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323화]4성의 가치 후일담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엘랑 대위는 훌륭하게 프롤로그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가차랜드에서는 패치가 하나 추가되었다.
[특정 OS에 특정 백신이 깔려 있을 경우 데이터가 일부 삭제되는 버그를 수정했습니다.]
[저희의 운영 미숙으로 여러분들께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드리며, 보상으로 1200가차석과 3성 확정 고용권을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지휘관 분들은 어떤 체제에서 어떤 백신을 쓰더라도 여러분은 안전하게 가차랜드에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P.S : ...아뇨. 그 체제랑 그 백신은 아닙니다. 그건 제외하도록 하죠. 와 세상에. 그런 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체제와 그 백신이 무엇인지는 시스템만 알 뿐이겠지만, 도미닉 경은 시스템의 메시지를 통해 엘랑 대위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소, 엘랑 대위?"
"아, 네!"
엘랑 대위는 카페에서 산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빨아 마시다가 도미닉 경의 말에 황급하게 대답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설마 백신이 문제였을 줄이야.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시도했으니 당연히 안 되는 게 맞죠."
엘랑 대위는 그때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그 거대한 충격이 말 그대로 크래시가 난 거라니, 설마 그 정도로 이 세계가 유머러스할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엘랑 대위는 그 무시무시한 충격의 전말을 깨닫고는 몸을 오소소 떨었으나, 이내 다 옛날 일이라는 듯 다시 오렌지 주스를 빨아 마셨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여기선 정말... 맛이 느껴져요."
"...? 당연한 것 아니오?"
"네? 아. 그러네요. 가차랜드에 사시는 시민분들껜 당연한 일이었겠구나. 맞네요."
엘랑 대위는 가차랜드의 특수성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들은 외부에서 온 이들이니 그렇다고 쳐도, 가차랜드의 사람들에겐 여긴 현실이나 다름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아, 잘 마셨다. 고마워요, 도미닉 경. 덕분에 잘 마셨어요."
엘랑 대위는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시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을 듣자 하니, 엘랑 대위는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에게 음료를 한 잔 얻어마신 모양이었다.
"별것 아니오. 그나저나 이제 뭘 할 예정이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금 질문했다.
그러자 엘랑 대위는 땋은 머리 한쪽을 배배 꼬면서 히죽 웃었다.
"이번에 1200가차석과 3성 선택권을 얻었겠다, 거기에 오늘 월급도 들어왔겠다..."
어딘가 뒤틀린 듯한 환한 미소를 말이다.
"당장 카드 팩 까러 가야죠."
그건, 아직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한 망령의 미소였다.
...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오늘도 가차튜브에 올릴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편집자가 알아서 다 해줬겠지만, 하필이면 오늘 일하던 편집자가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병원에 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아임 낫 리틀도 편집자 출신이었기에 편집은 나름 순탄하게 되고 있었으나...
"...오늘 신작 온라인 축구 게임 나오는 날이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손 만큼이나, 그녀의 입은 열심히 투덜대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수비수로 기용한 멋들어진 전략을 구상해 뒀는데, 편집 때문에 하지도 못하고..."
아임 낫 리틀은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영상 편집 기술은 매우 뛰어난 편이었기에, 순식간에 가차튜브용 영상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녀 본인의 영상이라는 것도 빠른 편집에 영향이 있었다.
"으, 다 했다. 이제 이걸 올리고... 수익 창출 심사를 받으면... 됐다."
아임 낫 리틀은 빨리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렇게나 영상을 올렸다.
물론, 그녀가 편집자로 일한 기간과 스트리머와 가차튜버로 생활한 기간을 생각하면, 웬만해선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자, 도미닉 경이랑 도미니카 경 카드가... 어라?"
아임 낫 리틀은 퀭한 얼굴로 축구 게임에 입력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임 낫 리틀은 화면에 뜬 한 영상을 보았는데, 1분 안쪽의 짧은 영상의 제목 아래에는 실시간 인기 급상승 동영상 #3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임 낫 리틀은 이런 종류의 짧은 영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그녀는 무심코 그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에 나온 장소는 가차랜드의 사람들이라면 웬만해서는 아는 곳이었는데, 바로 카드 팩 교환소였다.
영상 속에는 금발에 땋은 머리를 한 공군 장교... 로 보이는 지휘관과 그 주변에 모인 다른 지휘관들이 보였다.
["야, 독하다 독해. 아직도 뽑아?"]
["아직 4성 패치 안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3성도 제멋대로 뽑아 놓고는"]
영상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은 명백히 화면의 가운데에 있는 지휘관을 언급하고 있었다.
["저기, 지휘관? 이제 가자. 다음에, 다음에 또 오자. 이러다가 라면 값도 안 남겠어!"]
["응. 지휘관. 지금 엄청 이상함."]
["스즈키와 리의 말이 맞습니다. 조금은 진정하시는 것이"]
["으아! 왜! 왜 나만 운 없어? 왜 나만 운 없어어엉엉..."]
결국 원하는 것을 뽑지 못했는지,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한 지휘관.
["그... 도미닉 경은 아직 4성이 없습..."]
["그걸 먼저 말해주셨어야죠!"]
["아니, 말했..."]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아마 영상을 찍은 사람과 영상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인 모양이던지, 제목은 영상 속 지휘관을 비웃는 듯한 문장이었다.
댓글 창도 크게 다를 것은 없어서, 대부분 영상 속의 지휘관을 놀리는 댓글들로 가득했다.
[지휘관 평균 지능 수준ㅋㅋㅋㅋ 1,730 1]
엌ㅋㅋ 지능 슈듄ㅋㅋㅋ이게...지휘관? 윽. 역겨워.그 와중에 비추 실명젴ㅋㅋㅋ
"이런 걸 왜 보고 즐기는 거람."
아임 낫 리틀은 다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이런 거 보고 웃는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친구가 없으며 어딘가 멍청한구석이 있는 사람일 거야. 암. 그렇고말고."
절대 얼마 전에 4성 도미닉 경을 뽑으려다가 비슷한 경험해서는 절대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아임 낫 리틀은 바로 마우스를 움직여 비추천을 클릭했다.
[지휘관 평균 지능 수준ㅋㅋㅋㅋ 1,787 2]
어째서인지 저 지휘관의 모습이, 자기와 겹쳐 보여서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
어째서인지 가차랜드의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된 마왕성의 입구.
검은 늑대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 수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마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쫓아오지 않는 거 맞지? 그렇지?"
"몇 분 전부터 그렇게 말했어..."
검은 늑대 소녀의 꼬리에 매달려 거의 고문받듯 끌려다닌 흰 가운의 소녀가 힘없이 말했다.
"그, 그랬나? 미안."
검은 늑대 소녀가 흰 가운의 소녀에게 사과했다.
이들은 방금 전까지 이면 세계에 있다가, 어떠한 방법으로 다시 가차랜드로 도망쳐 온 상태였다.
재밌는 사실은, 그들은 지휘관이 없는 상태로 이면 세계와 가차랜드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건 바로, 그들이 소속된 곳과 관련이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정체를 알려주거나 하진 않았지, 우리?"
"응. 종이 인형 극단이라는 건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어."
종이 인형 극단!
그것은 가차랜드에 남아 있는 8개의 대형 클랜 중 하나였다.
외적으로는 마왕과 용사가 소속되어 유명해진 곳이기도 했으며, 내적으로는 사실상 용사파티와 마왕군이 뒤죽박죽 섞인 메르헨적인 클랜이기도 했다.
"마왕님께 알려야 할 것 같은데. 근데... 이번엔 내가 못하겠어! 네가 해, 베아 볼프!"
"뭐? 이번에 네 차례였잖아! 저번에 내가 했으니까, 이번엔 네가 할 차례라고, 매드 랭!"
두 소녀는 갑자기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마왕님께 누가 보고할 것이냐에 대한 다툼이었다.
그들은 어째서 보고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건 바로, 마왕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어떻게 말해... 분명 실망하실거야..."
"눈물이 글썽거리실 거라고..."
아니, 마왕이 잔혹한 것이 아니라, 마왕이 실망할 미래가 그들에게 잔혹하게 다가온 것이었다.
마왕 뚜 르 방과 용사 뽀 르 작의 매력에 빠진 이상, 마왕의 눈물은 그 어떤 고문보다 잔혹한 형벌이 되리라.
"좋아. 이번엔 내가 할게. 대신 네가 다음 세 번을 하는 거야! 마왕님의 눈물을 볼 지도 모르는데, 이자는 붙여야지!"
"오케이! 납득했어. 네 번도 해 줄 용의가 있어!"
그렇게 한참을 다투던 두 소녀는, 마침내 극적인 합의를 보았다.
하얀 가운의 소녀가 이번에도 보고를 하는 대신, 다음 세 번의 보고를 검은 늑대 소녀가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극적인 타결을 한 둘은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여 협상이 완료되었음을 서로에게 확인시켰다.
"아, 맞다. 용사님께도 이거 반납해야 하는데."
하얀 가운의 소녀가 주머니에서 말랑말랑한 봉제 인장을 꺼내 들었다.
천과 솜으로 만들어진 방패 모양의 자크 공작가 인장.
"내가 마왕님께 보고하는 동안에, 넌 용사님께 이거 반납하고 와."
"왜? 좀 더 가지고 있어도"
"오늘이 반납일이라서 내일이면 연체료 물어야 하거든."
"당장 반납하고 올께!"
그렇게 두 소녀는 각자의 길로 갈라져 마왕과 용사에게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 넘치는 클랜, 종이 인형 극단의 본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