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화 〉 [313화]드래곤 슬레이어
* * *
비늘 하나하나가 다 큰 호랑이 가죽이나 곰 가죽과도 같고, 몸 길이만 해도 쭉 펼치면 수백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용의 등 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의 방패가 용의 거친 피부에 내리찍혔다.
"큿!"
그러나 용은 약간의 신음 소리만을 흘렸을 뿐, 상태 이상에 걸리지는 않았다.
저번 패치로 상태 이상이 확정타로 터지게끔 메커니즘이 바뀌긴 했으나, 대신 그만큼 효과가 미약해지는 바람에 용의 저항력을 뚫지 못했다.
심지어 도미닉 경은 손에 전해져오는 짜릿함에 분명 치명타가 터졌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런데도 용의 저항력은 매우 강력했다.
도미닉 경은 슬쩍 방패를 들어 용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방패 아래에는 깨진 비늘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래로 약간의 피가 묻어 있을 뿐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마저도 용의 재생력으로 순식간에 복구되어 버린 탓에, 도미닉 경의 공격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기로군."
도미닉 경은 평소에 사람들이 그를 향해 왜 사기라고 중얼거렸는지 어렴풋이 공감했다.
상태 이상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공격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며 통한다고 하더라고 바로 회복한다.
도저히 공략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하찮은 미물들이 어찌 용을 상대하리오?"
그 한숨과 거의 동시에, 기세등등해진 칭원 클랜장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거센 숨결로 개미와도 같은 미물들을 모조리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칭원 클랜장은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뜨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 동안 빈틈이 생길 테니, 그 빈틈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아래로는 수백, 수천 미터의 허공이요, 위로는 용의 분노라.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나 언제나 절망 속에서 희망이 존재하는 법.
"도미닉 경! 저기! 저게 약점이에요!"
도미닉 경은 문득 한 줄기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리자, 히메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게 바로 용의 약점이에요!"
도미닉 경은 히메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거꾸로 된 용의 비늘이 바람에 의해 벽처럼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용의 붉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저기가 바로 히메가 말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그곳이 약점이라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그대로 역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저길 건드리면 용이 분노할 거예요!"
"어차피 이미 화가 난 상태잖아!"
도미니카 경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방패로 막아 내며 말했다.
강력한 전기가 도미니카 경의 손목을 저리게 만들었으나, 그녀의 강인한 저항력에 곧 멀쩡해졌다.
도미닉 경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에는 신경 쓰지도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눈앞에 떨어지는 번개를 본능적인 슬라이딩으로 피하면서 마침내 역린의 앞에 도달했다.
번개는 도미닉 경의 머리 위를 살짝 스쳐 깃털 장식의 끝자락을 태워 먹었다.
그러나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런 줄도 모르는 도미닉 경은, 슬라이딩 후 일어나려는 자세 그대로 방패를 들어 올려 용의 살에 그 모서리를 휘둘렀다.
"흐으으읍컥?"
그리고 그 공격은 정말로 효과적이어서, 숨을 크게 들이쉬던 용이 사래를 들리게 하기 충분한 위력을 뽐냈다.
용은 무려 7초 동안이나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깊게 들이쉬다가 목에서 터진 공기가 목구멍을 찢을 것처럼 날뛰었지만, 스턴 상태에 걸려 버린 탓에 숨 쉬는 것마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7년과 같은 7초가 지나고, 칭원 클랜장은 마침내 다시 세상의 공기를 맛볼 수 있었다.
제멋대로 날뛰는 날카로운 공기가 아니라.
"쿨럭, 쿨럭! 네... 네놈들...!"
용은 분노했다.
있는 힘껏 분노했다.
온몸의 비늘이 한 번 곤두섰다가 접히며 그의 분노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용서 못한다, 용서 못 해! 으아아아!"
용은 있는 힘껏 다시 하늘을 누볐다.
당장에라도 저놈들을 땅에 처박고 싶었으나, 분노로 마비된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그저 빠르게 움직이며 몸을 털어낼 뿐이었다.
그 속도는 음속을 넘어, 쾅하고 음속의 벽을 넘는 소리는 천둥이 되어 먹구름 아래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런 용의 발버둥에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는 멀쩡히 용의 등 뒤에 타고 있었다.
뜻밖에 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말이다.
"저기, 도미닉 경. 혹시 그 깃발 말인데요..."
히메는 매끄러운 비늘의 틈새 사이에 납작 엎드린 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혹시, 공기 저항도 피해 감소에 포함되는 건가요?"
"...?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용의 등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선 채, 방패를 앞세우고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는 도미니카 경도 마찬가지였는데, 도미니카 경은 나름의 분석을 히메에게 말했다.
"방패 덕분일 거야. 방패가 날아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에 밀려나지 않는 거지."
오히려 바람을 방패로 막으면 더 심하게 밀려나지 않을까 싶은 히메였으나, 히메는 한 가지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여기가 가차랜드라는 사실을.
바람을 '용의 공격으로 인한 부가 피해'로 친다면 얼마든지 방패로 막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가차랜드에서는 뭘 못하겠는가.
버그라고? 히든 피스였다.
아무튼 엄청나게 몸부림치던 칭원 클랜장은, 이내 역린의 영향에서 벗어났는지 다시 한번 허공에서 몸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돌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하! 하찮은 미물들이 어찌 용을 상대하리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지직거리기 시작한 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 저 대사는, 방금 전에 용이 했던 대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다음에 올 행동은...
그렇다.
용은 크게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또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현 상황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의 반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도미니카 경! 거기요!"
도미닉 경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가장 가까운 역린을 찾았다.
그리고 역린에서 가장 가까운 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용의 등은 넓어도 너무 넓어서, 이동기가 없는 도미닉 경이 모든 역린을 커버하기엔 너무 멀었던 탓이다.
"알았어!"
그리고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했던 그대로 역린에 접근한 뒤, 역린에 설득력 있는 한 방, 즉 [충격과 공포]를 먹여줬다.
그러자 다시 한번 발버둥 치기 시작하는 용.
그러나 방금 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으아, 으아아아아아!"
분노보다는, 조금 더 공포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점이었다.
...
방금 전, 용이 하늘로 승천한 이후 하늘이 마구 울리고 천둥과 번개가 마구 내려치자, 전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번개 폭풍으로 인해 서로 전력을 아끼려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것이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소."
"글쎄. 내가 보기엔 세상을 잡아먹을 큰 뱀이 하늘로 올라 신들에게 도전이라도 한 것 같은데."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전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금 상황이 무시무시하면서도 놀라운지,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30분 남았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아니, 이제 30분도 채 남지 않았군.
아르쿠스는 곧 그 사실을 알아채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30분이로군. 이 정도면 우리가 도미닉 경을 만날 자격이 없다는 뜻 같네."
"아무래도 그렇소. 어쩌면 도미닉 경의 격이 그만큼 높다는 뜻일지도 모르오. 왜, 그런 말이 있잖소. 자격이 없는 자가 천사를 똑바로 바라보면 죽는다거나."
"...그건 제국의 이단자들이나 쓰는 교리일세. 페럴란트에서 정식으로 포교된 교리가 아니라."
"뭐, 아무튼 교리잖소."
"자네가 든 검은 쯔바이헨더던가? 아니지. 클레이모어라고 했던가?"
"뭐요? 내가 쓰는 검은 클레이모어요! 쯔바이헨더처럼 흔한 양손대검과 비교하지 마시오! 이건 원심력을 이용해"
"비슷한 걸세. 자네가 한 말은. 그보다 더 심히지. 이단들의 교리를 들고 왔으니."
"...이해했소."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남은 시간 동안 만담을 펼치며 웃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시각은 점점 지나가고 있었고,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다만 둘은 어렴풋이 저 시간이 모두 사라지면, 이 전사들의 전당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었다.
"이제 10분 남았군."
"2자리에서 1자리로 떨어졌구려. 9분 남았소."
"세상에. 자네 한 자리와 두 자리를 구분할 줄 아나?"
"...요즘 세상에 그런 거 못 하는 사람이 어딨소?"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어쩌면 가차랜드에서 마지막이 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잡담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구름이 열리며,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 저게 뭐요?"
"무엇이 말인가? 아! 저, 저건?"
오그레손이 하늘이 열리며 떨어지는 거대한 뱀... 아니, 칭원 클랜장을 보았다.
칭원 클랜장은 온몸의 비늘 중 절반 가까이 벗겨진 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피를 철철흘리며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낙하하고 있었다.
용은 구름을 뚫고... 아니, 찢고서 내려왔는데, 먹구름이 찢어진 틈새 사이로 빛이 흘러내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신들의 영광이 하늘에서 빛나듯이.
그리고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세 명의 천사를.
용의 피를 뒤집어쓴 채, 방패로 용의 살과 피를 가르며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핏빛 날개를 단 천사처럼 보였는데, 붉은 피를 뒤집어쓴 남자와 그를 보좌하듯 좌우에서 내려오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남성 천사를 보좌하는 두 명의 여성 천사처럼 보였는데, 세 명의 천사가 신들의 명을 받고 사악한 뱀을 잡아 신계에서 추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멍하게 그 천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르쿠스는 가운데에 있는 남자가 그가 꿈에서 본 상투스 도미니쿠스, 즉 도미닉 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도미닉 경...!"
"도미닉 경? 정말 도미닉 경이란 말이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진정으로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보게 된 것에 감격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마구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그들의 성인은, 신들의 챔피온이오, 성자요, 하얀 까마귀의 사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성인을 향해 경배하고, 찬양하고, 또한 기도했다.
[00:00:00]
[콜라보 이벤트를 종료합니다.]
[모든 인원들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그들이 가차랜드에서 사라진 그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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