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화 〉 [350화]이벤트 : 레이스
* * *
"으헉!"
조금 전 또 하나의 팀이 탈락했다.
특이하게도 레고로 만들어진 기관차를 탄 팀이었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에 맞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히메 공! 3시 방향에 파편이오!"
"알겠어요!"
도미닉 경과 히메가 탄 마츠리 호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고작 7위.
마츠리 호의 놀라운 속도를 생각해 보면 별로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이벤트 레이스 도중이었다.
살짝만 스쳐도 대파당할 마츠리 호로 온갖 역경을 피해 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이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경고에 따라 파편을 피해야 했다.
히메는 이미 교차로를 지나쳐 버린 앞 바퀴는 그대로 둔 채 선로를 바꿔 두 개의 선로를 깔고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가차랜드에서도 극히 드물게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도미닉 경의 [시네마틱]의 영향 덕분인지, 아니면 히메의 운전 실력이 그만큼 좋은 것인지 복선 드리프트는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
아주 아슬아슬한, 고작 종이 두세 장 차이로 파편이 마츠리 호를 지나쳤다.
마지막 파편은 아예 마츠리 호의 옆구리를 길게 그으며 지나가 생채기를 내었으나, 뛰어난 대처 능력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다.
한 번 더 위험을 넘긴 히메는 바로 다시 기차를 한 선로로 원상 복귀시켰다.
복선 드리프트는 긴급 상황을 넘기거나 상대를 견제하기에는 좋았지만, 꽤 기관차에 무리가 가는 기술이었다.
"기술 쿨타임 다 돌았어요! 이젠 한 번은 안전하게 넘길 수 있"
"앞을 보시오! 크라켄이오!"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자기의 특수 기술이 충전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나 이 가혹한 이벤트는 그런 잡담을 나눌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도미닉 경과 히메를 몰아붙였다.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가 허공에서 꿈틀거리다가, 이내 마츠리 호를 향해 내려쳐졌다.
거대한 기둥처럼 보이는 촉수는 마치 채찍처럼 바람을 찢으며 내려왔는데, 얼마나 그 위치가 절묘하던지 이대로라면 마츠리 호는 박살이 날지도 몰랐다.
도미닉 경은 그나마 탱커였고, 탈 것에도 그의 스탯이 반영되었기에 괜찮은 편이었으나 내구도가 약한 마츠리 호가 저 촉수에 대응할 방법은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거나, 아니면 저 촉수를 어떻게든 한 번 견디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히메는 전자를 골랐으나, 하필이면 히메의 마츠리 호가 달리는 선로에선 선행 주자가 있었다.
바로 구리와 황동으로 된 장갑판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움직이는 요새와도 같은 기관차가.
"이거 곤란한데요?"
수리검포를 잡고 있던 코우메가 말했다.
"수리검포로는 못 막아요!"
"괜찮아. 마침 기술을 쓸 수 있으니까."
코우메는 당황스럽다는 듯 촉수와 앞서가는 기관차를 향해 수리검을 마구 뿌려댔으나 고작 수리검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히메는 이 상황을 해결할 묘책이 있다는 듯 여유로웠다.
촉수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찍힌다.
너무나도 촉수가 컸기에 천천히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음속을 넘어 음속의 몇 배는 되는 속도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렸다.
채찍과는 다른 의미로 끔찍한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도미닉 경은 일단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마츠리 호에 가까이 붙었다.
최대한 기관차에 들어갈 피해를 막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메는 오히려 도미닉 경에게 멀리 떨어지라고 말했다.
"도미닉 경! 기술을 쓸 생각이니까 좀 떨어져 계세요! 까딱하면 부딪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한 히메는 갑자기 기관차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기관차 요새는 느리기 짝이 없었기에 어느새 마츠리 호는 그 기관차와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닿았다.
그와 동시에 촉수가 땅에 내려앉았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고 생각했다.
촉수가 탄력있게 땅에 찰싹 붙자,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밀실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탱커였고, 또한 피해 감소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촉수의 공격에도 그다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기껏 해야 거미 전차의 사이드미러가 살짝 삐뚤어진 정도였다.
다만 도미닉 경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크라켄의 촉수가 아주 미끌미끌하고 끈적한 불쾌한 점액을 내뿜고 있어서였다.
크라켄은 다시 촉수를 들어 올렸다.
이미 한 번 공격했으니, 상황을 보고 다음 공격을 준비해야 했다.
도미닉 경의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촉수가 땅에서 떨어지면서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도미닉 경은 촉수가 들리자마자 가장 먼저 마츠리 호부터 찾았다.
호위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도 했지만, 일단 마츠리 호가 멀쩡한지부터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흠."
도미닉 경은 조금 전 마츠리 호가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그곳에는 마츠리 호가 없었다.
대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쪼글쪼글하게 찌그러진 금속 판들만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곳에는 마츠리 호의 잔해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마 마츠리 호의 진로를 방해하던 기관차의 잔해일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곳에서 조금 더 앞을 바라보았다.
"다행이군. 멀쩡한 것 같아."
그리고 그곳에는, 진로를 막던 기관차를 넘어 달리는 유령 기관차가 있었다.
과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히메는 촉수가 떨어지기 직전 바로 진로를 방해하던 기관차와 바짝 붙었다.
그러고는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촉수가 땅에 닿기 직전, 히메는 특수 능력을 사용했다.
[위상 전이].
물질계와 영계를 넘나드는 그 기술이 기관차 전체로 발현된 것이다.
기관차는 촉수와 닿기 전, 바로 유령처럼 변해 촉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물질계와 영계를 넘나들며 할 수 있는 일은 또 있었다.
바로 물질계에 있는 기관차들을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계라는 물질계와는 다른 길로 달리는 기차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히메의 마츠리 호는 크라켄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길을 막던 이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히메와 마츠리 호에만 적용되는 일이었다.
코우메의 생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코우메도 조금 전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닌자의 비술이었으므로 여기에 공개하지는 않겠으나, 대략 닌자의 비술로 크라켄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다.
...스탯 상 회피율로 운 좋게 피했다는 소리였다.
"다들 무사했구려."
도미닉 경이 무전을 통해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소."
"그렇긴 하지만서도"
도미닉 경은 주변을 힐끗 보았다.
크라켄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아무래도 이번 공격은 도미닉 경을 향해서 오진 않을 것 같았다.
남은 팀들이 많았기에 크라켄의 시선도 분산되어 있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던 도미닉 경과 히메.
그때였다.
"6시에서 포탄! 6시에서 포탄 날아옵니다!"
"뭐?"
갑자기 그들의 뒤에서 거대한 포탄이 하나 날아왔다.
하얀 해골이 그려진 검은 폭탄 모양 포탄이.
...
도미니카 경과 츠키는 다른 팀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앞쪽 팀들이 크라켄의 어그로를 다 끌어 준 덕분에 제법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후방을 택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탄 유키온나 호는 공격력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기도 했다.
"느리긴 하지만 아주 안전하군. 마음에 들어."
"그렇죠?"
도미니카 경은 다른 기관차에 비해서 느리기는 하지만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견제와 방어를 동시에 잡은 이 기관차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놀랍게도 이 유키온나 호는 너무나도 공격력이 강한 나머지, 크라켄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촉수 공격이 그들의 위로 내려온다.
그때, 유키온나 호 뒤에 실려있던 거대한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대포는 엄청난 크기의 포탄을 촉수를 향해 날려 보냈다.
촉수의 지척에 이른 포탄은 이내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꽃으로 산화했는데, 그 폭발이 얼마나 강한지 촉수는 공격하려던 것도 잊고 다른 타겟을 찾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기관차!
다른 기관차들이 엉망진창으로 유린당하고 있을 때, 유키온나 호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물론 대포가 큰 만큼 자잘한 변수에는 대응하기 힘들었으나, 이마저도 도미니카 경의 호위로 인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호되었다.
"이대로만 가면 다른 팀들은 다 자멸하겠습니다."
포수로 참전한 갑옷의 무사가 시시덕거렸다.
"이러다가 1등하는 거 아닙니까?"
"설레발치지 마."
츠키는 무사의 말을 일축했다.
"순위권에는 들 수 있겠지만, 1등은 어려워. 다른 팀들도 꽤 쟁쟁한 편이니까. 무엇보다도..."
츠키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선로의 전방을 주시했다.
"히메 언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테니까."
"...? 츠키님?"
츠키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금 다짐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 무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츠키를 불렀다.
"저거 히메님의 기관차가 아닙니까?"
"뭐?"
무사가 언덕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코스는 언덕을 내려가는 길이 있어, 선로가 언덕을 따라 지그재그로 있는 형태였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츠키는 무사의 말에 고개를 돌려 언덕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사의 말대로, 히메의 마츠리 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츠키는 제법 벌어진 거리에 입맛이 썼으나, 이내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언니에게 선물을 주자."
"네?"
"대포를 한 방 먹여주자고."
츠키는 마침 아주 멋지게 대포를 쏠 각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히메만 없다면, 거의 확정적으로 3위.
어쩌면 1등을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견제를 할 수 있을까?
츠키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단 한 글자의 결론을 내렸다.
"'쏴."
"예!"
무사는 츠키의 말에 바로 대포를 마츠리 호를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진행되는 경로를 예측해 대포를 쏘아내었다.
이 대포는 약 십몇 초를 날아가 마츠리 호를 타격할 것이다.
이때가 바로 마츠리 호가 촉수에 공격당하기 직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