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315화]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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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원 클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 때 용을 꿈꾸었던 이무기는, 제국을 꿈꾸었던 도전자는 정말로 어이없게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로 칭원 클랜의 클랜장은 클랜이 와해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칭원 클랜의 자리는, 현장 지원 타격대(F.A.S.T, Field Assistant Strike Team)이라는 수수께끼의 클랜이 자리했다.
그 어떤 이들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클랜이.
그 외에도 여러 클랜이 합병되거나 사라지며 대체적으로 8개의 클랜이 결정되고 있었다.
탱커 노조, 동방 연합, 연맹처럼 대외적으로 알려진 곳은 물론이요, 용병단, 요한 양치기 원정대, 뤼미에르처럼 인지도가 조금 낮은 클랜들도 있었다.
물론 종이 인형 극단이나 현장 지원 타격대처럼 그 정체를 쉽게 알아내기 어려운 곳까지, 총 8개의 대형 클랜이 확정된 듯싶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방금 전 4성 승급 시험을 보러 왔다는 점이다.
...
"여긴 참 오랜만에 와보는 기분이 드오."
"그러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오랜만에 행정부에 있는 성급 심사장에 도착했다.
곧 있으면 베타 테스트가 시작되니, 그 전에 4성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지금까지의 업적들과 행적들로 충분히 4성이 되고도 남았으나,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이군요, 도미닉 경.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은 문득 저번 심사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세 갈래로 뻗은 노란 머리와 두 갈래로 뻗은 노란 수염.
마치 별과 같은 모습의 노란 양복의 사나이.
저번에도 도미닉 경을 심사했던 이였다.
"뭐, 도미닉 경이라면 볼 것도 없지요. 잠시 카드를 좀 주시겠습니까? 아, 도미니카 경도 말이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심사위원에게 카드를 넘겼다.
심사위원은 잠시 카드에 결격사유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별 하나를 올려 돌려주었다.
"이제 여러분들도 4성이군요. 도미닉 경을 본 지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은 것만 같은데..."
심사위원은 간만에 정말 대단한 이가 나왔다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추켜세웠다.
"물론, 가차랜드 전체로 보면 17번째로 빠른 속도입니다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죠."
도미닉 경은 심사위원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1년도 되지 않아 4성을 찍은 도미닉 경도 충분히 빠른 속도였지만, 도미닉 경보다 빠른 16명의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일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라면 그리 걱정은 없지만, 4성이 되었다고 해서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했던 16명 중 1위는 4성까지 고작 7일 3시간 22분이 걸렸을 뿐이지만, 수만 년째 5성을 도전하고 있으니까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4성을 단 순간, 도미닉 경의 눈앞에는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도미닉 경은 시스템 메시지의 해일을 예상했으나, 뜻밖에 이번엔 간소한 편이었다.
[4성으로 성급이 올라가며, 전체적인 성능이 크게 오릅니다.]
[업적 [만우절] 달성으로 [별로 안 행복한 도미닉 씨] 스킨을 획득... 했습니다.]
[업적 [붉은 경고등] 달성으로 [강습 지휘관 도미닉 장군] 스킨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엑소시스트] 달성으로 [이단 심판관 도미닉 경] 스킨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글리치 부르크의 악몽] 달성으로 [8bit 도미닉 경] 스킨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드래곤 슬레이어] 달성으로 [용살자 도미닉 경] 스킨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상투스, 상투스] 달성으로 [성자 상투스 도미니쿠스] 스킨을 획득했습니다.]
[스킨에 따라 새로운 특수 능력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현재 스킨이 5개 이상입니다. 스킨은 개수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잘되었네요!]
3성이 새로운 특성들을 여는 장이었다면, 4성은 스킨들이 나타났다.
이는 4성이 된 기념으로 시스템이 주는 선물이었으며, 3성 때에 비해 다소 밋밋한 보상을 커버하는 놀라운 보상이었다.
도미닉 경은 전체적으로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스킨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담긴 마네킹. 그리고 그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의상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강습 지휘관 도미닉 장군 스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다른 것들은 꽤 익숙한 느낌이었으나, 이것만큼은 많이 이질적인 모습이었던 탓이다.
도미닉 경의 손길이 닿자, 도미닉 경은 흉갑기병 지휘관이 되었는데, 금으로 장식된 용기병 투구와 붉은 비단에 금실로 수놓아진 어깨 휘장, 그리고 가슴에 가득한 훈장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투구에는 별이 4개가 있었는데, 아마 4성이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도미닉 경은 아크릴 판에 비친 이 멋진 스킨에 감탄하다가, 문득 아크릴 판에 비치는 또 다른 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도미닉 경이 그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새로운 스킨을 입은 도미니카 경이 있었는데, 도미니카 경은 서부극에서 나올 법한 군인처럼 기병 모자에 기병 군복을 입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도미니카 경은 문득 도미닉 경을 돌아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처럼 피식 웃고 말았다.
뭔가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의상이 다소 어색했던 탓이었다.
"평생 말이라곤 타지 않았는데, 왜 기병용 검을 들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건 내가 할 말이오. 부츠에 달린 것을 보니 기병용 의상 같은데, 어색하기 그지없구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서로의 의상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그때, 누군가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는 검은 코트에 검은 모자를 쓰고 등에 관을 메고 있었는데, 손에는 제법 날카롭게 갈린 삽이 들려져 있었다.
"저기, 죄송한데 그런 옷은 얼마 정도 하나요?"
"아, 이건 4성으로 승급해서 받은 거요."
도미닉 경은 갑자기 끼어든 사람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승급도 하고 새로운 스킨도 받아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굳이날을 세울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아직 전 멀었네요."
검은 코트에 검은 모자를 쓰고 관을 멘 사람은 도미닉 경의 말에 시무룩해졌다.
"그나저나 낯이 익군...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소?"
도미닉 경은 그런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응? 어... 아! 그때 절 구해주신 분!"
남자는 도미닉 경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구해줬다니? 누굴?"
"아, 전에 내가 뉴비 살해 누명을 쓰고 잡혀갔을 때"
"어? 그런 적이 있었어?"
아. 도미닉 경은 문득 그런 사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를 되돌리는 검으로 그 과거는 지워진 상태였다.
"아니, 그러니까... 뉴비를 살해하려는 이들을 발견하고 도와준 적이 있었소."
"아."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이라면, 사건을 몰고 다니는 도미닉 경이라면 뉴비 살해 현장에 연루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니까.
"그땐 감사했습니다! 아, 제 이름부터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전 네크로맨서 리브레라고 합니다!"
스스로 리브레라고 소개한 네크로맨서는 도미닉 경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얼마나 깊게 고개를 숙였던지, 등에 메고 있던 관이 주르르 딸려와 앞으로 쏠릴 정도였다.
"난 도미닉 경이라고 하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도미닉 경... 아! 그 도미닉 경이시군요! 가차랜드에서 유명한 탱커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옆에 계신 분은...?"
"페럴란트의 도미니카 경. 만나서 반가워, 친구."
"세상에! 역시 도미니카 경이셨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리브레는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들어? 누구에게?"
도미니카 경이 누구에게 들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리브레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동생님... 아니, 동생 분들께요. 밴시 박사님과 팬텀 박사님이랑 같은 클랜이거든요."
"뤼미에르?"
"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리브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미하고 팬텀 박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뤼미에르 클랜은 매뉴팩토룸과 클랜전 중이라고 들었소만."
도미닉 경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클랜의 근황을 물었다.
"어떻게 되었소?"
"아, 저희 클랜이 이겼어요! 대량생산은 진보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니까요!"
리브레는 당연하다는 듯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요. 절 구해주신 분을 다시 만났을 뿐 아니라, 이렇게나 멋진 분이란 걸 알았으니까요!"
리브레는 꽤 순수한 성격인 듯,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만났다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다.
"그나저나, 여기에 있다는 소리는 성급 심사를 하러 왔다는 것 아니오?"
도미닉 경은 문득 여기가 성급 심사장이며, 성급 심사를 하러 온 사람들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추측은 정확했던지, 리브레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도미닉 경, 죄송해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제가 지금 성급 심사 때문에"
"더 말하지 않아도 좋소. 이해하니 어서 가보시오."
"감사합니다!"
리브레는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가며 도미닉 경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네크로맨서라고 한 것을 보면 마법사 계열일 텐데, 그 점을 감안 하면 꽤 놀라운 속도였다.
"자, 그럼..."
도미니카 경이 리브레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이제 우린 뭘 해야 좋을까?"
"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4성도 되었겠다, 잠깐은 목표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고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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