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348화]이벤트 : 레이스
* * *
도미닉 경은 시험 주행이 한창인 기관차 차량 기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기관차들이 있었는데, 제각각 재밌는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저기 있네요. 저희 기관차."
히메가 마츠리 호를 찾은 듯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붉은 텐구 얼굴이 인상적인 마츠리호와 마츠리호를 정비하는 닌자들이 있었다.
"아, 히메님. 오셨습니까?"
얼굴과 손에 검은 기름이 잔뜩 묻은 닌자가 쿠나이... 모양의 드라이버를 내려놓으며 히메에게 인사했다.
"시험 주행하러 오신 겁니까?"
"네. 일단 오늘의 컨디션을 좀 봐야겠으니까요."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방금 모든 장비에 기름칠을 끝낸 참이었으니까요."
정비공 닌자는 그렇게 말한 뒤 연막탄을 던지고는 기관차 위에 놓여 있던 렌치와 자리를 바꿨다.
굉장히 닌자다운 모습이었으나, 어떻게 보면 또 비효율적인 느낌이었다.
"이봐! 히메님께서 시험 주행을 하신다!"
"오케이!"
정비공 닌자는 다른 정비공 닌자들에게 곧 시험 주행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러고는 다시 연기로 화해 도미닉 경의 옆에 있던 캘리퍼스와 자리를 바꿨다.
"거미 전차도 최고의 상태로 준비해 뒀습니다. 한 번 시운전 해 보시겠습니까, 도미닉 경?"
"아, 그러겠소."
도미닉 경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정비공 닌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주행을 한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합을 맞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도미닉 경의 말과 함께 정비고에서 거미 전차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 위에는 또 다른 정비공 닌자가 있었는데, 그 닌자는 도미닉 경의 앞에 거미전차를 주차하고는 바로 키를 도미닉 경에게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도미닉 경."
"고맙소."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의 옆면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거미 전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거미 전차의 시동을 다시 걸었을 때, 마침 기관차는 시험 주행을 위해 어느새 주행용 선로 위에 준비된 상태였다.
히메는 기관실에 있었으며, 코우메는 수리검포를 잡고 단 위에 올라가 있었다.
"준비됐어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만 준비가 끝나면, 바로 시험 주행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소."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의 가장 앞 다리로 땅을 두어 번 투레질하며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좋아요. 지금 앞 팀이 시험 주행 중이니, 저희는 2분 뒤에 출발할게요."
"알겠소."
히메는 앞선 시험 주행 팀들과의 거리를 가늠하더니, 도미닉 경에게 2분 뒤에 출발하겠노라고 공지했다.
도미닉 경은 이에 알았다라고 대답한 뒤 거미 전차를 몰고 마츠리 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때였다.
"어라? 여기서 또 만나네, 언니?"
"도미닉 경?"
마츠리 호의 옆 선로에 또 하나의 기관차가 들어섰다.
그 기관차는 일본 노극에서 쓰는 하얀 얼굴의 여성 가면이 전면에 달려 있었는데, 기관차 위에는 깃발이 한 아름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깃발들 사이에는 거대한 대포가 있었는데, 아마 한 객실 자체가 대포를 운반하는 짐칸인 것 같았다.
"츠키?"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과 히메는 바로 옆에 다가온 기관차에 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히메의 동생 츠키와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츠키는 기관실에 있었고,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처럼 거미 전차를 타고 있었으며, 대포가 있는 곳에는 운류 가문의 가주 운류 무사시만큼은 아니지만 꽤 화려한 갑주를 입은 무사 하나가 있었다.
"세상에. 이것도 꽤 재밌는 우연이네."
도미니카 경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이 놀란 눈으로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놀란 이유는 서로 다른 이유였다.
도미닉 경은 놀라울 정도로 두 팀의 구성이나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이 그 이유였고, 도미니카 경은 우연찮게 같은 시간대, 그것도 바로 옆에서 시험 주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을 계속해서 유심히 쳐다보았다.
도미니카 경을 보자마자 꽤 힘든 레이스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의 무력과 운전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도미니카 경이었기에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던지 간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겉으로는 웃으며 서로를 향해 한 마디씩을 주고받았다.
"좋은 레이스가 되었으면 좋겠소."
"내가 할 말이야. 우리끼린 적어도 비겁해지진 말자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시험 주행을 할 방향만을 바라본 채, 절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자존심 싸움일지도 몰랐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이렇게 기를 세우고 있을 때, 히메와 츠키도 날카롭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유키온나 호라니. 꽤 신경을 쓴 모양이네?"
"그러는 언니야말로 마츠리 호라니. 지금까지 어떻게 내게 그 사실을 숨긴 거야?"
히메와 츠키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번개가 튀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겠어. 마츠리 호는 유키온나 호의 막강한 공격력 앞에 산산조각이 날 테니까."
"그건 맞출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 안 그래?"
히메와 츠키는 아주 날카롭게 대립했다.
비록 두 사람이 자매가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앙금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꽤 친해졌다고 할 수 있는 지금도 두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 생사를 걸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이 첨예한 대립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 레이스에서 한번 보자고. 우리의 대포가 마츠리 호를 어떻게 박살 낼지."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네가 한 발 쏘기도 전에, 우린 저 멀리 앞서가고 있을걸?"
히메와 츠키의 말다툼은 계속되었으나, 이내 안내요원의 말에 둘의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지금 출발하시지 않으면 시험 운행 기회가 없습니다! 싸우실 거면 끝내고 싸워주세요!"
역무원의 옷을 입은 안내요원의 외침에 히메와 츠키가 움찔했다.
"아무래도 더 싸우기엔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네."
"본 게임에서 보자고, 동생."
히메와 츠키는 각자 한 마디씩을 남기고는 기관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묵묵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코우메와 화려한 갑옷의 무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숨을 쉬더니, 서로를 인지하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마주 보았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쪽이야말로."
둘은 서로의 노고를 이해한다는 듯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기관차가 슬슬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둘은 다시 각자의 무기를 붙잡고 무기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무사는 전방을, 코우메는 후방을.
...
도미닉 경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기관차를 따라 거미 전차를 조종했다.
처음엔 아직 증기가 완전히 차오르지 않은 듯 느릿하고 삐걱거리듯 움직였으나, 레이스용 거미 전차에서나 볼 수 있는 열몇 개의 실린더에서 나오는 막대한 증기의 힘으로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마츠리 호는 속도에서만큼은 모든 기관차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그 말인 즉, 처음에 출발한 것은 거의 동시였지만, 곧바로 두 기관차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유키온나 호의 기장 츠키는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평온함을 유지했다.
애초에 유키온나 호의 전략은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라이벌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속도도 포기한 채, 이토록 거대한 대포를 들고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츠키는 지금 당장 저 대포를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시험 운행 중이었다.
지금 사용했다간 괜히 주변의 경계를 살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다시 정비를 해야만 했다.
그만큼 뒤에 있는 대포의 위력은 대단했기에.
"본 레이스. 본 레이스가 시작하면, 그때 시작하는 거야."
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철립의 끝을 잡고 푹 내려썼다.
히메의 마츠리 호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듯이.
...
재밌게도, 이는 히메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것 아니오?"
도미닉 경은 무전기를 통해 히메에게 의문을 전했다.
실제로 히메는 평소 연습하던 때보다 조금 느리게 기관차를 운행하고 있었으니까.
"다 작전이에요, 도미닉 경."
"그게 무슨... 아.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을 잠시 이해를 못 했으나, 히메가 주변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그제야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시험 운행을 하는 주변에서, 마츠리 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찾아낸 것이다.
저들은 아마 다른 팀의 정보원일 것이고, 마츠리 호의 장단점을 분석해 각자의 팀에 전달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 힘을 숨겨두는 것이 좋아요."
히메는 지금 주변의 눈을 의식해 본 실력의 70% 정도만 내고 있었다.
나머지 30%를 숨겨야, 본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테니까.
이는 다른 팀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각자 숨기는 것은 다 달랐으나, 모두 곧 있을 본 레이스를 위해 등 뒤에 단검을 하나씩 숨겨두고 있었다.
어설프게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순간 물어뜯기는 곳!
지금, 이 차량 기지는 모든 팀들이 제각기 속셈을 가진 복마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