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324화]일상
* * *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와의 만남 이후, 제대로 된 일상을 즐겼다.
버그도, 핵도,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으며, 사건도, 사고도 없는 진짜배기 일상이었다.
심지어 날도 맑고, 햇볕도 따스한 탓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시내로 나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있었다.
"이런 일상이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려."
"잠깐, 그만. 그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어째서 그렇소?"
"그 말만 하면 꼭 사건이 터지거든."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발언에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다행인지 아닌지, 도미니카 경이 걱정한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하긴, 가차랜드도 사람사는 곳인데 늘 사건만 터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걱정도 팔자구려."
도미닉 경은 아직 반이나 남은 커피잔을 들어 홀짝였다.
이렇게나 좋은 날에 무슨 일이 터지겠냐는 안일한 마음가짐.
"아니, 그래도"
도미니카 경은 그런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과민반응하는가 싶으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도미니카 경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저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만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도미니카 경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좀 피곤한 모양이구려. 저번에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행동에 그럴 수 있다는 듯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그러게. 아무래도 감각이 이상한 모양이야."
도미니카 경은 골목길을 바라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미니카 경은 그럴 리 없다는 듯 몇 번이고 그 골목을 노려보았으나,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리는 없었다.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한 도미니카 경은 다시 앉아서 포크로 티라미수를 괜히 쿡쿡 찔렀다.
"...정말 피곤하긴 한가 보오. 엉뚱한 것에는 반응하더니, 이건 반응하지 않는구려."
"뭐?"
도미니카 경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오른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손가락을 따라 홱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고양이 발로 살금살금 걸어오던 앨리스가 있었다.
"아, 스승님! 제가 쉿이라고 했는데!"
앨리스는 들킨 것이 부끄러운 듯 괜히 도미닉 경에게 화를 냈다.
앨리스는 그새 더 큰 것인지 도미닉 경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늘씬한 미녀가 되었다.
실제 나이가 10대인 것은 변함없었고, 정신 연령도 3~4살 장난꾸러기인 것도 변함없었지만 말이다.
"몰래 다가오기엔 갑옷이 너무 잘그락거리지 않느냐."
"...아!"
도미닉 경은 앨리스가 입은 사슬 갑옷이 은밀 행동엔 별로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앨리스는 무언가 깨달은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음부턴 판금 갑옷을 입고 올게요!"
"...갑옷인 이상 거기서 거기다만... 아니, 되었다. 아직 성장기이니 사기엔 그렇지 않느냐. 사슬갑옷으로도 충분하다."
"네!"
도미닉 경은 앨리스에게 갑옷에 대해서 조언해주었다.
판금 갑옷은 어느 정도 여유분을 두어 신체가 조금 성장해도 아예 못 입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그것도 어느 정도지 앨리스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에겐 맞지 않았다.
앨리스는 그런 사실까지는 몰랐으나, 스승님의 말은 항상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납득하고 판금 갑옷을 입는 걸 포기했다.
"그나저나 시내엔 무슨 일로"
"우리 아이가 옷이 작아져서요."
도미닉 경의 대답은 하늘 높은 데서 들려왔다.
도미닉 경이 하늘을 바라보자, 거기엔 하늘에 닿을 듯 큰 키의 서리 거인, 앨리스의 어머니가 있었다.
카페테라스에 있는 파라솔에 가려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앨리스의 어머니의 시선은, 바로 방금 전 도미니카 경이 골목에서 느꼈던 시선이기도 했다.
파라솔로 인해 잘 구분이 가지 않아, 고개를 숙여 얼굴을 확인했다.
"앨리스의 어머님께서 같이 계시는 줄은 몰랐구려. 이거, 실례를 했소."
도미닉 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법에 맞게 고개를 숙였다.
앨리스만 보느라 그 보호자를 보지 못했던 건 큰 결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앨리스의 어머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도 우연히 두분을 보고 온거라..."
앨리스의 어머니의 손은 웬만한 벽보다 두꺼웠기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하마터면 그 손사래에 날아갈 뻔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둘은 탱커였고,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 이 엄청난 풍압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이후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다.
약간의 잡담과 덕담, 그리고 내일 또 훈련이라는 말을 들은 앨리스의 낙담...
"내일 꼭 오너라."
"네..."
"앨리스? 스승님껜 환한 미소로"
"아, 괜찮소. 사실, 저 나이 땐 언제나 놀고 싶은 마음이지 않소."
"그렇긴 하죠."
그렇게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눈 앨리스와 앨리스의 어머니는 이내 옷 가게를 둘러본다며 도미닉 경과 헤어졌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저 멀리 행복한 듯 방방 뛰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옷이라."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앨리스와 그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도미니카 경을 향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옷을 산 지 꽤 되지 않았소?"
"응? 어제도 샀잖아. 티셔츠."
도미니카 경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런 일상적인 옷 말고, 스킨 같은 걸 말하는 거요."
"스킨은 많잖아?"
"전부 사은품마냥 얻은 것들이지 않소. 직접 산 지는 꽤 된 것 같은데."
"...그러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스스로가 직접 스킨을 샀던 적이 꽤 오래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행한 업적이 너무 많은 나머지 보상으로 받은 스킨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도미닉 경 자신도 지금 창고에 박혀 있는 스킨들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질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도미닉 경의 호감을 사기 위해 다른 시민들이 준 선물들도 그대로 있었으니 아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수의 스킨이 있을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은근슬쩍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지금도 도미닉 경은 처음으로 얻은 스킨이자, 직접 돈을 주고 구입했던 기사 정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 만들었을 땐 찬란한 황금빛이었지만, 이제는 빛이 바래 연한 노랑색처럼 보이는 술.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온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여기저기 낡아버린 천.
"...바꿀 때가 된 것 같소."
도미닉 경은 꽤 이 옷에 애착이 강했다.
다른 스킨들도 많았지만, 이 스킨만큼 오래 쓴 스킨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한들, 이리 낡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기사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는 노릇.
도미닉 경은 슬슬 새로운 옷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했다.
"왜? 기존에 있던 스킨 중 하나로 대체하지 그래?"
"그러기엔 다른 스킨들은 왠지 애착이 안 가오. 게다가 너무 화려해서 그런지 오래 입기엔 부담스럽기도하고."
그럼 그 황금 밧줄로 치장된 옷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옷들에 비해 지금 입고 있는 기사 정복은 깔끔할 뿐, 화려하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다.
그런 작은 차이가 도미닉 경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리라.
"오랜만에 그곳에 들려야겠군."
도미닉 경은 얼마 남지 않은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생각을 했으니,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거기 가게?"
"그렇소. 같이 가시겠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도 같이 갈 것인지 물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더니, 남은 티라미수를 우걱우걱 씹어먹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 옷은 언제나 환영이지."
"그럴 줄 알았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따라올 것으로 생각하던 중이었다.
도미니카 경과 도미닉 경은 하루에 한 번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청결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옷을 사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엉망진창인 논리였지만 도미닉 경은 곧 도미니카 경. 도미니카 경도 위와 비슷한 논리로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나저나 이번엔 좀 더 좋은 걸 사고 싶은데."
"뭐, 지금까지 벌어둔 것이 많지 않소."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보상으로 모아둔 가차석을 생각했다.
집을 사고 난 이후에 가차석을 거의 쓰지 않았으니, 아마 꽤 쌓여 있을 것이었다.
만일 부족하다면, 저번에 갔던 그곳에서 '환전'하면 되리라.
"아직도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군."
"뭐가?"
"아니, 아니오. 일단 가보도록 합시다. 돈은 충분하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상업 구역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스킨을 샀던 곳, 바론&바로네스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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