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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30화 (330/528)

〈 330화 〉 [329화]이면세계 3지역

* * *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는 것 아니겠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옷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러분도 짐작했듯이, 한센 대위는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말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감히 베타 테스트에 합류한지 며칠도 되지 않은 한센 대위가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고, 너무나도 대단한 존재였다.

안드로이드들도 나름 선전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결국 한센 대위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별 이상한 경험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거리를 걷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어째서인지 또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괜찮소?"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이 꽤 기시감이 든다고 생각하며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뇨, 제가 죄송합니...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문득 이 정수리와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생각했다.

"...엘랑 대위?"

쓰러진 이는, 바로 엘랑 대위였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엘랑 대위가 부딪친 곳 근처에 있는 편의점.

"그러니까 카드 팩 교환소에서 재화를 모두 소진하는 바람에, 직접 발로 뛰며 고용을 하고 있었다는 거요?"

"네. 아무래도 그게 더 효과가 좋은 것 같아서..."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이 사 준 컵라면을 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저번에도 이렇게 도움을 받아 놓고는 이번에도..."

"별것 아니오. 그 정도 금액은 있으니."

"이거라도 더 먹을래?"

도미니카 경은 엘랑 대위에게 빵 몇 개를 더 밀어주었다.

꽤 귀여운 괴수들 그림이 그려진 빵이었다.

"감사합니다..."

엘랑 대위는 머뭇거리면서 그 빵을 집었다.

빵 봉투 안에는 신기하게도 스티커가 있었는데, 엘랑 대위가 먹은 빵에 있던 스티커는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녀석이었다.

"꽤 귀엽네요."

엘랑 대위는 빵을 우걱우걱 입에 밀어 넣으며 스티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빤짝이까지 뿌려진 것이 마니아들에게 꽤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들 앞서나가는데, 저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요..."

스티커를 가슴 주머니에 넣은 엘랑 대위는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시시덕 거리다가, 문득 다른 지휘관들이 생각났는지 다시 시무룩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5지역까지 갔다고 하는데, 저만 3지역에서 고립되어 있거든요."

엘랑 대위가 내뱉은 말에 도미닉 경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1지역과 2지역이 사실상 튜토리얼에 가깝다면, 3지역은 본격적으로 임무가 시작되는지점이었다.

본격적인 임무가 시작되는 만큼 1지역이나 2지역보다는 난이도가 제법 오르긴 했으나, 못 깰 정도는 아닌 곳.

그런 곳에서 고립이라고?

"...원래라면 재화를 쏟아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안드로이드들을 강화해야 깰 수 있대요. 문제는 재화를 다 써버린 지라..."

뭐,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지휘관들은 이미 서로 긴밀한 연락망을 구성해 어느 시민이 고용하기 쉬운지, 혹은 필수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시민은 누구인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엘랑 대위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고, 결국 재화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결과, 본격적으로 재화를 투자해야 깰 수 있는 스테이지에서 막혀 버린 것이다.

"게다가 고용 카드도 전부 1성 아니면 2성인지라..."

무엇보다도 엘랑 대위는 지휘관들이 뭉칠 때, 카드 팩 교환소에서 열심히 카드깡을 하고 있었다.

가차랜드의 특성상, 카드 팩 교환소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의 대부분은 고용 카드였다.

고용 카드는 한 번 고용을 할 수 있는 대신 쓰면 사라져 버리는 소모품이었고, 고용 카드 없이 고용을 하려면 시민들과의 호감도를 올려야만 했다.

지금 지휘관들은 전체적으로 명성이 낮은 편이었기에 높은 성급의 인원들을 만나려면 고용 카드가 필수인 상황.

그러나 엘랑 대위는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3성 선택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1성이나 2성 고용권이 뽑혔다는 점도 그랬으나, 3성 선택권에서도 실수하는바람에 원래 바라던 캐릭터가 아니라 이름 모를 쿠노이치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고작 그 정도로는 3지역을 밀지 못했다.

최대한 깨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알다시피 어설픈 1성이나 2성 카드로는 이 야생과도 같은 이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상기한 엘랑 대위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슬퍼했다.

"뭐, 천천히 하시오. 천천히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진 않소."

"하지만... 하지만 컨텐츠가..."

"뭐, 컨텐츠는 많으니까 말이오. 아마 지금처럼 빠르게 달려가는 이들은 금방 지쳐 버릴지도 모르오."

"그러네. 가차랜드는 빨리한다고 빨리 해결되는 곳이 아니니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으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가차랜드는 빠르게 진행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급한 만큼 당연히 놓치는 것들도 많을 것이고, 아무리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들 도미닉 경이나 도미니카 경처럼 4성과 친분을 다지는 것은 운의 영역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벌써 도미닉 경 및 도미니카 경과 안면을 튼 엘랑 대위는 오히려 앞서가는 그룹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좀 기분이 나아지네요."

물론 아직 그런 사실을 모르는 엘랑 대위로서는 불안감을 쉽게 지울 수 없었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은 위로를 건넸음에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엘랑 대위를 안타깝게 여겼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엘랑 대위는 처량한 모습이었으니까.

그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늘의 TIP : 혹시 당신이 지휘하기엔 너무 과분한 시민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시민에게 연락처 교환을 요청해 보세요! 연락처 교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1회에 한해 그 시민을 무료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TIP : 혹시 장래가 유망한 지휘관이 곤경에 처해 있나요? 그럼 그 시민에게 연락처를 줘보세요! 1회에 한해 연락처를 교환한 지휘관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지휘관의 앞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두 메시지는 다소 상이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연락처를 교환할 경우 1회에 한해 무료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문구였다.

지휘관과 도미닉 경의 고민이 겹치자 시스템이 팁을 건넨 것이 틀림없었다.

세 사람은 자기 눈에만 보이는 팁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이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바로 엘랑 대위였다.

"저기...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혹시 연락처를 교환하고 싶다는 거요?"

"...네."

"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한 차례 고민했다.

사실,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보상에 연연할 성격은 아니었고, 엘랑 대위처럼 곤란해하는 이의 도움을 거절할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둘이 고민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였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1회 무료는 말 그대로 한 번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종류의 이벤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그에게 연락처를 주는 것보다, 나중에 엘랑 대위가 난관에 빠졌을 때 연락처를 줘 도와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엘랑 대위를 바라보았다.

엘랑 대위는 아주 간절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3지역 1스테이지만 깨면 안드로이드들을 강화할 수 있어요."

엘랑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께서 정말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해주시면, 고용비는 어떻게든 마련할 수도 있어요."

당분간은 이틀에 한 끼만 먹으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거든요. 라고 엘랑 대위가 조금은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엘랑 대위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인 듯싶었으니까.

나중의 일은 나중의 일이었고, 지금 당장 엘랑 대위를 돕지 못하면 엘랑 대위는 가차랜드를 접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름 친해지기도 했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엘랑 대위가 제법 마음에 든 상태였다.

방금 전에 만났던 한센 대위처럼 거만하지도 않았고, 그저 조금 모자라 보일 뿐 심성 자체는 착해 보였으니까.

도미닉 경은 문득 바로 옆에 앉은 도미니카 경을 쳐다보았다.

도미니카 경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 시선이 맞았다.

그 시선 속에서 말 없는 논의가 오간 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의 합의가 끝나고 난 뒤, 도미닉 경은 다시금 엘랑 대위를 바라보았다.

"저, 안 될까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 주눅이라도 든 듯 몸을 움츠리며 소심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도미닉 경은 환한 미소로 엘랑 대위를 안심시켰다.

"걱정 하지마시오. 도와주겠소. 그러니 허리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시오."

도미닉 경의 입에서 나온 도와주겠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엘랑 대위는 환한 얼굴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차례대로 와락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엘랑 대위는 정말로 기쁘다는 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저기, 점포 내에서는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편의점 알바생이 경고를 줄 정도로 힘차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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