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339화]이벤트 : 스팀 스피드
* * *
"도미닉 경의 임무는 바로, 이 마츠리 호가 박살 나지 않도록 호위해주는 역할이에요."
히메가 마츠리 호의 서늘한 금속 부분을 매만지며 말했다.
"호위?"
도미닉 경은 히메가 한 말에 반문했다.
그냥 레이싱인 줄로만 알았는데, 호위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도미닉 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팀 스피드 이벤트는 기본적으로 증기 기관차 경주지만, 그저 달리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선두주자에 대한 견제와 추격자를 뿌리칠 기술이 필요한 경기죠. 이렇게 말이에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날랜 몸놀림으로 증기 기관차의 기관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상한 빨간 버튼을 누르자, 기차 위에 있는 단 하나가 들어 올려지더니, 그 안에서 표창 발사기들이 튀어나왔다.
표창 발사기들은 불안 불안하게 줄 하나에 묶여 고정되어 있었지만, 어느 방향에서든 견제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견제에 대해서는 저희가 또 전문가예요. 그 누구도 닌자보다 견제를 잘할 수는 없죠."
해적을 빼고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히메는 여전히 해적에 대한 트라우마가 조금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저희 마츠리 호는 빠른 속도와 뛰어난 견제 실력으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해왔어요. 다만... 저번에 저희 마츠리 호의 약점이 밝혀지면서 저희도 재빨리 대응해야만 했죠."
"대응이라. 그게 바로 내가 대타로 들어온 것과 관련이 있는 거요?"
"네."
히메는 도미닉 경을 향해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마츠리 호의 호위를 맡아주시면 돼요."
"호위라...?"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이번 스팀 스피드 이벤트의 증기 기관차 레이스는 근접해서 싸우는 것보다, 원거리에서 견제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도미닉 경이 원거리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이었고, 이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있을지언정, 반응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겠소?"
도미닉 경은 히메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지 궁금해하며 되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미닉 경은 증기 기관차에 탑승하는 인원은 아니에요."
"흠."
"대신, 증기 기관차의 주변을 돌며 상대를 견제하고, 상대의 견제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게 될 거예요."
"어떻게 말이오?"
"이렇게요."
도미닉 경의 말에 히메가 기관차 뒤에 가려져 있던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기관차에 비해서 매우 작은 크기였지만,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이 꽤 익숙하다고 여겼다.
그건 바로, 거미 전차였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이 가진 거미 전차와 모델링은 좀 달랐지만, 전체적인 틀은 확실히 거미 전차였다.
"거미 전차...?"
"네. 맞아요."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도미닉 경에게 드리는 선물이자, 저희 닌자 톨토이스 팀에 도움을 주시는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해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거미 전차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히메가 보여 준 거미전차는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보다는 조금 더 날렵해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도미닉 경의 거미 전차가 두꺼운 황동 판으로 둘러싸인 이동하는 요새와도 같았다면, 이 거미 전차는 정말 기동성에 중점을 둔 날렵한 거미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엔진이 달랐다.
도미닉 경의 거미 전차보다 히메가 준비한 거미 전차의 배기구 수가 4개는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속도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거미 전차!
도미닉 경은 그 유려한 모습에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스피드 광의 본능이 깨어났다.
당장에라도 저 멋진 거미 전차를 타고 날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거미 전차로군."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사실, 평소에 거미 전차를 자주 타시는 걸 보고 준비한 거거든요."
히메는 도미닉 경이 마음에 들어하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여우 귀가 기쁨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쫑긋거렸다.
"지금 저 거미전차에 적응해 보시겠어요?"
"...! 그래도 되오?"
"그럼요. 사실, 오늘은 간단히 합만 맞춰 보고 끝낼 생각이라 시간이 좀 널널할 예정이라서요. 게다가 도미닉 경이 거미 전차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저희에겐 도움이 될 테니까요."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다.
말 그대로, 오늘은 히메의 팀 닌자 톨토이스와 도미닉 경이 합을 맞춰 보는 날.
제대로 된 훈련이 있기 전이었기에, 히메는 도미닉 경이 새로운 거미 전차에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
도미닉 경은 천천히 증기 기관차 마츠리 호를 지나, 새로운 거미 전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속도광이 지을 법한 반짝이는 웃음과 함께.
...
도미닉 경처럼 다른 팀에서 제안이 오는 경우는 드문 일은 아니었다.
승리를 위한 약간의 변동은 어느 팀이나 생각하는 사안이었으니까.
이는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이번 증기 기관차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
"그렇소."
카페에 들린 도미니카 경은 철립을 쓰고 자신을 찾아온 여무사, 츠키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일단 무릎 꿇는 건 그만해 줄래? 좀 부담스러워서."
도미니카 경은 무릎을 꿇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츠키의 모습에 부담을 느끼곤 츠키를 일으켜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츠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더욱 애원하기 시작했다.
"부탁드리외다! 제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호위는 도미니카 경 밖에 없소이다!"
"아니, 그러니까... 그"
도미니카 경은 간만에 꽤 당황한 듯 말마저 더듬기 시작했다.
그만큼 츠키의 행동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고,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츠키의 행동에 담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도미니카 경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도와줄게. 직접 나가는 건 부담이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는 거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긴 하지."
도미니카 경은 츠키의 행동에 마음이 약해져 결국 츠키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저, 정말이외까?"
츠키는 감격한 듯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여전히 무릎은 꿇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서 더 부담 주면 말을 바꿀 테니까"
"이, 일어나겠소! 당장 일어나겠소!"
츠키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츠키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오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날 경우,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윽?"
츠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이내 다리에 엄청난 찌리리함이 들이닥치는 것을 느꼈다.
이건 분명히 다리에 쥐가 난 것이었다.
츠키는 그런데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정자세로 서려고 노력했으나, 오금이 저리는 감각에 순간적으로 무릎이 꺾이면서 츠키는 순간 앞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이대로라면 츠키는 앞으로 엎어져 땅을 구를 것이 틀림없었다.
츠키가 바닥과 부딪칠 충격에 대비해 눈을 질끈 감은 그때.
푹신. 하는 느낌이 츠키의 양 볼에 느껴졌다.
푹신?
츠키는 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감각에 놀라 손을 들어 도대체 자기 볼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만져 보았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손바닥 가득 느껴졌다.
도무지 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푹신한 감각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츠키는, 천천히 눈을 떠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츠키가 본 것은
"...러브 코미디 찍냐?"
이 상황이 황당하다는 듯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도미니카 경의 얼굴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츠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제야 츠키는 자기가 도미니카 경의 품에 꼭 안긴 채 도미니카 경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츠키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며 도미니카 경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푹신푹신하고 편했다지만, 이 상황이 실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 죄, 죄송하오. 다리에 쥐가 나서 그만..."
츠키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어설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도미니카 경은 츠키의 변명을 듣더니, 이내 괜찮다는 듯 씨익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도미니카 경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츠키도, 도미니카 경도 여자였고, 노리고 한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인데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츠키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더욱 부끄러움을 느꼈다.
저 말은 마치, 츠키가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들리지 않는가!
"어, 으, 아..."
츠키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한 채 손을 버둥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차오르자 츠키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아, 아무튼! 호위 일은 수락하신 겁니다!"
츠키는 그래도 마지막에 도미니카 경과의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도미니카 경은 그 말에 알았다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이미 츠키는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빠르기도 하지."
도미니카 경은 순식간에 사라진 츠키의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나왔습니다."
"아. 고마워요."
도미니카 경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니 주문이 채 나오기도 전에 가 버렸네."
도미니카 경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은 한 잔도 도미니카 경이 마셔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카페에서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도미니카 경.
"아."
커피 한 잔을 끝마치고 새로운 한 잔을 마시려던 도미니카 경은 갑자기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도미닉 경도 이번 레이싱에 참석하지 않던가?"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히메토츠키사이고 성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사이에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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