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화 〉 [335화]이면세계 3지역 하드
* * *
아니, 쏟아지는 것은 드레이크뿐만이 아니었다.
드레이크들은 선두였을 뿐, 그 뒤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아직 성장이 덜 된 지휘관들로써는 절대로 버티질 못할 정도의 숫자가!
"끄, 끝난 거 아니었어요?"
엘랑 대위가 당황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제가 '해치웠나'라고 해서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건 아닐 거요."
도미닉 경은 지금껏 겪어 본 온갖 버그들을 생각하며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버그인 것 같소. 원래대로라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무언가가 고장이라도 난 것이겠지.아마 이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어떠한 부분이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오. 난이도라던가, 혹은 몬스터의 강함이라던가."
도미닉 경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
지금껏 온갖 버그들을 헤쳐 나가며 나름의 촉이 생긴 덕분이었다.
아직 버그에 익숙하지 않은 엘랑 대위로서는 도미닉 경의 말에 그저 눈을 끔뻑일 뿐이었지만, 도미닉 경이 전문가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오."
도미닉 경이 게이트에서 쏟아져나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말했다.
"드레이크 하나로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라니. 꽤 힘들겠소."
"그러네."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니카 경이 긍정했다.
그러다 문득 도미닉 경의 표정을 바라본 도미니카 경.
"말로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입은 웃고 있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보았다.
그건, 지금까지 도미니카 경이 본 웃음 중 가장 환하고 잔혹한 것이었다.
"그건 마찬가지지 않소."
그리고 입 가에 웃음을 걸고 있는 건 도미닉 경만이 아니었다.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과 마찬가지로 입가에 웃음이 번져 있었다.
"뭐, 서로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네."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일단 눈앞에 있는 것들부터 처리하도록 하겠소."
도미닉 경도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저...는, 최대한 응원할게요."
엘랑 대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응원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정도로 충분하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한 직후, 하늘에서 깃발이 다시 한번 떨어졌다.
백금으로 만들어진 까마귀 깃대에 비단실로 장식된 페럴란트의 깃발이었다.
지금까지 깃발을 땅에 꽃아 두고는 있었으나 도미닉 경이 다시 한번 깃발을 땅에 꽂은 이유는 바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도미닉 경은 펄럭이는 깃발 너머로 환하게 웃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건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니카 경은 달려오는 드레이크와 몬스터들의 속도를 가늠하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대략 이쯤이면 되었다 싶을 때, 도미니카 경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바로 도미니카 경의 방패가 휘둘러지고, 직후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코스트는 충분한 편이었고, 그 충분한 코스트를 통해 순식간에 세 번의 방패 공격과 세 발에 달하는 총알을 쏘아낸 도미니카 경.
세 방향으로 휘둘러진 방패는 가장 앞에 있던 드레이크들에게 스턴을 선사했고, 세 방향으로 쏘아진 총알은 드레이크의 뒤에 있던 몬스터들을 경직시켰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묘기!
이에 도미닉 경도 질 수는 없다는 듯 방패를 들고 드레이크 아래로 들어가 방패를 위로 밀어 쳤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저 커다란 드레이크의 아래에서 공격한다고 한들 들썩이지도 않겠지만, 도미닉 경은 스탯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같은 성급 중에서도 높은 스탯을 자랑하는 탓에, 도미닉 경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도미닉 경의 공격은 드레이크의 배를 정확히 강타했고, 엄청난 충격과 함께 드레이크는 공중에 날았다가 떨어져 목이 꺾이고 말았다.
도미닉 경의 공격으로 인해 생겨난 충격은 장비의 효과로 인한 기절 상태 이상의 이펙트였고, 드레이크의 목이 꺾인 것은 원래 이 몬스터의 약점이 목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방금 전 드레이크와 싸울 때 드레이크의 약점이 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생명체는 목이 꺾이면 죽겠지만, 드레이크는 브레스를 뿜기 위해 목에 특별한 기관이 달려 있어 목이 많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시네마틱]의 영향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이 드레이크를 들어 올린 것은 그의 스탯 덕분이었고, 그가 드레이크를 들어 올리겠다고 생각한 것도 목이 약점임을 알아서였지만, 이토록 깔끔하게, 그것도 한 번에 드레이크의 목이 꺾인 것은 도미닉 경의 특수 능력 [시네마틱]이 이 상황을 아주 경이롭고 경외롭게 만든 덕분이었다.
도미닉 경의 활약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미니카 경!"
"알았어!"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에게 신호를 보내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나란히 서서 몬스터들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방패가 맞물린 채 앞으로 전진하자, 안 그래도 스탯이 높은 둘의 합공으로 시너지가 일어나 몬스터들이 뒤로 밀려났다.
가장 마지막에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 중 하나는 이미 다시 게이트에 삼켜진 지 오래였고, 나머지도 이대로라면 밀려날 것이 틀림없었다.
모든 몬스터들이 힘을 쓰고 있음에도 밀려나게 만드는, 그야말로 인간을 벗어난 괴력!
"...진짜 돌아가면 4성 고용 카드를 꼭 뽑고 말 거야."
이 모습을 본 엘랑 대위는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공세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보였으나, 몬스터 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몬스터 측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좌우로 펼쳐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피한 것이다.
이에 도미닉 경 및 도미니카 경과 마주하던 드레이크들이 뒤로 넘어져 굴렀으나, 몬스터들은 양심이 탑재되지 않았기에 드레이크들을 무시하고 지휘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엘랑 대위는 갑자기 자기에게 쏠리는 공세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할 뿐이었다.
"지휘관님! 위험합니다!"
엘랑 대위가 얼을 타자, 곁에 있던 릴리가 엘랑 대위를 밀쳐 냈다.
엘랑 대위 앞에 선 오크의 도끼는, 엘랑 대위를 맞추는 대신 릴리를 맞췄다.
"꺄악!"
릴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빛으로 변해 한 장의 카드가 되어 엘랑 대위의 덱으로 돌아갔다.
42라운드의 몬스터들의 레벨은 릴리보다 훨씬 위였고, 이 엄청난 레벨 차이로 인해 한 방에 즉사해 버린 것이다.
"리, 릴리!"
엘랑 대위는 여전히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엘랑 대위는 눈앞에서 사라진 릴리의 모습에 당황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오크가 다시 도끼를 들어 올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어, 어?"
엘랑 대위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는 늦어서, 오크의 도끼는 이미 엘랑 대위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엘랑 대위는 눈을 꼭 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이렇게 실패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전 라운드에서 보상만 받고 끝내는 거였는데.
온갖 생각이 엘랑 대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엘랑 대위는 곧 있을 고통에 대비해 눈을 더 질끈 감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오크의 도끼가 정수리를 둘로 나누고 머릿속에 있는 뇌를 곤죽으로 만들 것이었다.
물론, 이는 엘랑 대위의 망상일 뿐이었다.
엘랑 대위는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어, 어째서?"
엘랑 대위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 고통에 실눈을 빼꼼히 떴다.
"엘랑 대위, 괜찮소?"
그리고 거기엔 도미닉 경과
"눈은 뜨고 있는 게 좋아. 죽을 위기를 한 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엘랑 대위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모습에 당황에 그저 눈을 끔뻑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엘랑 대위와 적어도 50미터는 떨어져 있었고, 아무리 둘의 스탯이 높아도 그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선 몇 초는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오크의 도끼가 떨어졌을 것이고.
사실, 이는 굉장히 간단한 트릭이었다.
정확하게는 앨리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엘랑 대위의 눈앞에서 릴리가 사망하고 오크의 도끼의 다음 제물로 엘랑 대위가 선택되었을 때, 뒤에서 쉬고 있던 앨리스는 지금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몸을 던져 엘랑 대위의 앞으로 가 오크의 도끼를 대신 맞았다.
이대로라면 앨리스도 죽음이 확실한 상황.
그러나 앨리스는 죽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장비 취급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가 공격당하자, 시스템은 이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 대한 피해 판정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공격당한 방식이 근접 무기였기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앨리스의 위치에서 공격당했다고 판단, 앨리스가 있는 자리로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는 엘랑 대위의 처지에서 볼 때, 어쩌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거의 수비의 달인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실제로도 수비의 달인이었지만.
"정신 차리시오. 지휘관이 포기하면, 이길 것도 지는 법이니까."
"네... 네!"
도미닉 경이 엘랑 대위에게 충고를 하나 했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에 여전히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라고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온 정신을 긴장시켰다.
"좋소. 훨씬 보기 편하군."
도미닉 경은 다행스럽게도 다시 정신을 차린 엘랑 대위를 칭찬했다.
그때였다.
"이런 이런, 버러지들이 모여 있구나..."
갑자기 게이트 안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척박한 마계에서 기어 올라오는 목소리.
도미닉 경은 이 목소리가 한없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그런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어라? 이게 누구신가. 도미닉 경 아닌가?"
게이트에서 팔 하나가 나타났다.
아니, 저걸 팔 하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온갖 살점의 덩어리였으며, 매우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아직 혐오 필터를 켠 상태로 끄지 않았었기에 끔찍한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게이트에서 또 하나의 팔이 튀어나왔다.
역시나 끔찍하기 그지없은 덩어리였다.
"오늘에서야 저번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이트에서 혐오스러운 커다란 입들이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은 바로 이 끔찍한 존재에 대해 알아차렸다.
"슬라톤 벡스...!"
그것은 도미닉 경과 악연이 있는 마족, 슬라톤 벡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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