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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38화 (338/528)

〈 338화 〉 [337화]이면세계 3지역 후일담

* * *

결론만 말하자면, 슬라톤 벡스는 그 혐오스러울 정도의 외관에 비하면 정말 초라할 정도로 처참하게 데이터화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슬라톤 벡스가 사라짐과 동시에 42라운드 클리어 판정이 떴다.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엘랑 대위는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42라운드에서 그 여정을 멈췄다.

이와 같은 결정에는 42라운드의 난해한 난이도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말한 엘랑 대위는 바로 저장 후 종료 버튼을 눌러 42라운드 보상을 받았다.

[축하합니다. 하드 모드 42라운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하드 모드 42라운드 보상은 무작위 4성 고용 카드입니다.]

[42라운드 이하의 보상은 더 보기 란을 참조하세요.]

"...?"

'하드 모드' 42라운드 보상을 말이다.

"어, 어어?"

엘랑 대위는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가 너무 당황스러웠는지, 마치 인간의 언어를 잊어버린 듯 어어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분명히 일반 모드였는데? 아니, 그 전에 하드 모드란 것이 있었어?

엘랑 대위의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져갔다.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며,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엘랑 대위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런 일에 굉장히 익숙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라? 버그였었네? 어쩐지."

"이건 행정부에 연락하면 보상해 줄 거요."

"버그요? 보상?"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에 다시 인간의 언어를 되찾았다.

"그렇소. 아마 도중에 어떤 버그로 인해 하드 모드로 바뀐 모양인데..."

"어쩐지 좀 더 재밌더라고."

도미닉 경은 자기가 겪은 경험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해주었다.

도미니카 경은 어쩐지 좀 어려운 것 같았다면서 히죽 웃었다.

"아무튼, 행정부에 버그가 일어났다고 말하면 그들이 로그를 보고 보상을 해 줄 거요."

"그, 그럴까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버그로 인해서 제법 험한 꼴을 본 엘랑 대위였지만, 보상이라는 말에는 꽤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엘랑 대위는 사실 방금 전의 일로 인해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격돌하던 상태였다.

이 망할 가차랜드에서의 삶을 접고 다른 곳을 찾느냐.

아니면 베타 테스트임을 감수하고 계속해서 가차랜드에서 살아가느냐.

이는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생각은 엘랑 대위를 괴롭히는 난제가 될 것이었다.

다만...

"그... 행정부는 어디 있죠?"

그때가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

가차랜드 사법부.

오늘은 3지역을 난장판으로 만든 원흉들의 재판이 있는 날이었다.

"가차랜드 행정부 소속 9급 공무원 알렉스 머레이는 자기 본분을 잊고 공장의 관리를 소홀히 했으며, 이에 본 재판관은 50년의 감봉과 함께 차후 30년간 진급 누락형을 선고하는 바이다. 또한 5년의 봉사활동을 명한다."

"일성 동맹의 일원, 1성 딜러 악독한 박춘배는 고의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으로 행동했으나, 그 인과관계가 명확한 점을 들어 5년간 봉사활동을 명한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 바이너리는 배전반의 관리를 소홀히 하긴 했으나 그의 행동과 이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에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번 사건을 맡은 다루마 검사의 능력이 아주 좋기도 했지만, 그들이 행한 일들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장을 관리 감독했던 공무원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당시 기록이 내부 CCTV에 기록되어 있었다.

노는 거야 다른 공무원들도 가끔 하는 일이라 눈 감아줄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콘센트를 사리사욕을 위해 쓴 부분과 이로 인해 공장을 위기로 몰아가는 부분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 무려 반 세기 동안의 감봉과 30년 동안 진급 누락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왜 이 공무원이 잘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이는 바로 다음에 나올 악독한 박춘배와도 관련이 있었다.

악독한 박춘배는 강제로 모드를 바꿔 지휘관을 위기에 빠뜨린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되었으나, 그 지휘관이 박춘배를 먼저 버리고 갔다는 점을 어필해 나름 형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고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었기에 적어도 몇 년은 지하 던전에서 썩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이에 행정부는 궁지에 몰린 박춘배에게 5년 동안 어떠한 일할 것을 제안했다.

5년간 이 일하는 대신,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눈을 감아주겠다는... 일종의 사법거래였다.

악독한 박춘배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던전에서 고통받는 것보다는 5년간 일하며 죄를 씻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부가 악독한 박춘배와 게으른 공무원에게 명한 봉사활동은 바로...

...

"하하하! 너희들은 준비되었다고 여겼겠지!"

"너, 넌 누구냐!"

3지역 하드 모드가 열렸다는 소식에 바로 맛을 보러 온 지휘관 하나가 언덕 위에 있는 박춘배에게 소리쳤다.

"나? 하! 이 박춘배님을 모른단 말인가? 괘씸하군! 하하!"

박춘배는 당황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악독하게 웃었다.

그리고 발로 레버를 걷어차며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드 모드를 고른 멍청이다! 공장 과부하 시켜!"

["...아, 귀찮은데."]

"이봐, 내가 네 근무 태만에 대해서 상사에게 이르면 네가 어떻게 될지­"

["아, 알았어. 알았다고. 공장 과부하 끝!"]

무전기에서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린 이후, 지휘관은 게이트가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하! 그 표정, 참을 수 없군!"

박춘배는 멍청하게 붉은 게이트를 바라보는 지휘관을 내려다보며 껄껄 웃어댔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지휘관의 옆, 안드로이드 릴리... 물론 이 지휘관의 릴리가 박춘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박춘배는 까끌까끌한 수염이 있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리 말했다.

"글쎄. 재밌으라고? 푸흐하하하! 그러니까, 너희도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 머저리들아!"

그 말을 끝으로 박춘배는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하드 모드는 전용 연출이 있는 모양인데?"

박춘배가 사라지자 지휘관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 방금 전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베타 테스트라고 해서 별 기대는 안 했는데... 꽤 갓겜일지도?"

지휘관은 하드 모드 전용 연출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가차랜드의 가치를 높게 쳐주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지휘관으로서는, 이런 떡밥 하나하나가 높은 가치를 가지는 법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말레이. 박춘배와 인연이 있던데, 혹시 왜 저러는지 아는 거라도 있어?"

지휘관은 이번 떡밥은 도대체 뭘지 궁금해하며 오늘 고용한 비열한 말레이에게 악독한 박춘배에 대해서 물었다.

"글쎄."

비열한 말레이는 악독한 박춘배가 사라진 언덕 위를 바라보며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일단은 친구라고 해 두지."

비열한 말레이는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지휘관에게 속삭였다.

물론, 이는 박춘배의 이름을 빌려 자기 가치를 높이려는 말레이의 얄팍한 술수였다.

어쩌면, 자기를 살리겠답시고 관에다 넣고 끌고 다녀 준 의리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르고.

...

'이건 꽤 쏠쏠한 걸.'

행정부 소속 의원 하나가 한 말이었다.

그 말대로 박춘배와 공무원을 이용해 3지역 하드모드 연출을 만든 것은 꽤 지휘관들에게 호평이었다.

물론 박춘배와 공무원의 연출이 지휘관에게 호평인 것과는 별개로, 지휘관들은 곧 있을 무언가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네요."

엘랑 대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말했다.

이번에는 도미닉 경이나 도미니카 경의 돈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산, 아주 당당하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오렌지 주스였다.

"뭐가 말이오?"

도미닉 경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홀짝이며 엘랑 대위에게 되물었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 및 도미니카 경과 호감도를 쌓겠다면서 이 카페에 자주 들리는 단골이 되었다.

도미닉 경이 자주 다니니, 자주 마주치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은 나름 먹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이벤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말이에요."

"이벤트라."

도미닉 경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가차랜드라고 한다면, 수많은 이벤트와 그 이벤트로 인해 엉망이 될, 환장할 스토리가 또 각별하지 않겠는가.

도미닉 경은 과거 알파 테스트 당시 몇몇 이벤트들을 재밌게 즐겼던 것을 생각하며 엘랑 대위에게 물었다.

"그래, 이번 이벤트는 무엇이오?"

"잠시만요. 공지사항에 적혀 있을 텐데. 이벤트 사전 예약... 사전 예약... 아. 여기다."

엘랑 대위는 허공에 시스템 창 하나를 띄웠다.

그곳에는 도미닉 경과 같은 가차랜드 시민들에게 공개된 공지사항들과는 다른, 지휘관들에게만 공개된 특별한 공지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이벤트 사전 예약!]

[베타 테스트 첫 이벤트, 스팀 스피드가 곧 시작됩니다!]

[전통의 강호 레드 애로우와 아이언 샤크, 그리고 당신이 벌이는 증기 기관차 레이싱!]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엉망진창인 철로 위에서, 당신 마음속의 깊은 욕망을 표출해 보세요!]

[사전 예약 보상 : 1200가차석]

그리고 그건, 정말로 새로운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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