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52화 (352/528)

〈 352화 〉 [351화]이벤트 : 레이스(WRATH)

* * *

레이스가 한창인 때에, 기차역에서는 대책 위원회가 수립되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들과 행정부의 공무원들, 그리고 기차역의 역무원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논의했다.

"아무래도 이건 저희 가차랜드에 대한 도발 같습니다."

코더들 중 하나가 말했다.

"그걸 어찌 아시오?"

공무원 중 직급이 제법 높아 보이는 이가 반문했다.

"지금 저희 코더들이 기차역의 출입 명부에 대한 로그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제오늘 기차역에 오고 간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코더는 한 손으로 종이 뭉치를 들고 반대편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부분을 보시면 아주 허접하게 로그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발표 중인 코더의 말에 다른 코더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행정부의 사람들과 역무원들은 아무리 종이를 봐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종이 전체가 이상해 보였다.

온갖 종류의 이상한 언어들이 그곳에 적혀 있었으니까.

"좀 더 쉽게 말해주시오."

결국, 참다못한 공무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들처럼 가차랜드의 본질을 바라보질 못하니까 말이오."

공무원의 말에 코더는 아차싶은 표정이 되었다.

코더들에게 있어서 이런 간단한 코드들은 '안녕?'이나 '밥은 먹고 다니니?'같은 일상어에 가까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외계어로 들린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코더들은 평소에 잦은 야근으로 다른 코더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만날 일이 극히 적었기에 이런 상황이 영 낯설었다.

"그, 쉽게 말하자면 누가 출입 명부를 조작했다는 겁니다."

"아, 이제야 이해되는군."

행정부의 사람들은 그제야 속이 시원한 듯 저 명치 아래에 묵혀 있던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게 어째서 가차랜드에 대한 도발이 되는 거요?"

공무원 중 하나가 말했다.

"이렇게 허접하게 잘라 내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가짜 정보를 채워 넣는 것이 보통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게 말이죠. 하지만 범인은 이렇게 로그 데이터를 엉망으로 잘라 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찾을 수 있겠냐는 듯 말이죠."

"아."

코더의 말에 공무원이 탄식을 내뱉었다.

코더의 말대로라면, 지금, 이벤트를 엉망으로 만든 이는 자기가 왔다 갔다는 증거를 일부러 놔두었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로그를 확인할 방법이 있소?"

"물론 가능은 합니다만, 이렇게 찢겨지듯 없어진 데이터는 복구가 힘듭니다. 아마 최소 열흘­"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공무원들과 코더들은 사라진 데이터를 증거물로 삼아 수사를 진척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때, 역무원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별일 아닙니다. 그게..."

역무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

"저희 쪽에 감시카메라 데이터가 있는데, 그거 확인해 보면 안 됩니까?"

역무원은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코더들과 공무원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뜻밖에 사건을 종결시킬 아주 중요한 증거는 가까이 있었다.

...

다시 장소를 옮겨 마츠리 호.

"위험하오!"

도미닉 경은 날아오는 포탄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거미 전차를 움직여 포탄을 막아 내었다.

도미닉 경의 방어술은 아주 정교하고 숙련되어 있어 포탄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포탄은 예상보다도 더 크게 폭발했다.

폭발의 화염은 도미닉 경을 삼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츠리 호의 바퀴에 영향을 주었다.

바퀴는 순식간에 뒤틀려, 기관차는 선로 위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큭!"

히메는 긴급하게 기관차를 수리하기 시작했으나 기관차는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선로와 선로 사이에서 뒤집힐 듯 말 듯 휘청거렸다.

마츠리 호의 내구도가 매우 낮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피해 감소 효과로 인해 다른 기관차들처럼 한 방에 박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마츠리 호는 벌써 파편으로 나뉘어 땅을 구르는 것이 정상이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의 피해 감소 효과 이후 히메의 긴급 조치로 이어지는 대응은 성공적이어서 마츠리 호의 움직임은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 번 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마츠리 호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터널입니다!"

행운의 여신이 돕기라도 한 것일까?

히메는 마침내 내리막길의 마지막 구간을 지나 터널 구간으로 진입했다.

터널은 포탄을 쏘기엔 협소한 곳이었다.

그 말인 즉, 여기에서 달릴 때엔 날아오는 포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휴."

위기를 넘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히메.

히메는 심신이 다시 안정되고 나서야 이렇게 포탄을 쏠 만한 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그녀의 동생 츠키와 그의 기관차 유키온나 호였다.

"츠키...!"

히메는 이번 레이스가 끝나는 그때 츠키와 다시 한번 서열 정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소?"

"아, 괜찮아요. 도미닉 경은요?"

"나도 괜찮소."

"저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시겠어요?"

마츠리 호는 터널 내부에서 서행했다.

방금 전까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겪었기에 히메는 자기의 특수 기술을 충전하고 가고 싶었다.

"뭐, 다들 괜찮다니 다행이오."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를 타고 마츠리 호의 옆에서 나란히 달렸다.

터널은 그다지 긴 편은 아니었기에 이제 곧 다시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

도미닉 경과 히메는 다시금 날아올 변수와 견제를 의식하기 위해 온몸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예고도 없이.

...

[레이스를 즐겨 주시는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레이스에 문제가 생겨, 이번 레이스는 무효가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의 관리 미숙으로 인해 여러분들께 피해를 끼친 점 사과드리며­]

"뭐야! 이게 다 뭐야!"

"아니, 왜?"

가차랜드 기차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떠오른 시스템 창이 한 말은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시스템 창을 본 이들은 크게 3부류로 나뉘었다.

보상에 대해서 걱정하는 이.

"토, 토큰은? 토큰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 전 재산 박았단 말이야!"

"ALL or NOTHING!!!"

이들은 단순히 토큰이 증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몇 배라도 벌 수 있는 기회 비용.

그 기회 비용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불만은 가장 먼저 잠재워졌다.

다시 떠오른 시스템 창에는 이에 대한 보상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으니까.

[여러분들께서 응원해주신 토큰들은 1.2배로 되돌려드릴 예정이며­]

"아, 그럼 됐어."

"끙. 2배는 더 먹을 수 있었는데, 고작 20%로 만족해야 하나?"

"이걸로 다음 레이스에 다시 걸면 되겠다!"

다들 만족하는 수준은 다 달랐으나, 대체적으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이 보상안에 만족하며 진정했다.

두 번째 부류는 바로 레이스 자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니, 우린 레이스를 보러 온 거라고! 그런데 우천도 아니고,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왜 레이스를 끝내? 안 돼! 난 못 끝내! 이대론 못 끝내!"

"이렇게 가까이서 레드 애로우의 경기를 보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이들은 첫 보상안에도 진정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들의 대부분은 팀을 응원한 토큰을 되돌려 받아도 그만, 되돌려 받지 못해도 그만인 이들이었다.

그저 응원하는 팀이 시원하게 달리는 걸 구경하는 게 인생의 낙인 사람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시스템 창이 제안한두 번째 보상안은 이들의 불만을 절반 정도 잠재웠다.

[이번 티켓은 환불해드릴 예정이며, 원하신다면 다음 경기의 티켓으로 교환하실 수­]

"다, 다음 경기라."

"레드 애로우의 다음 경기가 언제였지?"

"무효로 한 것 치곤 나쁘지 아, 않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갑자기 경기를 끝내버리는 것이 어딨어!"

물론 보상안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주 소수였다.

여전히 불만을 가진 소수는 당장에라도 경기를 재개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머지의 눈치가 보였기에 그저 속으로 구시렁댈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바로, 직접 레이스를 진행하는 팀들이었다.

이제 고작 5팀이 남은 가운데, 이 5팀에게는 관중들에게 간 것과는 다른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음성 메시지 수신 중...]

곧바로 음성 메시지가 튀어나온 것이다.

["아, 아.들리십니까? 여긴 긴급 대책 위원회입니다."]

["일단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내일 있을 이벤트 레이스가 오늘로 당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고의적인 범행이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고, 그 범인이 이벤트에 쓸 크라켄에게 손을 썼다는 사실까지 밝혀냈습니다."]

["범인은 현재 추적 중입니다만, 현재 크라켄이 문제입니다."]

["저희가 크라켄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이미 저희의 통제를 벗어나버렸습니다. 크라켄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스 내부의 인원이 아니면 간섭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더군요."]

["크라켄을 처리하지 못하면 기차역은 폐쇄되고 말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음성 메시지는 여기서 끝이 났다.

정확하게는 뒤에 범인의 소재를 찾았다는 외침이 저 멀리서 들리긴 했으나, 그다지 현재 상황에서 유의미한 외침은 아니었다.

음성 메시지를 끝으로, 그들의 앞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바로 이 상황을 타개할 긴급 퀘스트 창이었다.

[[!]기ㄴ급 퀘스트 : 폭주하는 크ㄹㅏ켄을 자븡시오.]

[보상 : 추후 논의]

얼마나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는지 오타가 곳곳에 보였다.

처음 이 메시지를 본 이들이 혹시 버그가 아닌가 잠시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이 음성 메시지와 시스템 메시지를 본 레이서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각기 다른 생각을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