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11화 (311/528)

〈 311화 〉 [310화]용과 이무기

* * *

칭원 클랜과 동방연합의 클랜전은 아주 성대하게, 아주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전장에서의 직접적인 격돌은 당연한 일이었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처럼 상대 진영에 잠입해 시설을 마비시키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전장에서의 일.

칭원 클랜과 동방연합의 전쟁은 여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도미닉 경보다 먼저 칭원 클랜의 전진기지에 잠입한 히메는 발소리 없이 지붕과 지붕을 날아다니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클랜전 중임에도 황금색 기와로 장식된 칭원 클랜의 전진기지는 자기 존재감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으나, 히메는 오히려 그런 존재감 때문에 작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칭원 클랜이 제대로 된 클랜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본이 남아 있을 리 없어. 분명히 어딘가에서 수급을 하는 곳이 있을 거야."

히메는 다시 한번 자기가 여기에 투입된 이유를 중얼거리곤 다시 한번 지붕을 박찼다.

그때, 히메는 지붕에 밟히는 기와의 느낌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히메는 쿠노이치였고 그 작은 차이 따윈 얼마든지 구분할 수 있는 민감한 여성이었다.

우뚝. 하고 히메가 그 자리에 바로 멈춰 섰다.

"...여긴가?"

히메는 몸을 낮춰 기와를 만져 보았다.

그러자 기와는 아주 손쉽게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만일 이게 다른 기와들처럼 황금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쉽게 떨어질 리가 없었다.

히메가 기와가 떨어져 나온 곳을 이상하게 여겨 유심히 바라보자, 그 안에는 히메가 찾던 것이 있었다.

바로, 위성 안테나의 끝자락이 있었다.

"역시나."

히메는 그 안테나의 끝자락에 여기가 바로 자기가 찾던 곳임을 알아차렸다.

바로, 칭원 클랜의 자본줄이 있는 곳 말이다.

당연하게도 히메의 예측은 정확했다.

히메가 확인한 이 건물은 바로 거대한 서버실이었는데, 칭원 클랜에서는 이 서버를 통해 코인과 주식을 사고팔며 자금을 벌고 있었다.

그 옆에선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은 불법 코더 하나가 고사양 컴퓨터에 앉아 주가를 조작하거나 호재와 악재를 번갈아 가며 보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합법과 불법의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으나, 교묘하게도 그 선은 지키고 있는 상황.

당연히 이것들을 신고한다고 해서, 벌금 외에 무슨 벌을 받겠느냐 싶겠으나, 재밌게도 지금은 클랜전 도중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한 히메는 등 뒤에서 닌자의 일곱 가지 도구 중 하나인 전자 교란기를 꺼냈다.

물론, 시스템의 인허가를 받은 아주 안전한 전자 교란기였다.

어째서 그것이 닌자의 일곱 가지 도구인지는 묻지 말자.

그것이 가차랜드니까.

"으­. 뭐야. 척추 요정의 메시지? 지금 당장 허리를 펴지 않으면 척추를 뽑아 버리겠다고? 하하. 그래. 무서워서라도 허리를 좀 펴야겠네."

불법 코더들 중 하나가 잠시 딴 짓을 하다가 재밌는 것이라도 봤는지 크게 웃었다.

그리고 히메가 있는 환풍구 아래로 걸어가더니, 이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히메에게는 호재였다.

"등허리 운동­ 하나, 둘, 셋... 응?"

불법 코더는 허리를 크게 뒤로 젖혔다.

그리고 낙하하는 검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이 승복을 입은 불법 코더가 서버실에서 본 마지막 기억이었다.

히메는 교묘하게도 불법 코더를 빈사 상태로 기절시키기만 했다.

도미닉 경이 부활 장소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그랬더라면 만에 하나 히메의 잠입 소식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기절이 풀려도 알려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히메는 시간을 더 벌 생각이었지 들키지 않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좀 어렵­ 됐다."

히메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서버에 전자 교란기를 부착했다.

오랜만에 한다는 말과는 달리 아주 능숙하게 설치를 끝낸 히메는, 이내 삑삑거리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전자 교란기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 반짝이는 다이오드의 불빛을 바라보던 히메는, 이내 순식간에 다시 환풍구를 통해 지붕으로 돌아갔다.

히메가 서버실에서 사라지자마자 전자 교란기는 5, 4, 3, 2, 1하고 카운트가 내려가더니, 이내 0이 되자마자 강렬한 교란 전파를 보내 서버를 모두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서버실이 망가진 여파는, 곧바로 전장에서 드러났다.

...

[칭원 클랜의 서버실이 파괴되었습니다. 블랙 그룹은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 측에게 서버실과 최근 있었던 주가 조작 사건의 연관성을 제시하며, 주식과 코인 조작 논란을 해명할 때까지 계좌를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가 블랙 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칭원 클랜의 모든 계좌가 동결됩니다! 칭원 클랜은 모든 것을 해명하거나 죗값을 치르기 전까지 자금을 쓸 수 없습니다.]

전장에 울려 퍼지는 시스템의 메시지.

그것은 칭원 클랜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익... 이이익!"

칭원 클랜의 수장, 면류관을 쓴 이는 이를 갈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1번 서버실이 파괴되었습니다.]

[3번 서버실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릅니다.]

[4번 서버실에 있던 모든 데이터가 지워졌습니다.]

[5번­]

.

.

.

[6,355번 서버실에 누군가가 떡볶이를 쏟았습니다!]

수천 개는 가볍게 넘을,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처음에 2번 서버실이 파괴되었을 때까지만해도 면류관을 쓴 이의 심정은 여유로웠다.

고작 한 군데가 파괴되었다고 해서 칭원 길드의 막대한 자본력에 금이 가지는 않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열을 넘기고, 백을 넘기고, 천을 넘기는 순간 칭원 클랜장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모든 서버실이 닫힌 그 순간, 가차랜드를 대표하는 세 날개가 모두 칭원 길드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먹인 거지?"

칭원 클랜장은 억울하다는 듯 그리 말했다.

"돈이 필요했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는데!"

물론, 세 날개는 동방연합에게 돈이나 뇌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만일 뇌물이 통한다고 해도 칭원 클랜의 자금은 뒤가 구리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절대 받을 일은 없었다.

그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는 아이처럼 짜증을 부리는 칭원 클랜장.

칭원 클랜장은 거처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집어던지고, 부수고, 짓밟았다.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그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씩씩 거렸다.

"왜 용이 될 나를 방해하는 거지? 다들 알아서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칭원 클랜장은 머리에 쓰고 있던 면류관마저 땅에 처박았다.

그제야 화가 조금은 풀린 듯, 칭원 클랜장은 다시금 면류관을 들어 먼지를 털어내고는 머리 위에 올렸다.

"...그래. 다들 질투하는 거야. 내가 곧 용이 될 것 같으니, 다들 나를 질투하는 거라고! 시기! 질투! 그러니까 이렇게 날 방해하지!"

하하하! 하고 칭원 클랜장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 그는 화가 풀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신 승리를 시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그래. 다들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군... 그래, 그래."

칭원 클랜장은 이제 정말로 미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진정으로 시기와 질투로 인한 것이라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 모든 게 짐의 부덕함이로다. 감히 시기와 질투를 하지 못하도록 압도적으로 밟았어야 했거늘."

칭원 클랜장의 말투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말투가 떼를 쓰는 미운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어른인 척 제 잘난 맛에 사는 아이의 말투였다.

"짐이 친정을 해야겠어. 진정으로 용을 마주해야 모두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면..."

칭원 클랜장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엉망이 된 막사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쓰러진 서랍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서랍장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랍장에 도착한 칭원 클랜장은, 그 안에서 서슬 퍼렇게 빛나는 하얀 가루가 든 투명한 봉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 해야겠지."

칭원 클랜장은 하얀 가루가 든 봉지를 손으로 꽉 쥐며 이죽거렸다.

눈으로 언뜻 보이던 광기는, 이내 그의 얼굴 전체에 퍼져나갔다.

...

"다음."

"다음."

도미닉 경은 배불뚝이 살인귀를 다시 한번 부활하도록 도와준 다음 서늘하게 외쳤다.

마침 도미니카 경도 중식도를 든 노파를 제압한 상태였던지, 둘은 거의 동시에 다음 도전자를 외쳤다.

"이, 인간이 아닌 건가?"

"그렇게나 싸웠는데 어떻게 저리 멀쩡한 거지?"

칭원 클랜의 사람들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도저히 사람답지 않은 상태였다.

창에 찔리고, 검에 베이고, 심지어 목이 꿰뚫렸음에도 멀쩡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인간보다는 고통을 모르는 골렘이나...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던가.

물론 찌르고, 베고, 꿰뚫었다고 생각한 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스탯은 칭원 클랜의 어설픈 공격력으로 뚫기엔 너무 높았으니까.

4성을 바라보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처지에서는, 고작 1성, 2성 짜리 인원은 물론이요, 3성짜리 인원들의 공격도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었다.

"다음."

"없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다시 한번 리스폰 지점에 몰려 있는 이들에게 도발을 시전했다.

그러나 특수 기술이 아닌 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도발은 강제성이 없었고, 이미 겁을 잔뜩 먹은 칭원 클랜원들은 그런 도발에 감히 나설 배짱도 없었다.

제발 누군가 저 악귀 같은 놈들 좀 치워주길.

칭원 클랜의 클랜원들은 제발 영웅이 등장해 저 악귀들을 치워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물론 칭원 클랜을 도우려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저, 저길 봐! 새다!"

"아냐, 비행기야!"

"아냐, 저건­"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일까?

칭원 클랜의 클랜원 중 하나가 칭원 클랜의 본진에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은 거기에 솔렸고, 이내 그들은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용이다!"

"클랜장께서 직접 나서셨다!"

칭원 클랜원들은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 상황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영웅의 출현처럼 보였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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