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319화]4성의 가치
* * *
도미닉 경 일행은 엘랑 대위와 함께 스토리 모드 로비를 찾았다.
도미닉 경이 스토리 모드에 한 발을 내딛자, 도미닉 경의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보였다.
[클랜에 들었음으로, 스토리 모드가 개편됩니다.]
[1~4지역 HARD가 열렸습니다! 하드 모드는 제한 횟수가 있지만 일반 스토리모드보다 더 높은 보상을 제시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이면 세계 스토리가 열립니다. 이면 세계 스토리를 플레이하기 위해선 최소 현장 지원 타격대 지휘관 한 명과 제대 하나가 필요합니다.]
[이벤트 스토리가 끝날 경우, 이후 상시 이벤트에서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시 이벤트에서는 재화를 조금 더 적게 수집합니다.]
가차랜드에서의 패치는 변화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세계가 격변하고, 삶이 변화하는 것.
가끔은 소소한 패치도 있지만, 가차랜드에서 패치란 대개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오는 법이었다.
이는 스토리 모드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스토리 모드도 약간의 개편을 통해 새로운 것들이 잔뜩 생겨난 것이다.
물론 도미닉 경은 그 변화에 흥미를 표했으나, 아쉽게도 도미닉 경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기로군. 엘랑? 빨리 가자고. 일단 제대 등록도 하고."
"아, 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박춘배와 말레이 4명을 하나의 제대로 묶었다.
임시 제대였기에 이후 새로운 카드를 뽑으면 사라질 제대였으나, 엘랑 대위는 감격에 차올랐다.
무려 1113번의 기회 끝에 제대로 된 제대를 꾸린 것이었다.
"감동이네요..."
"이봐, 감동은 나중에 하고 빨리 가자고. 카드 팩 교환소는 언제 열리지?"
"잠시만요... 아. 여기 적힌대로라면 13을 클리어해야 한다고 해요."
"13까지라. 그럼 충분하지."
박춘배는 의욕이 가득한 표정으로 팔을 붕붕 돌렸다.
얼마나 팔을 세게 돌렸는지 그가 쓴 카우보이모자가 그 풍압에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런 박춘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욕이 너무 과해도 문제로군."
"그나저나 프롤로그 스토리에 우리가 필요하기나 할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1지역에서의 난이도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1지역의 난이도를 감안 할 때, 프롤로그는 정말 누구라도 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잠시만요! 갑자기 도움말이 떠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그럼 그럼. 얼마든지 기다리고 말고."
엘랑 대위는 이면 세계로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도움말을 빠르게 넘기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도움말을 넘겼는지, 작은 소리로 모두를 불렀다.
"다 됐어요! 이제 모이시면 바로 출발할게요!"
엘랑 대위의 말에 모두가 엘랑 대위 곁으로 모였다.
흉갑기병과 근대기병과 카우보이와 무법자.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네 사람은, 엘랑 대위의 손짓 한 번에 새로운 세계로 이동했다.
...
paenituit Dominum quod hominem fecisset in terra. Et tactusdolorecordis intrinsecus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창세기 6장 6절.
...
"으,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미닉 경은 놀랍게도 이동 도중 잠시 정신을 잃었다.
프롤로그로 이동하는 동안 어떤 거대한 무언가가 도미닉 경을 후려친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 무언가에 붙어 있는 기계 부품들을 얼핏 본 기억이 들었다.
아마, 그것들이 바로 안드로이드들이 고장 난 이유가 아니었을까.
도미닉 경은 일어나자마자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면 세계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가차랜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는데, 다른 것을 몇 가지 꼽자면 그건 바로...
"맙소사. 세상이 불타고 있군."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늘에 있는 구름에서는 보랏빛 번개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는데, 번개들이 한 번 하늘을 가를 때마다 차원이 갈라지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도미닉 경은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가차랜드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으나, 모두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무너져 있거나, 박살 나 있거나, 가루가 되어 있거나, 혹은 검게 그슬려 있거나.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한 곳에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면 세계는 끔찍한 곳이었다.
도미닉 경은 혹시나 모를 습격에 대비해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조심하시오. 아무래도 불길하기 그지없"
도미닉 경은 습관처럼 주변에 있을 이에게 경고를 했으나, 문득 도미닉 경은 이곳에 도미닉 경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거대한 무언가에 부딪치면서 지휘관과 도미닉 경을 비롯한 모두가 흩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근처를 돌며 도미니카 경과 지휘관을 찾아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박춘배와 말레이를 굳이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그 엄청난 충격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였다.
도미닉 경은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면서 이곳이 소용돌이치는 차원 사이에 떠 있는 섬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차랜드의 일부가 복사되어 뜯겨진 것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의 끝에서 떨어진 돌멩이가 차원의 틈새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주 끔찍하게 갈려 나가면서.
"이면 세계란 곳은... 재밌군."
도미닉 경은 간만에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건과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어서 지쳐 있던 상태였다면, 이번 일은 새롭고 신선하며 도미닉 경의 흥미를 자아내는 일이었으니까.
스스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질 않는 법이었다.
도미닉 경은 아직은 히죽히죽 웃는 정도의 표정으로 점점 수색 범위를 넓혀갔다.
도미닉 경의 압도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쉬지 않고 걸은 끝에 도미닉 경은 첫 번째 인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도미니카 경이었다.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이네. 한참 찾았어."
도미니카 경은 경계하며 움직이다가 도미닉 경을 만나자마자 경계 상태를 풀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니 살짝 긴장이 풀린 것이었다.
"괜찮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상태를 확인했다.
도미닉 경과 그가 속한 파티는 기본적으로 11.25%... 아니, 이제는 13.5%에 달하는 피해 감소 효과를 얻기에 걱정이 없었으나, 제대가 와해되면서 버프가 제대로 유지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뭐, 다행스럽게도 피해 감소 효과가 제대로 빛을 발해서 말이야. 네 덕분이네. 고마워."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감사를 전했다.
"별말씀을."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예의 바르게 답했다.
그렇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합류해 다시금 이 빌딩 섬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했소?"
"보긴 했지. 내가보기엔 아마 말레이였던 것 같아."
"같다는 건 무슨 소리요?"
"충격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거든."
"...역시나."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과 같은 순수한 탱커들조차 그 충격에 기절할 정도인데, 몸이 약한 딜러가 버티기엔 무리였을 테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엘랑 대위와 박춘배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으니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아."
"그랬으면 좋겠구려... 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긍정하려다가 문득 건물 잔해 사이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다급하게 뛰어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는데, 그건 사람의 팔이었다.
그 팔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움찔거리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것을 보자마자 홀린 듯이 건물의 잔해를 치웠다.
그리고 건물의 잔해 아래에서 쓰러진 채 기절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엘랑 대위."
현장 지원 타격대의 지휘관, 엘랑 대위였다.
"뭐야? 엘랑 대위야?"
"그렇소. 일단 남은 잔해를 좀 치웁시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남아 있는 잔해를 치우며 엘랑 대위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다행스럽게도 엘랑 대위는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만 보일 뿐, 겉으로는 큰 상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속까지 멀쩡하다는 보장은 없는 법.
도미닉 경은 일단 엘랑 대위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랑 대위! 정신 차리시오! 도미니카 경? 내 인벤토리에 포션이 하나 있을 거요. 그걸 꺼내주시오!"
"알았어!"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도미니카 경은 그 인벤토리 안에 손을 집어넣고는 휘적거리더니, 이내 작은 포션 하나를 꺼냈다.
이 포션은 도미닉 경이 처음 가차랜드에 왔을 때 친절하지 않은 듯 친절한 한 시민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꺼낸 포션을 들고 엘랑 대위의 입에 흘려보냈다.
포션의 절반은 목으로 흘러들어갔지만, 절반은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포션은 포션인지, 엘랑 대위의 눈꺼풀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가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자 계속해서 엘랑 대위를 부르며 정신을 깨우려 노력했다.
"엘랑 대위! 엘랑 대위!"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을 정말 들은 것인지, 조금씩 더 도미닉 경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외침이 더 이어진 끝에, 엘랑 대위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도미닉... 장군님...?"
물론 눈을 떴다고 해서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엘랑 대위의 모습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엘랑 대위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으니까.
"장군님... 여긴 대체...?"
"기억나지 않소? 이면 세계요."
"이면 세계... 그렇군요..."
그러나 어쩌면, 그건 헛소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말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장군님... 한 가지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뭐요?"
아주 큰 정신적 이상이.
"저는... 누굽니까...?"
엘랑 대위의 말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얼굴이 싸악 굳었다.
아무래도 엘랑 대위는, 기억을 잃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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