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35화 (335/528)

〈 335화 〉 [334화]이면세계 3지역 하드

* * *

3지역에 담긴 불행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박춘배의 만행과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을 넘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양산박의 간부인 'IQ 150 이상'이라 적힌 모자를 쓴 여성으로 말미암아 말이다.

이 여성은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그건 바로, 누군가의 의뢰 때문이었다.

여성은 한숨을 내쉬며 이 의뢰를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

"내게 모욕을 준 녀석을 혼내줘."

찰랑거리는 금빛 단발을 가진 고블린처럼 생긴 사내가 여성에게 명령했다.

"...우린 누굴 뒷바라지하는 사람들이 아닌데."

여성은 갑자기 나타나 황당한 명령해대는 이 고블린... 지휘관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흰 양산박이잖아. 불법적인 일이 전문 아닌가?"

"아니, 그렇다고 해서 네 말을 들을 필요는­"

남자는 다짜고짜 협박하듯 으르렁거리며 여성을 협박했다.

여성은 이때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남자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걸어 버린 실수를.

"닥쳐. 닥치고 내가 말한 걸 들어. 양산박을 만든 이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 말대로 해."

"...읏?"

남자가 갑자기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성의 몸은 마치 돌이라도 된 듯 굳어 버렸는데, 머릿속이 남자가 한 명령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무슨... 너, 너 뭐야?"

"흥. 이제야 좀 고분고분하군?"

고블린을 닮은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여성을 비웃었다.

"감히 진정한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이야."

여성은 혹시나 해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여성의 그런 시선을 즐기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나저나 가차랜드를 이루는 기술이 대단하긴 한가 봐? 너 같은 악성 코드도 멀쩡한 사람이 된 것을 보면."

"...악성 코드?"

"그래. 너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 가차랜드를 무산시키기 위해 너흴 이곳에 보냈거든."

아마, 그건 핵과 치트가 막히기 전의 일일 것이다.

여성은 눈앞의 남성이 한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자기들이 가차랜드에서 겉돈다고 느꼈는데, 그건 그들이 불법 체류 코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심어둔 백도어 코드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덕분에 너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남자는 비열하게 웃으며 여성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흐트러진 여성의 모자를 제대로 고쳐주며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 가서, 내게, 모욕을 준 이를, 혼내주고 와."

여자는 이를 악물고 표독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그 시선을 즐길 뿐, 주눅 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제안을 수락했다.

...

양산박의 여성은 의문의 남자에게 몇 가지 사실을 더 물어본 결과, 그가 3지역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라면 그 정도로 특정하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오늘 3지역은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작 몇 명의 지휘관, 그리고 몇 명의 시민들. 그리고 몇십 명의 안드로이드들.

나머지 지휘관들은 3지역을 깰 수 있는 최소 조건만 갖춘 채 4지역으로 갔기에 생긴 일이었다.

지금 3지역에 남은 이들은 초보거나, 혹은 업적이 있지는 않을까 샅샅이 뒤지는 편집증적인 지휘관들 뿐.

양산박의 여성은 여기 있는 자들 중 하나가 남자가 말한 '모욕을 준 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특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힌트는 위의 3지역이 전부였고, 남자는 그저 해 달라는 말만 할 뿐 더 이상의 정보는 주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양산박의 여성은 가장 양산박스러운 계획을 꺼냈다.

바로, 3지역에 있는 모두를 한 번 씩 죽여 버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따로따로 죽였다간, 시스템이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는데..."

양산박의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번에 여기 있는 모두를 말살할 계획을 세우던 여성은, 문득 자신이 어떤 공장의 뒤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이 여성이 도착한 곳은 3스테이지 뒤편에 위치한 공장의 뒤편이었다.

이때는 아직 공무원의 헛짓으로 공장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전이었기에 공장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여긴 3지역 전체에 몬스터를 공급하는 공장인 모양이네."

여성은 괜히 모자에 IQ 150 이상이라고 적은 것이 아니라는 듯 이 공장의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이거다!"

그리고 여성은 이 공장을 통해 3지역에 있는 모두를 말살시킬 좋은 계획을 생각해냈다.

여성은 곧바로 3지역에서 가차랜드로 돌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지휘관의 동행이 필수였겠지만, 양산박이 괜히 양산박이겠는가?

그녀는 불법적인 백도어를 통해 가차랜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차랜드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급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그래. 나야. 필요한 게 있어서."

여성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성은 누군가와 접선을 시도했다.

그는 창백한 피부에 퀭한눈을 한 채 양복을 입은 남자였는데,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든 채 넥타이를 계속 매만지고 있었다.

여성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약속된 말을 내뱉었다.

"오랜만이야."

"아, 반갑습니다. 혹시­"

"예측하지 못한결과에 대비하라. 응. 알고 있지."

"...그렇군요. 잠시."

남자는 여성의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곧 서류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은 일종의 USB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USB였다.

"...확실한 거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물건들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던가요?"

"그건 아니지."

여자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양산박에게 온갖 불법적인 물건들을 알선해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여자와 거래하고 있다는 건,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USB를 넘긴 다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번에도 좋은 거래가 되길 바랍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늘 느끼는 거지만, 꽤 섬뜩하단 말이지."

여성은 조금 전까지 갑자기 사라진 남성이 있던 자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거래하긴 했지만 꽤 의문스러운 구석이 가득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여성은 손에 들린 USB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3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저 멀리서 한 남성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때가 되었습니다, 영웅이여. 잠에서 깨어날 시간입니다..."

의문스러운 말을 중얼거리면서.

...

여성은 바로 스테이지 뒤편에 존재하는 공장으로 향했다.

이 USB를 공장에 삽입하는 것으로 그녀가 생각한 계획은 바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여성이 언덕을 올라 그 뒤편으로 가려던 그때.

여성은 저 멀리에서 어딘가 익숙한 이들을 발견했다.

"...도미닉 경."

여성은 그 남자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도미닉 경."

여성은 계속해서 도미닉 경의 이름을 곱씹었다.

마치 또 너냐는 듯이 말이다.

"도대체 왜 우리가 계략을 짜면, 그곳엔 도미닉 경이 있는 거지?"

여성은 소설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우연의 연속에 짜증까지 치밀어올랐다.

지금까지 그들의 계략이 도미닉 경에게 막혀 좌절되었던 적이 몇 번이던가.

여성은 당장에라도 도미닉 경에게 달려가 또 우리 일을 가로막으러 왔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성은 그 충동을 잘 가라앉혔다.

일단은 공장에 이 USB를 넣는 것이 먼저였기에.

"...아무래도, 이 악연은 오래갈 것 같네."

충동은 가라앉혔지만, 화는 가라앉히지 못한 여성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무래도 우리 계획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점일까."

그렇다.

도미닉 경은 3지역에 있기는 했으나, 여성은 설마 도미닉 경이 고블린을 닮은 남자가 말한 '모욕을 준 자'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적으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지, 도미닉 경."

양산박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공장으로 향했다.

도미닉 경이 양산박의 행사를 막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드레이크를 잡는 데 성공했다.

"...대단하군."

도미닉 경은 쓰러진 드레이크의 시체 위에 올라가 한 발을 올린 채 숨을 헐떡였다.

지금껏 도미닉 경의 체력을 이토록 뺀 이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드레이크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해, 해치웠나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랑 대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쓰러진 드레이크를 바라보았다.

"해, 해치웠으니 스테이지가 끝난 거겠죠?"

엘랑 대위는 이 강력한 적을 쓰러뜨렸다는 것에 감격하기보다, 적을 쓰러뜨렸으니 이제 곧 라운드가 끝날 거라는 것에 더 기뻐했다.

기쁨에 방방 뛰는 엘랑 대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런 엘랑 대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움찔했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더, 더 이상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힘든데, 더 하는 건 무리라구요!"

"아니, 우린 더 하자고 말할 생각이­"

"안 할 거예요!"

엘랑 대위는 고개를 완강하게 가로저었다.

그 모습에 도미니카 경이 입을 꾹 다물었으나, 이내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입을 다시 열었다.

"그게 아니라, 뒤를 봐."

"네?"

도미니카 경의 말에 엘랑 대위는 무심코 뒤를 바라보았다.

엘랑 대위의 뒤에는 게이트가 있었는데, 엘랑 대위는 그 게이트를 보자마자 얼굴이 싸악 굳고 말았다.

"아직 끝이 나지 않은 모양이야."

도미니카 경이 엘랑 대위에게 그렇게 말했으나, 엘랑 대위는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지금 게이트에서는, 엄청난 수의...

드레이크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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