만일 도미닉 경이 여기에 있었더라면, 그들의 모습이 익숙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들은 바로, 도미닉 경을 추방했던 파티 원들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나둘 레이드 로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금발의 검사와 여성들이 나타났다.
"에릭!"
마법사 차림의 여성이 에릭에게 달려가 그 품에 안겼다.
"으, 표정 관리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그러니까..."
"쓰담 쓰담 해 달라고?"
"응!"
에릭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소꿉친구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스승님."
"그래. 레이드는 잘 갔다 왔소, 성녀님?"
프란시스코와 수녀복을 입은 여성이 상호 간의 예의를 차렸다.
"...다음번엔 이런 일로 부르지 마시오. 안 그래도 바쁜데!"
"아, 미안. 그래도 그때 클랜 건물에 있던 네 잘못 아니야?"
팀과 여성 궁수가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죄송한데 말이죠. 저도 다음번엔 좀 더 선한 역할로 불러 주면 안 될까요? 팬이라던가, 아니면 지나가는 마을 사람 1이라던가..."
금발의 검사의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의 진짜 성격은 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있나. 적당히 알려지지 않은 이들 중에서 가장 나쁘게 생긴 게 잘못이지."
에릭이 소꿉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짜증을 부렸다.
"아니, 뭐... 그렇긴 합니다만..."
금발의 검사는 에릭의 언성이 높아지자 더욱 소심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이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듯 다른 질문을 내뱉었다.
"그래서, 도미닉 경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간부님들?"
"글쎄."
프란시스코가 대답했다.
"일단 우리 클랜에 데려오고 싶을 정도였소."
프란시스코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정도 입니까?"
금발의 검사는 놀란 듯 프란시스코를 쳐다보았다.
그는 지원가로 분류되는 신관이었으나, 과거를 살펴보면 그는 전사였다.
한때 전사였었기에 무력에 관해선 꽤 깐깐하게 평가하는 편이었고.
그런 프란시스코가 도미닉 경에 대해서 호평했다는 건, 도미닉 경의 무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소리였다.
"역시 그는 우리 클랜에 어울리는 인재야."
에릭은 도미닉 경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리 요한 양치기 원정대 클랜에 말이지..."
도미닉 경에 대한 관심이 가득한 상태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