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 [312화]드래곤 슬레이어
* * *
해적? 해적? 어째서 해적?
해적 리얼리티 쇼크!
히메는 유치원 시절, 봉사활동을 왔던 근처의 오빠들의 말을 기억한다.
'야, 해적과 닌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게?'
'닌자가 해적을 어떻게 이기냐?'
'뭐 임마? 해적 따위가'
유서 깊은 닌자 가문이었던 히메는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 뒤에 닌자가 더 강하니, 해적이 더 멋지니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생각.
그것은 바로, 히메가 가진 해적에 대한 트라우마였다.
히메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다리를 달달 떨면서 날아오는 정크선을 바라보았다.
만일 히메가 평범하게 해적을 마주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건 플라잉 해적이었다.
히메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미지.
사람은 누구나 미지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점점 나아져 잠자기 직전이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알다시피, 잠이 오기 직전에 깨는 것이야말로 가장 짜증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트라우마는 신경질적으로 히메의 생각을 잡아먹었다.
여전히 날아오는 해적선.
히메의 발목을 트라우마가 잡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히메는 정크선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히메의 과거는 히메를 아직 완전히 놓아주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트라우마는 고쳐진 듯 히메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지금을 위해서.
히메는 너무나도 큰 트라우마의 발현에 스르륵 눈을 감았다.
눈앞에 마주한 공포가 너무 큰 나머지 현실을 외면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히메 혼자였더라면, 그렇게 히메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도 못한 채 더 큰 트라우마가 남았으리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히메는 혼자가 아니었다.
"위험하오!"
그녀의 곁에는 도미닉 경이 있었고
"으, 옷이 다 젖었네."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도미닉 경은 날아오던 해적선을 방패로 막아 내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가차랜드에서 뭘 못하겠는가.
도미닉 경의 방패와 충돌한 정크선 하나가 방패의 경사를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이내 도미닉 경이 방패를 슬쩍 밀어내자 다시 호수로 날아갔다.
정크선 위에 있던 해적들이 우르르 건물 안으로 떨어지며 곡소리를 내었으나, 다행인지 아닌지 히메는 눈을 감고 있었기에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해적들이 엉망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히메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고, 그 엄청난 소리에 놀란 히메는 다시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아, 히메 공."
그리고 히메는, 자기 앞을 막아선 늠름한 남자의 등을 볼 수 있었다.
"괜찮소?"
그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히메는 그 어떤 때보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이는 그녀가 도미닉 경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고, 이후 그에게서 느끼던 감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히메는 이 감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방금 전 해적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도미닉 경의 머리에 우연히 해적 모자 하나가 씌워지기는 했으나, 설마 히메가 그런 거로 착각을 하겠는가?
아무튼 도미닉 경은 머리 위에서 올려진 호숫물에 절여진 해적 모자를 대충 던져 버리곤 히메에게 다가 갔다.
아무리 봐도 히메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괜찮소?"
"...아. 네. 괜찮아요."
"얼씨구."
히메는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대답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믿고 히메가 멀쩡하다고 생각했지만, 도미니카 경은 같은 여자로서 히메의 심정 변화를 아주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저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아주 확실히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괜찮다니 다행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히메를 일으켜 세웠다.
그 짧은 접촉에 히메는 최대한 도미닉 경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도미닉 경에게 밀착했다.
그녀의 여우 귀와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빼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본능적인 여우짓이었다.
...
잠시 전장이 살짝 달달해진 관계로... 아니, 아무튼 동방연합 3군단 격전지.
무사시가 이끄는 3군단은 방금 전 호수에 떨어진 용을 바라보며 거의 승리를 자신했다.
무사시를 비롯한 5성급 인원들은 아직 제대로 된 기술도 쓰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승리는 확실시 되는 상황.
모두는 이제 곧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며 기대감에 부불어 있었다.
칭원 클랜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감히... 감히...!"
칭원 클랜장은 뇌가 분노에 잠식되기라도 했는지 계속해서 감히라는 말만 외치고 있었다.
그런 그는 여전히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입 가에는 하얀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호수의 물에 녹아 곧 사라지기는 했으나, 그 흰 자국은 비늘 사이에 얼룩처럼 남아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버러지같은 놈들이!"
칭원 클랜장은 있는 힘껏 분노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있던 자연이 함께 분노하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물회오리가 솟아오르고, 바람이 칼날처럼 피부를 난도질했으며, 눈이 부실 정도로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동양의 용 그 자체!
"여기까지 날 궁지에 몬 것은 칭찬한다. 하지만 너희는 실수를 저질렀어. 바로 내게 대항했다는 실수 말이다!"
칭원 클랜장은 엉망인 논리로 자신을 납득시키며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중간에 잠깐 어지러움이 느껴져서 비틀거리기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절벽을 조금 무너뜨린 것 외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렇기에 칭원 클랜장은 그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힘이 흩어지기 전에,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술을 쓰기 위함이었다.
그 기술을 쓴다면 잠깐은 움직이지도 못하겠지만, 상대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리라는 계산 하에, 칭원 클랜장은 계속해서 하늘로 솟구쳐 구름 위로 올라갔다.
"하, 버러지같은 것들. 감히 이 몸에게 대항한 죗값을 치러"
칭원 클랜장은 구름 아래 얼핏얼핏 보이는 작은 미물들을 향해 온갖 멸시와 경멸의 말을 내뱉었다.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그, 미안하오만."
"!?"
칭원 클랜장은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칭원 클랜장은 소리가 난 근원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세 명의 미물을 발견했는데, 셋이 합쳐 눈이 네 개밖에 되지 않는 반푼이들이었다.
그러나 칭원은 그들이 누구냐를 알아내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어떻게 자기 등 위에 올라탔는지 궁금해했다.
"너희는 어떻게 내 등 위로 올라왔지? 내 기감을 피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신이 태워준 거요. 우리가 탄 게 아니라."
도미닉 경이 칭원 클랜장에게 잘못된 정보를 정정해주었다.
"저기, 도미닉 경? 이렇게 여유로운 대화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도미닉 경이 너무 여유롭게 있자, 히메는 불안한 듯 몸을 떨며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건넸다.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
도미니카 경은 이 스릴넘치는 비행이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먹구름으로 가득한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들은 칭원 길드장의 등 뒤에 탈 수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
방금 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히메를 배웅해주기 위해 절벽으로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일도 있었고, 애초에 복귀를 하던 도중이었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히메는 헤어지기 아쉽다는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방긋 웃었다.
"남은 작전도 힘내세요,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
"고맙소. 당신도 남은 작전 힘내시구려."
히메는 짧은 작별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잠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배웅을 위해 절벽으로 나와 있었다면, 부활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놀랍게도 그들은 정크선과 호숫물로 엉망이 된 건물을 정리하고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도전은 조금 있다가 다시 재개할 테니 걱정 하지마시고, 서로 잠시 쉬도록 합시다.'
이 말은 바로 칭원 클랜의 간부가 한 말이었다.
그들은 도미닉 경과의 대련을 점점 놀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즐기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도미닉 경을 배려하는 경지에까지 올라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황당하지만 그들의 배려 덕분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히메를 배웅하러 나올 수 있었다.
말이 되냐고 묻는다면, 여기는 가차랜드라고 대답할 수 있으리라.
가차랜드의 시민들이라면, 그 어떤 일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히메가 복귀를 위해 몸을 돌리려던 그때.
"어, 어어?"
"습격인가?"
"갑자기?"
갑자기 절벽이 큰 충격을 받은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검과 방패를 들고 주변을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히메는 당황한 나머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녀가 아쉬움에 도미닉 경을 한 번 더 보려고 돌아보지만 않았더라도, 그녀가 비틀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던 히메는 몸을 바로잡기 위해 흔들리는 와중에 여기저기 움직이며 균형을 잡기 시작했고, 마침내 도미닉 경의 바로 옆에서 멈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쁜 일은 하나만 찾아오지 않는 법.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는 진동 속에서 균형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절벽 아래를 뚫고 날아오르던 용에게 치인 것은 어떻게 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특유의 방어력으로, 히메는 빠른 몸놀림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미 하늘로 솟구치는 용으로 인해 수십 미터는 딸려올라간 상황.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는 본능적으로 용의 등에 있는 비늘을 붙잡았다.
그것이 바로, 지금 그들이 칭원 클랜장의 등 뒤에 있는 이유였다.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는 말을?"
"뭐, 우리가 생각해도 그렇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소."
도미닉 경은 용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이렇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 미안한데 우리가 지금 작전 중이어서 말이오.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겠소?"
칭원 클랜장은 그런 질문을 한 도미닉 경을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당연히 거절의 의사를 비출 줄 알았던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뭐, 기대는 안했소."
그리고 방패는 있는 힘껏 용의 등을 향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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