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311화]용과 이무기
* * *
"으하하하하! 이 힘! 바로 이 힘! 난 무적이다! 으하하하!"
용의 웃음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경박하고 깊이가 없어 용의 웃음소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용은 용이라는 듯, 용을 떠받들 듯 뭉친 먹구름에서는 세찬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저게 도대체... 뭐지?"
도미니카 경은 놀란 눈으로 그 기다란 용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카드 팩 교환소의 쉔롱 덕분에 저것이 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미니카 경은 평행세계에 있을 때에도 저런 건 보지 못했다.
"용이오."
"용? 용은 좀 더 두껍고 뾰족뾰족하게 생긴 거 아니었어? 저건 마치... 뱀처럼 보이는데."
도미니카 경은 자기가 아는 용과 전혀 다른 모습에 당황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런 도미니카 경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우리도 옷을 갈아입잖소. 스킨이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오."
"아."
도미닉 경의 뻔뻔한 설명!
물론 좀 더 자세히 파고들자면 서양식 용과 동양식 용의 차이에 대해 거의 무한한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차랜드에서 용에 대해서 설명하기엔 저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사악한 것도 똑같은 건가?"
"글쎄."
도미닉 경은 쉔롱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는 사악하다기보다는 꽤 지혜로운 노인과 같지 않던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용들도 성격이 다른 법 아니겠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먹구름을 두른 용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건 사악한 용이 맞는 것 같군."
"그러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용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물론, 용을 잡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날아다니는 용을 견제하거나 잡을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도미니카 경의 머스킷 정도가 있겠지만, 그녀의 머스킷은 광역 제압을 위해 산탄으로 채워져 저 거리까지는 닿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포기했다고 해서 다른 이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칭원 클랜장은 거의 전능한 느낌의 힘에 취해 사방을 쏘다녔다.
동방연합의 진영을 습격해 수십 명을 패퇴시키기도하고, 길에 비를 내려 충원을 힘들게도 했으며 번개를 뿌려 상대의 공성 무기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능한 느낌!
칭원 클랜장은 하늘을 마구 누비며 광소했다.
"하하하하! 으극?"
갑자기 몸을 엄습하는 충격.
그는 문득 몸이 무거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칭원 클랜장은 묵직함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는데, 그곳엔 양쪽에 강철 추를 단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이게 무슨."
"쏴라! 쏴! 모두 저 용을 끌어내려!"
"역시나. 칭원 클랜장이 용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나?"
동방연합의 사람들은 칭원 클랜장이 용으로 변신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쇠사슬 발사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치코, 당신이 없었더라면 당할 뻔했겠소."
쇠사슬 발사기의 옆, 무사시가 이치코에게 말을 걸었다.
"참 천운이 따랐네요."
이치코가 그 공치사가 부끄러운 듯 입을 가리며 밝게 웃었다.
"설마 그런 기밀문서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을 줄이야."
이치코는 소매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칭원 클랜의 클랜원들에 대한 상세 정보가 적혀져 있었고, 그중에서도 이치코가 든 종이엔 칭원 클랜장의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참으로 어설픈 자로군."
무사시는 이제 온몸에 쇠사슬이 감긴 채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칭원 클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자가 클랜장이라니, 아무래도 칭원의 뒤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게 정답인 것 같소."
"...알아볼까요?"
"아니."
무사시는 이치코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충분히 했잖소. 더 깊게 파고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머, 당신도."
이치코는 무사시의 말에 부끄러워하며 무사시를 툭 쳤다.
그야말로 승기가 거의 넘어왔다고 확신하는 듯 말이다.
실제로 무사시와 이치코 뿐만이 아니라, 동방연합의 모든 이들이 그랬다.
클랜장을 붙잡으면, 상대는 구심점이 없어 자멸하리라.
이것이 바로 동방연합의 클랜원들이 하는 생각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승기가 명백하게 동방연합으로 기울어진 상황이지만, 어떻게 세상일이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겠는가?
모두가 동방연합의 승리를 예측하는바로 이때, 변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히메는 모든 임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만났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이었지만.
"도미닉 경!"
히메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 도미닉 경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이 없으면 어쩌나 싶겠지만, 히메는 도미닉 경이 아직도 버티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제나 보답받았다.
"아, 히메 공."
도미닉 경은 피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히메를 맞이했다.
물론 도미닉 경의 칼에 피가 묻지 않은 것은 성인 필터가 꺼져 있는 탓이었지만, 그러한 내막까지 히메가 알 리는 없었다.
"일은 다 끝났소?"
도미닉 경은 방금 전 담을 넘어가던 히메를 생각하며 그리 말했다.
"덕분이에요."
히메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전장이 불타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로잡힌 용이 분노를 가득 담은 불을 뿜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히메의 얼굴은 제법 붉은 기가 가득했다.
"그나저나 용이라니 놀랍네요. 저렇게 직접 변신하는 건 효율이 별로라 사장된 줄 알았는데."
히메는 사로잡힌 용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효율이 문제라고? 저렇게나 무시무시한데?"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과 히메의 중간에 끼어들며 말했다.
히메는 갑자기 눈앞에 끼어든 흉악한 흉부에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손등으로 그 무시무시한 가슴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인간형이다 보니, 이형으로 변신해 움직이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서요. 무엇보다도 가차랜드에서는 외형과 스탯, 그리고 기술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이형은 호환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아. 도미니카 경은 히메의 말을 이해했다.
가차랜드의 거의 모든 기술들은 인간의 모습일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에, 용의 모습일 때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네. 그럼 허당이잖아?"
도미니카 경은 괜히 무서워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뭐, 그렇다고 해도 용으로 변신할 정도면 최소 5성이니까요."
"...흠."
히메는 자신만만한 도미니카 경의 기분을 망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무심결에 도미니카 경을 시무룩하게 만들고 말았다.
"5성이란 말이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용을 바라보았다.
"...5성 치고는 그리 강해 보이진 않소만."
"아마 5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예요."
히메는 나름의 추측을 담아서 말했다.
사실 단톡방에 저 용, 칭원 클랜장에 대한 정보가 올라온 상태였지만, 임무 때문에 폰을 무음으로 만든 탓에 정확한 정보를 몰랐던 것이다.
"그나저나 5성에 대해서 겪어본 것처럼 말하시네요?"
히메는 신기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보통 5성 분들은 자기 무력을 잘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시던데."
"당신의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소."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인 무사시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얼마나 주접을 떨었을지 상상이 된 탓이었다.
"미안해요. 아버지가 좀 팔불출이셔서."
히메는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보았다.
"뭐, 그래도 새로운 경지를 견식해서 좋았소."
도미닉 경은 무사시와의 대화 이후, 무사시의 경지에 대한 편린을 맛본 적이 있었다.
가볍게 검을 한 번 휘둘렀음에도, 눈앞의 가짜 5성 용과는 다르게 피부를 찌르는 듯한 위압감.
물론 5성 중에서도 초월을 앞둔 이와 4성의 끝자락에 있는 이의 무력이 같을 리는 없었지만, 그런 것을 감안 하더라도 두 존재는 같은 5성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무튼, 이제 전 돌아가 봐야겠어요."
히메는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녀의 속마음은 돌아가자마자 무사시에게 한 소리 할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겉으론 그 본심을 숨긴 채로.
"도미닉 경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 다음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진 여기 있을 생각이오."
도미닉 경은 슬쩍 눈을 돌려 건물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부활을 했음에도 인파에 밀려 옴짝달싹 못 하는 인원들이 한가득이었다.
"뜻밖에 이런 것도 재밌으니까 말이오."
도미닉 경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살수의 공격을 보지도 않은 채 방패로 막아 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뭔가 일당백, 일기당천의 느낌?"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살수의 관자놀이로 향했다.
살수는 그 살기에 식은땀을 흘렸으나,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보다 도미니카 경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더 빨랐다.
다시금 부활 장소에 나타난 살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로 돌아가 번호표를 뽑았다.
누가 먼저 도미닉 경을 처치하느냐로 자체적인 컨텐츠를 만들 만큼 이들도 이 상황에 적응한 것이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만... 어?"
히메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꽤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하며 본대로 복귀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히메는 곧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불안한 기운이 그녀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히메는 문득 불안함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쇠사슬에 사로잡힌 용, 칭원 클랜장이 있는 곳이었는데, 클랜장은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 있는 힘껏 몸을 비틀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나는 용이다! 용이란 말이다! 으아아아!"
있는 힘껏 울분을 토한 용은, 마침내 모든 쇠사슬의 압박을 벗어던지고 다시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러나 용은 쇠사슬을 벗어던지는 데 모든 힘을 쓴 듯, 완전히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다시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땅이 아니었다.
그곳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있는 건물 근처, 절벽 아래에 있는 호수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는 문득 용과 눈이 마주친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다지 감흥 없이 용을 바라보았으나, 히메는 달랐다.
히메는 그 용의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마주 보자마자 안 그래도 불안한 느낌이 더욱 크게 요동쳤다.
어째서일까, 어째서일까?
히메는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용이 호수에 떨어지며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호수에 있는 장강수로채의 해적선들을 하늘로 띄워 올리면서 말이다.
그 해적선들은 해수면에서 생긴 충격에 수면 위로 훌쩍 뛰어올라 절벽을 넘을 정도로 솟구쳤는데, 그중 몇몇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습격할 기세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
당연히 이는, 히메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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