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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32화 (332/528)

〈 332화 〉 [331화]이면세계 3지역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이면 세계 3지역에서 열심히 라운드를 클리어하고 있을 때, 저 너머에서 저들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감히 날 두고 갔단 말이지..."

날카로운 눈매. 악독한 표정. 살벌한 눈빛. 그리고 잔인한 손속과 험악한 얼굴.

바로 프롤로그에서 사라졌던 악독한 무법자, 박춘배였다.

그는 어째서인지 관 하나를 끌고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말레이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박춘배는 리볼버를 꺼내 들고는 손가락으로 리볼버를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던 리볼버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그 총구를 도미닉 경에게로 향했다.

당장에라도 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물론 박춘배는 총을 쏠 생각은 없었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총을 쓸 생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행동은, 박춘배가 도미닉 경을 얼마나 증오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기에 적당한 행동이었다.

박춘배는 도미닉 경에게서 도미니카 경을 향해, 도미니카 경에게서 다시 도미닉 경을 향해 천천히 총구를 돌렸다.

박춘배는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 이름들을 입에 담았다.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그리고..."

박춘배는 다시금 천천히 총구를 돌렸다.

그리고 그 총구는,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엘랑 대위."

박춘배는 엘랑 대위를 바라보며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어째서 박춘배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엘랑 대위에 대해서 악의를 가지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제법 간단했다.

"감히 날 여기에 버려두고 가?"

그렇다.

박춘배는 지금 며칠째, 혹은 몇 주 째 이 이면 세계에 갇혀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해 도와주려던 인원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박춘배도 예외 없이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잠시 기절해 있던 박춘배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엘랑 대위부터 찾았다.

그러나 엘랑 대위는 그때 이미 도미닉 경의 도움으로 프롤로그를 끝마친 상태였고, 일이 모두 끝났으니 가차랜드로 돌아가 버린 상황이었다.

박춘배는 며칠, 혹은 몇 주를 엘랑 대위를 찾아 돌아다녔으나, 그 어디에도 엘랑 대위는 없었다.

그제야 박춘배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자기를 빼고 가 버린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레이의 시신을 찾아낸 것이다.

가차랜드에서는 가치만 있다면 부활한다.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차랜드의 사람들이 이면 세계로 가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가차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진 죽은 상태로 있는다 였다.

그 말인 즉, 말레이의 시신은 방치된 지 오래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는 말이었다.

"말레이... 말레이..."

박춘배는 관 안에 있을 말레이를 애타게 불렀다.

박춘배는 말레이의 시신을 찾자마자 어설프게나마 관을 짠 뒤, 그 관에 말레이의 시신을 집어넣었다.

가차랜드로 돌아가야만 부활이 가능하기에, 가차랜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데리고 다녀야만 했으니까.

이 당시의 박춘배는 아직 엘랑 대위를 믿었다.

말레이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할 정도라면, 분명 아직 이면 세계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혹은 몇 주가 다시 지나면서 박춘배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혹시 우릴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릴 잊은 채 가차랜드로 돌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박춘배의 걸음 걸이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1지역과 2지역을 지나 3지역에 도착해서도 박춘배는 이 나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춘배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깊은 깨달음 속에서 박춘배는 배신감과 혐오감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박춘배와 말레이를 두고 가차랜드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감히, 감히 우릴 잊어?"

박춘배는 끓어오르는 배신감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하, 그래. 이렇게 나오셨다 이거지..."

우릴 이 이면세계에 버리려고,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가 손을 잡고 일을 저질렀다!

우린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에게 속았다!

박춘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박춘배는 너무나도 큰 배신감에 기억마저 조작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진실은 박춘배가 제멋대로 엘랑 대위에게 반해 도미닉 경을 끌어들였던 것이지만, 이미 배신감에 치를 떨기 시작한 박춘배가 그런 걸 기억할 리가 없었다.

박춘배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두고 봐."

그리고 3스테이지의 뒤편에 있는 레버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 레버는 박춘배가 이면 세계를 걸어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너희가 우릴 박대했으니, 이젠 우리가 너흴 골탕 먹일 차례야."

박춘배는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

온 세상이 들으라는 듯, 그러나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큰 웃음소리를.

...

재밌는 사실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엘랑 대위를 바라보는 이는 박춘배 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박춘배와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언덕에서 한 여성이 도미닉 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IQ 150 이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표정이 꽤 살벌한 상태였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도미닉 경."

여성은 도미닉 경의 이름을 여러 번 곱씹었다.

마치 또 너냐는 듯이 말이다.

"도대체 왜 우리가 계략을 짜면, 그곳엔 도미닉 경이 있는 거지?"

여성은 도미닉 경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히스테릭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악연은 오래갈 것 같네."

여성이 화를 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무래도 우리 계획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점일까."

여성은 도미닉 경을 다시금 노려보았다.

도미닉 경은 아무래도 지휘관과 함께 3지역을 공략하러 온 것일 뿐, 양산박의 행사를 막기 위해 이면세계에 도착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도미닉 경이 여성의 계획을 방해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뜻이겠지만, 여성은 방심할 수 없었다.

상대는 그 도미닉 경이었으니까.

"...이번만큼은 적으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지, 도미닉 경."

여성은 이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언덕 아래로 사라졌다.

도대체 이 여성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박춘배의 계략과 더불어 어떤 시너지나 복합적인 상황이 튀어나올 것인가?

...

변수라면 여기에도 또 하나가 있었다.

"으, 세상에. 먼지 좀 봐. 관리했다더니 뭘 관리했다는 건지..."

팔에 GM이라는 완장을 단 코더 하나가 이면세계에 들어섰다.

그는 이면세계 유지 보수팀의 일원이었으며, 그가 하는 일은 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버그나 핵을 잡는 것이었다.

중앙 시스템의 힘으로 핵은 더 이상 가차랜드에서는 효과가 없었으나, 이면 세계는 굉장히 불안정한 만큼 핵을 쓰는 이들도 있을 수 있었다.

코더는 배전반의 문을 열고 눈을 찌푸리며 안에 있는 전선들을 바라보았다.

전선들 위에는 소복하게 먼지가 쌓여 있었는데, 배전반 앞에 있는 관리 노트에는 관리가 주기적으도 되고 있다고 적혀 있지만, 정작 열어 보니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기 전에 알아차려서 그나마 다행인가."

코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전반 안에 있는 먼지가 코더의 숨결을 따라 뭉게뭉게 먼지 구름을 피웠다.

"일단 여길 청소해야겠네."

코더는 배전반 안에 손을 집어넣으려다가, 이내 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빗자루와 물걸레를 가지러 비품실로 걸음을 옮겼다.

비품실은 시스템 인더스트리 내부에 있었기에, 코더는 포탈을 타고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향했다.

"아 참. 내가 배전반 덮개를 닫았던가?"

코더는 깜빡했다는 듯 배전반을 닫고 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건 코더의 아주 큰 단점이었다.

건망증이 아주 심한 편이었다.

방금 전에 있었음에도 까먹는 게 말이나 되냐 싶었지만,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 부류는 고개만 돌려도 까먹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그가 코더라는 사실도 이 상황에 한몫했다.

코더들의대부분은 관심이 있는 일에만 집중할 뿐, 나머지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람들이었다.

GM이라는 완장을 찬 코더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위에서 말한 대부분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코더는 한참 동안 머리를 부여잡으며 배전반 덮개를 닫았는가에 대한 심도 높은 고찰을 시작했으며, 이내 그는 완벽한결론에 도달했다.

"...뭐, 별문제야 있겠어?"

그렇다. 별문제 없을 것이라며 낙천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뭐, 문제가 생기면 고치면 되겠지."

코더는 비품실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물걸레를 꺼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고작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나 일어나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코더는, 느긋하게 발을 옮겼다.

배전반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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