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 [353화]이벤트 : 레이스(WRATH)
* * *
갑자기 일어난 크라켄 레이드는 상호 간 의사소통이 없어 조금 삐걱거리기는 했으나, 어째서인지 제법 잘되어가고 있었다.
레드 애로우 호가 크라켄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히메가 크라켄의 집중을 떨어뜨리며, 아이언 샤크가 숨겨두었던 비겁한 수들은 크라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크라켄은 이 어지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롱대다가 거대한 포탄을 맞고 엄청난 피해를 보는 일의 반복.
가끔 크라켄이 정신을 차리고 유키온나 호를 향해 촉수를 휘두르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방어에 막혔다.
처음에 8개였던 크라켄의 촉수 다리는 이제 5개만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아이언 샤크가 숨겨두었던 사제 폭발물에 날아갔고, 하나는 레드 애로우 호의 현란한 주행을 통해 기름 탱크를 공격하게 만든 뒤 불태웠다.
그리고 하나는 마침 유키온나 호에서 쏜 포탄이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크라켄 레이드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
문제의 시작은 레드 애로우 호였다.
"두목! 석탄이 다 떨어져 가!"
"뭐? 얼마나 남았는데!"
"지금 속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고작 5분!"
레드 애로우 호의 석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이스를 위해 최대한 기관차를 가볍게 만든다고 정확하게 필요한 양만 챙겨 온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공격을 피할 수 없어! 어쩌지?"
"...제길."
도나 카로타는 빵모자를 눌러쓰며 이 비극적인 소식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부하들에게 짐칸의 목재 부분을 뜯어내라고 말했다.
"짐칸의 목재 부분도 뜯어서 연료로 써!"
"그래 봤자 5분 더야!"
"충분해!"
도나 카로타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부하들을 안심시켰다.
이 놀라운 배짱이야말로 그녀가 두목이 될 수 있는 이유였다.
"당장 시작해! 석탄 떨어지고 나서 뜯으면 늦어! 지금부터 해체 시작해!"
"...알았어!"
레드 애로우 호는 여전히 맹렬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차로에서 가끔 유턴을 돌거나, 혹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놀라운 곡예 주행을 하며 계속해서 크라켄을 현혹시켰다.
레드 애로우 호를 조종하는 도나 카로타는 옆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촉수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10분.
그 안에 결판을 내주길 바라면서.
...
문제는 또 하나가 있었다.
역시나 보급에 관한 문제였다.
유키온나 호의 포탄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 10발!"
10발.
충분히 많아 보이는 수였으나, 지금까지 촉수 하나를 끊어내기 위해 사용한 포탄이 5개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모두 크라켄의 본체에 꽂힌다면 또 모르겠으나, 이 10발로 크라켄이 제압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코우메도 수리검포를 뜯어와 같이 공격하고는 있었으나 크라켄의 두꺼운 장갑에 막혀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질 않는 상황.
누군가는 도미닉 경의 방패 치기로 인한 스턴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크라켄은 초대형 크리쳐답게 상태 이상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로기 게이지를 채우면 잠깐 무력화되는 기믹이었지만, 평소에 레이드를 돌지 않았던 도미닉 경으로서는 그저 스턴이 먹히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래도 스턴이 먹히질 않는군."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거미전차를 움직이며 혹시나 모를 촉수의 공격에 대비했다.
"...일단 본체를 우선으로 공격할게요."
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무사에게 대포를 본체 우선으로 조준할 것을 명했다.
지금까지는 촉수로 인해 본체를 공격하기 힘들었지만, 3개의 촉수가 사라진 덕분에 본체를 향한 공격로가 열린 상황이었다.
그렇게 10발 중 첫 발이 날아갔다.
크라켄의 본체에 박힌 포탄은, 이내 굉음과 함께 빨간 불꽃을 토해내었다.
그런데도 크라켄은 잠깐 주춤했을 뿐, 크게 피해를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츠키는 지금부터 한 발 한 발을 최대한 집중하며 쏴야했다.
빗나가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유효타를 먹일 방법이 사라진다.
물론 10발 내에 크라켄이 제압될 것이란 건 기약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발사된 10발은 기적적으로 크라켄의 본체에 모두 박혔다.
...그러나 크라켄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
"흐."
도미닉 경은 아직도 쌩쌩한 크라켄의 모습에 히죽 웃었다.
난관에 부딪칠수록 행복해지는 도미닉 경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난관과 이번 난관은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난관은 그나마 도미닉 경이 해결할 수 있는 난관이었지만, 이번 난관은 도미닉 경으로서도 해결할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웃었다.
일단은 웃었다.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는 것보다는, 웃으면서 행복한 게 더 좋지 않겠는가.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의 앞발로 땅을 투레질했다.
이제 포탄이 다 떨어졌다고 한 이상, 남은 것은 육탄전 뿐이었다.
도미닉 경의 공격은 크라켄의 두꺼운 가죽에 막혀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미닉 경은 싸울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계획이 없다면 말이다.
뿌뿌.
도미닉 경은 문득, 진행 방향의 뒤에서 들리는 경적소리를 들었다.
그건 아직 남아 있던 다섯... 아니, 세 팀 중 하나였다.
아이언 샤크는 싸우길 포기했고, 히메는 기관차에서 내려 직접 싸우러 갔으니까.
도미닉 경은 경적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아이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아서 이러고 있나."
"징징대지 마. 남은 녀석들 뒤통수쳐서 혼자서 보상 타자고 한 건 너였... 도미닉 경?"
놀랍게도 박춘배와 말레이가 있었다.
가장 싸구려 증기 기관차를 타고.
...
박춘배는 현재 봉사활동 기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가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지역 하드모드는 아직 깰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제법 한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춘배는 놀랍게도, 별 이유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 레이스에 참가했다.
운이 좋다면 1등 상금은 받을 수 있겠지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사설 도박... 아니, 사설 응원에는 1등 후보들을 적어 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박춘배와 말레이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역시나 일확천금의 기회였다.
현재 이 레이스에는 박살 나버린 기관차들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박춘배와 말레이는 이 잔해들을 끌어모아 고철로 팔아넘겨 큰돈을 벌 생각하고 있었다.
겸사겸사 크라켄과 싸우게 되었으니, 싸우다가 지친 녀석들의 뒤통수를 쳐 온전한 기관차도 훔치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초장부터 박살이 나버렸다.
하필이면 그들이 만난 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었으니까.
"켁. 운도 없지. 하필이면 여기서 라이벌을 만날 줄이야."
박춘배가 손사래를 치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과 박춘배의 사이엔 엄청난 성급의 차이가 있었지만, 박춘배는 여전히 도미닉 경을 라이벌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 미안한데 우리가 앞으로 좀 가야 해서 말이야. 길을 비켜 줄 수 없을까?"
말레이가 도미닉 경에게 부탁했다.
"우린 가장 싼 기관차라, 후진이 안 돼서 말이야."
박춘배가 말레이의 말을 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잠깐 고개를 돌려 현재 철로의 상황을 보았다.
마츠리 호는 크라켄의 공격을 막아 낸 충격으로 인해 쓰러져 세 개의 선로를 막고 있었고, 유키온나 호가 하나의 선로를 막고 있었으며, 나머지 선로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거미 전차가 쓰고 있는 상황.
도미닉 경이 츠키를 바라보자, 츠키는 고개를 저었다.
남은 연료가 없다는 뜻이었다.
대포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주행에 쓸 에너지마저 다 쓴 상태였다.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소."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쓰러진 마츠리 호를 바라보았다.
마츠리 호를 옆으로 치우는 방법도 있었으나, 하필이면 위에 있던 단이 선로에 단단히 걸려 버린 바람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쓰읍. 어쩔 수 없지."
박춘배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잠시 주변의 상황을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철이 아까워서 안 쓰고 있었는데..."
그러더니, 도미닉 경의 옆에 또 하나의 선로를 깔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갑자기 깔리기 시작한 새로운 선로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게 대체 뭐요?"
"응? 아. 이거? 중간에 박살 난 부품 중에 선로 생성 장치가 있더라고. 어디에 쓰나 싶긴 했는데, 여기에 쓰게 되네."
도미닉 경은 박춘배의 말에 문득 어떠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거미전차에서 내려 박춘배가 있는 기관실로 쳐들어가더니, 박춘배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며 말했다.
"이 기관차 내게 팔 생각 없소? 가격은 후하게 쳐 드리겠소."
"어, 어어?"
박춘배는 도미닉 경의 엄청난 스탯에 마구 휘둘렸다.
"아, 알겠어! 알았으니까 그만 흔들어!"
그리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도미닉 경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고맙소."
도미닉 경은 박춘배의 말에 감사를 표하더니, 이내 몇 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철로를 만드는 법과 앞으로 가는 방법만 알려주시오."
"그거면 돼?"
"그거면 되오."
박춘배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돈을 준다는 도미닉 경의 말에 성실하게 철로를 만드는 법과 기관차의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면허 없이 기관차를 움직이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도미닉 경은 개의치 않았다.
도미닉 경의 계획대로라면, 이 기관차는 탈것으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
잠시 후, 레드 애로우 호.
"...두목. 아쉽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아."
도나 카로타의 부하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두려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다는 듯, 입꼬리를 파르르 떨면서도 씨익 웃고 있었다.
"연료가 다 떨어졌어. 이제 더는 못 가."
"..."
도나 카로타는 부하의 말에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부턴가 포탄이 날아가던 빈도가 확 줄어들더니, 이제는 더 이상 포탄이 날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인 즉, 여기 있는 모두는 크라켄 레이드에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도나 카로타는 한쪽 팔로는 눈을 가리고, 다른 팔은 힘없이 축 늘어뜨렸다.
몸에 힘이 없었다.
열정적으로 임한 만큼, 번아웃은 더 강하게 찾아오는 법이니까.
도나 카로타는 여전히 열정적인 여자였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그 열정,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두, 두목! 저길 봐!"
그때, 도나 카로타의 부하 중 하나가 급하게 도나 카로타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도나 카로타는 귀찮다는 투로 말했지만, 부하가 왜 저렇게 다급하게 말하는지 궁금했기에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부하를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도나 카로타는 부하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놀라울 정도로 크고 동그랗게 떠졌다.
그곳에는 공중에 도약대가 지어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아직 해가 질 때가 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하늘이 뒤집히더니 방금 전까지 해가 떠 있던 하늘에 달이 떴다.
철로로 만든 도약대는 하늘을 향해 마치 바벨탑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달로 날아갈 듯이.
...
도미닉 경은 철로 제작 도구로 간이 도약대를 만들었다.
고철이 조금 부족해 한 번 달리면 와장창 부서질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도미닉 경의 계획대로라면 한 번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크라켄이 이 도약대를 보고 촉수를 휘두르기는 했지만, 도미니카 경의 지원이 있었기에 도약대는 멀쩡히 지어질 수 있었다.
"자, 이제 시동을 걸어야겠소."
도미닉 경이 싸구려 기관차의 시동을 걸었다.
정확하게는 엔진에 석탄을 있는 대로 집어넣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기관차는 엄청난 가속도로 저 도약대를 향해 돌진하리라.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이 낮밤마저 바꿨다.
이번 도약에는 낮보다는 밤이 더 멋지다고 시스템이 판단했으니까.
그렇게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가속을 받아 도약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도약대의 경사로를 따라 쭈욱 돌진하면서
마침내, 도약대의 끝에서 하늘을 날았다.
옆에서 보면 마치 달로 날아가고 있는 은하 철도로 착각할 만한 모습.
도미닉 경은 최후의 최후에서 마지막 계획을 위해 몸을 날렸다.
제발 이 공격이 마지막이 되길 기도하면서.
마지막 계획.
그것은 바로, 도미닉 경 스스로가 하나의 포탄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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