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27화 (327/528)

〈 327화 〉 [326화]신화급 스킨

* * *

"여봉. 저 왔어용... 어머! 이게 다 뭐죵?"

뒷방에서 단장을 끝마치고 나온 남작 부인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차석 주머니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걸로 스킨을 만들어달라고 하더군."

남작이 자단나무 파이프를 입에 물고 연기를 두어 번 빨아들였다.

아무래도 가차석의 양이 양인지라 조금 심호흡할 필요가 있었다.

"...저 정도면 정말 온 힘을 다해야겠네용. 당장 옷을 갈아입고와야겠어용. 아니, 옆 집도 불러야 할지도 몰라용."

"그러도록 하시오. 세상에. 이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화려한 옷이 나올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군."

남작 부인은 다시 뒷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문이 살짝 열린 탓에 안에서 통화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오랜만이에용, 티티스. 별일은 아니에용. 그저 오늘 큰일 하나를 잡았는뎅 혹시 같이 할 생각 있나 싶어서용..."

"잠시만 기다리게. 우리 부인이 조력자를 모으는 동안 몇 가지 질문을 좀 함세."

남작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겠노라고 말했다.

"첫째. 이 옷의 용도는 무엇인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각자 이렇게 말했다.

"언제 입어도 이상하지 않고, 편한 옷이오."

"기본 스킨으로 쓰기에 어울리면 좋겠어요."

"아하."

남작은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기본 스킨으로 쓸 수 있을 만큼 편하고, 오래오래 입을 수 있으며, 사석이든 공식 석상이든 어울릴 법한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참으로 어렵구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에 남작은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예산이 저렇게나 풍부하니 못 할 것이 뭐 있겠느냐 싶기도 했다.

"좋네. 다음 질문일세. 장식은 얼마나 있는 것이 좋겠나?"

"장식이라."

도미닉 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예 심플한 것도 좋지만, 그래도 비싼만큼 약간의 화려함도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스터 노바도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도미닉 경은 이제 4성이니 4성에 걸맞은 기본 스킨이 필요하다고.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가차랜드의 사람들의 복장들을 한 번씩 머릿속에 떠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적당히 화려한 정도라면 별 이상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너무 심플하거나 복잡한 옷은 눈에 좀 띄겠지만... 흠.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잠시 더 고민을 이어나가더니, 이내 답을 내렸다.

"장식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은 없소. 다만 우리가 말한 것들만 들어 있으면 되오."

"아. 그래. 나도 그 말 하고 싶었어."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마지막 질문일세. 스킨의 컨셉은 어떻게 잡을 생각인가?"

"기사 컨셉이오."

도미닉 경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는 듯 즉답했다.

"처음부터 기사였고, 지금까지 기사였으며 앞으로도 기사일 것이오."

"그게 아니라 시대적인... 뭐, 되었네. 이 부분은 조금 복고풍으로 가는 것도 좋겠지."

남작은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자단나무 파이프를 한 번 더 물었다.

그러고는 벽에 걸려 있던 백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평소에도 관리가 잘된지 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백파이프를.

도미닉 경은 그것이 스킨을 만들기 위한 공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작이 백 파이프를 들자마자 뒷방의 문이 열리며 남작 부인이 나타났다.

남작 부인은 녹색과 노란색으로 된 화사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는 화관을 쓰고 있었다.

"이 옷은 오랜만이네용. 그나저나 티티스는 언제 올지 모르겠네용."

"오랜만이야, 언니."

"어머, 왔넹?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닝!"

마침 남작 부인의 말을 들었는지, 문이 열리며 한 귀부인이 들어왔다.

풍채가 꽤 좋은 남작 부인과는 다르게 그녀는 깡마른 이였는데, 심각하게 말랐음에도 기괴하거나 무섭다기보단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오늘 너­무 예쁘당. 옛날 생각난당. 그칭?"

"뭐, 언니가 입고 오라고 해서 입고 오긴 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큰 작업을 하려고... 저게 뭐야!"

티티스라는 이름을 가진 파란색과 하늘색의 드레스의 귀부인은 귀찮다는 듯 말하면서도 자세는 올곧았는데, 그런 그녀도 산더미처럼 쌓인 엄청난 양의 가차석 더미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휘청거리고 말았다.

"...큰일이라더니 혹시 은행이라도 턴 거야 언니? 언젠가 내 그럴 줄 알았지. 원금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의 옷으론 월세도 버겁다고 뭐라 하더니만 일을 벌이기 전에 내게 상담이라도 하지 그랬어!"

티티스는 너무나도 많은 가차석에 분명 남작과 남작 부인이 어떤 범죄와 연루되었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가차석 더미는 그만큼 현실감이 없을 만큼 쌓여 있었으니까.

"티티스, 그게 아니란당. 이건 여기 계신 기사분들께서 옷을 지어 입겠다고 선뜻 내놓은 금액이양."

"...뭐야. 도미닉 경이랑 도미니카 경이잖아!"

티티스는 가차석 더미에서 눈을 돌려 이제서야 옆에 있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들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숨이 멎을 듯 놀랐다.

"나, 내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팬이라고 이야기했었던가?"

"했었징. 그래서 내가 널 부른 것 아니겠닝."

"고마워, 언니!"

티티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열렬한 팬 중 하나였다.

그녀는 예전에 중계되었던 촉수의 탐구자와 백수의 거인 간의 대결으로 도미닉 경의 팬이 된 사람이었으며, 이후 도미닉 경에 대해서 깊게 알아보다가 도미니카 경의 팬도 같이 된 경우였다.

"저기, 도미닉 경? 여기 싸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깡마른 귀부인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의 인형을 꺼내 들었다.

리틀 도미닉 경과 리틀 도미니카 경의 정품은 기본적으로 도미닉 경의 스킨들을 따라가지만, 도미닉 경의 스킨과 조금 다른 것을 보니 약간의 개조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얼마나 깨끗하게 닦았는지 눈부시게 반짝이는 판금 갑옷을 입은 리틀 도미닉 경의 등을 내민 티티스는 어디선가 유성 마커 하나를 꺼내 도미닉 경에게 건네주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했으나, 굳이 거절할 일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성 마커를 들었다.

"알겠소. 이름이?"

"이렇게 적어 주실 수 있을까요? 항상 '건강하시오, 티티스.'라고 말이에요."

"음. 그리하리다."

도미닉 경은 리틀 도미닉 경이 입은 판금 갑옷에 티티스가 말한 대로 문장을 적고는, 아래쪽에 도미닉 경이라는 서명까지 마쳤다.

"고마워요, 도미닉 경! 아, 혹시 도미니카 경도 싸인해 주실 수 있나요?"

티티스는 마치 10대 소녀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도미니카 경에게도 부탁했다.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처럼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리틀 도미니카 경의 갑옷에도 '번창하세요, 티티스. 도미니카 경.'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티티스는 파란 드레스에 구겨진 부분이 없는지 호들갑을 떨며 양팔로 두 인형을 꼭 껴안았다.

이 인형들은 집안 대대로 가보로 물려줄 예정이었다.

"티티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징?"

남작 부인이 헛기침하며 티티스에게 눈치를 주었다.

저 가차석에 걸맞은 옷을 만들기 위해 가장 믿을 만한 조력자를 데려온 것이었으니까.

"아, 그렇지. 그러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옷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가차석을 넘겨주었다는 거지?"

"맞앙."

남작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래 기다리게 해 버렸엉. 그러니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행."

"좋아. 오늘만큼은 있는 힘껏 돕겠어, 언니. 받기로 한 일당도 받지 않을게."

이미 난 일당을 받았거든. 티티스가 그리 말하며 인형들을 얌전히 한 곳에 놓아두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

남작이 두 귀부인에게 말했다.

"그럼용."

"준비 되었어요, 형부."

두 귀부인이 준비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작은 백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는 힘껏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저번의 잔잔한 음악과는 달리, 아주 즐겁고 활기찬 음악이었다.

음악은 점점 더 템포가 빨라지더니, 이내 숨을 쉬기는 하는 것일까 라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제 우리도 가장."

"그래요, 언니."

남작 부인과 티티스는 그 활기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네킹과 가마솥이 있는 저울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마법의 주문들을 외우기 시작한 귀부인들은 이제 무아지경에 빠져 더욱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등 뒤에 요정의 날개가 생기고, 그녀들의 손에 요정의 지팡이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하늘에 떠오른 둘은 반짝이는 가루를 가마솥에 집어넣고, 놀라운 마술을 부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가차석을 줄지어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가차석이 가마솥에 쌓일 때마다, 가마솥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강철, 다음엔 청동, 다음엔 은, 다음엔 금, 다음엔 백금, 다음엔 무지개처럼 찬란한 금강석의 빛깔을 넘어 마침내 태초의 혼돈에서 빛이 생겨나듯, 아주 찬란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확실히 오래 걸리고, 격렬했으며, 더욱 찬란한 절차가 끝나고 나자...

"와 완성이네용."

"아이고, 삭신이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눈앞에, 아주 찬란한 빛의 옷 두 벌이 나타났다.

황금으로 된 실로 자아낸 옷에, 황금으로 된 휘장과 황금으로 된 장식이 가득한 황금 갑옷 두 벌이.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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