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 [355화]레이드
* * *
도미닉 경은 며칠 전 있었던 레이스에서 겪었던 크라켄 레이드를 생각했다.
이벤트 자체는 엉망이었지만 도미닉 경은 크라켄의 존재 하나만큼은 마음속에 남았다.
정확하게는 레이드라는 것에 꽤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레이드라고는..."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레이드를 겪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미닉 경이 겪어 본 레이드라고 해봤자 버그에 걸렸던 고블린 왕 콩가나 행정부를 습격했던 양산박의 주구 트롬 의원 정도가 다였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겪어 본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간만 봤을 뿐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레이드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아는 한, 가장 레이드에 정통한 이에게.
...
"그래서, 내게 전화했다?"
누군가가 고깃집에서 양념 갈비를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는 초록색 손을 가지고 있었으며, 교정이 시급해 보이는 치열이 인상적인 자, 고블린 왕 콩가였다.
"그렇소. 내가 아는 한 가장 레이드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지 않소."
도미닉 경은 유리잔에 사이다를 따르며 콩가에게 말했다.
"뭐, 레이드 보스 그 자체긴 하다...?"
도미닉 경의 말은 크게 틀리지는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콩가는 도미닉 경의 말에 반박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고기도 얻어먹는 김에 그런 사소한 것에 태클을 걸 수는 없는 노릇.
콩가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찜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레이드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나?"
"그렇소."
도미닉 경은 콩가와 템포를 맞춰 고기 한 점을 입에 털어 넣었다.
"흠흠. 정말, 내가 오늘 레이드 비번이 아니었다면 어쩌려고 무작정 연락했나."
콩가는 겉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래대로라면 집에서 인스턴트 식품이나 먹으며 쉴 예정이었지만, 도미닉 경 덕분에 간만에 포식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콩가는 게걸스럽게 고기 몇 점을 한 번에 입에 집어넣고는 술 한 잔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지상에서 느끼는 극락!
도미닉 경은 술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페럴란트 기사도에 의해 술을 멀리할 의무가 있었기에, 술 대신 사이다를 홀짝이며 콩가의 말을 기다렸다.
"레이드는 별거 아니다. 다만 가차랜드의 레이드는 시작 전에 두 가지, 진입 후에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콩가는 맛있게 익은 갈비를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뼈 가까이에 붙은 그 질긴 부분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것 같았다.
이윽고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깨끗한 뼈가 콩가의 입에서 뱉어졌다.
"시작 전에 알아야 할 두 가지는 바로 시너지와 보정이다."
"시너지와 보정이라."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콩가의 말을 되새겼다.
"시너지라고 함은, 내가 아는 그 시너지가 맞소?"
"맞다. 비슷한 계열끼리 뭉쳤을 때, 혹은 특별한 인연끼리 만났을 때 나오는 시너지다. 레이드에선 시너지를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
"그렇구려. 좋소. 그렇다면 보정은 뭐요?"
도미닉 경은 시너지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보정이라는 건 또 처음 듣는 시스템이었다.
"레이드에 앞서, 모든 캐릭터는 보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본다. 친한 사람들 끼리 4인 파티를 맺고 레이드를 돌기로 했는데, 모두 탱커면 딜이 모자라 레이드 보스를 잡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렇다고 딜러 4명으로 파티를 짠다면 보스의 첫 광역기에서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저런 것들을 종합해 중앙 시스템에서 레이드 전용 능력치를 재분배하는데, 이게 바로 보정이다."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콩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도 조금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 부분은 직접 겪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진입 후에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오?"
도미닉 경은 이미 비어 버린 잔에 다시 사이다를 따르며 물었다.
"간단하다. 첫 번째는 바로 패턴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패턴."
도미닉 경이 그 말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패턴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처음 페럴란트에 왔었을 때, 버그에 걸린 고블린 왕 콩가를 상대하며 패턴을 파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다행스럽게도 넌 탱커니, 패턴을 확인하기엔 충분하다."
콩가는 도미닉 경이 탱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탱커가 레이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도 알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이 하나가 가장 중요하다."
콩가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남은 갈비 한 점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호출벨을 눌러 직원을 호출한 다음, 갈비 3인분을 더 시키고는 마지막 한 가지를 말했다.
"마지막 한 가지란 바로... 예의와 룰을 지키는 즐거운 레이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도미닉 경은 뜬금없이 나온 콩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니오?"
"당연하지 못하니까 이렇게 중요한 거라고 강조하는 거다."
기사도를 숭상하며 예의와 규범을 지키는 일에 익숙한 도미닉 경은 콩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레이드에서는 약간의 실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는 곳.
무엇보다도 보스의 패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실수란 곧 욕설과 비난으로 다가올 수 있는 법이었다.
특히나 그런 상황이 일상이 된 사람이라면,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몸이 반응해 욕을 하는 지경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레이드를 해 본 적 없는 도미닉 경이 그런 사실을 알 리는 만무했다.
도미닉 경은 이 부분에 대해선 직접 경험해 보면 알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일단 알겠소. 그러니까 가기 전엔 시너지와 보정을 꼭 챙기고, 레이드에 진입한 이후엔 패턴을 숙지한 다음 예의와 룰을 지켜 즐겁게 싸우면 된다는 거요?"
"정확하다. 사실상 그게 레이드의 전부다."
콩가는 직원이 가져다준 양념 갈비를 다시 불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뼈 부분을 따로 봉투에 담아 조심스레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마 집에 돌아가 그의 애완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고기가 다시 익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얕은 침묵이 이어졌다.
도미닉 경이 레이드에 대해서 다시 상기하기 시작한 탓에 대화가 단절된 것이다.
둘 사이에선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콩가는 이 침묵이 어색한지 먼저 입을 열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아, 별 건 아니오. 직장 선배가 말하길 누군가에게 부탁하려면 일단 고기부터 먹이라고 했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생활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왈록을 생각하며 콩가에게 대답했다.
"선배가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현명하다."
콩가는 부른 배를 손바닥으로 통통 치며 히죽 웃었다.
"덕분에 잘 먹고 간다. 또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라. 언제든지 달려온다."
콩가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한 잔 남은 술을 쭉 들이키곤 밖으로 나갔다.
도미닉 경은 이미 식어 버린 고기 몇 점을 마저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도미닉 경이 계산을 끝내고 왔을 때, 콩가는 그의 애완 티라노사우르스와 함께 경찰에게 붙잡혀 있었다.
죄명은 음주운전이었다.
아마 술을 마신 채 평소 습관대로 애완 티라노사우르스를 타고 돌아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콩가의 애완 티라노사우르스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콩가가 면허를 취소당하는 일은 없었다.
...
이튿날.
도미닉 경은 일단 레이드를 한 번 겪어보기 위해 레이드 로비를 찾았다.
레이드는 몇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요일별 레이드, 정기 레이드, 상시 레이드, 비정기 레이드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레이드의 내용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것은 4인, 8인, 16인이었고, 어떤 것은 4인으로 고정인 대신 노멀, 하드, 헬이었으며, 어떤 것은 여러 명의 지휘관을 요구하는 것도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한 레이드에 시선이 멈췄다.
한눈에 그 레이드가 마음에 들었던 도미닉 경은 이내 그 레이드 포탈을 향해 걸어가 파티 찾기를 눌렀는데, 도미닉 경은 탱커였기에 순식간에 파티를 찾을 수 있었다.
"반갑ㅅ"
도미닉 경은 새롭게 만난 이들에게 인사를 했으나, 그 인사는 공허하게 허공을 갈랐다.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본 다른 파티 원들이 도미닉 경을 바로 추방해 버렸기 때문이다.
"...?"
도미닉 경은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다시 한번 파티 찾기를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파티를 찾은 도미닉 경이었으나, 이내 또다시 추방되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몇 번을 시도했으나 모든 시도는 추방으로 끝을 맺었다.
"이게 도대체..."
도미닉 경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했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기를 보자마자 추방해 버린단 말인가?
그때였다.
"이봐, 거기. 자네 레이드는 처음인가?"
도미닉 경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엔, 곱상하게 생긴 금발의 검사와 세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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