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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57화 (357/528)

〈 357화 〉 [356화]레이드

* * *

"이봐, 거기. 자네 레이드는 처음인가?"

도미닉 경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꽤 잘생긴 남자 검사가 있었는데, 뒤에는 약간 맹해 보이는 세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는데, 어딘가 마음 한 켠이 불편해 보였다.

"그렇소. 당신은 누구요?"

도미닉 경은 검사의 정체를 물었다.

"나? 나는 버스 기사지. 아직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약간의 돈을 받고 도와주는 사람이랄까."

검사는 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같았다.

"숙련되지 않은 사람을 도와준단 말이오?"

"그래. 누구나 레이드가 처음인 사람들은 있는 거잖아?"

검사는 도미닉 경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보아하니 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것 같은데."

"파티 찾기를 눌렀더니 계속해서 강퇴당하던 참이오."

"아하."

도미닉 경의 말에 검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들은 지휘관 팟일 거야. 지휘관과 안면을 트고 싶어 하는 이들이지.정작 지휘관들은 기본 캐릭터 셋에 추가로 하나를 고용해 4인 파티를 만들어서 가지만 말이야. 헛된 짓이지."

도미닉 경은 그제야 왜 다른 파티들이 도미닉 경을 추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구려."

"아무래도 레이드를 뛰러 온 모양인데, 제대로 하려면 인원을 모아서 오거나 나처럼 유능한 버스 기사를 찾는 걸 추천해. 특히 나처럼 숙련된 이의 시범은 돈 주고도 못 보는 거라고."

물론, 돈을 받긴 하지만! 하고 검사가 웃었다.

"아, 물론 지금 내게 부탁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리 파티는 자리가 꽉 찼거든. 게다가 금액을 선불로 받아서 말이지."

검사는 그렇게 말하며 레이드 중 하나로 걸어갔다.

"뭐, 다음에 본다면 서비스 좀 해 드리지.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검사와 일행들은 로비에서 사라졌다.

아마 레이드로 진입한 것 같았다.

"흠."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검사와 일행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나도 일행을 모아야 하나?"

도미닉 경이 작게 중얼거렸다.

현재 레이드가 버스 기사, 지휘관 팟, 그리고 지인 팟 세 갈래만 남았다는 걸 알았기에, 도미닉 경도 지인들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도미닉 경의 뒤에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이고, 어디로 간 거지?"

"어허...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왜 오질 않는지..."

"음. 음? 취소? 잠깐만. 지금 소모품도 다 챙겨뒀­ 잠깐만!"

정확하게는 누군가들이었다.

"저, 혹시 이렇게 생긴 마법사를 본 적 없습니까? 제 소꿉친구인데­"

꽤 수수하게 생긴 용병이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에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근깨가 가득한 용병이었는데, 그는 사진 하나를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도미닉 경은 그 사진을 바라보자, 거기엔 역시나 수수하게 생긴, 스테레오 타입의 마법사 소녀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문득 그 여성이 방금 전 금발의 검사가 데리고 다니던 여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에 누군가가 데려갔소이다. 자기를 버스 기사라고 소개했는데­"

"아이고, 얘가 귀가 얇아서..."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의 용병은 한숨을 쉬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있겠소?"

도미닉 경은 이 용병의 사연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별 건 아닙니다. 원래 오늘 같이 레이드를 돌기로 했거든요. 레이드라고 하면 보통 4인이나 8인을 생각하지만 듀오 레이드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용병은 잠시 먹먹해진 듯 말문이 막히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한탄을 내뱉었다.

"얘가 좀... 엉뚱한 애라서요. 아마 제 발목을 잡기 싫다고 미리 예습한답시고 버스 기사를 따라간 것 같은데... 왜 하필 지금인지..."

용병의 한숨은 끝날 줄을 몰랐다.

"고생이 많으시겠소이다."

"뭐, 이젠 익숙합니다."

도미닉 경은 용병의 말만 듣고도 얼마나 용병의 소꿉친구가 답답한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말씀 좀 물어보겠소이다."

도미닉 경과 용병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뒤에서 또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는 등에 짐을 한가득 메고 머리에 신관 모자를 쓴 뚱보 거인이었는데, 수염이 얼마나 덥수룩한지 그 끝이 배꼽에 닿을 정도였다.

"혹시 이 근방에서 곱슬머리에 수녀복을 입은 여자아이 본 적 없소이까?"

거인 신관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도미닉 경과 용병에게 누군가를 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내 제자인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보이질 않아서 말입니다."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금발 검사의 파티가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분명 세 명의 여자 중 하나가 곱슬머리에 수녀복을 한 여성이었던 것 같았다.

"버스 기사라는 자가 데리고 갔소."

"...흠. 레이드를 경험해 보라고는 했지만, 제멋대로 행동하라고 한 건 아니거늘..."

신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된 이상,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소이다."

그렇게 말한 신관은 다시 로비의 구석으로 가더니, 어째서인지 존재하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앉은 키가 얼마나 컸던지, 도미닉 경은 그가 저 멀리 있음에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이를 어쩐담. 레이드 준비는 끝났는데 정작 고객님이 취소를 해 버렸으니..."

"음?"

어디선가 누군가의 한탄이 들려왔다.

도미닉 경이 그 한탄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한 마법사가 있었다.

"이번에 레이드를 뛰었어야 내 연구 결과에 진척이 있을 텐데... 이제 연구는커녕 내일부터 건빵이나 먹게 생겼구만..."

마법사는 길게 자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하여 마법사를 향해 걸어갔다.

"어찌하여 그리 한숨을 내쉬고 있는 거요?"

"응? 당신은 누구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도미닉 경? 4성의 그 도미닉 경?"

마법사는 도미닉 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외양은 몰라도, 그 이름은 꽤 유명했으니까.

"그... 반갑소, 도미닉 경. 나는 마법사... 팀이라고 하오."

"팀. 반갑소. 어찌하여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었던 거요?"

"그게..."

마법사는 자기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비밀로 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며칠 전 레이드를 같이 돌자고 연락이 왔었소. 자기가 전방에 설 전사 하나랑 신관 하나를 구했다면서 말이오. 그런데 방금 전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남은 한 자리가 채워졌다면서 나와의 약속을 취소한다고 했소이다. 알다시피 마법사는 레이드에서 꽤 약한 편이라 도움이 되려고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사 왔는데, 이게 전부 쓸모없게 되어 버렸소."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레이드를 돌아 재화를 수급하지 않으면 내일부터 연구는커녕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아이템을 팔면 되지 않소?"

도미닉 경이 합리적인 의문을 던졌다.

"불가능하오. 거래 가능 횟수가 0이라서..."

그리고 마법사 팀은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도미닉 경은 이 마법사에 대해 약간의 연민을 느꼈다.

약속을 깬 사람은 잘못한 것이 맞지만, 팀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내일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도미닉 경은 문득 놀라운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도미닉 경은 용병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염없이 버스 기사를 따라간 소꿉친구를 걱정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돋보기 안경을 낀 채 성서를 읽으며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마법사를 보았다.

그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아이템들을 끌어안은 채 당장 내일 생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마지막으로 이 로비에 있는 사람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도미닉 경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은 총 네 명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은 눈이 절반밖에 없으니 약간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셈이 절반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놀라운 발견을 한 도미닉 경은, 바로 마법사를 향해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다면, 같이 레이드를 하시겠소?"

"...?"

마법사는 도미닉 경의 말에 무슨 뜻이냐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레이드를 돌려고 온 것이었소. 다만 파티를 찾지 못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나요? 나는 광역계라 레이드에는 그다지 쓸모가­"

"괜찮소. 어차피 나도 레이드는 처음이니,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저울의 균형이 맞지 않겠소."

"그, 그런..."

마법사는 도미닉 경의 말이 솔깃한 듯 귀를 움찔거렸다.

"무엇보다, 나는 돈이 많소. 그저 레이드를 즐기고 싶을 뿐이니, 만일 같이 레이드를 뛴다면 내 몫을 당신이 가져가도 좋소."

"당장 갑시다. 뭘 망설이고 있소?"

마법사는 돈 문제가 걸리자마자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그만큼 마법사는 돈 문제가 절실했다.

"아직 때가 아니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2인용 레이드도 좋지만, 인원을 더 모아서 더 큰 레이드를 뛰면 더 많은 재화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도미닉 경의 말에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마법사를 대기시켜 놓고 다음 사람에게로 다가 갔다.

바로 용병이었다.

"보아하니 당신의 소꿉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혹시 기다리는 동안 같이 레이드를 뛸 생각은 없으시오?"

"일 없습니다."

용병은 등에 멘 쇠뇌를 매만지기만 할 뿐, 도미닉 경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확고한 거절의 표시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가 곁눈질로 힐끔 신관을 본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미묘한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아차렸다.

신관까지 설득한다면, 자기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소꿉친구를 기다린다는 명분을 치우려면 그 정도는 해 보라는 뜻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일단 용병을 설득하는 것을 뒤로 미룬 채, 신관에게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오?"

신관은 돋보기 안경을 콧등으로 내리며 눈을 치켜떴다.

도미닉 경은 신관을 향해 레이드를 제안했다.

"혹시 레이드를 뛸 생각은 없소?"

"...흠."

"가장 어려운 난이도.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신관이 책을 읽을 때 손등에 선 핏줄을 보았다.

넓은 신관복에 가려져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가 전사의 자질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해서, 신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거절이라도 한다면 어쩔 생각이외까?"

"그럴 리 없소. 당신에게는 전사의 자질이 보이니까. 애초에 신관 둘이서 레이드를 돌 이유가 있소? 아무리 시너지가 있더라도 지원가 둘이서 레이드를?"

"..."

도미닉 경은 신관이 의도하지 않은 핵심을 찔렀다.

"...그 말이 맞소."

신관은 도미닉 경의 말을 인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의 요청대로, 같이 레이드를 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한 신관은 조건을 달았다.

"단, 내 제자가 나오기 전에 끝내도록 합시다."

도미닉 경은 신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도미닉 경은 마지막으로 용병에게 다가 갔다.

"셋이 모였소. 같이 레이드를­"

"어쩔 수 없지."

용병은 도미닉 경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 수락했다.

이 정도로 절실하게 자기를 원하는데, 소꿉친구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을 기다린 것 같았지만, 용병은 뻔뻔하게 도미닉 경의 파티에 합류했다.

이렇게 도미닉 경은 레이드를 위한 파티를 모을 수 있었다.

탱커, 원딜, 법사, 사제.

그야말로 판타지 파티의 정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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