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화 〉 [327화]신화급 스킨
* * *
"아, 걱정하지마세용. 가차석이 너무 많아서 그럴 거에용."
남작 부인이 너무나도 휘황찬란한 두 벌의 황금 갑옷을 보며 진땀을 흘렸다.
그녀의 말이 옳았는지, 저울에는 또 다른 마네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새로운 마네킹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리고 그 마네킹들에 옷이 하나씩 입혀질 때마다 저울이 점점 마네킹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가차석의 가치가 너무 높은 나머지 옷 한 벌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황금의 갑옷 뒤에도 꽤 비싸 보이는 옷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굉장히 각진 다이아몬드 갑옷이라던가, 사슬 하나하나가 백금으로 꾸며진 갑옷이라던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이자, 집에 전시해 두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주눅 들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갑옷들.
물론, 꼭 화려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왠지 허리띠 하나만 나오기도 했고, 패션쇼에 나올 것 같은 전위예술적인 옷들도 나왔으며, 동물을 본따 만든 옷 같은 것도 있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듯 마구 나타나는 옷들.
"...마음에 드는 것은 없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런 옷들을 보면서도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모든 의상들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의견을 취합한 듯했지만, 공존하기 힘든 부분은 과감하게 버린 것들이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용."
남작 부인은 지나치게 춤을 춘 듯 숨을 헐떡이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실망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아직 마지막 의식이 남았어용. 여봉? '스코트리 오케스트라'로 부탁해용!"
남작은 알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이내 엄청난 속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의 초당 일곱 번은 음이 바뀌는 빠른 템포의 곡은 과연 이 곡을 연주하는 남작이 숨은 쉬고 있는지를 의심할 만큼 빠른 곡이었다.
남작 부인과 티티스는 그 곡에 맞춰 엄청난 발놀림을 보여 주었다.
그녀들이 발로 한 박자를 맞출 때마다 엄청난 양의 요정 가루들이 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울에 올려진 가마솥은 사람 넷은 들어갈 정도로 컸지만, 그런데도 요정 가루와 가차석으로 가득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엄청난 빛이 다시금 새어 나왔다.
마치 가차석과 요정가루를 밀어내듯 새어 나오기 시작한 찬란한 빛은, 이내 한 줄기 두 줄기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폭발하듯 바론&바로네스의 내부를 빛으로 삼키고 창문을 통해 쏘아져 나갔다.
방금 전에 황금 갑옷들이 나올 때도 대단한 빛이었지만, 이는 그보다도 더 눈부시고 환한 빛이었다.
"...무언가 달라진 것 같소만."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시야를 회복한 것은 도미닉 경이었다.
그는 빛이 보이자마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뒤돌아섰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의 감은 정확해서, 그는 이 엄청난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옷들을 합성한 거에용..."
남작 부인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 빛의 사이에서 숨을 헐떡이며 그리 말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스킨은 합성을 통해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거든용."
하지만 합성이 확률인데다가, 확정으로 합성하려면 같은 등급이 몇 개는 필요해용. 하고 남작 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티티스를 데려온 거에용. 티티스만큼 합성에 뛰어난 사람은 없거든용."
이제 빛은 거의 사그라졌으나, 여전히 저울 위에 있는 두 개의 마네킹 만큼은 빛을 잃지 않았다.
티티스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잠시 그 마네킹들을 노려보더니 땅에 풀썩 쓰러졌고, 남작도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겼는지 숨을 헐떡이며 백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어후, 이거 아주 죽겠구만. 늙었더니 체력이 예전같지가 않아."
남작은 그리 말하며 자단나무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체력이 방전되었으니 조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조금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가차석을 조금 덜 지급했으면, 지금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만약은 만약이고, 이미 일은 일어났으니 도미닉 경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그는 서서히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마네킹들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건... 이건 대단하구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내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나타난 두 벌의 의상을 바라보았다.
일단 먼저 눈에 띄는 건 도미니카 경의 의상이었다.
검은색을 기반으로 금색 테두리를 친 것은 예전의 기사 예복과 똑같았으나, 그 디테일이 남달랐다.
드레스 모양으로 지어진 의상엔 금과 백금으로 된 갑옷 파츠가 달려 있었는데, 그 갑옷이 얼마나 얇고 튼튼하며 의상과 잘 어우러지는지 도미니카 경은 당장에라도 저 옷을 입고 싶다는 충격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갑주엔 수많은 훈장이 달려 있었는데, 이는 모두 페럴란트의 것들이었다.
어깨에서 허리로 내려오는 붉은 휘장은 마치 이 옷이 페럴란트의 대사나 총독, 혹은 대장군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도미닉 경의 의상도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경의 의상은 도미니카 경보다는 조금 단순했는데, 여전히 어깨의 금색 술과 휘장은 똑같았으나, 예전보다는 더욱 화려하고 찬란한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 옷을 입고 어딘가에 서 있노라면, 누군가가 다가와 그의 손등에 충성의 맹세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눈앞에 있는 옷들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이 옷들의 대단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에. 신화 급 스킨이라니용!"
너무나도 과격한 춤에 지쳐 있던 남작 부인은 체력을 조금 회복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차랜드에서 신화 급 스킨을 가진 이들은 손에 꼽았죵. 이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신화 급 스킨의 오너가 된 거에용!"
"신화 급이란 말이오?"
도미닉 경은 남작 부인의 말에 다시 한번 옷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옷이 말이오?"
도미닉 경의 말에 남작 부인이 답했다.
"물론이죵. 아, 물론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서 신화 급처럼 보이지는 않을지도 몰라용. 하지만..."
남작 부인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이끌고 마네킹 앞으로 데려갔다.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엄청난 힘이었다.
"일단 입어보고 말하죵. 이 옷엔 비밀이 있거든용."
남작 부인은 재밌겠다는 듯 두 사람에게 옷을 넘기고 갈아입으라고 해 보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 엄청난 옷을 입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었으나, 앞으로 입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일단 갈아입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옷을 다 갈아입자, 이제 여기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기사들에서 엄청난 실력을 가진 고위 기사로 변신한 이들이 있었다.
"대단하구려."
도미닉 경이 엄청난 착용감에 만족했다.
"이렇게나 갑옷이 주렁주렁 달린데도 가벼워."
도미니카 경이 옷의 무게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옷은 그들이 원하던 것처럼 언제라도 입을 수 있는 기본적인 스킨이면서도 편안 했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방금 전 남작 부인이 말끝을 흐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방금 전에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래요.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이 뭐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미 만족한 표정에서 새로운 기대를 품은 표정으로 남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건 간단해용. 변신하겠다고 생각해 보시겠어용?"
남작 부인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변신을 해 보라고 말했다.
"변신이란 말이오?"
"이 의상에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남작 부인의 말대로 속으로 변신이라고 외쳐보았다.
"아무 변화도 없... 뭐, 뭐지?"
도미니카 경은 변신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남작 부인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했으나, 그때 마침 도미니카 경의 의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의상 곳곳에 달려 있던 갑옷의 조각들이 확장되면서, 화려하면서도 가볍기 그지없는 전신 갑주로 변한 것이다.
전신 갑주는 백금을 엮어 만든 사슬갑옷 위에 황금과 은으로 된 판금 갑옷이었는데, 일반적인 판금 갑옷과는 다르게 몸에 쫙 달라붙는 다소 독특한 방식이었다.
갑옷의 아래에는 두 갈래로 갈라진 붉은 망토가 있었고, 허리춤에는 역시나 금과 백금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총이 은과 금으로 장식된 홀스터에 담겨 있었다.
"이, 이건?"
도미니카 경이 이 갑작스러운 변신에 놀란 사이, 도미니카 경의 머리 위에 백금과 금으로 된 월계관이 씌워졌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전투 성녀요, 반신의 모습이었다.
도미닉 경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도미닉 경은 기본 복장이 도미니카 경보다 덜 화려 했었던 만큼 더 화려하게 변신했는데, 역시나 백금으로 된 사슬 갑옷 위에 황금과 은으로 된 판금 갑옷, 머리 뒤에는 백금빛으로 빛나는 금속의 후광, 머리에는 역시나 백금과 금으로 된 월계관이 쓰여져 있었다.
다만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보다 더 나아간 점은, 바로...
"...눈에서 빛이 나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도미닉 경은 백금으로 된 안대를 쓰고 있었는데, 안대를 쓰지 않은 곳은 마치 신격화된 존재처럼 안광이 줄기줄기 나오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마치 반신들이 된 듯한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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