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53화 (353/528)

〈 353화 〉 [352화]이벤트 : 레이스(WRATH)

* * *

현재까지 남아 있는 팀은 총 5팀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속한 팀들은 물론, 레드 애로우와 아이언 샤크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내가 할 소리야."

경기가 사실상 중지되고 무효화되자, 히메와 츠키는 레이스에 대한 흥미가 급격하게 식었다.

대신 둘은 이번에 받은 긴급 퀘스트를 통해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크라켄을 잡은 뒤, 크라켄에게 넣은 딜량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팀의 구분이 흐지부지된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뭐랄까. 꼭 뭔가 허전한 기분이오."

"알 것 같아. 뭔가 확 하고 불타오르는 것이 없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크라켄의 본체를 바라보았다.

"폭주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바뀐 것은 없어 보이오."

"그렇겠지. 레이스 내부에서만 간섭 가능한 오브젝트로 바꾼 거니까, 겉으로 오류나 버그처럼 보일 리는 없겠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웬만한 코더만큼이나 유창하게 현 상황에 대해서 유추했다.

"도미니카 경. 경이라면 저 크라켄을 잡기 위해서 어떻게 하시겠소?"

"글쎄..."

도미니카 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우리의 공격력으로는 피해를 주기 힘드니까, 딜러들이 딜을 잘 넣을 수 있도록 어그로나 잘 끌어야겠지."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크라켄은 여전히 그 엄청난 크기의 촉수를 휘두르며 선로를 마구 내려찍었다.

레이스용 선로는 파괴 불가능한 오브젝트였기에 멀쩡했으나, 주변의 땅이 마구 파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웬만한 건물보다도 더 큰 크라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언니가 시선을 끄는 사이, 내가 딜을 넣는 거지."

"뭐? 딜량으로 승부를 보는데 혼자만 딜을 넣겠다고?"

도미닉 경은 여전히 다투고 있는 히메와 츠키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

이렇게 히메와 츠키가 협력하려는 듯 경쟁하려는 듯 아리송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여기에 실리를 택한 이가 또 하나 있었다.

"우리 아이언 샤크는 이번 크라켄 레이드를 포기한다."

햄스터 수인 킹 핀 샤크가 양복의 옷깃을 빳빳하게 세우며 말했다.

"하, 하지만 보스. 포기하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킹 핀 샤크의 부하 중 하나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되물었다.

"별수 있나. 애초에 우린 레이스 용으로 맞춰서 개조한 기관차라고. 크라켄을 잡으라고 만든 기관차가 아니란 말이다."

킹 핀 샤크는 부하에게 으르렁거렸다.

"무엇보다도 우린 겁이 너무 많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만 치다가 다른 이들에게 폐만 끼칠 거다."

킹 핀 샤크는 그렇게 말하며 중절모를 눌러썼다.

소름 돋을 정도로 자기 부하들의 성향을 잘 아는 킹 핀 샤크였기에 포기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그래도..."

부하 중 하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포기하기엔 보상이 조금 아까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가차랜드의 특성상, 보상을 위해 하는 척이라도 하면 좋지 않은가.

그 마음을 알아챈 킹 핀 샤크는 부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냥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래도 할 건 다 해야지."

킹 핀 샤크는 기관실의 수납장에서 의문의 버튼을 꺼냈다.

"있는 건 다 태우고 가자고."

그와 동시에, 킹 핀 샤크는 엄지로 의문의 버튼을 꾹 눌렀다.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촉수 하나가 끊어졌다.

엄청난 폭발로 인해 촉수의 뿌리 부분이 단번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엄청난 규모의 폭발에 한 토끼 수인의 귀가 쫑긋거렸다.

"킹 핀 샤크. 숨겨둔 패를 꺼내 든 모양인데?"

바로 레드 애로우 버니 갱의 두목, 도나 카로타였다.

레드 애로우 팀은 현재 긴급 퀘스트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다.

수락이냐, 거절이냐.

그러나 레드 애로우 팀의 의견은 결국 수락하는 것으로 기울었다.

애초에 이 토끼 수인들은 겁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이거 용감한 모습을 보여 주기만 해도 남는 장사지."

"두목! 얼마 뒤에 픽업이라면서요! 그럼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나 카로타는 부하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도나 카로타에게 있어서 도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 뿐!

지금이야 기관차 레이스 선수로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엔 악으로 깡으로 살던 갱단이 아니었던가.

도나 카로타는 그때의 악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잘 들어. 우리는 가더라도 저 문어에게 한 방 먹이고 간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 레드 애로우 호는 무장이 빈약해. 정확하게는 저 문어에게 유효타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미끼가 된다."

도나 카로타의 말에 부하들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두목?"

"말 그대로야. 아슬아슬한 주행은 우리의 특기잖아? 그러니까 다른 팀들을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는 거다."

도나 카로타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 한 번의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엔 크라켄의 촉수를 끊어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충분히 유효했던지 크라켄은 맥동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폭발을 본 부하들도 도나 카로타의 의도를 알았다.

"그거... 최곱니다, 두목!"

"그래! 당장 준비하죠! 그나저나..."

부하들이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기 위해 벌떡 일어나던 와중에, 누군가가 의문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미끼가 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면 어쩌죠?"

"...글쎄."

부하의 말에 도나 카로타는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의도를 알아챌 만큼 똑똑하길 바라는 수밖에."

...

도미닉 경은 저 멀리 피어오르는 세 줄의 연기를 보았다.

두 개는 진행 방향 상 앞에서, 하나는 진행 방향 상 뒤에서 피어올랐는데, 양쪽 다 언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그 세 줄의 연기가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세 팀임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군."

도미닉 경은 연기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하나는 연기가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을 반복하고 있었고, 하나는 다른 기관차들보다 연기가 더 많이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뒤에서 접근하는 연기는 정상적인 기관차의 연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나머지 세 팀의 전략은...

"하나는 후퇴. 하나는 전진. 하나는 유지인가?"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후퇴라.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퇴각을 결심한 한 팀의 결정을 존중했다.

눈앞에 있는 크라켄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격퇴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내 연기가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시선을 향한 곳은 맹렬하게 연기를 내뿜고 있는 쪽이었다.

진행 방향 상 도미닉 경이 있는 곳보다 훨씬 앞에 있는 곳이었는데, 얼마나 맹렬하게 증기를 내뿜고 있던지 도미닉 경이 있는 곳까지 경적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도미닉 경도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크라켄이라고 이 연기를 못 보고, 이 소리를 못 듣겠는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맹렬히 증기가 뿜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크라켄을 보고 앞서가는 팀의 의도를 파악했다.

"미끼가 되겠다는 뜻이구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미끼가 되어 준 기관차에게 잠시 감사의 묵념을 보냈다.

그러고는 바로 거미 전차에 올라탄 뒤 히메와 츠키에게 무전을 보냈다.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생각하자마자 바로 움직여야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다.

"히메 공! 지금 앞에서 누가 미끼가 되어 주고 있소!"

"츠키! 대포 준비해! 미끼가 된 틈에 최대한 공격해보자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이 각자의 무전 주파수를 따라 팀의 무전기에 울려 퍼졌다.

"...알겠어요."

"확인했어요."

히메와 츠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곧바로 투닥거리던 것을 멈추고 바로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히메는 기관차를 버리고 밖으로 나왔고, 츠키는 기관차 안으로 들어가 무전으로 대포를 장전할 것을 주문했다.

"도미닉 경, 저는 크라켄의 본체를 공격할게요. 그때까지 츠키를 지켜 주세요."

"알겠소."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촉수를 밟고 사라졌다.

그녀는 닌자의 비기를 배웠고, 그 비기를 통해 크라켄의 경혈과 약점을 알고 있었다.

저 거대한 크라켄에 비하면 히메의 발악은 그저 모기가 무는 정도겠지만, 그 정도 만으로도 츠키가 충분히 딜할 시간을 벌어 줄 것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거미 전차를 타고 츠키의 기관차, 유키온나 호의 주변에 섰다.

둘은 츠키가 대포로 공격할 동안 기관차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을 것이다.

물론, 잊혀진 이가 하나 있기는 했다.

"어... 음... 저는 뭐 하죠?"

코우메는 이 엉망인 난장판 속에서 잊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은근슬쩍 대포를 장전하던 무사에게 다가가 할 일이 없는지 물었다.

"...할 건 없소. 팝콘이라도 가져오시오."

"..."

코우메는 무사의 말에 자기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무사의 처지에서는 무시하려던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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