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308화]용과 이무기
* * *
무사시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전달한 작전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자네들은 여기까지 우리 3군단과 함께 이동할걸세. 그리고 여기에서 이 숲으로 들어간 다음, 바로 여기. 이 건물의 입구를 점령해주게."
무사시는 각각 길, 숲, 그리고 칭원 클랜의 전진기지에 있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어디인데 우리가 점령을 해야 하는 거요?"
도미닉 경이 무사시에게 물었다.
"좋은 질문이네."
무사시는 손가락으로 방금 전 가리킨 건물과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는 바로 저들의 부활 지점일세. 최대한 빠르게 전장으로 충원하려고 전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지."
"확실한 거요?"
"확실하지."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되물음에도 확신을 가진 채 말했다.
"내 아내... 아니, 쿠노이치 이치코는 이 분야에 있어서 최고니까."
무사시는 아내를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을 알렸다.
"작전 시각은 앞으로 2시간 후.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움직일 걸세. 혹시 질문이 있나?"
"하나 있어. 이 숲, 꽤 넓어보이는데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무사시의 물음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도미니카 경이 손가락으로 지도에 그려진 숲을 짚었다.
도미니카 경은 지금 전략 지도에 푹 빠진 상태인지, 스스로가 반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여기, 여기, 여기로 가는 건?"
도미니카 경이 무사시가 말한 길의 반대편으로 뻗은 오솔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다음 호수를 짚고, 벽을 짚었다.
지도 상으로는 그렇게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쉽고 빠른 것 같았다.
그러나 무사시는 그런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말을 꺼냈다.
"여긴 지도 상으로는 평면이지만, 사실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곳이지.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으나, 몸을 숨긴 채 이동하려면 숲이 유일한 길일세."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길을 잃을 확률은?"
방금 전부터 도미니카 경이 날리는 질문은 숫돌에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이런,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깜빡했군."
무사시는 깜빡했다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숲에 도착하면 우리가 보낸 이가 기다리고 있을 걸세. 그 사람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걸세."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아쉽지만 그럴 순 없지."
"어째서?"
"보안 문제일세."
무사시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칭원 클랜의 정보를 얻듯, 저들도 우리의 정보를 얻고 있네. 언제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갈지는 모르는 일이야."
"그럼 우리는? 우리에게 계획을 말한 건 저들이 듣지 못했을 거 같아?"
"아닐세. 흠... 사실, 난 차라리 저들이 이 내용을 들었으면 하네."
"...어째서 그렇소?"
도미니카 경과 무사시의 대화 사이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도미닉 경이 끼어들었다.
"어째서 차라리 들었으면 한다는 거요?"
"그야, 자네들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기 때문일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도대체 저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저들이라고 자네들의 명성을 모르겠나? 당연히 알고 있을 걸세. 1성때부터 수십 명의 사람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혼자서 레이드 보스를 잡은 경력이 있으며, 이제 곧 4성을 바라보는 이를 말일세."
1성 때도 그렇게나 강했는데, 4성을 앞둔 지금은?
무사시의 물음에 도미닉 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꽤... 무시무시한 느낌이었으니까.
"오히려 저들은 알아도 이 사실을 은폐할 가능성이 높네. 대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견제할 수 있을 만한 이들을 보내겠지. 강한 이들을 보낼 수록 전장엔 구멍이 뚫릴 테고, 무시하자니 부활 지점이 막힌다. 정말 완벽한 한 수가 아닌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시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한 것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전사나 기사에 가까운 성향이었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다소 늦었다.
"이제야 제대로 알겠군. 좋은 작전이오."
"그러게. 이제 이해하겠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에 무사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가서 잠시 쉬라고 권했다.
"이제 작전 시각은 한 시간 반 뒤일세. 그때까지 정비를 하거나, 쉬고 있게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무사시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무사시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나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지도를 바라보았다.
묵묵히 지도를 바라보던 무사시는 지도 위에 있던 말 하나를 어디론가 옮긴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말은 황금빛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이익... 으아아!"
칭원 클랜의 전진기지, 면류관을 쓴 이의 막사 안.
아무도 없는 빈 막사에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면류관을 쓴 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씨익씨익거리면서 천막 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감히, 감히 내게 그런 소리를 해?"
사실, 면류관을 쓴 이는 방금 전 몰래 양산박에 있는 사촌 형과 접촉했다.
클랜전이 길어진 탓에 물자가 바닥이 난 탓에 몰래 지원을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사촌 형은 야심이 많은 사람이니, 명분을 위해서라도 나를 도와주리라.
그러나 사촌 형의 말은 가혹하디 가혹한 것이었다.
'너도 이제 어른이니,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지. 언제까지 주변의 도움으로 살 생각이냐?'
면류관을 쓴 이의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
아무리 자기가 수백 년 동안 백수였다지만, 이제 마음먹고 일하려는 이에게 그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물론 면류관을 쓴 이는 화를 내긴 했으나, 만일 상대가 이를 들었더라면 아주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5성급 인원들을 간부로 지원한 것도 면류관을 쓴 이의 사촌 형이었고, 지금 클랜을 여기까지 키울 수 있도록 전체적인 지원을 한 것도 그의 사촌 형이었다.
오죽했으면 이 클랜은 면류관을 쓴 이가 바지사장으로 있는 양산박의 기지라는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면류관을 쓴 이는, 그저 화를 삭히며 사촌 형을 욕할 뿐이었다.
차마 입에 담는 것마저 과한 욕설들의 면류관을 쓴 이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욕의 대부분은 왜 지금까지 잘만 지원해 주다가 중요한 순간에 끊어 버리냐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의 표본.
그러거나 말거나, 면류관을 쓴 이는 욕을 내뱉으면서 더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고, 오히려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과한 스트레스는, 곧 정신 승리로 이어졌다.
"...그래. 이무기가 용이 되려는데, 어찌 범인이 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오?"
면류관을 쓴 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마치 뱀의 눈처럼 변한 채로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수백 년 묵은 뱀과도 같았다.
"5성. 5성이 된다면 이 모든 수모따윈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
그는 지금의 수모가 모두 자기가 4성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핵심 간부들이 5성인데 반해 자기만 4성이니,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이유는 그저 그가 사람 됨됨이가 덜 되었기 때문이지만, 그는 이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5성. 5성이라."
면류관을 쓴 이는 이제 완전히 진정한 듯 숨이 평온해졌다.
"5성이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 이 클랜도 진정으로 날 섬기게 될 거고, 양산박에 있는 내 친척들도 날 무시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어쩌면..."
양산박의 주인이 될 수도, 어쩌면 세상의 주인이 될 수도 있겠지.
면류관을 쓴 이는 이제 완전히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그는 황제요, 용이요, 세상의 지배자이자 신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지."
면류관을 쓴 이의 눈이 번들거렸다.
사악한 뱀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벽을 향하고 있었으나, 면류관을 쓴 이는 벽의 너머, 더 너머를 보고 있었다.
"이번 클랜전을 승리로 이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니..."
면류관을 쓴 이는 더욱더 뒤틀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이무기가 용이 되는 날, 모두 나를 섬기게 되리라."
면류관을 쓴 이가 아주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아마, 뒤늦은 중2병의 발병이었으리라.
...
슬슬 해가 고점을 지나 하향세에 접어들 때 즈음, 동방연합의 전진 기지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장비 확인하고, 혹시나 아직 자는 녀석 있는지 확인해!"
"으, 이건 여기가 아니라 저기! 저기 있는 건 왜 또 다섯 개야! 저긴 네 개라고 했잖아! 얼씨구? 여긴 또 왜 두 개나 비어!"
"으, 이게 무슨 소리지?"
"모르겠소. 그나저나 왜 이리 수선스러운지..."
곧 있을 출정으로 인해 꺼져 버린 모닥불의 옆,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졌던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어수선한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오그레손은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도 지금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나기나타를 들고 지나가던 여성을 붙잡았다.
"그, 지금 왜 이리 수선스러운 거요?"
"아, 조금 있으면 출정이 있어서요. 다들 출정을 준비하느라 바쁘답니다."
여성은 머리 끈을 질끈 매며 대답했다.
잠깐의 시간도 아깝다는 듯 말이다.
"출정 말이오?"
"네. 다시 전쟁인 거죠."
"아. 대답해 줘서 고맙소. 거기 주교 양반, 일어나시오. 아무래도 잘 때가 아닌 것 같소."
"음?"
오그레손은 여성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아르쿠스를 깨웠다.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잠을 잘 때가 아닌 것 같소. 그렇다고 우릴 후방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 같고. 그러니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소?"
오그레손은 아르쿠스와 지금 상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다시 누우려던 아르쿠스를 일으켜 세웠다.
어설프게 잠이 깨버린 아르쿠스는 약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아르쿠스는 문득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아, 세상에. 맙소사."
"...? 왜 그러시오?"
오그레손은 갑자기 성호를 긋기 시작한 아르쿠스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쿠스는 계속해서 성호를 그으며 히죽거리더니, 이내 오그레손을 향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얀 까마귀께서 내게 길을 인도하셨네. 마지막의 마지막에 상투스 도미니쿠스, 그러니까 도미닉 경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네!"
"뭐요?"
오그레손은 놀란 눈으로 아르쿠스를 쳐다보았다.
가끔 깡마른 노망난 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르쿠스였지만, 신앙심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신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런 아르쿠스가 신을 보았다니, 그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하얀 까마귀께선 전장에서 배회하고 계셨네. 그 말인 즉, 우리가 저들을 따라가면 도미닉 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뜻 아니겠는가!"
아르쿠스는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신앙심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그건 하얀 까마귀에 대한 신앙인지, 도미닉 경에 대한 팬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울던 아르쿠스는, 이내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닐세. 당장 저들을 따라가세. 그래야 도미닉 경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한 아르쿠스는 그대로 동방연합의 클랜원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아이고..."
오그레손은 다급하게 아르쿠스를 불렀으나, 이미 신앙심이 머릿속에 가득한 아르쿠스에게 오그레손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오그레손은 신앙심이 가득한 게 아니라 정말 노망이 난 게 아닌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르쿠스의 뒤를 따라갔다.
"천천히 가시오! 나도 같이 갑시다!"
* * *