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50화 (350/528)

〈 350화 〉 [349화]이벤트 : 레이스

* * *

모든 팀의 시험 주행이 끝나고 난 뒤, 드디어 본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총 17팀이 참가한 스팀 스피드 '이벤트' 레이스.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오고, 뜨거운 열정으로 데일 것만 같은 곳.

가장 인지도가 높은 레드 애로우와 아이언 샤크가 총 18개의 선로 중 중앙을 차지했다.

원래 팀 수에 맞게 17개의 선로로 시작하려고 했으나 두 팀 중 누가 가장 중앙을 차지하느냐로 지속적인 클레임이 들어왔기에 둘 다 중앙이 될 수 있게끔 선로를 하나 추가한 것이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인 두 팀의 뒤를 이어 몇 명의 팀이 선로로 들어섰다.

도미닉 경과 히메의 마츠리 호는 왼쪽에서 4번째, 전체 중에선 11번으로 들어섰다.

"이제 곧 이벤트 레이스가 시작하겠네요."

히메가 무전기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제대로 달려보자구요."

"좋소."

도미닉 경은 무전기로 히메에게 답을 함과 동시에 증기기관 엔진을 몇 번 공회전하여 알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둘러보며 참가한 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레드 애로우, 아이언 샤크는 물론, 도미닉 경과 히메의 마츠리 호, 도미니카 경과 츠키의 유키온나 호, 범선에 바퀴를 달아 놓은 듯한 외관의 기관차, 롤러 블레이드를 탄 이들이 들어 올린 가마에 올라탄 터번을 쓴 남자...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기관차들이 선로를 따라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롤러 블레이드를 탄 가마꾼들을 탄 터번의 남자가 참가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진행 위원들에게 딴지를 걸었으나, 진행 위원들은 바퀴로 선로를 움직이고, 연기를 내뿜고 있으니 기관차로서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관대하게 생긴 사람은 물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기관차가 내뿜는 것보다 더 많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엔트리로 용사와 마왕이 탄 장난감 기차가 17번째 선로에 들어선 뒤에야 진행자로 보이는 이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그리고 관중 여러분!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턱시도에 탑 햇, 그리고 외눈 안경이 인상적인 진행자는 엄청난 성량으로 사람들의 환호 소리를 압도하며 레이스가 시작될 거라는 것을 알렸다.

"지금부터 스팀 스피드 '이벤트' 레이스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증기에 화상을 입거나 엄청난 풍압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 안전선 밖으로 한 발자국 물러나 주십시오! 부활하셔도 재입장을 위해선 새로운 표를 사셔야 하니까요!"

진행자는 시답잖은 농담과 함께 사람들의 긴장을 풀었다.

참가자들과 관객들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자, 진행자는 그제야 큐 카드를 들고 이번 이벤트 레이스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번 '이벤트' 레이스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추가되었습니다! 바다의 제왕 크라켄부터, 골렘과 노상 강도들의 습격까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레이스지요!"

"잠깐. 난 저런 거 못 들었는데."

기관차의 기장 중 하나가 당황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변수라니.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 않은가.

당황한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든 참가자들과 관객들도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지금, 이 레이스, 뭔가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진행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확하게는 큐 카드에 있는 글을 그대로 읽고 있었다.

지금까지 꽤 여유로운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 많은 인파의 시선들 속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전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진행자는 큐 카드에 코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깊숙이 박고는 계속해서 적혀 있는 글씨들을 읽어나갔다.

"자, 레이스의 끝에서 '살아남아 승리할' 이는 과연 누구일까요?"

"잠깐, 잠깐만!"

"카운트 다운과 함께 출발하겠습니다. 삼! 이! 일! 출발!"

레이스에 참가했던 참여자들은 진행자의 말을 멈추고 현재 일어난 일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으나, 진행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들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곤 대본에 적혀 있는 대로 순식간에 카운트 다운을 마친 진행자는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이봐, 갑자기 이렇게 경기 내용을 바꾸는 게 어딨­"

"에라 모르겠다!"

"어, 어어? 이봐!"

대부분 사람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진행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무려 17대나 되는 기관차의 엔진 소리로 인해 그들의 목소리는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아우성이 되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은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전진 기어를 넣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레이스는 시작되었으니, 앞서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출발하기 시작한 몇몇 기관차들을 보며 당황하다가, 이내 분위기에 휩쓸려 하나둘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엔 도미닉 경과 히메가 탄 마츠리 호도 있었다.

"큭. 갑자기 이렇게 경기 내용이 바뀌다니. 나중에 꼭 항의해야겠어요."

히메는 무전기를 통해 도미닉 경에게 진행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도미닉 경은 묵묵히 히메의 말을 들으며 앞으로 달렸다.

갑작스럽게 출발한 만큼 페이스가 흐트러졌기에, 페이스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조종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이렇게 사상 최악의 레이스는 갑자기 시작되었다.

뭐,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긴 했지만.

...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간 기관차는 해적들... 이 아니라 바다의 상남자들로 구성된 진저웨일 호였다.

범선처럼 생긴 이 기관차는 마치 해수면 위를 날아다니듯 선로 위를 유려하게 달리고 있었다.

"선장님!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그 누구도 선장님보다 비열하지 않을 것입니다요!"

"으흐하하하하! 당연한 소리를!"

선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조타륜을 이리저리 돌리며 선로 위를 달렸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던 만큼, 그것도 기습적으로 그 거리를 확실히 벌린 만큼 진저웨일 호를 막을 이는 전무한 상황.

물론, 이는 뒤에서 따라오는 기관차들의 이야기였다.

레이스 자체의 변수를 제외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선장이라고 불린 이는 비열하게 웃으며 앞으로 갈 선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선장님?"

"뭐지?"

"저게 뭡니까?"

선원의 목소리는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장은 갑자기 말을 건 선원에게 짜증이 났지만, 선원이 도대체 무엇을 봤길래 저리 목소리가 떨리는지 궁금했던 선장은 자기도 모르게 선원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선장도 선원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선장과 선원의 다른 점이 있었다.

선원은 저것의 존재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선장은 저것의 존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

선장은 너무 놀란 나머지 유령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저 멀리 가로로 쭉 찢어진 네모난 동공이 보였다.

그보다 더 멀리 땅에 늘어진 둥근 머리를 보았다.

그보다는 더 가까이, 땅에서 솟아오른 촉수들을 보았다.

그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결론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크라켄이다­!"

선장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선장과 선원들은 육지에 있음에도 마치 폭풍우가 일어나는 바다처럼 땅이 일렁인다고 느꼈다.

끼이익­ 철썩. 하고 갑판이 뒤틀리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선장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선장을 마주 보는 거대한 기둥... 아니, 촉수가 보였다.

"아, 망할­"

그리고 진저웨일 호는, 가장 먼저 탈락한 기관차가 되었다.

...

"자, 레이스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한 팀이 탈락했습니다! 아, 이번 레이스는 먼저 달린다고 좋은 것이 아니거든... 어? 누구세요?"

진행자가 거의 전속력으로 달리듯 해설을 내뱉었다.

진행자 석에서는 모든 팀의 3인칭 시점이 보이게끔 만들어졌기에 해설을 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때, 진행자의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정확하게는 두 사람이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 하나와 행정부의 공무원 하나.

"실례합니다. 혹시 큐 카드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어... 잠시만요. 네. 가능은 합니다만..."

"그럼 실례."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진행자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행자의 큐 카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몇 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누가 날짜를 바꿔놨군."

"내일 있을 이벤트 매치가 오늘로 당겨진 거야."

"네?"

코더와 공무원은 큐 카드에 적힌 날짜가 교묘하게 9에서 8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이 큐 카드에 손을 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큐 카드에 손을 댔다는 말인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근 며칠 동안 느슨해진 가차랜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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